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료 왜곡된 것 많아...

중국 대부분의 사료는 진 장성과 낙랑군을 중국 대륙으로 기록...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고조선의 서쪽 강역을 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표지다. 현재 중국은 공식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고 있다. 진제국의 영토가 한반도 평양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태강지리지』‧『진서지리지』‧『통전』의 관련기록을 검토하여 중국측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역사왜곡인지 살펴보고, 진나라 만리장성 동단의 올바른 위치를 밝히려고 한다. 글이 다소 길어서 5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2) 『진서』지리지(사료 A-2)의 기록 검토

A-2 : “낙랑군은 한나라에서 설치했다. 6개현을 다스리며 3,700호이다. 조선현(주나라가 기자를 봉한 땅이다), 둔유현, 혼미현, 수성현(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누방현, 사망현이 있다(樂浪郡, 漢置. 統縣六, 戶三千七百. 朝鮮, 周封箕子地. 屯有. 渾彌. 遂城, 秦築長城之所起. 鏤方. 駟望.)” 『진서』권14, 지4, 지리 상, 평주 낙랑군

서두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槄葉岩吉)와 중국학자인 왕국량, 그리고 오늘날 『중국역사지도집』 등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비정하는데 공통적으로 인용한 것이 위의 사료 A-2의 기록이다. 이 『진서』지리지(사료 A-2)의 기록은 현재 일본과 중국의 학자들이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비정하는 여러 사료들 중 가장 핵심적인 사료이다.

사료 A-2의 기록에 의하면, 낙랑군 수성현은 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과연 이 사료가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한반도 평양 일대임을 나타내는 사료일까? 그렇지 않다. 이 사료야말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임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료이다.

관련 사료들을 검토해보자,

C-1 : “평주는 생각건대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에 속했다. 후한 말에 공손도가 스스로 평주목을 칭했다. 그의 아들 공손강과 강의 아들 공손연이 모두 제멋대로 요동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나라는 동이교위를 설치하여 양평에 거하였고, 요동ㆍ창려ㆍ현토ㆍ대방ㆍ낙랑 등 5개 군을 나누어 평주로 삼았다. 후에 도로 유주에 합하였다. 공손연을 멸한 후에 호동이교위를 두어 양평에 거했다. 함녕 2년(AD 276년) 10월, 창려ㆍ요동ㆍ현토ㆍ대방ㆍ낙랑 등 5군국을 나누어 평주를 설치했다. 26현 18,100호이다(平州. 按, 禹貢冀州之域, 於周為幽州界, 漢屬右北平郡. 後漢末, 公孫度自號平州牧. 及其子康 康子文懿竝擅㩀遼東, 東夷九種皆服事焉. 魏置東夷校尉, 居襄平, 而分遼東 昌黎 玄莵 帯方 樂浪 五郡為平州, 後還合為幽州. 及文懿滅後, 有䕶東夷校尉, 居襄平. 咸寧二年十月, 分 昌黎 遼東 玄莵 帯方 樂浪 等郡國五置平州. 統縣二十六, 戶一萬八千一百.)” 『진서』권14, 지4, 지리 상, 평주

사료 C-1은 서진의 평주에 대한 기록이며, 그 평주에 속한 낙랑군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사료 A-2이다. 사료 C-1는 한민족 상고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서진의 평주는 함녕 2년(AD 276년) 10월에 설치되었고, 창려ㆍ요동ㆍ현토ㆍ대방ㆍ낙랑 등 5군국이 평주에 소속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략하고 고조선의 중심부에 설치한 낙랑군은 후한과 삼국시대를 거쳐 서진에 이르기까지 그 위치에 큰 변동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구려 제15대 미천왕 때인 서기 313년에 고구려가 낙랑군을 회복한 이후로 중국의 군현인 낙랑군은 요서지역으로 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위의 사료 C-1, A-2는 함녕 2년(AD 276년) 10월에 설치된 낙랑군의 기록이므로 서기 313년 낙랑군이 요서로 이치되기 전의 본래의 낙랑군 관련 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진의 평주 낙랑군의 위치를 통하여 한 무제가 설치한 낙랑군의 위치와 고조선의 중심지를 알 수 있다.

▲ <그림 9> 서진의 평주와 낙랑군의 위치

서진의 낙랑군 위치를 알기 위하여 먼저 낙랑군이 소속된 평주의 위치를 살펴보자. 사료 C-1에 의하면 “평주는 생각건대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에 속했다.”고 하였다. 그러면 먼저 ‘우공의 기주지역’은 어디를 말하는지 살펴보자. 『사기』‘권2 하본기’에 나오는 우공의 ‘기주冀州’에 대하여 『사기정의』는 아래과 같이 주석하였다.

C-2 : “치수와 공부를 살펴보면 제도(帝都, 기주)로부터 시작했다. 황하는 승주 동쪽에서 시작하여 곧바로 남으로 화음에 이른다. 또 동쪽으로 회주 남쪽에 이르고, 또 동북쪽으로 평주 갈석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동하의 서쪽, 서하의 동쪽, 남하의 북쪽이 모두 기주이다(按理水及貢賦 從帝都爲始也. 黃河自勝州東, 直南至華陰, 卽東至懷州南, 又東北至平州碣石山入海也.東河之西, 西河之東, 南河之北, 皆冀州也).” 『사기』‘권2 하본기’

사료 C-2에 의하면 ‘우공의 기주지역’은 황하로 둘러싸인 산서성과 하북성 일대이다. 앞에서 살펴본 중국 남송시대인 1209년에 제작된 고지도인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에 기주지역이 잘 표시되어 있다(<그림 3> 참조). 마찬가지로 ‘주나라의 유주’나 ‘한나라의 우북평군’도 동쪽으로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료 C-1의 『진서』지리지에 나타난 평주의 위치는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 강단사학계에서는 서진의 평주 위치를 중국 요령성과 한반도 북부로 비정하고 있다. 엄청난 역사왜곡이다. 참고로 필자가 비정하는 서진의 평주와 낙랑군의 위치 및 현 강단사학계의 통설을 위의 <그림 9>에 표기하였다.

『진서』지리지(사료 C-1)에 나타난 평주의 위치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므로, 평주에 소속된 사료 A-2의 낙랑군 수성현遂城縣도 당연히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사료 A-1을 검토하면서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수성遂城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버젓이 남아있으며, 이곳에 갈석산이 있고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사료 A-2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임을 나타내는 사료이지, 『중국역사지도집』의 주장처럼 한반도 평양 일대임을 나타내는 사료가 아니다.(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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