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나라를 속국으로 만든 흉노 김씨 족이 신라와 가야를 세웠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중국 한나라 실권 잡은 흉노 김일제의 후손, 왕망 신나라 세워

김일제 후손들 신나라가 망하자 한 땅 남부로 이동해 가야 건국

신라 김씨, 동이족 소호금천씨 후예, 중간시조는 김일제로 나와

 

▲ 문정창 저서, . 문정창은 일제침략기에 군수를 하는 등 부역행위를 했지만, 해방 후 회개를 하고 일제침략을 고발하고 일제가 왜곡 날조한 우리역사를 바로 잡는데 여생을 보냈다. 
▲ 문정창 저서, . 문정창은 일제침략기에 군수를 하는 등 부역행위를 했지만, 해방 후 회개를 하고 일제침략을 고발하고 일제가 왜곡 날조한 우리역사를 바로 잡는데 여생을 보냈다. 

 

가야 건국신화 6

수로는 서기 42년에 나타났는데 탈해와 가야를 두고 다투었다. 그런데 탈해가 신라 4대 이사금으로 있을 때 알지가 나타난다. 알지가 나타난 때는 서기 60년이었다.

알지는 신라 김씨 왕족의 시조라는데, 알지는 수로보다 약간 늦게 신라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가야의 왕이 된 수로가 김씨인데 근처에 있는 신라에도 김씨가 나타난 것이다.

문무왕 비문에 김일제가 자신들의 시조라고 했으니 김알지는 당연히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이 되겠다.

그럼 수로왕의 김씨 유래는 어떻게 될까?

문정창은 이미 <가야사>에서 '김수로는 흉노족'이라고 주장한 바 있단다. 문정창은 김일제 후손이 한나라 조정의 실권을 잡은 뒤에 그들 중에서 왕망(문정창은 '김왕망'이라 함)이란 인물이 신나라(8~33)를 세웠다가 신나라가 망하자 김일제 후손들이 한반도 남부로 이동해 가야를 세웠다고 주장했다.

<철의 제국 가야>를 쓴 김종성은 반고의 <한서> '김일제열전'과 '왕망열전'을 들어 문정창의 주장이 옳다고 결론 내린다. '왕망열전'에 의하면, 망의 성은 왕이며 황실 외척인 왕만의 아들로서 효현황후의 조카다.

효현황후는 김산호가 인도의 가야 출신이라고 한 왕정군(王政君)이다. '김일제 열전'을 발췌하면,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인데, 김일제의 증손자인 김당의 어머니와 왕망의 어머니는 자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왕망과 김당은 외가가 같은 친척관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정창이 왕망의 성을 김씨라고 했듯이, 김종성도 왕망이 김씨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게 보는 끼닭은?

첫째, 한무제 이후로 한나라에서 권세를 잡은 핵심 가문은 곽거병 가문과 김일제 가문이었다. 곽거병(기원전 140~117)은 황실의 외척으로 흉노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곽거병에게 끌려온 김일제는 처음에는 말을 관리하는 한직에 있었으나 망하라 일당의 암살 시도로부터 한무제를 보호한 공로로 투후에 봉해졌다. 그리고 김씨 성을 한무제로부터 하사받았다.

이로써 곽씨와 김씨 두 집안이 한무제 이후로 대대로 실권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곽씨 집안은 기원전 66년에 쿠데타를 일으키다 실패하여 몰락하고 만다.

이후 한나라 조정 권력은 김일제 후손들이 장악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왕망이 어떻게 권력을 독차지하고 신나라를 세울 수 있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효원황후나 왕망이 모두 김씨라고 하면 모든 의문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반고는 '역사가의 양심'보다는 '한족의 자존심' 때문에, 흉노족에게 한나라가 멸망했다고 쓸 수 없어 김왕망을 왕망으로 기록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왕망은 김일제 가문의 후사를 염려했다.

김일제의 직계 후손이 없어 투후 제후국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왕망이 김흠과 김당을 책봉하여 그 뒤를 받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왕망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경쟁자인 김씨를 없애야 하는데, 김일제 가문의 후사를 염려했다면 왕망은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왕망과 김일제 가문은 중국사에서 동시에 사라졌다.

김일제의 후손들은 왕망과 정치적으로 한 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망의 신나라가 멸망한 서기23년 이후 중국사에서 함께 사라져 버렸다.

가야가 세워지기 19년 전 일이다.

왕망이 김일제의 후손이든 아니든 김일제 후손들은 오랫동안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국정 운영 능력을 익힐 수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김수로가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예'라 하여 '성을 김씨로 삼은 것'이며, '남가야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동성'이라는 내용이 있다.

서안 비림박물관에 있는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도 김씨 부인의 시조는 소호금천씨이고 중간시조는 김일제(기원전 134~86)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당나라에 살던 신라인 김씨부인이나 가야 출신인 김유신이 모두 자신들의 시조를 소호금천씨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에서는 김유신의 조상인 김수로와 신라 김씨의 혈통이 같다고 했다. 이는 김수로 역시 김일제의 후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수로가 금궤에서 나온 황금알에서 태어나 김씨가 되었다고 했지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처음 세상에 태어났다 하여 이름을 수로'라고 했다고만 기록했다.

다시 말해 그는 가야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김이라는 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김종성의 주장이다.

서기 42년 이전에 동아시아에서 김씨 성을 갖고 있던 집단은 김일제의 후손들뿐이었다는 것이 김종성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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