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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의 등에 칼을 꽂은 심재훈(1)하다하다 이제 책 팔아먹으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
오종홍 | 승인 2016.08.18 15:33

기사최종수정: 서기2016.8.19. 12:08

 

인간의 사고구조가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심재훈...

 

심씨, 매국사관을 넘어 패륜의 역사로...

지금 단국대학교에서 교수의 탈을 쓰고 학자입네 하는 사람이 있다. 심재훈이다. 요새 자기 스승인 윤내현 교수를 비판하는 그 무슨 책을 낸 모양이다. 그래서 여러 언론에서 그 책 소개도 해주고 그의 말도 실어 주고 있다.

< “만주지역은 고대 이래 청대까지도 다양한 세력이 이합집산하며 명멸한, 결코 민족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용광로였다.” ...

(심 교수는)고조선 등 고대사를 ‘찬란하고 위대했던 민족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려는 이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심 교수는 이 논문에서 지금의 상고사 논쟁을 “시대착오적”이라 규정한 뒤 “점차 생명력을 잃고 있는 민족주의 사관이 구축한 거대한 고대사를 붙들어보려는 노력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민족주의 성향에서 벗어나기 위해...(한국일보)>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 한국 내의 과도한 민족주의적 사관의 문제를 지적했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민족주의 사학은 한국인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낸 21세기 한국에서까지 과장된 상고사에서 한민족의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겠습니까.”(경향신문)>

심씨는 동아, 경향, 한국, 한겨레 등의 신문지에 역사연구를 가장하여 스스로 어미도 애비도 없고 족보도 없다는 식으로 '물건너 온 심재훈 역사학'을 퍼뜨리고있다. 이것을 기자 행세를 하며 매국사학에 동조하는 '젊은이'들이 앞을 다투어 실어 주었다. 심씨는 기사에서 역사는 민족주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열의 올리고 있다. 민족주의는 한물갔고 이 시대에 왜 민족주의 역사학이 준동하냐고 핏대를 세우고 있다.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역사서술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매국강단사학과 민족사학의 역사전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민족사학계를 비난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게는 민족까지 아우른다. 민족을 부정하고 역사를 논할 수 있는가, 개인 없는 역사가 존재할 수 있는가? 나아가 가족, 족보로 대표되는 문중, 씨족 없는 역사가 가능한가? 한마디로 단체, 집단이 부재한 역사가 가능한가? 심씨가 변절하여 숭배하고 있는 서양의 역사학적 방법론, 일제식민주의사관, 중국동북공정사관을 보라, 가장 극렬하게 민족주의에 꽂혀있다. 왜구倭寇와 중구中寇는 또 어떤가, 민족주의를 넘어 제국주의 침략사관에 광분하고 있다. 심씨가 자랑스럽게 여기며 학문인생의 자존심이자 최종 검증서로 받아온 박사학위, 그 박사학위를 준 나라, 미국달러지폐를 보라, ‘ IN GOT WE TRUST’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른바 ‘하나님’민족주의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을 국부國父로 삼아 미제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들은 다민족 국가 이면서도 이런 '통합'민족주의 까지 만들어 미제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심씨는 이런 요소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부정하고 있다. 어미 애비가 자기를 낳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믿지 못하겠다는 식이다. 이런 패륜적 망동이 어떻게 대학교수라는 자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올 수 있을까? 심씨에게는 가족도, 족보도, 문중도 더 나아가 민족도 없단 말인가? 인간은 필연적으로 의식적인든 무의식적이든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역사는 자기 정체성의 확장이다. 정체성은 개인적으로는 심씨 같은 경우, '심재훈' 이라는 성과 이름이며, 그의 가족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를 있게한 그의 부모이며, 종중, 문중이다. 이것이 확장되면 결국엔 민족이 나온다. 그리고 이것의 발자취가 역사다. 그런데 지금 심씨는 역사학에서 민족주의는 절대로 나와서는 안되는 독극물인양 악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심씨는 스스로 자기 부정을 하는 것이다. 심씨는 자신이 이름도, 성도, 부모도, 조상도 없는 뿌리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박근혜가 ‘건국68년’ 타령하면서 헌법을 부정하고 우리역사 수천 년을 단방에 날려 버리더니, 이제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철부지 망둥이까지 뛰는 형국이다.

