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위치를 가늠하는 갈석산은 역사상 2개가 있었다.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사서에 갈석산과 바다는 밀접한 관계로 서술

사서의 바다는 액면 바다가 아니라 하(河) 의미

연, 진나라 장성과 관련된 것은 좌 갈석산

▲ 갈석산 위치도
▲ 갈석산 위치도

 

고조선 위치의 단서인 갈석산은 어디에 있을까?

3) 갈석산의 위치 확인

고조선의 위치를 알려주는 사항은

사서 기록상에 이미 살펴 본 연나라 위치 옆과

이 연나라 위치에 쌓은 연장성과 진장성 이외의

또 다른 단서가 바로 갈석산이다.

이 갈석산의 위치만 제대로 확인하면 고조선의 올바른 위치가 확인된다.

그러나 그동안 이의 존재 여부조차도 부정하거나,

이에 대한 사서 기록의 혼란과

이러한 사서 기록에 대한 해석의 혼란에 의하여

올바른 위치를 설정하지 못함으로써

이를 빌미로 올바른 고조선의 위치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따라서 갈석산의 위치를 제대로 설정하면

연나라 위치는 물론

고조선 위치가 제대로 정립될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연구에 의하여 명확히 밝혀낸

갈석산의 올바른 위치는 어디이고

이에 따라 고조선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그동안의 사서 기록 혼란과 해석 혼란의

대표적인 것이 이 갈석산을 최초로 기록한 기록상에

하천 하(河) 기록을 이후의 사서가 바다 해(海)로 기록하여

이를 황하 내지는 지금 개념의 바다로 해석함에 의하여

황하 인근이나 바다 근처로 해석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이에 따르면 연나라와 고조선 위치가 제대로 확인이 안되는 관계로

또 다시 올바른 위치 정립이 무산되곤 하였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하천 하(河)기록을 이후의 사서가 바다 해(海)로 기록한 바와 같이

중국 사서상의 기록에 있어서 통상적으로 하천을 바다로 기록하고 있어

발생한 사항인 것과 하천을 바다로 인식한 하천이 그 위치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갈석산을 지금의 바다 근처로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중국사서상에 통상적으로

지금의 황하만을 기록상에 바다 해(海)로 기록하였다는 잘못된 인식하에

갈석산의 위치를 황하 인근으로 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었다.

주도 면밀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중국사서가 통상적으로 하천을 바다로 기록한

대표적인 하천으로는 물론 그동안 알려진 황하가 있지만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것이 바로 하북성 호타하인 것으로 확인하였다.

이 하북성 호타하 인근에 바로 고조선의 인근에 있다는

연나라는 물론 연ㆍ진장성이 있기도 하다.

이에 의하여도 갈석산이 있다는 하천 내지는 바다로 기록된 하천이

이 하북성 호타하임이 입증된다.

이 호타하가 바로 연나라의 남쪽 경계에서 발원함으로써

사서 기록상의 ‘호타’인 사항이 이를 더욱 입증한다.

이 압록수인 하북성 호타하가 바로 우리 고대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바로 그 압록수이다.

더군다나 이 지역이 바로 요서 지역으로써

많은 사서가 이곳에 갈석산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갈석산이 있다는 곳을 하천으로 기록한 처음 사서 기록이나

이를 바다로 바꾸어 기록한 것 모두 이곳 하북성 호타하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연ㆍ진장성이 2개인 것에 의하여

이곳에 위치한다는 갈석산 또한 중국사서가 각각 기록하여

2개의 갈석산을 기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로 말미암아 그동안 갈석산을 단 하나로 인식하고

그 위치를 설정함에 따라 제대로 정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사료]『통전(通典)』「변방」‘동이 하 고구려’

갈석산은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 장성이 이 산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 증거로 장성이 동쪽으로 요수를 끊고 고구려로 들어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상서』에서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하로 들어간다’는 문구를 살펴보면,

우갈석은 하가 해(바다) 근처에 다다르는 곳으로 지금 북평군 남쪽 20여리에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에 있는 것은 좌갈석이다.)

따라서 결국 중국 사서상에 갈석산은

하나는 원래의 갈석산으로써 바다 내지는 하천에 있다는

이곳 하북성 호타하에 있는 것이 바로 우갈석이고,

다른 하나는 연ㆍ진장성이 있는 또 다른 갈석산이 있다.

이를 후대의 사서가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이가 바로 좌갈석으로써 이곳에 바로 고구려가 있었다.

지금까지 사서상에 기록을 당초 잘못하고 또한 이를 잘못 해석함으로써

더불어 고조선의 위치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여 왔다.

하지만 이제는 명확한 개념으로 갈석산의 위치는 물론

이에 의한 고조선의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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