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은 끊임없이 부활할 때 나라가 건강해진다.

 

 

▲ 서기2021.10.02. 충북 보은 장안리와 동학농민혁명 공원에서 동학혁명북접사업회가 주최하는 위령및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 서기2021.10.02. 충북 보은 장안리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동학혁명북접사업회가 주최하는 위령및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19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바꾸고 한국의 근 현대사를 관통하는 동학혁명이 충북 보은 장안리에서 시작하고 끝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기 1893년 3월, 보은 외속리면 장내리에는 전국의 동학 교도들이 모여 동학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개인이 남긴 자료와 조선 정부에서 기록한 것을 보면 최소한 3만 명이 넘는다. 요즘 시골의 웬만한 1개 군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었다. 분명한 사상이 있었고 모인 목적이 있었다. 이를 반영하여 민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주도하는 동학 민회였다. 역사에서는 이를 보은 취회라고 부른다.

동학 민회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평안케 한다는 보국안민과 서양세력과 왜적의 침략을 물리치겠다는 척왜양을 내세웠다.

보국안민을 구체화한 것이 제폭구민인데 부패한 중앙권력의 폭정과 지방 탐관오리들의 탐학과 가렴주구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겠다는 뜻이다.

대규모 군중이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었으니 중앙정부의 지목을 받았을 수밖에 없었고 중앙에서 선무사를 파견하여 나라에 위협이 되니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민회는 민중의 정당한 요구에 대하여 답변을 하라고 촉구하였다.

촉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호포제를 혁파하라(戶布革罷事).

둘째, 화폐 당오전을 혁파하라(當五革罷事).

셋째, 각 군현의 세미를 정밀히 하라(各邑稅米精持事).

넷째, 외국 옷감의 유통을 금지하라(着木綿不通外國物色事).

다섯째, 민씨 척족세력을 축출하라(閔氏逐出事).

여섯째, 왜적과 양이를 척결하라(斥倭洋事)

서기 19세기 내우외환을 대표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왜 동학혁명이 보국안민, 제폭구민, 척왜양을 외쳤는지 알 수 있는 요구사항들이다.

결국 중앙에서 민회를 강제해산시키고자 군대를 실제 출동시켜 수원까지 왔고 청주 감영에서도 진압군이 출발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회를 연지 1년여 만에 해산하였다.

비록 1년여 기간이었지만 왕조의 통치권이 배제된 민중이 스스로 다스린 주권 재민의 한국 고유의 민주주의 역사를 썼다.

전라도에서도 해를 넘긴 서기 1894년 5월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민중 자치를 하였다.

보은 민회처럼 이번에도 조선이라는 나라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한 나라 안에 또 하나의 국가가 존재하였다. 이때는 중앙정부와 아예 협상해서 얻어낸 것이었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전주화약이라고 한다.

동학혁명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 집강소 활동이다. 보은 민회에서 시작됐고 전라도로 이어졌다.

동학혁명 전쟁도 해월 최시형의 기포령으로 시작됐다. 전봉준 등이 전라도에서 기포를 한 것도 해월의 명령 때문이었다.

혁명은 우금치 전투 패배를 기점으로 막을 내렸고 해월의 명을 받아 동학 혁명군을 총지휘한 통령, 의암 손병희가 이끄는 동학혁명군은 관군과 일본군에게 쫓겨 처음 기포령이 내려진 보은 장내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장내리는 이미 모든 가옥과 시설들이 불타고 없었다. 일본군과 관군이 파괴했기 때문이다.

장내리에서 약 2km 떨어진 북실로 후퇴한 동학 혁명군은 뒤쫓아온 일본군과 관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고 결국 차디찬 12월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 학살 당하였다. 2천2백여명이 일본군과 관군에게 희생됐다. 

▲ 동학민회가 주최하는 제128주년 동학혁명기념행사 알림장. 다채로운 거리가 차려졌다.
▲ 동학민회가 주최하는 제128주년 동학혁명기념행사 알림장. 다채로운 거리가 차려졌다.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올해로 128년이다.

5월 11일이 지난 2019년에 동학혁명 국가지정 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5월에 동학혁명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전북을 중심으로 기념행사를 한다.

보은에서도 사단법인 동학혁명 북접 사업회(동학민회, 대표 손윤 이사장)가 해마다 행사를 하였다. 봄에 하던 것을 돌림병19(코로나19) 때문에 올해는 오는 10월 2일에 한다.

지난해와는 다르게 진행하는데 우선 전 과정이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돌림병19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어 꼭 필요한 인원만 현장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제는 ‘길 위의 동학, 사람 꽃’이다. 조정미 동학 민회 사무국장이 이끄는 가운데 동학 혁명군의 자취를 따라 보은 외속리면 장내리에서 출발하여 북실의 동학 농민 혁명기념 공원까지 약 2km까지 걷기는 미리 진행됐다.

당일 행사는 14시부터 시작되는데 16시 까지 동학위령제를 연다. 먼저 꽃상여가 나가고 동학의 예에 따라 청수를 올리고 고천문 낭독을 한 뒤, 잔을 올리고 위령무로 마무리한다.

오후 4시부터 30분 동안에는 다시 개벽, 우리는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다. 이어 4시 40분부터는 공연이 있는데 살풀이춤과 새야새야 파랑새야 노래가 이어지고 피리와 해금이 함께 어우러지는 연주가 있다.

마지막으로 다 함께 홀로 아리랑을 부르는 것으로 행사가 막을 내린다.

마지막 동학 혁명군이 죽어간 것을 기리는 것이 동학 민회 행사의 줄기다. 동학 혁명군이 흘린 피의 의미를 해마다 새롭게 되새긴다.

단순히 위령하고 기리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 적용하여 오늘날의 동학은 무엇이며, 동학군을 학살한 오늘날의 관군과 일본군은 어떻게 존재하며, 오늘날의 탐관오리와 권신들은 누구인지, 오늘날의 탐학과 가렴주구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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