국립중앙박물관,12월 3일부터 가야사 전시장 새롭게 개관 전시가야가 ‘낙랑’과 교류하였다고 하였는데 ‘낙랑’은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을 말하고 재평양 설의 식민사관바람개비, 통형 청동기 원산지를 왜의 것으로 둔갑 주류 언론이 외면하는 가운데 가야가 일본 야마토 왜의 식민지가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일제는 ‘정한론’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다. ‘정한론’의 근거가 소위 ‘임나일본부설’이다.이는 고대에 야마토 왜가 우리나라 남부 특히 가야지역을 서기 4세기 후반부터 2백년이 넘게 식민지배했다는 식민사관이다. 임나일본부설의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북방 초원에 대제국 건설한 흉노의 뿌리는 단군조선단군조선을 이은 부여의 시조, 동명은 북방제국의 뿌리흉노의 탱그리는 하늘의 아들로 무당 통치를 상징북방 선비족의 카한은 하늘 의미 뒤에 군주 칭호로 바뀜주몽은 활 잘 쏜다는 뜻으로 몽골 등 북방제국들이 계승백제는 부여를 이은 제국, 부여의 시조 동명과 맞닿아 백제 건국신화 3-2흉노의 군주는 선우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흉노전'에는 탱리고도선우(撐犁孤塗單于)라는 군주 칭호가 나온다.흉노는 하늘을 탱리 즉 텡게리(Tenggeri)라고 했는데, 텡게리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치우는 중국의 시조 황제헌원과 탁록대전을 벌인 동이족치우 후예 묘족 귀주성에 정착, 치마에 3개 강을 건넌 표시중국 신화에 가장 용맹스럽게 나와 끈질기게 반란, 저항명 왕조 시기에도 반란, 이를 막고자 명은 장성을 세워중국 당국은 치우도 중국 조상이라고 중화삼조당에 모셔 중국 소수민족 신화 1-1(묘족신화)그동안 위앤커의 저술을 기본으로 중국신화를 살펴보았고, 유향의 과 갈홍의 을 중심으로 중국 신선들을 대충 알아본 셈이다.그러나 중국은 소수민족이 55개나 되니, 한족 중심의 신화만으로
어버이로 섬기던 명나라에 뇌물 주고 얻은 왕, 인조임금청나라를 오랑캐라 무시, 청 황제 즉위식에 인사도 안 해청 침공하자 36개 도주, 인조 총 4번에 걸쳐 도성 버려전쟁 패배 표시 삼전도비의 수난, 세우고 매장하길 되풀이국가가 저질러 놓고 피해자인 백성을 오랑캐 자식이라 비난 < 조선 인조 : 사대 명분에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자식마저 죽여>1. 명분 핑계로 등장한 인조잠시 권력을 잃었던 서인 세력은 광해에게 반기를 들어 재집권에 성공했다. 무리한 궁궐공사, 동생 영창 살해, 인목대비 폐위, 명에 대한 배신 등이 명분이었다.인조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백제, 가야인들이 세운 일본,부모의 나라를 정복했다고 거꾸로 왜곡하여 가르침3백년간 백제, 가야 역사를 일본 역사로 둔갑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 신공황후에 복속됐다고 날조임진왜란과 일제의 정한론에 따른 조선 침략은허구의 를 사실로 믿고 실행했기 때문 신생국 일본의 탄생과 라는 새로운 역사의 편찬새로운 역사의 편찬697년 새로운 일본(日本)이라는 국가 수립에 따라 역사편찬도 이루어졌다. 720년경 가 만들어졌는데, 300년간 일본열도에서 있었던 백제와 가야
이범주(자유기고가) 간도특설대 창설,조선인이 먼저 건의했다고 하나 사실은 배후에 일제가 기획조선인은 철저한 신원조회와 보증인 2명 세우는 등 거쳐 뽑아부대 노래 속에 ‘야마토 혼이 우리를 고무, 천왕의 뜻 받들자’조선인에 매우 잔혹하고 악랄하게 대하고 구타와 욕설이 일상대한민국은박정희,정일권, 최규하 등 독립군 학살 간도특설대 출신이 장악 [간도 특설대]를 읽다.- 1930년대 초반부터 만주에서 일제에 대한 조선인들의 무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중국 당국이 공인한 옌볜의 항일열사 3,125명 가운데 조선인의 비율이 98%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부여의 개국신화, 하늘에서 계란 같은 기를 받고 시조 임신고구려 시조도 알에서 시작, 부여 이은 징표로 동명성왕부여 시조 동명, 활 잘 쏘는 자, 고구려 시조 주몽도 같아 백제 건국신화 3-1부여의 건국신화를 들여다보자. 탁리국(槖離國) 왕의 몸종이 임신했으므로 왕은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그런데 몸종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크기가 달걀만한 기가 하늘에서 나에게로 내려왔기 때문에 임신하게 되었다고 했다.(중략)왕은 그 아이가 하늘의 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여 그의 어머니에게 그를 거두어 기르도록 하고 그의 이름을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평택 역사 탐방 2수취체제 폐단이 부른 조선 백성의 참담한 생활상대동법으로 세금 부담 더하게 된 지주세력의 저항16세기 나왔으나 전면 실시는 2백년 뒤에 겨우 가능대동법 실시로 대기근에서 백성 굶어 죽는 것 막아새로운 직업과 자본의 축적이 가능한 상인의 번성 김육과 대동법대동법(大同法)은 동양 유교사회의 기본 세법인 조용조(租庸調) 중 농지세인 전세(田稅) 조(租), 즉 공납(貢納)을 쌀로 대신해서 납부하게 하자는 방안이었다.조(租), 즉 전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1결당 최하세율인 4두를
