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 되는 식민사학강좌'... 비판 쏟아지다.

 

오영찬 교수, 일제식민사관 증명에 주력...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하는 고대사시민강좌가 지난 3월부터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계속되고 있다. 4월 27일에는 이화여대교수, 오영찬이 ‘고고학으로 본 낙랑군’이라는 주제로 맡았다. 오교수는 현재의 북한 평양이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이 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했다. 앞서 강의를 맡은 강사들과 같은 주장이다. 그는 특히 평양일대에서 출토된 봉니, 인장, 목간, 기타 유물을 근거로 낙랑군이 평양이외의 다른 지역에 있었다고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교수는 우선 문헌적으로 평양이 낙랑군이 있었음을 증명하려고 하였는데 모두 소중화 조선시대의 소중화 유학자들이 내세운 견해를 인용했다. 한백겸, 안정복, 정약용, 한치윤 등이 쓴 책들을 끌어왔다. 그런 다음 고고학적으로는 일제가 일제침략기에 발굴했다는 유물들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이것에 대하여 진위논쟁이 있음을 알리고 일제가 위조 날조했다는 견해를 먼저 소개하였다. 위당 정인보와 북한학계의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오교수 자신의 견해를 소개했다. 아울러 오교수는 ‘낙랑고고학의 성립’, ‘낙랑고고학과 식민주의 확산’이라는 주제를 별도로 빼서 일제가 어떻게 낙랑군이 평양에 존재했음을 밝히고 있는지 과정을 소개하였다. 또한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목적에 맞게 의도적으로 낙랑유물을 이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형적인 일제식민사관의 내용 중의 하나인 타율성론 등을 언급했다.

▲ 이화여자대학교, 오영찬 교수가 평양지역에서 발굴되었다는 이른바 '낙랑유물'을 가지고 한사군 재평양설 증명을 시도하고 있다.

오교수는 위당 정인보와 북한학계의 견해를 타당한 것처럼 보면서도 자신의 최근의 연구와 중국이 서기1970년대 내놓은 한나라 시대 고고학적 발굴내용을 근거로, 일제가 발굴하여 제시한 낙랑유물을 대부분 사실로 보았다. 그는 이를 근거로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 고고유물로 볼 때 낙랑군이 평양이외의 다른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오교수의 이번 낙랑군 재평양설 발표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앞서 자신이 일제식민사관을 비판하였는데 결국 자신도 일제식민사관을 되풀이 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일제의 타율성론이 옳지 않다고 하면서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420년간 존재하면서 지역적, 시기적으로 삼한 및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문화형성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당연시하였고, ‘낙랑군이 한국 고대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 하였다. 이 말은 결국 우리 역사의 시작이 중국 한나라의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우리 고대사의 주역들이 또한 중국 한나라의 식민기관인 낙랑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제의 식민사관인 타율성론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비판이다.

또한 오교수는 낙랑군 재평양설을 절대적으로 믿는 근거로 대부분 일제가 식민지배의 목적으로 발굴한 봉니, 인장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일제가 불순한 의도로 발굴한 것이라는 점에서 증거로 채택하는 자체가 증거로써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1차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더구나 실제로 위조 및 날조된 것이 대부분임이 위당 정인보와 북한학계 뿐 아니라 남한에서도 밝힌바 있다. 오교수는 이에 대하여 해방이후 북한이 발굴한 무덤에서도 부조예군인장, 낙랑초원4년 목간 등이 나왔으니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이 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오교수가 내세우는 증거보다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근거로 이러한 것들이 '낙랑군이 평양에 없었음을 증명한다'고 하였다.

오교수는 평양에서 나오는 수천기의 무덤군 등이 낙랑군이 아닌, 낙랑국을 말한다는 1차사료의 기록을 전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교수 자신은 정작 낙랑군 재평양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미 일제가 날조 위조한 것들을 끌어다 쓰고, 낙랑국 1차사료 기사보다 더 간략한 기록을 끌어온다는 비판이 뒤 따랐다. 또한 한사군의 하나인 임둔군장 봉니가 요동에서 발견되고, 낙랑군 속현 중의 하나인 장잠현(長岑縣)은 문헌적으로 명백하게 요동지역으로 나타난다.

중국의 정사와 기타 1차사료에는 절대적으로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요동 또는 하북성 등 대륙에 있음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사자료는 한사군이 평양을 중심으로 있었다는 오교수와 같은 강단주류사학계의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그런데도 오교수는 이러한 1사료를 모두 무시하고, '낙랑군 재평양설'을 만들어낸 일제식민사관과 중화사관을 증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외에 한나라 유물이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오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한나라유물이 발견된 일본 해당지역도 한나라의 군현이 설치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오교수는 또한 중화사관(동북공정사관)에 철저히 물들어 있다는 비난이 쏟아 졌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뿌리를 중국의 박산향로에서 찾았고, 석암리에서 출토된 ‘금제대구’도 한나라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흉노에게서 찾으려고 애를 썼다.

이번 강좌에는 지난번 보다 방청객이 더 줄어 든 듯했다. 가지고 간 지난번 강좌 비평인쇄물이 남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인쇄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연락처를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저런 강의에 반격하는 강의하는 곳은 어디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분도 있었다. 또한 다가와서 인쇄물에서 지면 관계상 빼놓은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다음에는 그런 것도 꼭 더 넣어서 나눠주라는 분도 있었다. ‘비평인쇄물’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참석한 시민들로 하여금 균형 잡힌 사관을 갖도록 하기위한 목적이 달성되어 가고 있었다. 다음 강좌는 서울대의 김병준 씨가 ‘군현의 측면에서 바라본 한사군’을 가지고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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