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용규(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회 연구교수) 김두봉,국어학자, 대종교인, 공산주의자로 국어독립투쟁,무장독립전쟁에 뛰어들다해방 후에는 북조선 건국 중심인물로 떠오르다김일성 1인 숭배 우상화에 반대하다 숙청되다 김두봉은 우리 말을 어떻게 보았나주시경의 한글운동에 대한 반제국주의 인식은 김두봉에게 영향을 주었다. 김두봉의 민족운동의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김두봉은 1909년 국권회복을 목표로 한 비밀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안희제·남형우·신백우·이경희 등 동지와 함께 조직하였다.그는 주시경의 수석제자였다. 1911년 주시경이 운영한 조선언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정희,처음 미국요구도 없는데 ‘전투병 보내겠다’제안비전투병도 미국 요구보다 ‘두 배 더 보내겠다’ 앞서감성급한 불평등 한일수교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해비율로 따지면 전쟁 일으킨 미국보다 2~3배 많은 병력 투입5만명이 넘는 한국군 파병되다 4. 미국의 무리한 파병 요구와 남한의 지속적 파병1964년 9월 남한의 제1차 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지고, 1964년 10월엔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제는 미국이 먼저 공식적으로 한국의 파병을 요청했다.1964년 12월 브라운 (Winthrop Br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과 박정희의 추악한 베트남 전쟁 거래,박정희는 정통성 없는 5.16군사반란 정권 생존이 필요했고,미국은 명분없는 베트남 전쟁 비난을 피하고자 '황색인종' 전투부대가 필요했다 남한에서는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잡은 정권의 안정을 위해 미국의 신임이나 지지를 받는 게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남한이 1980년대 말부터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룰 때까지는 위정자들이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보다 미국의 지지를 얻는 게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1940년
윤한택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고려강역은 총독부 식민사학자 쓰다소키치가 만들었다’‘쓰다소키치는 중화사대주의 조선정권과 유학자들이 만든 것 끌어왔다’‘고려국경은 요령성 요양까지 육박했다’ 사람은 과거를 먹고 산다. 과거의 집적이 인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미래는 상상인데 이는 과거에 터 잡고 있다.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한다. 꿈을 이룬다고 할 때 그 꿈도 지나간 일이 바탕이 된다.우리 정신세계, 세계관, 가치관이 모두 과거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다. 과거는 역사다. 오늘 우리를 있게 한 역사 중에 고려역사가 있다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제국주의 동서열전, 베트남에서 다시 재현박정희 정권, 베트남 전쟁에 우리 청년 총알받이로 보내겠다고 먼저 제안5.16반란 세력은 박정희를 비롯 모두 친일부역, 일본군 출신들식민지치하, 일제 대동아공영권전쟁에학도병, 지원병 명목으로 총알받이로 보낸 것과 흡사미국에게 5.16 반란 불법정권 보호받기 위함 2. 1950~60년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베트남 침략미국은 1950년 소련과 중국이 동맹조약을 체결하자 동아시아 정책을 크게 바꾸었다. 1949년 중국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소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 전쟁,남한과 북한 다시 서로 적이 되어 싸우다북한, 베트남에 전투기 조종사 파병하여 응전하다베트남 다낭 호치민 박물관에 거대 태극기 앞세운 한국군대 사진,북조선 지도자들의 베트콩 응원 편지 나란히 전시 하다 1. 연재를 시작하며2018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5주년 기념일이다.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멈추고 있는 상태가 두 세대 이상이나 흘렀다는 말이다. 다행히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서기1968년 미국 정보수집함 프에블로호 포획에 이어,이듬해 31명 태운 미국군정찰기 격추시키다북조선의 미국 적대감은서기1868년 평양 대동강에 나타나 약탈을 일삼은미국 상선 ‘샤먼’호 까지 거슬어 올라간다북미화해 분위기 시대를 맞이하여적대감을 내려놓아도 될듯 6. 푸에블로호 사건 이후에도 이어진 미국의 굴욕앞에서 얘기했듯, 시체 1구를 포함한 푸에블로호 승무원 83명은 북한에 나포된 지 꼭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풀려났다.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해군은 청문회를 열