글: 박일문(종합격투기 체육관 관장) 625 전쟁 시 유엔군 서울탈환 오래 걸린 것 시가전 때문1960년대부터 지은 아파트에 군사 장비 장착하도록 설계북한이 쳐들어와도 이런 조건 때문에 이길 승산 거의 불가문재인 정권은 남북대화나 교류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아야북한도 극단적 일인 독재 포기하고 집단 지도체제로 나가야 남북정상회담과 불면의 밤현대전은 도시 시가전이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같은 사막, 산악전이 한반도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다.71년 전, 조미 전쟁 시기 미제와 이남의 완패로 끝났지만, 건물이 없었던 대전 공방전에서도 시간이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부여는 서기전 12세기에 중국 하북성 난하에 존재중국의 , 가 이를 명백하게 증명해부여를 이은 고구려도 요하를 중심으로 하북성 차지윤내현, 단군조선이 문을 닫자,고구려-백제-신라-가야 사국의 열국 시대로 이어져식민사학은 고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국시대로 날조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와 역사 이어져 백제 건국신화 2부여는 어떤 나라였을까?우리 고대사 연구는 학자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여러 갈래여서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나는 윤내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부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제주도 천주교도들의 제주민에 대한 약탈과 살해강간, 신당 신목 등 무속문화 부정, 파괴 일관관아 노비였던 이재수가 주민 모아 봉기하여 복수제주도 천주교도 인천의 프랑스함대에 구원 요청이재수 스스로 자수, 한양으로 압송돼 교수형 당해 1. 이재수의 난을 아는가? 덜 알려진 제주도 비극이재수의 난은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천주교인과 주민들 간의 충돌 사건으로 천주교도 300여 명이 희생되었다.신축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신축민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글: 신종근(의사, 역사기고가) 고대 일본 열도에 존재하던 여러 소국小國들,한국에서 집단으로 건너간 이주민이 세운 나라들지명이 한국 옛 지명 본뜬 것, 무덤도 한국식무덤 속의 부장품 대부분 한국에서 나온 것과 같아 『일본 고대사의 진실』(3)1. 초기의 일본 열도1. 일본 열도의 원주민과 초기 왜국들일본 열도의 초기 왜국들에 대하여 언급하기에 앞서 이미 그곳에 존재하던 일본 원주민에 대하여 한마디 해 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일본 원주민은 남녀 모두 얼굴과 팔에 문신을 하고 맨발로 다녔으며 문자도 없었다. 여자 옷은 홑옷으로 만들어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조선 단군의 태자 부루가 순임금, 우에게 오행치수법 전해순임금이 단군을 배반하고 요임금에게 투항, 부도에서 이탈원래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제후우가 수륙의 길을 차단하여마고성의 전통인 부도와 연락 끊고 왕래를 못하게 막아하나라와 은나라가 다 그 법으로 망하고서도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는 부도에서 떨어져 나가진리의 도를 들을 수 없게 된 까닭 중국 고대전설 4-10(우임금과 곤)우리나라 옛날 책에도 우임금 이야기가 나온다. '단군세기'에 기록하길,'재위 67년 갑술년(서기전 2267).단군께서 태자
