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이씨 왕조 지키려 금씨를 김씨로 바꾸었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난생설화는 천지창조와 생명과 관계된 것으로 태양신 상징

금씨의 나라는 신라, 가야, 대청제국 등이 있고 한 조상

신라의 조상은 한웅천왕 후예 소호금천씨로 거슬러 올라가

 

▲ 6가야 조각
▲ 6가야를 상징하는 6개의 황금알을 조각해 놓은 벽 부조물. 

 

가야 건국신화 5

부여•고구려•신라•가락의 건국신화는 모두 난생설화다.

정중환의 <가라사연구>에는 '가락국기의 건국신화'를 다루는 별도의 장이 있는데, 난생설화는 '동이족의 설화'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일본신화에는 직접적인 난생설화가 보이지 않고, 중국에서도 서언왕신화를 제외하면 거의 난생설화가 보이지 않는단다.

중국신화 중 서국(徐國)의 서언왕신화만 난생설화인데, 서언왕은 동이족이고 서국이 멸망한 후에는 서이(徐夷)가 회수지역에서 계속 활동했다고 한다.

알은 그 모양이 태양과 같이 둥글고 그 속에 생명의 씨를 간직하고 있으니, 천지창조와 생명의 기원을 간직하고 있는 '태양'을 상징하고 있다.

가락국의 건국신화도 전형적인 난생설화인데, 단 6가야를 상징하여 6개의 알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점이 다른 신화와 다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라와 가야 이야기를 하면서 알지나 수로가 왜 '금씨'가 아니고 '김씨'일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 생긴다.

알지는 '금빛' 궤짝에서 나와 성을 김씨라고 했다는 것이고, 수로 역시 황금 상자 안에 있던 '황금' 알에서 태어나 김씨가 되었다는데, 금빛 궤짝에서 나오고 황금 알에서 태어났으면 당연히 금씨지 왜 김씨일까?

신라 김씨 왕족의 시조라는 김일제도 아버지 휴도왕이 금으로 만든 인물상(金人象)을 만들어 제천행사를 했기 때문에 한 무제가 김씨 성을 내려주었다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김씨가 아니라 금씨여야 할 것이다.

신라 김씨의 시조라는 설이 있는 소호 금천(少昊 金天)씨도 소호 김천이 아니고 소호 금천이라 부른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예라 했다. 그래서 성을 김씨로 삼은 것이다. 유신의 비문에도 "헌원의 후예 소호의 후사"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남가야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동성이었던 것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사례는 참으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원나라 때 만든 <금사>에는 그들의 시조가 '함보'로 되어 있다.

금나라 시조 함보의 아버지는 김행이라는 신라 말 사람이다.

김행은 왕건에 의해 권씨 성을 하사받아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된 '권행'이라는 설도 있다.

금나라 시조 함보의 다른 이름은 김준인데 금준(今俊)이라고도 기록하였고, 김행은 금행(今幸)이라고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당시 金의 발음이 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 황실의 역사서인 <흠정 만주원류고>에 의하면 금국의 명칭은 신라왕성 금씨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고, 다른 주장들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견강부회라 하였다.

말하자면 시조의 성이 금씨여서 나라 이름도 금나라로 했다는 말이다.

청을 세운 누루하치는 성을 '아이신 교로'라고 했는데, 아이신은 금이고 교로는 씨라는 뜻이니 바로 '금씨'라고 할 수 있다.

아이신 교로는 한자로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적었는데, 성을 새로 만들면서 아무 한자나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뜻으로 보면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자'가 되니, 만주족 역시 신라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주족의 시조라는 '포고리옹순'도 '아이신교로'를 성으로 하였는데, 금옹순도 금준 곧 금함보의 후손이라고 한다.

전호태는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에서 김씨는 본래 금씨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사>를 번역하고 <금조사연구>를 쓴 윤명수도 원래 金씨성 호칭은 김씨가 아닌 금씨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언제 무슨 까닭이 있어 금씨가 김씨로 바뀌었을까?

몇 가지 설이 있다는데, 윤명수는 조선시대 오행설의 영향을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목자득국(木子得國) 그러니까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는 참언을 활용했던 이성계가, 금극목(金克木)

'금씨가 목 곧 이씨를 이긴다'는 오행의 내용이 불길하게 느껴졌고 이에 따라 참언이 생길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금씨를 김씨로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아마 성씨 뿐만 아니라 지명도 금을 김으로 바꾸어 부르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금관가야'가 있던 '금빛바다' 금해가 삭막한 김해로 바뀐 것도 진정 이성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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