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패권주의 사관의 역사왜곡....

진 장성이 북한 평양까지 왔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

이에 동조하는 동북아역사재단과 국내 식민사학계...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고조선의 서쪽 강역을 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표지다. 현재 중국은 공식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고 있다. 진제국의 영토가 한반도 평양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태강지리지』‧『진서지리지』‧『통전』의 관련기록을 검토하여 중국측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역사왜곡인지 살펴보고, 진나라 만리장성 동단의 올바른 위치를 밝히려고 한다. 글이 다소 길어서 5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앞 2회차 글을 요약하면 ‘우공갈석’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 낭아산)이라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사실로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첫째, 『사기집해』(사료 B-4)와 『한서』지리지(사료 B-6)에 의하면 항산의 동북쪽에 갈석산이 접하여 있다고 하였다. 항산은 예로부터 중국 5악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으로 너무나 유명한 산이다. 오늘날 중국 하북성 보정시 정주시 곡양현에 위치한 대무산(大茂山, 일명 신선산, 해발1,898M)이다. 갈석산은 이 대무산과 동북쪽으로 접하고 있으므로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白石山, 해발 2,096M)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중국 남송시대인 1177년에 제작된 <그림 5>의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에 갈석산의 위치가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기주협우갈석도』(사료 B-7)에 의하면 갈석산의 위치가 역수易水 등에서 바다로 들어온 후 서쪽으로 올라가면 갈석산이 오른쪽에 있다고 하였다. 역수는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를 흐르는 거마하拒馬河이다. 갈석산은 거마하의 하류 서쪽에 위치하므로 오늘날의 백석산이 분명하다.

셋째, 갈석산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했다.’는 사실인데, 오늘날 현대 과학은 시대별 황하 하류의 흐름과 해수면의 높이를 모두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라 우임금 시절의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한 갈석산’의 위치를 과학적으로도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원전 602년 이전의 고대 황하는 그 하류의 흐름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로 흘렀다. 그리고 당시에는 해수면의 높이가 지금보다 높아서 보정시 일대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그림 6> 참조). 그러므로 ‘우공갈석’인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했던 갈석산’은 정확하게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또는 낭아산)이다.

지금까지 사료 B-1~B-7을 통하여 황하하류 해변가에 위치하였던 ‘우공갈석’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또는 낭아산)임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료 B-2는 ‘우공갈석’을 설명한 것인데 다시 한 번 살펴보자.

B-2 : “『지리지』는 말하기를 ‘갈석산은 북평군 여성현 서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태강지리지』는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또 『수경』은 말하기를 ‘요서 임유현 남쪽 물속에 있다.’고 하였다. 아마도 갈석산은 두 개 인듯하다.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구절의 갈석은 당연히 북평군의 갈석이다.” 『사기색은』

사료 B-2에서는 ‘북평군 여성현’에 위치한 갈석산과 ‘낙랑군 수성현’에 위치한 갈석산 그리고 ‘요서 임유현’에 위치한 갈석산 등 3개를 인용하면서, ‘아마도 갈석산이 두 개 인듯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료 B-2에서 언급된 3개의 갈석산 중에서 두 개는 같은 갈석산을 가리키며, 나머지 하나는 다른 갈석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구절의 갈석은 ‘당연히 북평군의 갈석이다’고 하였으므로, ‘북평군 여성현’의 갈석산은 ‘우공갈석’으로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또는 낭아산)이다.

▲ <그림 7> 우공갈석(낭아산)과 수성현(무수현)과 장성유적
▲ <그림 7> 우공갈석(낭아산)과 수성현(무수현)과 장성유적2

그러면 『태강지리지』의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났다.”는 구절의 갈석산은 ‘우공갈석’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다른 갈석산을 가리키는지 살펴보자. 『태강지리지』의 갈석산이 ‘우공갈석’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또는 낭아산) 주변에 수성현遂城縣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였는지 여부와 그곳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백석산의 동쪽에는 수성遂城이라는 지명과 만리장성의 유지가 지금도 남아있다(<그림 7> 참조). 뿐만 아니라 중국 송나라에서 편찬된 사서인 『무경총요』에는 이곳 수성현은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므로 수성遂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B-8 : “광신군 치소는 수성현이다. 전국시기 무수현의 땅이다. 진秦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라 하여 수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조(송나라)가 군을 세웠다. 동쪽에는 안숙安肅군이 있고, 군에서 20리 서쪽에 장성이 있다(廣信軍治遂城縣 戰國時武遂縣地 秦築長城所起因名遂城 本朝建軍 東至安肅軍 二十里西至長城).” 『무경총요』

