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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대일항쟁, 조선어 독립투쟁사일제치하, 조선어 독립투사들 해방 된지 70여년 지난 이제야 공적 인정받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06.18 23:49

 

해방 후 이승만은 자신과 이시영에게만 독립투쟁 공로포상했다

이시영이 포상 자가 된 것은 구색 맞추기였다

조선어학회에서 배출한 국어독립투사 덕에

오늘날 남과 북이 한글 언어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극로, 최현배, 신영철, 신명균, 이중화, 이윤재 등

국어독립투쟁 애국지사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하나,

조선 지배층 누가 한글로 시 한편, 책 한권 낸 적이 있는가

조선5백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조선 지식인 누구도

한글을 쓰지 않았다

 

▲ 경남 김해 출신 한산 이윤재 선생. 서대문형무소에서 죄수모습으로 찍힌 사진이다. 그는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3번옥살이 하다가 일제 가혹한 고문으로 숨을 거두었다. 최근 까지도 그는 대구 달서 산골짜기에 초라하게 묻혀 있었다.

일제침략기간 우리가 아는 것은 주로 정치무장투쟁사다. 생각나는 것은 상해임시정부, 김구주석, 윤봉길 의사, 김원봉의 의열단, 김좌진 장군 청산리 전투, 홍범도 장군 보오동 전투 등이다.

그러나 이외에 여러 방면에서 일제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사상전쟁, 종교전쟁, 역사전쟁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투쟁도 가열찼다. 이 비가시 투쟁 중에 조선어 독립투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가 우리말을 없애고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쳤다.

일본 제국주의 끝없는 탐욕이 극에 달하는 서기1938년부터 일제는 우리 말 사용을 금지시킨다. 또 이름과 성을 일본식으로 바꿀 것을 강요한다. 완전히 일본화 작업에 들어 간다. 조선 흔적을 지우는 막바지 공작이었다.

말은 한 민족의 혼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 이유를 알려주는 정체성도 말에서 나온다. 공동체 구성원 자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말을 잃으면 그 공동체는 생명을 다했다고 본다.

우리는 국사 시간에 조선어학회사건이라는 몇마디를 접한다. 아주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간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국어학자들이 얼마나 가열차게 투쟁했는지 드러난다. 그런데 조선어독립투쟁이라고 이름 붙여진 항쟁사 전체 윤곽과 그 자세한 투쟁사를 알기는 쉽지 않다.

▲서기2018.04.19. 박용규 한글학회 연구위원이자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회 연구교수가 사)국학연구소에서 개최한 국학월례강좌에서 '국학과 민족주의 만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왜 그럴까. 역시 친일부역자 청산이 안 된 것이 원인이다. 친일부역질을 덮고 가자고 하다보니, 이와 상극을 이루는 독립투쟁사도 가능하면 캐고 싶지 않았다. 명색이 광복되었다고 했으니 아주 무시할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정치무장투쟁사 정도만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묻혀있는 조선어 독립투쟁사를 적나라하게 밝히는 강연이 있어 희망을 주고 있다. 지난 서기2018.04.19.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 건물에서 국학연구소 정기시민 강좌가 있었다. 이날 강사는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박용규 연구교수였다. 그는 한글학회 연구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접하기 어려운 조선어 독립투쟁사를 다루었다. 그는 강의 초반에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대일국어독립투쟁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국어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던졌다.

이날 강연주제가 국어와 관련되어서 인지 말과 글의 중요성을 먼저 풀어주었다. 그는 민족 구성 핵심요소는 말과 글이라고 했다. 이는 공기와 산소와 같다고 했다. 너무나 소중한데 우리는 그 중요성을 모르고 생활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해방 후 70년이 넘어가 고 있지만 국어분야에서 일제와 싸운 애국지사들이 발굴조차 제대로 안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미 잘 알려진 독립투사 못지 않게 투쟁했음에도 알려지지도 않고 설사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포상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독립운동사로 학위를 받고 한편으로 국어투쟁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잊혀진 국어독립투쟁 애국지사들을 잘 알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어 잊혀지고 버려지다 시피한 애국지사들을 찾아 정부를 상대로 포상 투쟁해온 역사를 방청객들과 함께 나누었다. 투쟁결과 여러 애국지사들이 최근 몇 년동안에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받았다.

▲북한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는 조선어학회를 이끌었던 이극로. 그는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국학과 언어학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 그는 오늘날과 같은 남북한 국어생활이 어떻게 가능게 되었는지 역사를 밝혔다. 이극로 선생을 먼저 언급했다. 박 교수는 이극로 선생을 우리 민족사에서 세종대왕 다음으로 대단

한 위인으로 보았다. 이극로 선생은 일제시기 언어독립투쟁사에 두드러진 인물이다.

