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식민사관과 동북공정사관은 평양까지 만리장성이 들어왔다고 주장...

기사최종수정 : 서기2016.05.10. 10:30

 

일제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의 중화패권주의 사관,

동북아 평화 근본적으로 해쳐...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고조선의 서쪽 강역을 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표지이다. 현재 중국은 공식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고 있다. 진제국의 영토가 한반도 평양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태강지리지』‧『진서지리지』‧『통전』의 관련기록을 검토하여 중국측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역사왜곡인지 살펴보고, 진나라 만리장성 동단의 올바른 위치를 밝히려고 한다. 글이 다소 길어서 5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1. 들어가는 글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東端은 고조선의 강역을 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사료이다.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진제국의 동북쪽 국경일대에 만리장성을 쌓아 이민족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만리장성의 북쪽에는 흉노가 위치하였고, 동쪽에는 고조선이 위치하였다. 고조선과 진제국은 만리장성의 동단을 경계로 하여 서로 마주하고 있었으므로 만리장성의 동단은 곧 고조선의 서쪽 국경일대에 해당한다.

중국은 1982년 공식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그림 1>과 같이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였다. 진제국의 영토가 한반도 평양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주장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며, 여러 사서들의 기록에 의하면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였다. 고조선의 강역이 멀리 하북성 북경 서남쪽 일대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중국역사지도집』은 어떤 사료를 근거로 하여 그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에 대한 올바른 위치를 밝혀보기로 한다.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해석한 최초의 학자는 일제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기치(槄葉岩吉)였다. 그는 1910년 발표한 『진장성동단급왕험성고秦長城東端及王險城考』라는 논문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대동강 부근의 수안遂安지역으로 비정하였다. 그 논거는 아래의 『태강지리지』(사료 A-1, A-4)와 『진서』지리지(사료 A-2)였다. 이어서 중국학자로서 진장성의 동단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첫 번째 학자는 왕국량王國良이었다. 그가 제시한 진장성 관련 지도에는 진장성이 한반도 평양의 동쪽을 지나 평양 남쪽의 어느 지점까지 이어져 있다. 이렇게 표기한 근거에 대해서는 아래의 『진서』지리지(사료 A-2)와 『통전』(사료 A-3)의 기록을 제시하였다.

▲진나라 장성의 위치에 대하여 국내외 견해는 위 수성, 노룡, 평양 세 지역으로 표시된다. 일제식민사관, 중국동북공정사관은 평양까지 진 장성이 들어와 있다고 기정 사실화 하고 있다.  남한의 강당주류사학계는 평양 근처까지 진 장성이 들어와 있다고 '사실상' 주장하고 있다.

1982년 중국에서 공식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은 위의 <그림 1>과 같이 진장성을 평양 서쪽의 어느 지점까지 연결하였는데, 장성의 동단지점을 구체적으로는 평양 서남쪽의 강서군 함종리(현재 평안남도 증산군 함종리) 부근까지 연결시켰다. 이렇게 연결시킨 근거로서 아래의 사료 A-1, A-2, A-3 기록을 제시하였다.(한밭대 공석구 논문 “낙랑군 수성현 관련기록 고찰” 5쪽, 한국상고사 대토론회 <한군현 및 패수의 위치 비정에 관한 논의> 참조)

사 료

A-1 “태강지리지는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하였다(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사기색은』

A-2 “낙랑군은 한나라가 설치했다...(중략)...수성<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樂浪郡, 漢置 ...(中略)... 遂城<秦築長城之所起>).” 『진서』권14, 지4, 지리 상, 평주 낙랑군

A-3 “노룡현은 한나라 비여현으로 갈석산이 있다.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으므로 그 이름을 얻었다. 서진의 태강지지에 이르기를 ‘진秦나라가 쌓은 장성이 갈석산에서 일어났다’고 하였다. 지금 고구려의 옛 강역에 있으며, 이 (노룡현의) 갈석산이 아니다(盧龍, 漢肥如縣有碣石山 碣然而立 在海旁, 故名之. 晉太康地志云 秦築長城 所起自碣石. 在今高麗舊界, 非此碣石也).” 『통전』권178, 주군8, 고기주 상

A-4 “서진의 『태강지리지』는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쌓은 장성이 갈석산에서 일어났다’고 하였다. 지금 고구려의 옛 강역에 있는 것은 갈석산이 아니다(晉太康地理志云 秦築長城 起自碣石. 在今高麗舊界 非碣石山也).” 『태평환우기』권70, 하북도19, 평주 노룡현

『중국역사지도집』이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한 것은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槄葉岩吉)와 중국학자 왕국량王國良 등의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위의 사료들을 가지고 진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 일대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살펴보기로 한다.

현재 위의 사료들을 가지고 진장성의 동단을 비정하는데 있어서 크게 세 가지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그림 2> 참조). 첫째는 진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라는 설로 필자와 심백강 등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최신의 견해이다. 둘째는 진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일대라는 설로 윤내현과 이덕일 등 다수의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견해이다. 셋째는 진장성의 동단이 현 한반도 평양 일대라는 설로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일본과 중국 사학계의 통설이다. 과연 어느 주장이 옳은지 위의 각 사료들을 하나씩 검토보기로 한다.(계속)

글 : 김봉렬 <고조선으로 가는 길> 저자, 도서출판 '마고문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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