▲ 미국의 최고액권인 100달러지폐 뒷면에 선명하게 "우리는 여호와신을 믿는다", 곧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T WE TRUST)." 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미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은 이스라엘 여호와 신에게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기독교 민족주의 또는 이스라엘 민족주의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단군)역사를 부정하는 심재훈

심씨는 지난 3월부터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고대사 시민강좌의 탈을 쓰고 일제황국사관, 동북공정사관을 살포한 한국고대사학회와 발을 맞추며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다는 식민사관에 동조하였다.

그리고 올해 8월 들어 진보를 가장한 몰 민족, 매국사학 성향의 신문들이 거들어 주는 가운데 매국을 넘어 패륜의 역사학을 학문입네 하고 동시 다발적으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심씨는 청나라 때 까지 만주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없고, 알 수 없는 무리들이 합종연횡을 하며 국가체제도 갖추지 않은 채 난립한 시대라는 식으로 떠들고 있다. 심씨의 만주에 대한 역사관을 직접 들어보자,

“만주지역은 고대 이래 청대까지도 다양한 세력이 이합집산하며 명멸한, 결코 민족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용광로였다(한국일보).”

<...기록이 없다면 요동 일대 유물을 봐야 하는데 이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심 교수는 “문화적으로 연속성을 지니는 청동기-철기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점”을 들어 “이 지역에 동일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단일한 인적 집단이 장기적으로 거주하며 사회 조직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전국시대 연이나 흉노제국 성립 이전에 과연 요서와 요동지역에 국가라고 칭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 세력이 존재했는지 의문”이라는 얘기다(한국일보).>

<학계 안팎에는 비파형 동검으로 고조선의 실재가 증명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심 교수는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전유물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한다. 고조선은 만주를 영토 삼아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라는 “고조선의 원고성(遠古性)에 대한 선험적 믿음”에도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만주 지역은 고대 이래 청대까지도 다양한 세력이 이합집산하며 명멸한 (…) 결코 민족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용광로였다.”

그래서 심 교수는 “어느 정도라도 객관성이 담보된 기원전 3~4세기 이전 고조선사 서술”은, 현재로선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문헌과 고고학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부재의 시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은 역사 서술이 아니라는 것이다(한겨레).>

이 발언은 상고시대부터 만주에서 이어져 온 우리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보다 더 심한 소리다. 심씨는 조선(단군)은 그만 두고라도 부여,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에 상납하는 것을 넘어, 민족단위 역사 자체가 없다고 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문화와 사상이 집약되어 있어 당연히 조선(단군)의 강역을 알아 볼 수 있는 핵심 표지인, 비파형동검까지 부정하고 있다. 매국식민사학계보다 더 매국적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지르고 있다. 가히 '이시대 노덕술'이라고 밖에 달리 이해가 안 된다. 우리 사료는 제껴두더라도 중국의 중화사관에 따라 왜곡된 중국 정사 1차 사료에 의하여도 조선의 강역이 만주는 물론 하북성까지 존재했다는 흔적이 널려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단 한마디로 부정해 버리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저게 과연 역사학을 했다는 자라고 할 수 있을까? 심씨의 이 같은 망동은 우리의 태곳적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굿과 무당을 아무것도 모른데서 오는 어리석은 소리다.