사료 B-8의 기록에서 송나라 수성현이자 전국시기 무수현의 땅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를 가리킨다. 이 기록을 통하여 ‘우공갈석’인 백석산(또는 낭아산) 일대에 수성현遂城縣이라는 지명과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위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의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났다.”는 구절의 ‘낙랑군 수성현’에 위치한 갈석산은 ‘우공갈석’인 백석산(또는 낭아산)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사료 B-2에서 말한 ‘북평군 여성현’의 갈석산과 ‘낙랑군 수성현’의 갈석산은 같은 ‘우공갈석’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료 B-2에서 ‘요서 임유현’에 있다는 갈석산은 백석산(또는 낭아산)과 다른 갈석산이다. 이 갈석산은 어떤 산인지 살펴보자.

B-9 : “항산은 북악으로 중산 곡양현 서북쪽에 있다. 갈석산은 요서 임유현 남쪽 물속에 있다. 대우가 그 돌을 뚫어 오른쪽을 끼고 황하를 받아들이게 했다. 진시황과 한무제가 모두 올랐는데, 바닷물이 서쪽으로 침범하기를 세월이 흘러 그 산을 삼켰으므로 물속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恒山為北嶽, 在中山上曲陽縣西北, 碣石山在遼西臨渝縣南水中也. 大禹鑿其石, 夾右而納河. 秦始皇、漢武帝皆嘗登之, 海水西侵, 歲月逾甚, 而苞其山. 故言水中矣).” 『수경주』 ‘우공산수택지소재’

사료 B-9에서 보듯이 ‘요서 임유현’에 있다는 갈석산은 발해의 바다속으로 빠져서 사라져버렸다는 갈석산이다. 앞에서 살펴본 ‘북평군 여성현’과 ‘낙랑군 수성현’에 위치한 ‘우공갈석’인 백석산(또는 낭아산)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갈석산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태강지리지』(사료 A-1)의 사료는 낙랑군 수성현에 위치한 갈석산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또는 낭아산)이며, 이곳이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임을 나타내는 사료였다.

윤내현, 이덕일 등 다수의 민족사학자들은 이 『태강지리지』(사료 A-1)의 사료를 가지고 ‘낙랑군 수성현’과 ‘만리장성의 동단’을 현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일대로 해석하였다. 그 이유는 현재 갈석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진황도시 노룡현 일대에 있기 때문인데, 이 노룡현의 갈석산은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인 요나라(916년 ~ 1125년) 시대에 본래의 갈석산(백석산 또는 낭아산)이 이곳으로 지명 이동된 가짜 갈석산이다(필자의 저서『고조선으로 가는 길』62~74쪽 참조).

이 노룡현의 갈석산은 가짜 갈석산이므로 당연히 그곳에 수성현遂城縣이 설치되었다는 기록도 없으며, 진나라 만리장성의 흔적도 없다. 그러므로 『태강지리지』(사료 A-1)의 기록을 가지고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나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현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일대로 비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이 『태강지리지』(사료 A-1)의 사료를 가지고 갈석산과 낙랑군 수성현 및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비정하고 있다. 그러나 태강지리지』(사료 A-1)의 사료는 황하하류 해변가에 위치한 갈석산을 설명하는 기록이므로 낙랑군 수성현과 갈석산 및 만리장성의 동단은 모두 황하하류가 흘렀던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지, 한반도 평양일대에서 찾는 것은 갈석산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일제 식민사학과 중국 동북공정의 교활한 역사왜곡의 산물이다. 한반도 평양에는 황하하류가 흐른 적이 없으므로 갈석산도 없으며, 수성현遂城縣이 설치되었다는 기록도 없으며, 진나라 만리장성의 흔적도 없다. 그러므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태강지리지』(사료 A-1)의 기록을 가지고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나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 일대로 비정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다.(4회에서 계속)

글 : 김봉렬('고조선으로 가는 길'저자, 도서출판'마고문화'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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