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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을 넘어 매국, 망국사학으로 치닫는 강단주류사학계...김병준의 '초원4년현별호구부' 낙랑목간과 식민사관
오종홍 | 승인 2016.05.18 09:42

역사에는 객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사관이 개입된다...

이 땅의 주류사학은 매국, 망국사관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고대사시민강좌’가 열리고 있다. ‘고대사시민강좌’를 주관하는 경희대 조인성 교수 측은 이 시민강좌가 순수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역사강좌임을, 강사들의 발언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시민강좌는 순수성, 객관성, 과학성을 상실 한지 오래다. 두 번째 강사로 나선 경희대 교수, 조인성이, ‘사실상’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김현구의 형사고소사건을 화면에 띄워놓고 강의한데서 확인된다. 벌써 8회를 넘기고 있으나 하나 같이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이 북한평양일대를 중심으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대전제 위에서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하면 축소하고 왜곡하고 분열시킬까에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한국고대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고대사를 가르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8회 차 강사로 나선 서울대 교수, 김병준이 이 행위를 했다. 김병준은 ‘군현측면에서 본 한사군’ 내용물 첫 장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한나라 무제는 북쪽으로는 흉노를 내쫓고, 남쪽으로는 남월을 멸망시켰으며, 서쪽으로는 서남이를 정복하고, 동쪽으로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모든 지역에 군현을 설치했다. 이렇게 말과 풍습이 크게 다른 광대한 지역을 일률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동일한 제도와 율령을 적용하였고, 모든 행정은 문서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통치의 기초 작업은 지배와 수취의 대상인 호구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 글 어디를 봐도 ‘한국고대사시민강좌’를 찾아 볼 수 없다. 완벽 하리 만큼 중국인의 시각에서 주장하고 있다. 마치 소중화 조선 유학자들의 對중국 사대노예의 역사관을 보는 것 같다. 김병준이 언급한 위 동서남북의 족속들은 사실상 우리와 같은 문화인류학적 친연성을 보인다. 한나라 왕, 유철이 정복하고 멸망시키고 축출했다는 흉노 등 주변 민족은 우리의 방계역사라고 할 만큼 문화적, 인류학적, 유전학적으로 너무나 친하다. 더구나 흉노 같은 경우는 우리와 사실상 같은 역사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한나라를 60년 넘게 지배하며 공주와 수많은 재물을 조공 받았다. 한나라는 60년이 넘게 흉노제국의 속국으로 시달림을 받았다. 한나라 전성기라고 하는 유철 때는 흉노제국의 한나라 지배 60년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병준은 한나라 왕, 유철의 역사만 있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정상적인 한국학자라면 흉노의 이런 면을 최소한 균형 있게 언급했어야 한다.

김병준은 ‘초원4년현별호구부’낙랑목간을 통해서도 중국고대사를 강의했다. 북한이 해방 이후 발굴했다는 이른바 ‘초원4년현별호구부’낙랑목간(이하 낙랑목간이라 부름)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믿고 이 땅에 중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김병준은 낙랑목간을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진품임으로 보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중국의 진나라, 한나라, 오나라 때의 목간자료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 본 결과 모두 가정과 상상 그리고 추론 등으로 뒤범벅이된 주장에 불과했다. 더구나 낙랑목간과 같은 ‘현별호구다소부’라는 목간문서는 중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병준이 제시한 중국의 무수한 목간자료에는 낙랑목간내용과 비슷한 것 자체가 없다. 당시 중국에서는 ‘현’의 호구를 따로 적은 별도의 부를 만드는 제도 자체가 없었다. 아주 이질적인 것이다.

▲ 중국 강소성에서 발굴된 한나라시대의 목간

​이는 김병준이 제시한 당시 문서작성의 엄격한 규율에서도 확인된다. 즉, ‘장가산 한간 2년율령 호율’ 이라든가, ‘주헌서’ 그리고 ‘한서 백관공경표’ 등이다. 특히 2년율령의 경우 규정을 위반하면 처벌하겠다는 조항까지 나온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런 문서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핵심기초자료들이기 때문이다. 즉 부역이나 세금 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낙랑목간과 같이 현별호구수를 파악하는 문서가 필요했다면 다른 목간들과 함께 출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별로 다양하고 무수하게 출토된 당시 중국목간에는 낙랑목간과 같은 형식의 문서는 단 한건도 발견된 사례가 없다. 따라서 북한이 공개했다는 낙랑목간은 먼저 그 진위부터 검증해야 한다. 매국식민사학이 그 토록 강조하는 순수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역사학이라면 더욱 그렇다. 낙랑목간이 위조품일 수밖에 없는 증거는 많다.

▲ 일제가 한나라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하기 위하여, 위조해서 평양정백동 무덤에 파묻어 놓았으나 패망함으로써 미쳐 캐내지 못한 것을, 북한이 해방 후 발굴해 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부'목간

첫째, 목간자체의 규격이 도저히 목간문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당시 중국의 목간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중국 목간은 실처럼 길고 얇게 제작되었다. 설사 낙랑목간처럼 판자로 만들었다고 해도 역시 길쭉하다. 그리고 낙랑목간처럼 두께가 두껍지 않다. 얇다. 그리고 한눈에 봐도 중국목간은 일정한 규격과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반해, 낙랑목간은 즉석에서 톱으로 쓴 것처럼 거칠다.​

둘째, 글 배치와 제목의 차이다. 중국목간은 규정상 앞면과 뒷면에 내용을 적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낙랑목간은 앞면에만 적고 있다. 중국목간은 목간이 무슨 문서인지 체계적으로 맞춰져 있다. 특히 목간문서의 제목은 아주 간결하다. 예를 들어 그냥 ‘호구부’ 또는 ‘집부’ 라고 쓴다. 그런데 낙랑목간은 마치 평양이 한나라 시대의 통치를 받은 낙랑군이고 그 주변에 25개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처럼 제목을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다소부'으로 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단 사례는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셋째, 당시 중국의 문서행정논리로도 도저히 ‘현별호구부’를 작성 할 수가 없다. 당시 군은 현에서 올라오는 현의 호구자료를 받는다. 거기에는 현에 속한 향들의 호구수가 산정되어 있고 이를 합산한 그 현의 호구수도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별도로 다시 현별 호구부를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중앙정부에 보낼 때, 각 군은 자기의 군 호구수를 기록한 ‘집부’를 작성해서 보내면 되었다.​

넷째, 낙랑목간의 각 현별 호구 수는 당시 한나라 현호구수 규정과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다. 김병준은 이것이 이상하지 않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한나라 것도 아닌, 진나라 것의 극단적 사례를 끌어오는데 이것이야 말로 비합리적, 비객관적인 사이비 사학의 전형이 아닐까,

이 외에 낙랑목간이 위조된 것일 수밖에 없는 증거는 무수하다. 향후 매국식민사학과 학술토론회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적나라하게 밝히겠다.​

결론적으로 김병준은 우리 고대사를 강의하지 않고 중국고대사를 강의했다. 이를 위하여 1차사료에 해당하는 낙랑목간에 대한 기본적인 사료비판도 하지 않은채, 진품으로 믿고 마치 평양이 한나라의 행정기관인 낙랑군이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였다. 일본은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우리민족을 영원히 말살시키고자 한사군 재평양설을 날조하고 독도를 침탈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소중화)사관으로 우리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 고구려, 발해 등 우리역사를 모조리 강탈해 갔다. 김병준의 위와 같은 주장은 결국 일제와 중국의 영토침탈과 역사도발을 도와주는 것으로써 이적행위가 아닐까,

 

오종홍  koreahit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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