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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난도질한 일본황국사관 고향은?큐슈 미야자키현 고분군 발굴했으나 서기전7세기 '천황'은 없었다.
차태헌 기자 | 승인 2018.05.01 23:59

조선총독부,

일본‘천황’가 역사 서기4세기가 넘지 않자,

이 보다 훨씬 오래 된 <삼국사기> 기록을 가짜로 몰다

허구의 <일본서기>를 증명하고자 큐슈 사이토바루(西都原)

고분군을 샅샅이 뒤져 발굴했으나 우리 땅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은폐, 왜곡 일본사가 출발하다, 식민사학은 여기서 나왔다

 

▲일본 구주 서남부 미야자키 현에 위치한 사이토바루(西都原) 고분. 이른바 장고형 무덤이다. 일본에서는 이 무덤 모양을 전방후원분이라고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 침략을 정당화 하기 위해 황국사관(식민사관)을 만들어 냈다. 이를 위해 일본 '천황'가 역사를 서기전7세기로 높여 잡고, 이 고분군을 발굴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우리 땅에서 나오는 유물들이 나오자 아연실색하고 만다. 그 이후 발굴 중단하고 덮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식민사관을 완성하는데 주도역할을 한 이마니시류(今西龍)가 참여했다. 장고형 무덤은 일본 전역에 걸쳐 있다시피한다. 규모도 둘레가 수백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를 근거로 일제는 임나일본부설 주장한다. 그러나 장고형 무덤의 원형이라고 하는 주구周溝형 무덤이 충남 공주 등지에서 쏟아져 나온바 있다. 이는 일본 보다 앞선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유학파 국내 식민사학자들은 장고형 무덤 원조가 일본이라고 우기고 있다. 대표인물이 김현구 전 고려대 교수다(편집인 말).

일본 큐슈 서남부의 미야자키(宮崎)현은 고대에는 일향日向국이라고 불린 지역이다. 허구 역사로 뒤범벅 된 <일본서기>를 그대로 믿는다면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일본서기>는 일본을 만든 신들의 시대인 신대기神代記로부터 시작해서 인간 ‘천황’의 시대로 넘어가는 얘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천황’으로 신무神武‘천황이 나온다. 신무'천황'은 미야자키, 고대의 일향국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일본을 정벌하여 나라의 카시하라에서 '천황'에 오른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일본 최초의 '천황'의 탄생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이 시기는 서기전 660년이다. 이 이야기는 과연 사실일까? 서기1912년 일본에 다이쇼 '천황'이 등극하면서 대정大正이라는 새 시대를 연다.

그리고 사이토바루 고분군에 대한 일본 최초의 고고학 발굴이 시작된다. 일본 최초 고고학 발굴 작업지역으로 이 지역이 선택되었다. 이는 조선을 병합하고 새로운 '천황'을 앞세워야 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천황‘고향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 최초 '천황'이 동정을 시작한 지역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침략을 정당화한 황국사관을 이곳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거창하고 야심차게 발굴한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이 지역 발굴 유적과 유물이 <일본서기>에 맞게 서기전 660년경이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이들을 절망나락으로 빠뜨렸다.

“서기전 660년이라는 문헌 기록과 달리 고고학적으로 이 지역에 정치체제가 등장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연구를 따르더라도 빨라야 서기3세기 말에서 서기4세기 이후이다.”

- 혼코우 히로미치 사이토바루 고분군 2005년 -

이 고분군에 대해서 최근 일본 학자들이 고백한 실상은 다음과 같다. 절망적이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일향日向국 관련 설화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하여 이 땅이 이 설화 무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소위 ‘신대기’의 서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서기4세기에서 서기7세기의 역사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실에 신대의 기술을 도식화 하여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 혼코우 히로미치 사이토바루 고분군 2005년 -

▲일본 구주 미야자키현 사이토바루(西都原) 위치를 나타내주는 표식. 일본은 이 지역을 관광지겸 고적지로 기리고 있음이 드러난다(편집인 말).

서기전 660년은커녕 서기 4세기가 되어서야 고분군이 등장한다. 출토되는 유물도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닌 한반도 계열이다. 일본인 고고학자가 저렇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된다. 서기2005년의 일본인 고고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지만 1912년의 상황은 어땠을까?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가 통치 이념이었던 그 당시 ‘<일본서기>의 서술은 허구이며, 따라서 <일본서기>에 기초한 일본 신도 역시 허구’ 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아마도 그 당시 일본인 학자들에게 이것은 일종의 재앙이었을 것이다.

일본 '천황'의 발상지가 고고학적으로 서기4세기 이후 유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안 이들은 아마도 머리를 쥐어 뜯으며 서기4세기를 기준으로 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천황'의 발상지가 고고학 상으로 서기4세기가 넘지 않으므로 식민지 조선의 고대 국가인 신라 백제 이런 나라들의 성립 연대는 무조건 4세기 이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서기>의 기록과는 반대로 일본이 한반도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역으로 우리 땅 사람들이 이 고분을 세웠다고도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기 1세기를 전후하여 신라 백제 고구려가 성립되었다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최대한 트집거리를 잡아 믿을 수 없는 책으로 만들어 버려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라 백제의 국가 성립시기를 서기4세기에 맞춰서 최대한 늦추는 작업도 해야 했을 것이다. 동시에 <일본서기>에 대해서 토를 다는 것은 '천황'에 대한 불경죄로 다스린다.

가야 역사가 적힌 김해김씨 족보는 금서가 된다. 이 당시 대종교도들은 이 지역에 가야인 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적힌 <태백일사>를 남겼다.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에는 아소산(큐슈 중심부의 산) 아래인 고대 일향국에 아라가야인 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의 많은 서적들이 수거되고 대종교는 ‘유사 종교’가 되어 독립투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던 경무국을 통해 감시의 대상이 된다.

사이토바루 고분군은 신무'천황' 동정기의 출발점을 학술적으로 규명해보자는 처음의 취지와 달리 식민사학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사기극의 종착점이 100년이 넘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서기4세기에 신라 백제 가야가 삭제된 47억짜리 지도를 만들어서 이것을 보는 국회의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서기2018.04.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주도로 구주 미야자키현 사이토바루 고분군 답사를 하였다. 고분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다(편집인 말).

연세대의 하일식 교수를 비롯한 강단사학자들은 대중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믿을 수 없는 책이다“라는 강연을 국민세금으로 하고 있다. <일본서기>의 터무니 없는 기록들을 역사적 사실로 서술했다고 비판하면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한단고기> 태백일사를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한 영역이다.

그러나 강단 사학자들은 국회의원 출신의 장관 후보자에게 이 책을 믿느냐 안 믿느냐 따지면서 마녀 재판식의 사상 검증을 언론을 통해서 하기도 한다. 100년 전에 식민사학을 만들었던 이 당시의 어용 학자들은 현재의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볼까?

본인들이 죽을 고생을 해서 완성한 식민사학이 식민지 백성들인 한국인에 의해서 100년 넘게 똑같은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는 상황에 감개무량할까? 아니면 인간의 어리석음의 끝은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들도 우리처럼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기가 막혀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차태헌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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