19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바꾸고 한국의 근 현대사를 관통하는 동학혁명이 충북 보은 장안리에서 시작하고 끝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서기 1893년 3월, 보은 외속리면 장내리에는 전국의 동학 교도들이 모여 동학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개인이 남긴 자료와 조선 정부에서 기록한 것을 보면 최소한 3만 명이 넘는다. 요즘 시골의 웬만한 1개 군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었다. 분명한 사상이 있었고 모인 목적이 있었다. 이를 반영하여 민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주도하는 동학
새로 출현한 천부경과 단군, 실재한 역사 전시회 열려오방색으로 채색된 단군 영정은 19세기 것으로 드러나천부경 문구 새겨진 돌은 광무 9년으로 대종교 출현 이전수운회관서 10.1.~10.25. 단군, 천부경 등 1백여 점 전시항일독립투사 이자 이승만정부 부통령 지낸 이시영의천부경도 이번 전시회에 모습 드러내일제가 물러간 지 76년이 지나고 있지만, 일제 조선총독부의 식민사관이 여전히 우리 정신을 점령, 지배하고 있다.식민사관은 우리 역사가 북으로는 중국의 한나라 한사군 식민지로 시작하여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 발전할 수 있었고 남으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는 개국신화 존재백제만 개국신화 부존재, 부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어후백제 견훤의 탄생설화는 후백제 개국신화라 할 수 있어호랑이 젖을 먹은 견훤 설화, 지렁이 설화 두개 전해져 백제 건국신화 1백제는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와 같은 건국신화가 없다.동부여의 경우도 건국신화 비슷한 설화가 있고 또 금와왕 신화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백제는 건국신화가 없다.백제가 건국되고 900년이나 지난 뒤에 세워진 후백제에도 견훤의 탄생신화가 있는데, 백제는 왜 건국신화가 없을까?어쩔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가야는 토착세력, 유라시아 흉노족, 인도 집단이 세운 복합 문명대한해협을 중심으로 열도와 우리의 내륙을 잇는 중심국가로 군림서기전 1세기에 이미 철을 생산하는 발달 된 철기 문화시대 진입 가야 건국신화 7김종성은 김수로 집단이 가공할 세력이었기 때문에 토착세력과 타협하는 과정이 매우 고압적이었다고 보았다.자신을 맞이하려면 춤추면서 구지가를 부르라고 명령조로 말하고, 9간이 왕후를 추천하려 하자 자신은 하늘의 뜻에 따르겠다며 9간 세력의 왕후를 받지 않았다.게다가 9간의 통치지역을 새롭게 6개 지역으로 재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중국 한나라 실권 잡은 흉노 김일제의 후손, 왕망 신나라 세워김일제 후손들 신나라가 망하자 한 땅 남부로 이동해 가야 건국신라 김씨, 동이족 소호금천씨 후예, 중간시조는 김일제로 나와 가야 건국신화 6수로는 서기 42년에 나타났는데 탈해와 가야를 두고 다투었다. 그런데 탈해가 신라 4대 이사금으로 있을 때 알지가 나타난다. 알지가 나타난 때는 서기 60년이었다.알지는 신라 김씨 왕족의 시조라는데, 알지는 수로보다 약간 늦게 신라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가야의 왕이 된 수로가 김씨인데 근처에 있는 신라에
독립투사들이 꿈꾼 나라,일제 졸개들이 지배하는 나라 아니었을 것백인 위안부 가해 일본군만 처벌돼황인 위안부 가해 일본군은 떵떵거리고 살아프랑스, 독일은 나치 부역자 처벌에 시효 미적용대한민국은 반역자, 현재 친일찬양자도 미처벌윤봉길 의사가 홍구 공원서일제 시라가와 요시노리 폭살했는데,이 자를 존경하여 시라가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한백선엽을 ‘국군의 아버지’라고 하면윤봉길 의사는 어떻게 되는가 김원웅 광복회장이 올해 광복절에도 대한민국의 민낯을 고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백범 기념관에서 미리 찍은 동영상을 방영하는 것으로 오늘 76주년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난생설화는 천지창조와 생명과 관계된 것으로 태양신 상징금씨의 나라는 신라, 가야, 대청제국 등이 있고 한 조상신라의 조상은 한웅천왕 후예 소호금천씨로 거슬러 올라가 가야 건국신화 5부여•고구려•신라•가락의 건국신화는 모두 난생설화다.정중환의 에는 '가락국기의 건국신화'를 다루는 별도의 장이 있는데, 난생설화는 '동이족의 설화'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일본신화에는 직접적인 난생설화가 보이지 않고, 중국에서도 서언왕신화를 제외하면 거의 난생설화가 보이지 않는단다.중국신화 중 서국(徐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