그는 조선어학회 간사장과 조선어 사전 편찬 위원장을 받는 등 당시 총사령관격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적용 법은 치안유지법이었다. 이 치안유지법이 오늘날 국가보안법으로 바뀌어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그는 감옥에서 고통받다가 서기1945.08.17. 함흥형무소에서 들 것에 실려 나왔다. 그런데 이극로 선생은 해방 후 북한에 남았다. 남한 해방공간에서 이극로 선생이 운신할 공간이 없었다고 한다.

▲ 잊혀진 애국지사 신영철 선생. 일제치하 국어독립투쟁하다가 6개월 감옥살이 했다.

당시는 좌우대립으로 살벌했다. 이극로 선생은 좌우합작을 주장하고 있어서 좌우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민족주의자 였지만 특히 우익으로 부터 빨갱이로 몰려 목숨이 위태로웠다. 여운형 선생도 좌우합작 주의를 주장하다가 결국 피살되었다.

이런 위험 때문에 김구선생이 서기1948년 후반에 북에서 열리는 남북한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러 갈 때 같이 가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서 국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김두봉과 김일성의 설득으로 눌러 앉았다. 그리고 북한 국학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서기1978년에 생을 마쳤고 현재 북한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국어학사에서 이극로 선생이 차지하는 위치는 거의 절대적임에도 국내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박 교수 자신이 이극로 평전을 썼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어 신영철 선생을 소개했다. 신영철 선생은 국어독립투쟁하다가 징역 6개월 감옥살이했다고 한다. 이 분도 분명히 애국지사인데 훈장 하나 못받고 잊혀진 채 있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증거를 모아 정부를 상대로 포상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서기2012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을 받게 했다고 알렸다.

▲이중화선생. 그는 조선궁술과 활쏘기 내용이 담긴 책을 쓴 국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동란 때 납북된 것을 알려져 있다.

이어 이중화 선생을 알렸다. 이 선생은 조선의 궁술과 활쏘기를 연구해서 책까지 쓴 대단한 국학자였다고 강조했다.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 교수 자신이 힘쓴 결과 이 분도 서기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제가 얼마나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 했는지 분노했다. 일제는 서기1938년부터 조선서 교과서를 없애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말을 뺏은 것이고 글을 뺏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명균 선생을 알렸다. 신 선생은 일제 경찰이 잡으러 오자, 대종교 나철선생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자결했다고 한다. 이 때가 서기1940년이었다고 한다. 일경에 잡히면 얼마나 가혹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다.

이 분도 박 교수가 힘써서 서기2017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받아 주지 않아 증거를 더 보강해서 재심사를 거친 결과 통과 되었다고 덧붙였다.

▲신명균 선생. 대일독립투쟁을 하다가 일경에 쫓기다, 나철선생 사진을 가슴에 안고 자결했다.

이어 경남 김해 출신 한산 이윤재 선생을 알렸다. 그는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했다고 한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세번이나 옥살이 하다가 고문치사했다. 분명히 국어를 지키고자 투쟁했음에도 광복된 조국에서 버려졌다. 그래서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경북 대구 달서 산골짜기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초라한 무덤으로 있었다. 박 교수는 이윤재 후손 가족들을 설득하고 행정 서류를 내서 서기2013.09.28.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시켰다고 했다.

박 교수는 원래는 애국지사 묘역에 벌써 안장되었야 했다면서 자기 같은 사람들의 투쟁으로 비로서 정상으로 돌아오게 한는 대한민국 현실에 분노했다.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가 아직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한글전용을 왜 해야 하는지 정당성을 설명했다. 또 지난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국한문 혼용시도를 저지시킨 투쟁 여정을 설명했다. 서명운동과 기자회견 등 수 많은 투쟁으로 초등학교부터 국한문 병용하려는 시도를 무산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 때 일어난 불의한 사건들을 언급하며 분노했다. 예를 들어 권력과 유착한 삼성이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최순실-정유라에게는 뇌물로 3백억원을 주었다. 그런데 삼성 반도체에 근무하던 여직원이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5백만원을 주었다며 삼성의 탐학을 질타했다.

▲박용규 교수는 박근혜 정권 때 청와대 근처 효자동에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글에 한자를 함께 쓰는 것을 반대하는 투쟁을 하였다.

이날 강연은 국학과 민족주의를 다루었다. 강연 초반부에는 잊혀진 애국지사를 찾아내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한 박 교수 자신의 얘기를 상당히 할애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투쟁을 거의 박 교수 혼자 외롭게 투쟁해 온 것이 눈에 선했다.

그는 올해 초에도 한글학회의 부당한 학회운영에 반기를 들고 회칙 개정하라고 학회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해왔다. 그 결과 결실을 맺게 되었다. 올 가을 한글날을 기준으로 회칙을 민주 원칙에 맞게 개정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고 한다.

2부에서 부터는 국어학자들의 국학과 역사관을 각론으로 다룬다. 그리고 왜 우리는 국학이 바로 서지 않았는지, 그리고 북한은 어떻게 국학을 바로 세우게 되었는지 밝힌다(2부에서 계속).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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