▲ 조선의 대표적인 표지 유물인 조선식 동검(일명 비파형 동검). 무당이 굿을 할 때 굿단 중심에 모셔 놓는다. 불꽃모양으로 만들어서 불을 타나내고 이것은 신이 내린 것을 상징한다. 출처: http://dwban22.egloos.com/m/4982720

비파형동검은 우리만의 고유한 무당 문화의 결정체다. 조선(단군)이라고 하지만 당시 무당들이 통치하던 지방분권적 정치체제가 한땅(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하북성 심지어는 산동성까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가 비파형 동검이다. 비파형 동검은 무당이 굿을 할 때 방울, 거울과 함께 쓰던 무구로써 불꽃을 상징한다. 신이 내렸다는 것을 나타내며 굿을 할 때 제단의 중심에 세워 놓는다. 그때는 불이 귀하고 피기도 어려워 불꽃 모양을 한 동검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촛불 등 직접 불을 지펴 신이 내려 있음을 나타낸다. 매국식민사학계가 퍼뜨린 조선동검에 대한 주술은 '전투용 무기'라는 것이다. 저렇게 완전한 형태를 보고도 무기라고 주술을 반복하여 걸고 있으니 너도 나도 무기라고 한다. 주술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무당과 조선식 불꽃동검은 하나...

단골판이라는 것이 있다. 단골판은 당시 지방분권의 단군의 조선시대에서 지방의 무당들이 다스리던 영역을 말한다.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전라도 지역에 이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단골판은 다른 단골이 침벌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공간이다. 이 영역에서 정치와 제사를 무당이 모두 맡아서 하고, 위로 중앙에는 단군이라는 큰무당이 전 강역을 통할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무당 문화에는 만주 무당의 굿과 우리 굿이 비슷한 것이 너무나 많다. 또한 신화도 너무나 닮아 있고 신화소가 같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땅 전역에 걸쳐 조선식 동검과 함께 거의 같이 발굴되는 것이 청동 거울과 청동 방울이다. 이 유물의 주인공이 무당이었음을 말해준다. 지금도 우리 무당은 정확하게 검과 거울과 방울을 가지고 굿을 한다. 검은 신내림을 나타내는 불꽃을 형상화 한 것이 지만, 언월도, 삼치창, 춤칼로 사용하고 있다. 방울은 모양만 변했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거울은 명두明斗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일연의 삼성기(삼국유사/고조선)에 등장하는 천부인3개라는 것은 민속학에서도 정설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방울은 북(鼓)으로 대체 되기도 한다. 천부인3개는 한웅천왕이 가지고 오는데 이는 신시시대가 열리기 전의 이야기다. 곧 한국桓國시대에서 부터 있었다는 얘기다. 이는 조선(단군)개국 수천년전의 얘기다. 이 처럼 아득히 오래된 우리역사가 문헌과 고고유물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조선식 불꽃동검(비파형 동검)이 있다. <삼국유사>라는 일연의 <삼성기> 문헌과 검, 방울, 거울이라는 고고유물은 일치하여 아득한 옛날 부터 무당이 통치하는 역사가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결국 조선식 불꽃 동검은 조선을 넘어, 무당의 다른 이름인 '사니(仙人)', '화랭이(花郞)'로 불리는 풍류風流라는 민족적 단일체의 역사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이 싱겁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또 다른 표지유물인 고인돌은 무엇인가, 심씨가 비파형 동검을 조선의 징표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면 고인돌은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것도 심씨는 그냥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아주 기가 막히게 편한 심씨의 역사학이다. 미국 가서 백인이 준 학위 받아오더니 천지분간 못하고 고삐 풀린 황소처럼 마구 날뛴다고 밖에 달리 해석이 안 된다.

