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중화패권주의 역사공정, 결국 중국분열의 원인 될것...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중국과 일본은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해야...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고조선의 서쪽 강역을 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표지다. 현재 중국은 공식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고 있다. 진제국의 영토가 한반도 평양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태강지리지』‧『진서지리지』‧『통전』의 관련기록을 검토하여 중국측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역사왜곡인지 살펴보고, 진나라 만리장성 동단의 올바른 위치를 밝히려고 한다. 글이 다소 길어서 5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3) 『통전』(사료 A-3)의 기록 검토

A-3 : “노룡현은 한나라 비여현으로 갈석산이 있다.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으므로 그 이름을 얻었다. 서진의 태강지지에 이르기를 ‘진秦나라가 쌓은 장성이 갈석산에서 일어났다’고 하였다. 지금 고구려의 옛 강역에 있으며, 이 (노룡현의) 갈석산이 아니다(盧龍, 漢肥如縣有碣石山 碣然而立 在海旁, 故名之. 晉太康地志云 秦築長城 所起自碣石. 在今高麗舊界, 非此碣石也).” 통전』권178, 주군8, 고기주 상

『통전』의 저자 두우는 사료 A-3에서 노룡현의 갈석산과 『태강지기』에서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일어난 갈석산’을 다른 산으로 보고 있다. 『통전』의 또 다른 기록을 통하여 이 두 개의 갈석산에 대하여 살펴보자.

D-1 : “갈석산은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 장성이 이 산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 증거로 장성이 동쪽으로 요수를 끊고 고구려로 들어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상서』에서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문구를 살펴보면 우갈석은 황하가 바다 근처에 다다르는 곳으로 지금 북평군 남쪽 20여리에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에 있는 것은 좌갈석이다(碣石山在漢樂浪郡遂成縣 長城起於此山 今驗長城東截遼水而入高麗 遺址猶存 按尚書云 夾右碣石入於河 右碣石即河赴海處 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 則高麗中為左碣石).” 『통전』권186, 변방2, 동이 하, 고구려

사료 D-1에서 『통전』의 저자 두우는 『상서』에서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문구를 잘못해석하고 있다.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夾右碣石)’라는 문구를 ‘우갈석’으로 잘못 해석하고서 ‘우갈석’이 있으니 ‘좌갈석’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태강지리지』(사료 A-1)의 사료를 통하여 ‘낙랑군 수성현’의 갈석산과 『상서』(『서경』과 같은 책이다)에서 말하는 갈석산은 동일한 산으로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또는 낭아산)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 갈석산을 ‘우갈석’과 ‘좌갈석’으로 서로 다른 갈석산으로 본 것은 두우의 착오이다.

따라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이 기록을 근거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으로 주장하는 옳지 않다. 오히려 아래와 같이 『통전』의 또 다른 기록을 통하여 두우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D-2 : “수성현은 옛날의 무수현이다.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遂城古武遂也. 秦築長城之所起).” 『통전』권178, 주군8, 고기주 상, 역주易州

사료 D-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통전』은 옛 기주의 역주易州 수성현遂城縣을 설명하면서 이곳이 진나라 만리장성이 일어난 곳이라고 하였다. 『통전』(사료 D-2)의 기록은 앞에서 살펴본 『진서』지리지(사료 A-2)의 “수성현은 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遂城, 秦築長城之所起).”라는 기록과 완전히 일치한다.

『통전』(사료 D-2)에서 기록된 기주의 역주 수성현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료 D-2와 같이 『통전』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사료의 해석이 불명확한 『통전』의 사료 A-3를 근거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통전』의 기록을 왜곡하는 것이다.

▲ 서기18세기 무렵에 소중화 조선에서 그린, 천하도, 곧 세계지도이다. 봉래, 방장, 영주의 삼신산을 빨강색 표시에 보는 바와 같이 바다에 섬으로 그리고 있다. 삼신산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다. 진 장성을 쌓을 때인 진나라 때까지도 봉래, 방장, 영주의 삼신산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바다 가운데 있다고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하고 있다. 당시 지리적 개념이 지금의 한땅인 우리나라 지역까지 못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진나라를 바로 이은 한나라의 지리적 개념도 현재 우리나라 땅인, 한땅에 미치지 못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당시 지리적 개념이 이런 실정인데도 강단주류사학계는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현재 북한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 설명: 오종홍).

