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 홍산문화의 가치를 낮게 취급하다...

 

홍산 문화 유물과 고조선을 연결키는 것은 ‘난센스’라는 김 교수...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하는 제10회 고대사시민강좌가 5.18.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번 강좌는 숭실 대학교 사학과 김정렬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요하문명과 홍산 문화’라는 주제로 홍산 문화에 대하여 전반적인 소개와 함께 평가를 하였다. 김 교수는 홍산 문화를 시간적, 공간적 범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시기는 유적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치를 인용하였는데 몇 군대를 특정한 측정치를 제시하였다. 대략 5천년에서 좌우되었다. 또한 공간적으로는 요녕성 서쪽, 내몽고 적봉시 일대를 중심지로 잡았다. 홍산 문화 유물로는 토기, 옥기, 무덤 등을 제시하였다. 홍산 문화의 우하량 유적에서는 적석총과 여신묘, 그리고 제단이 나왔다고 하였다. 김 교수는 이 유적이 제사를 지내는 종교의례를 하는 성소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홍산 문화유적을 문명사회로 볼 수 있는지, 중국에서 말하는 황제문명론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 해석을 가하였다. 김 교수는 홍산 문화는 아직 문명이라고 할 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이렇게 판단한 기준은 서양인들이 만든 학문적 관점이었다. 또한 홍산 문화유적은 중국이 말하는 황제와 관련이 없다고 하였다. 중국이 말하는 홍산 문화 황제문명론은 중국의 정치적인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그러면서 홍산 문화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논의가 기초적인 수준이고 고고학적 조사나 연구 성과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합리적인 해석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홍산 문화를 연구한 학자들을 겨냥하여 그들이 해석한 것은 사실보다 과장되었다고 낮게 취급하였다.

▲ 홍산문화와 관련하여 강연을 하고 있는 숭실대학교 김정렬 교수, 김 교수는 홍산문화와 고조선을 연결시키는 것은 '난센스'라고 하여 우리 문화와 상관없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홍산문화를 아직 문명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원시시대로 취급하였다.

김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는 수많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되었다. 특히 질문시간에 김 교수의 홍산 문화에 대한 시각이 명확하게 드러나자, 역시 식민사학자라는 소리가 이구동성으로 들려왔다. 대표적인 비판과 의문제기는 '홍산 문화가 중국 것도 아니고 우리 것도 아니라는데, 그럼 김 교수의 생각은 뭐냐'는 것이다. 즉, 홍산 문화의 소속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디 것인지 그 쪽을 전공한 학자라면 분명히 밝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 교수는 그냥 신석기 문화의 한 종류라고 하였다. 김 교수가 이렇게 대답하자,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특히 김교수 자신도 고백하였듯이 삼족기가 나왔고, 옥기에는 우리의 삼사상, 삼신사상을 나타내는 3개의 구멍이 뚫린 것이 무수히 출토되고 있고, 심지어 우리 전통문화의 상징인 삼태극문양이 새겨진 삼태극 옥기까지 나왔다. 이런 유물은 명백히 우리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도 김 교수는 관련성이 없는 것만 골라 제시하며, 우리와 상관없는 문화라는 식으로 주장하였다.

또한 곰발이 어느 모로 보나 명백한 유물 덩어리도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며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홍산 문화의 특정 표지 중의 하나가 적석총인데 이것도 우리와 관련이 없다는 논거만 제시했다. 질문자 중의 한사람이 그럼 거기서 나온 인골의 유전인자를 파악해 보면 중국인에 가까운지 한국인에 가까운지 알 수 있을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김 교수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나 정치적 해석가능성이 존재함으로 안 된다고 하였다. 홍산 문화 유물, 유적의 연대가 서기전 4~5천년으로 나오는 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시료가 오염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도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김 교수의 이런 태도에 대하여 ‘그럼 뭐하자는 거냐,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김 교수의 정체가 뭐냐’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답변시간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강단주류사학계 곧, 고대사시민강좌에 나온 강사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조선(단군)의 개국 시기를 서기전 10세기로 잡았다. 여기에 맞추다 보니 4~5천년으로 측정되는 홍산 문화를 조선과 연결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홍산 문화를 우리 것과 연결시키는 것은 ‘난센스’라고 잘라 말했다. 이 후에도 연 거푸 두 번 더 ‘난센스’라고 하였다. 모두 우리문화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부정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이번 강좌에는 지난번 보다 방청객이 부쩍 불어 있었다. 이유를 살펴보니 김 교수의 강의 주제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요하문명과 홍산 문화에 대하여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지난번 강좌에서는 시민강좌를 주관하는 경희대 조인성 교수가 취재를 방해하더니 이번에는 사회를 보는 이 씨가 제지를 하였다. 기자가 강사의 사진을 찍는 것을 트집 잡은 것이다. 강사에게 가까이 가서 그렇게 오랫동안 찍지 말라는 것이었다. 기자는 강좌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가능한 측면에서 찍었다. 그런데 사진이 기사에 올릴 정도로 제대로 나오지 않아 불가피하게 자주 강사 앞에 가서 찍었던 것이다. 이것을 설명해 주어도 막무가내였다.

이번 강좌에서 나누어준 지난번 강의에 대한 비평문을 본 방청객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지난주에 나누어 준 비평문이 선풍을 일으킨 듯하였다. 서울대 교수, 김병준이 강의한 것에 대하여 통렬하게 비판하고, 강의 증거로 쓴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부’ 목간이 왜 위조된 날조 품인지 조목조목 근거를 대면서 비판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누가 그렇게 쓴 거냐, 당신이 쓴 거냐, 거의 전문가 수준인데, 정말 당신 쓴 거야?”, “여기 봐라, 나눠준 비평문에 이렇게 중요표시로 별표 표시했다.”, “한 장 더 줘라, 널리 알리겠다, 여러 장 줘라.”, “나눠 주는 이것 참 좋은 거요~”, “고생 많다, 고맙다, 악수 한번하자.”, “취재 방해하면 구체적으로 대응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대비책은 있냐, 도와주겠다.”

이렇게 반응이 넘칠 줄 예상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강좌가 끝나고 장비를 챙기는데 어떤 방청객이 다가오더니, “내가 늦게 와서 비평문 못 받았다, 혹시 남는 것 있냐, 다 나누어주고 없냐?” 라고 하며 남는 것 있으면 달라고 하였다. 오탈자 있는 것 찾아 줄긋고 수정해 놓은 것을 드렸다. 이것도 괜찮겠냐고 하니, “아이구, 괜찮다, 달라” 라고 하였다. 다음 주 강의는 한성백제박물관의 사정으로 휴강을 한다. 2주 뒤 6.1. 수요일에 11회 강좌가 열린다. ‘삼국은 언제 건국 되었는가’를 가지고 노중국 씨가 강좌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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