중국 하북성 근처에 신시시대 한웅흔적 발견새를 숭배하는 동이족 터전으로 판명여신묘, 곰발조소, 수행하는 여신상 등조선(단군)이전 흔적도 보여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운다. 그렇다면 우리 국사교과서가 역사로 인정하는 시기는 어디까지 갈까. 서기전2333년에 개국한 조선(단군)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국사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고대사학회는 단군을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화라고 한다.지난 서기2016년에서부터 2017년 까지 한국고대사회가 주도한 시민강좌 총 50여회를 취재한 결과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은 단군은커녕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은 서기1964년에도 헬기로 비무장지대 침범했다가,북한군에 의해 격추된 바있다이에 북한에 사과했으나 얼마 후에 다시 정보수집함정으로북한 영해 도발에 나섰다가 다시 나포되고 결국 사과한다세계제국 미국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5. 미국의 꼼수와 굴욕 미국은 북한과 판문점에서 거의 1년이나 지루하게 실랑이를 벌이다 속임수 한 가지를 생각해냈다. 북한이 만들어준 사과문에 대각선으로 승무원들을 돌려받는다는 문장을 집어넣고 바로 그 밑에 서명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 침범과 불법
글: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미국, 나포된 푸에블로호 북한한테 돌려받고자,북한에 직접 못하고 소련수상, 영국 수상에게 애걸하다일본수상에게도 부탁하다유엔사무총장에게도 중재요청하다소련수상이 미국에게 던진 말,“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를 침범했기에 억류된 것 아닌가그런 터에 미국이 핵 항공모함과 구축함 등을북한 쪽으로 보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북한의 주권과 독립성을 인정해라북한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문제를 복잡하게 할 뿐이다" 3. 미국의 전방위 외교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자 미국 국무부는 그날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
글: 박용규(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일제는 일본어를 국어, 조선어를 지방어로 만들었고,조선어를 줄이면서 동시에 일본어로 채워나갔다말기에 가서는 조선어 과목을 폐지시켰다이에 맞서 주시경은 조선어 독립투쟁을 전개했고이를 위해 대종교로 종교를 바꾼다‘국가흥망성쇠는 국어흥망성쇠와 직결된다,국어 잃어버리는 것 민족 멸망을 뜻한다’ 왜정치하는 우리의 말과 글인 조선어와 한글이 침략자에게 국어와 국문의 지위를 빼앗긴 시기였다. 그 결과 대한제국기의 국어였던 조선어는 이 시기에 방언 또는 지방어로 전락하였다.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며 일본어
글: 이재봉(원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정희 대한민국 군대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다이에 맞서 김일성도 조선민주주의이민공화국 군대 투입시도하다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는 미 베트남전 전력 분산 노림수였다 2.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는 베트남을 돕기 위한 전략1968년 1월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될 무렵 미국에겐 온갖 악재가 겹쳐 터지고 위기가 잇따르고 있었다. 이틀 전인 1월 21일엔 앞에 소개한 북한 무장침투조의 '청와대 습격' 뿐만 아니라, 북베트남 군대의 '케산 (Khe Sanh) 공습'이 시작됐다.