역사는 그냥 튀어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지역을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작용, 즉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남겨놓은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역으로 정신세계를 탐구하여 핵심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질 때 세월과 유행을 덜 타는 비교적 오래가는 역사학을 구축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문화와 정신세계에 대하여 완전히 소경인 심씨는 서양의 문화와 가치관으로 머릿속을 채워 넣고 그 눈으로 우리역사를 보자고 악을 쓰고 있다. 청나라 때 까지 민족개념이 없이 다양한 집단이 우글대며 이합집산을 하였다고? 그럼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무엇인가? 이것이 민족이 아니라는 것인가? 철저하게 서양식 가치관으로 전도되어 바라보고 있다. 언제부터 서양의 역사관이 절대불변의 표준이 되었는가? 스스로 서양 백인의 정신적 노예라고 자랑하는 것인가?

 

심재훈, 미국유학가더니 미국인이 되어 돌아오다...

어떻게 저런 뇌구조를 할 수 있을까? 어쩌다가 저런 사고구조를 가지게 되었는지 추적해 보니 저런 사고구조를 가지게 한 뿌리가 나온다. 먼저 심씨의 역사학문인생을 파헤치지 않을 수 없다. 심씨는 윤내현 전 단국대 교수의 애제자였다. 그 밑에서 조선사(단군)를 배웠다. 그럼 윤내현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윤내현 교수는 하버드대학 유학까지 가서 조선의 실체를 실증적으로 깊이 연구하여 최소한 현재의 중국 북경 근처까지 조선이 지배했음을 실증했다. 그 역작이 <고조선 연구>다. 윤내현 교수는 일제식민주의 사관과 중화패권주의 사관으로 뒤범벅이 된 한국사학계의 난공불락의 강고한 틀을 넘어,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역사학을 개척한, 해방이후 주인사학의 한 사람이다. 강단매국사학계처럼 일본인이 만들어 놓은 2차 자료를 가지고 식민사학을 한 것이 아니라, 중국1차 사료를 바탕으로 우리 조선의 역사를 복원하였다. 중화사관으로 점철된 중국 원 사료 속에서 그들이 주변사, 변방사로 왜곡하여 놓은 부스러기 속에서 조선의 최소한의 모습을 실증적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이런 윤내현 교수 밑에서 학문의 기초를 다진 심씨는 윤내현 교수의 큰 도움으로 시카고대학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 돌아와서 다시 단국대학교에 교수자리를 얻게 된 것도 윤내현 교수의 절대적인 힘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심씨를 오늘과 같이 중견교수 행세를 할수 있게 해주고 호의호식하게 하고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서양의 나라를 종횡무진하며 학문교류와 여행을 하도록 하는 등 '확 핀 인생'을 가져다 준 사람이 윤내현 교수라는 말이다.

그런데 심씨는 지금 자신의 학문적 아버지이자, 은인인 윤내현 교수의 등에 칼을 꽂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직접적인 발언을 들어보자,

<11일 경기 용인시의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심 교수는 “윤 교수님은 저를 있게 한 아버지 같은 존재”라며 “인간적으로 30년 넘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 교수는 윤 교수의 출간 기념행사에서 제자를 대표해 사회를 맡았다. 그러나 심 교수는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라며 “학문적으로는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가 있다면 그걸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아들로서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동아일보).>

심씨 자신에게 오늘날과 같이 학문으로 밥 벌어 먹게 하고 호의호식하게 해 준 부분은 감사하지만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 자기가 윤교수 밑에서 연구조교하며 배운 윤교수의 조선역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이다. 이것을 심씨는 “학문적으로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라고 나름대로 점잖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 피를 내려준 아버지가 아니라서 이렇게 잔인한 것인가?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 라니! “저질렀다”? 마치 무슨 중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자기 스승을 잔인하게 깔아뭉개고 있다. 아무리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최소한 정상인이라면...  고등교육을 받고 교수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스승이 심씨가 보기에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과오를 저질렀다.” 라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얼마든지 순화된 다른 말로 표현해야 했다.