3. 마무리 글

지금까지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태강지리지』(사료 A-1)와 『진서』지리지(사료 A-2) 및 『통전』(사료 A-3)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사료들은 모두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임을 나타내는 사료이다.

『태강지리지』(사료 A-1)의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라는 기록은 『사기색은』(사료 B-2)에서 보았듯이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한 갈석산을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낙랑군 수성현’과 ‘갈석산’ 및 ‘만리장성의 동단’은 모두 황하 하류 해변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그림 6> ‘황하 및 해안선의 변천도’에서 보았듯이 역사적으로 황하 하류는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일대 보다 동쪽으로 흐른 적은 없었다. 따라서 갈석산은 반드시 하북성 천진시 서남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에는 수성遂城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고, 고대에는 황하하류가 그곳으로 흘렀으며 갈석산(백석산 또는 낭아산)이 있고, 만리장성의 유지도 남아있다. 『태강지리지』(사료 A-1)는 황하 하류의 갈석산을 설명하고 있는데, 황하하류로부터 동쪽으로 무려 3,000여리나 떨어진 한반도 평양에서 갈석산과 만리장성의 동단을 찾는 것은 올바른 사료해석이 아니다.

『진서』지리지(사료 A-2)의 “낙랑군 수성현은 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라는 기록에서 ‘낙랑군 수성현’과 ‘만리장성의 동단’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진서』지리지(사료 C-1)의 평주에 관한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서진의 ‘낙랑군 수성현’은 평주에 소속된 군현이었기 때문에 평주의 위치를 알면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서』지리지(사료 C-1)에 의하면 서진의 평주는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에 속했다.”고 하였다. 이 지역이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서진의 평주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므로 평주에 속한 ‘낙랑군 수성현’과 ‘만리장성의 동단’도 당연히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북성 지역에서 수성현遂城縣이라는 지명을 찾아보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수성遂城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버젓이 남아있고, 그곳에 만리장성의 동단이 있었음은 앞에서 『태강지리지』(사료 A-1)를 통해서 확인하였다.

따라서 『진서』지리지(사료 A-2)의 기록 또한 ‘낙랑군 수성현’과 ‘만리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임을 나타내는 사료이다. 『진서』지리지(사료 C-1)에 나타난 서진의 평주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므로, 그 평주에 속한 ‘낙랑군 수성현’을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지 한반도 평양 일대에 비정하는 것은 명백한 사료왜곡이다.

『통전』(사료 A-3)의 기록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사료의 해석이 불명확하며, 이 기록을 가지고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전』(사료 D-2)의 또 다른 기록에서 “(역주) 수성현은 옛날의 무수현이다.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라고 하였다. 『통전』(사료 D-2)에 기록된 역주易州 수성현遂城縣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과 같은 지역이다. 따라서 『통전』의 저자 두우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사료의 해석이 불명확한 『통전』(사료 A-3)의 기록을 근거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해석이라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태강지리지』(사료 A-1)와 『진서』지리지(사료 A-2) 및 『통전』(사료 A-3)의 기록들은 모두 낙랑군 수성현과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사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3천 여리나 동쪽으로 왜곡하여 한반도 평양 일대로 그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과연 중국의 학자들이 관련 사료들을 올바로 해석할 줄 몰라서 그럴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평양 일대를 한나라 낙랑군 지역으로 왜곡하여 통설로 확정하였고,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강단사학계가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학계에서 낙랑군 수성현이 한반도 평양 일대라고 주장하는데, 중국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까지 왜곡하여 그리는 것이다. 현 강단사학계의 잘못된 통설이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근거가 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하루속히 잘못된 통설을 바로잡아야 한다. <끝>

글 : 김봉렬('고조선으로 가는 길', 도서출판'마고문화'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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