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사관으로 접근해야 우리 역사의 전체 모습이 드러난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북방 초원에 대제국 건설한 흉노의 뿌리는 단군조선

단군조선을 이은 부여의 시조, 동명은 북방제국의 뿌리

흉노의 탱그리는 하늘의 아들로 무당 통치를 상징

북방 선비족의 카한은 하늘 의미 뒤에 군주 칭호로 바뀜

주몽은 활 잘 쏜다는 뜻으로 몽골 등 북방제국들이 계승

백제는 부여를 이은 제국, 부여의 시조 동명과 맞닿아

 

▲ 하늘의 아들 해모수. 부여의 건국 시조는 동명이라 불렀는데, 대군장인 투멘의 한자식 표현이라고 한다.
▲ 하늘의 아들 해모수. 부여의 건국 시조는 동명이라 불렀는데, 대군장인 투멘의 한자식 표현이라고 한다.

 

백제 건국신화 3-2

흉노의 군주는 선우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한서> '흉노전'에는 탱리고도선우(撐犁孤塗單于)라는 군주 칭호가 나온다.

흉노는 하늘을 탱리 즉 텡게리(Tenggeri)라고 했는데, 텡게리는 흉노뿐만 아니라 돌궐족•몽골족•만주족이 공통으로 사용한 말로 신격화된 하늘 즉 샤머니즘의 최고신을 나타낼 때 사용했다고 한다.

흉노는 자연상태의 하늘은 따로 기련(祁連-Kilen)이라 불렀는데, 기련산맥은 하늘 같은 산맥이라는 뜻이 되겠다.

탱리고도선우(Tenggeri Kotu Targu)는 '하늘의 아들'인 선우이니 최고신의 대리자 곧 최고의 사제임을 뜻한다.

그러나 흉노의 선우들은 유능한 군사령관일 뿐이지 사제적인 성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선우(單은 죄다 모두, 于는넓고 큰의 뜻)라는 말에 '아주 광대한'이란 뜻이 들어있지만, '텡게리 고도'라는 말 속에는 그들의 시조가 샤먼적 성격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박원길의 주장이다.

선비계 부족들은 하늘을 카간(Khagan)이라 불렀는데, 선비족이 북방의 패권을 장악한 이후에는 흉노의 선우(Targu)를 대신하여 카간이 군주의 칭호가 되었다고 한다.

선비계 지배층 역시 흉노의 군주와 마찬가지로 샤머니즘을 정권 유지의 안전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박원길의 주장이다.

그런데 선우나 카간과 달리 정복군주나 대군장을 나타내는 말에 투멘(Tumen)이 있다.

투멘은 만부장(萬夫長)이란 뜻이니 샤먼적 상징보다는 위대한 군사령관으로서 모든 족속을 다 거느리는 대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유목제국을 건설한 흉노의 두만(頭曼, ?~서기전 209년) 선우는 이름이 아예 투멘(Tumen)이었다.

여러 부족을 통합 정복하여 유목제국을 세운 대군장이란 칭호를 아예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 같다.

박원길은 '동명'은 명확히 만부장을 뜻하는 Tumen의 음역이라고 주장한다. 이 칭호는 흉노 제국의 두만 선우처럼 유목군장들의 이름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단다.

박원길의 주장대로라면, '해모수 동명'은 '하늘의 아들'인 해모수가 여러 부여족을 통합하여 대제국을 세운 동명 즉 투멘이란 뜻이 되겠다.

그렇다면 활을 잘 쏘아 주몽 또는 추모라 했다는 주몽•추모의 어원은 무엇일까? 북방 민족에게 활을 잘 쏘는 일은 매우 중요하여 대부분의 우두머리들에게는 선사자라는 뜻의 메르겐(Mergen)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박원길이 보기에는, <몽골비사>에 나오는 알랑 고아의 아버지 코릴라르타이 메르겐은 명칭면에서 맥족(貊族-Khori)의 선사자인 주몽을 지칭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출신과 의미가 일치하고 있단다.

알랑 고아는 몽골족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다. 박원길은 주몽의 원음이 Jobe-Mergen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데, Jobe은 '정확한', '좋은'이라는 뜻을 지닌 몽골어란다.

그러니까 Jobe은 '주'나 '추'이고, Mergen은 '몽'이나 '모'로 축약되었다는 말이겠다. 주몽 또는 추모는 활을 잘 쏘는 선사자인 Jobe-Mergen을 한자식으로 표현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Mergen이나 Tumen은 모두 본명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일종의 관칭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명(東明)성왕은 말 그대로 '동쪽을 밝게' 한 성왕이나 원래는 정복군주인 대군장 투멘을 한자로 나타낸 것이고, 주몽 또는 추모는 선사자인 Jobe-Mergen을 한자로 표시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박원길이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머니즘>에서 주장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백제는 만주 북방을 제압한 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을 자신들의 시조로 여겼고, 온조왕 때부터 동명묘를 만들어 일년에 네 차례씩 계속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백제가 부여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는 의식이 백제 왕조의 근본이 되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백제 왕족은 성씨가 부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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