동학농민전쟁은 李조선왕조와 지배세력의 5백년 탐학과 부패에 대한 징벌동학농민전쟁은 간단한 역사가 아니다지금도 이 전쟁은 유효하다 서기19세기 조선 땅은 민란시대를 넘어 판을 갈아 엎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남겨진 기록과 아직도 각 지역마다 전해오는 이야기가 당시 상황을 가늠케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사실은 당시 상황 전체를 그리지는 못한다. 잊혀져간 더 한 역사가 수면 아래 빙산처럼 파묻혀 있을 것이다.사실 서기1811년에 발발한 서북한 지역의 홍경래 봉기부터 시작하면 거의 1세기동안 이 땅은 전쟁상황이었다. 우리 역사 물 줄기를
글: 박용규(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독립투사들이 분단국가 만들려고 독립투쟁하지 않았다국어학자들의 국어독립투쟁있어 언어가 분단되지 않았다역사학자, 국어학자들이 목숨걸고 싸워 지킨 것이 국학이다 말과 글이 말하는 한국 정체성올해는 분단 73주년이 되는 해이다. 73년 전 우리민족은 일제와 싸워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자력으로만 광복을 쟁취하지 못해 분단되었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은 분단국가를 수립하자고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 민족통일이 되었을 때, 독립운동이 완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현재 우리 민족의 경우 남북으로 국
해방 후 이승만은 자신과 이시영에게만 독립투쟁 공로포상했다이시영이 포상 자가 된 것은 구색 맞추기였다조선어학회에서 배출한 국어독립투사 덕에 오늘날 남과 북이 한글 언어생활을 하게 되었다이극로, 최현배, 신영철, 신명균, 이중화, 이윤재 등국어독립투쟁 애국지사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한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하나,조선 지배층 누가 한글로 시 한편, 책 한권 낸 적이 있는가조선5백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조선 지식인 누구도한글을 쓰지 않았다 일제침략기간 우리가 아는 것은 주로 정치무장투쟁사다. 생각나는 것은 상해임시정부, 김구주석
김수지 역사저술가,우리민족은 서양민족주의와 근본에서 다르다.그들은 역사가 일천하거나 없다, 반면 우리는 역사가 최소한 5천년이다우리역사에서 '고조선'은 '단군'이 개국한 '조선'만이다기자조선, 위만조선은 우리역사 아니다기자조선은 서기12세기경 중국 상나라 쇠퇴 이후 난민들이 조선 서쪽 변방으로 몰려들자 단군이 살 곳으로 마련해 준 나라다위만조선은 이 기자조선을 중국인 위만 망명자들이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다 서기2018.06.11. 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상임대표 허성관) 6월 시민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지에서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재봉 교수가 기고하는 현대사 관련 글을 연재합니다(편집인 말).미국은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엄숙히 사죄하며',앞으로는 북한 영해에 침입하지 않겠다고 '확고히 담보하는' 문서에 서명하다 연재를 시작하며서기2018년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푸에블로호와 북미협상에 관해 연재를 시작한다. 지난 4월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개입'을 주제로 연재하
기사수정: 서기2018.06.09. 07:38 한나라 식민지,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은 어디에 있었나부여는 지금 처럼 길림성, 흑룡강성 일대 만주에 있었나고구려 발상지, 졸본은 과연 만주 환인현인가한나라 군대와 싸운 서안평이 압록강 하구 건너 단동일대였나모두 식민사관에서 나온 것이다 한 나라 역사는 그 나라 국민정신을 만든다. 특히 국사교과서라는 책을 통해서 국가가 전 국민을 상대로 가르친다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어린 학생들부터 교육한다면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국사책은 과연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우리
박정희가 5.16군사반란에 성공하자,일본에 있던 그의 만주 군관학교 시절 선생들이 보인 반응은?“저게 누군가, 다카끼마사오(박정희) 군 아닌가,이제 곧 조선에 다시 갈수 있겠군.” 우리 현대사는 통상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말한다. 이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일정한 틀 속에 가두어 버린 인상을 받는다. 이념 감옥 속에 가두어 놓고 사육된 역사임을 지울 수 없다. 미국 욕심에 따라 이 땅은 미국이 바라는 역사로 만들어져 갔다.미국은 우리 땅을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다. 남쪽 역사는 미국이 만들어
조선총독부,일본‘천황’가 역사 서기4세기가 넘지 않자,이 보다 훨씬 오래 된 기록을 가짜로 몰다허구의 를 증명하고자 큐슈 사이토바루(西都原)고분군을 샅샅이 뒤져 발굴했으나 우리 땅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은폐, 왜곡 일본사가 출발하다, 식민사학은 여기서 나왔다 일본 큐슈 서남부의 미야자키(宮崎)현은 고대에는 일향日向국이라고 불린 지역이다. 허구 역사로 뒤범벅 된 를 그대로 믿는다면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는 일본을 만든 신들의 시대인 신대기神代記로부터 시작해서 인간 ‘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