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강역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전우성(전 관세사, 고대사저술가)

 

조선의 서쪽 경계선은 연나라 외에 연, 진 장성

사기 조선열전의 요동외요, 요동고새가 장성 단서

연장성은 조양과 양평, 진장성은 임조와 요동까지

연장성, 진장성 모두 현재 북경까지 미치지 못해

 

▲ 2개의 연ㆍ진장성(요동고새, 요동외요)
▲ 2개의 연ㆍ진장성(요동고새, 요동외요)

 

고조선 경계에 쌓은 연ㆍ진장성은 어디일까?

2) 연ㆍ진장성 위치 확인

고조선이 연나라 위치 옆에 위치하였으므로 연나라 위치에 의하여 그 위치가 확인된다.

그러나 이외에도 고조선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서가 바로 연장성과 진장성이다.

왜냐하면 이에 의하여 연나라 위치는 물론 고조선 위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장성은 연장성 위에 덧 쌓은 것이므로 연장성 내지는 진장성을 확인하면 같은 위치로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에 대한 고찰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제대로 밝히지 못함으로써 연장성과 진장성의 위치를 올바르게 설정하지 못하여 결국 고조선의 위치의 위치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여 왔다. 또한 연ㆍ진장성은 사서 기록상 갈석산과도 연관성이 있다.

연ㆍ진장성을 확인함에 있어서는 크게 세 가지 사항을 의거하여 이를 모두 제대로 해석하여야 올바른 그 위치를 설정할 수 있다.

1)전국시대 연나라로부터 이후의 진나라는 물론 그 이후 시기인 고조선의 위만조선이 한나라에게 멸망하는 시기까지의 역사적 상황 및 위치

2)사서 기록상 연장성 및 진장성의 설치 위치

3)갈석산의 위치

1)전국시대 연나라로부터 이후의 진나라는 물론 그 이후 시기인 고조선의 위만조선이 한나라에게 멸망하는 시기까지의 역사적 상황 및 위치

이를 가장 함축적으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기록이 바로 『사기 조선열전 고조선』조이다. 그동안 이를 제대로 해석하지 않음으로써 올바른 고조선의 경계와 영역 변화 그리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놓쳐 버렸다.

▲ 연ㆍ진장성 위치도(요동고새, 요동외요)
▲ 연ㆍ진장성 위치도(요동고새, 요동외요)

■ 『사기』「조선열전」

조선의 왕이었던 위만은 옛 연국(燕國) 사람이다. 연국의 전성기때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속하게 하고 아전[吏]을 두고 장새(鄣塞)를 쌓았다. 진국(秦國)이 연국을 멸하고 요동 밖 요(徼)에 소속시켰다. 한국(漢國)이 일어나고 그곳이 지키기 어려우므로 요동의 옛 새(塞)를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경계로 하여 연국에 소속시켰다. 연국 노관이 반하여 흉노로 들어갔고 위만은 망명하였다. 1000여 명을 모아 무리를 지어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여 동쪽으로 달아나 새(塞)를 나와 패수를 건넌 후에 옛 진국(秦國)의 공터인 상하장(上下鄣)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과 만이(蠻夷)들을 복속하여 거느리고 연국과 제국(齊國)의 망명자들의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

이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2가지이다.

①고조선이 연나라에게 일정한 영역을 빼앗기고 물러났고, 진나라 시기에는 이것이 유지되다가, 한나라 시기에는 원래의 연나라 위치로 되돌려졌다는 사실. 그러나 그 진퇴 범위는 좁은 지역으로써 지금의 하북성 일정한 구역에 한정한다.

②연장성과 진장성이 연나라와 고조선 위치 사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위 사기 조선 열전에서 보듯이 하나는 ‘요동밖 요(遼東外徼)’인 ‘요동외요’가 그 하나이고, ‘요동의 옛 새(遼東故塞)’인 ‘요동고새’라는 사실.

[(도표1 : 2개의 연ㆍ진장성(요동고새, 요동외요)) 참조]

[(그림2 : 연ㆍ진장성 위치도(요동고새, 요동외요)) 참조]

2)사서 기록상 연장성 및 진장성의 설치 위치

사서 기록상

①연장성의 축성 구간은 ‘조양~양평’간이라고 하였다.

②진장성의 축성 구간은 ‘임조~요동’이라고 하였다.

(1-1)연장성 구간인 ‘조양~양평’간에서 조양은 연5군의 하나인 상곡군 지역이다. 이를 현재 하북성 북경시 장가구시 일대로 왜곡 비정하고 있지만, 원래의 맞는 위치는 산서성 흔주시 일대이다.

(1-2)양평은 사서 기록 『수경』, 『수경주』, 『한서 지리지』, 『후한서』, 『삼국지』 상의 소요수, 대요수가 흐르는 곳으로써 연5군의 요동군 치소이자 나중의 고구려 요동성이다. 이를 현재 요령성 요양시로 왜곡 비정하고 있지만, 원래의 바른 위치는 이는 ‘연장성’ 축성 시발점 ‘조양’인 산서성 흔주지 동쪽인 하북성 석가장시 행당현이다.

(2-1)진장성 구간인 ‘임조~요동’에서 임조는 감숙성 난주 일대이다.

(2-2)요동은 현재 요령성 요하 동쪽으로 왜곡 비정하고 있지만 당시 요동은 위의 양평현 일대가 요동군의 치소였으므로 이 일대가 요동이다. 따라서 연장성과 진장성 위치가 일치한다.

단지 진장성의 경우 위의 연장성 구간인 ‘조양~양평’간에서도 나타나지만, 갈석산과 연관되어 『태강지리지』, 『진서 지리지』를 비롯한 여러 사서 기록상 낙랑군 패수의 동쪽의 지금의 하북성 서수구 수성진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사서 기록상의 연장성의 축성 구간인 ‘조양~양평’간과 이에 덧쌓은 진장성은 바로 『사기 조선열전』상의 ‘요동고새’이고, 갈석산(백석산)과 수성진 간에 쌓여진 진장성은 바로 『사기 조선열전』상의 ‘요동외요’임이 확인된다.

그러므로 연장성과 진장성은 1개가 아니라 2개이다.

이는 실제 여부와 관계없이 사서 기록상 2개의 갈석 즉 좌갈석, 우갈석에 의하여 입증이 된다.

현재의 하북성 북경시 북부로부터 진황도시 산해관에 이르는 장성은 진장성이 아니라 명장성이다.

3)이 갈석에 대하여는 다음에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연ㆍ진장성과 갈석산을 단 한가지로 보고 이의 위치를 확인하려 한 까닭에 혼란과 오류를 범하여 왔던 것이다.

 

* 본 기사는 본지의 시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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