심씨의 이 같은 패륜적 망언을 보노라니, 설익은 공산주의 사상에 빠진 패륜아들이 6.25때 자기 아버지를 인민재판에 부쳐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이 연상된다. “아버지 동무, 동무는 으째서 그런 과오를 저질렀음 매?” 또한 사이비교주에게 빠져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의 돌아오라는 애타는 호소를 매몰차게 뿌리치는 광신도를 연상케 한다.

심씨의 이런 말은 친일매국역적을 조상으로 둔 그 후손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친일매국역적 짓을 한 아버지의 과오를 대신해서 바로잡겠다는 것에나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심씨는 바른 애국행위가 잘못되었으니 자신이 대신 그 과오를 바로 잡겠단다. 심씨의 사고구조가 얼마나 격하게 뒤집어 졌는지, ‘그걸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 아들의 도리’라고 까지 한다. 평생을 원사료를 바탕으로 수많은 관련 자료를 보충하면서 철저하게 실증적 방법으로 연구한 윤내현 교수의 역사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서 서 있는 이 때에도 자신의 <고조선 연구>에 '과오'가 없다고 거듭 확인하면서 새로운 판으로 출간까지 한 윤내현 교수다.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심씨는 백인 교수에게서 받은 박사학위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자기 스승이 일생을 거쳐서 완성한 <고조선 연구>로 대표되는 역사학이 틀렸다며 '과오'를 바로 잡겠다고 하는 것인가? 윤내현 역사학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일제식민주의 사관이며, 중국 동북공정사관이며, 심씨가 추종하는 것으로 보이는 매국식민사학이다. 이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고대사학회가 시민강좌의 탈을 쓰고 일제황국사관, 동북공정사관을 살포할 때 적극 두둔하였다.

그렇다면 어쩌다 심씨가 저렇게 패륜아로 전락한 것일까,

알고 보니 시카고 대학에서 자신에게 박사학위 딱지를 내려준 ‘에드워드’라는 백인교수에게 그 원인이 있었다. 심씨가 매국적 일간지에 쏟아 낸 발언들을 통해서 이 같은 정황을 잡을 수 있다.

< 심 교수는 이 논문에서 지금의 상고사 논쟁을 “시대착오적”이라 규정한 뒤 “점차 생명력을 잃고 있는 민족주의 사관이 구축한 거대한 고대사를 붙들어보려는 노력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민족주의 성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제3자랄 수 있는 유럽과 미국의 연구 방식을 소개했다. 우선 서구 쪽에서는 고조선에 대한 연구 성과가 거의 없다. 서구 학계는 엄격한 문헌 비판을 중시한다...

기록이 없다면 요동 일대 유물을 봐야 하는데 이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심 교수는 “문화적으로 연속성을 지니는 청동기-철기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점”을 들어 “이 지역에 동일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단일한 인적 집단이 장기적으로 거주하며 사회 조직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전국시대 연이나 흉노제국 성립 이전에 과연 요서와 요동지역에 국가라고 칭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 세력이 존재했는지 의문”이라는 얘기다(한국일보). >

민족주의 사학은 역사학이 아니기 때문에 서구의 엄격한 문헌 비판식 역사학적 방법론을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다.

서양의 역사학이라는 것은 산업혁명이후, 식민지 개척과 정복에 나선 서양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침략사학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물질기계문명을 먼저 발전시킨 오만함으로 세계인류문명을 어떻게 하면 자기네에게서 기원한 것으로 할 것인가에 혈안이 되었고 이러한 역사학을 발전시켜 세계사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은 세계4대문명, 그 중 가장 오래되고 고도로 발전된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각인되어있다. 이것이 서양의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고 결국 이 문물이 오늘날 서양으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동양은 주변일 뿐이다. 그래서 소위 연대측정을 하면서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것은 최대한 많이  올리고 동양 것은 낮추어서 기술하였다.

▲ 전북 고창의 고인돌. 고인돌에 대한 년대 측정은 의미가 별로 없다. 고인돌의 종류와 축조 기법, 거기서 나온 부장품들이 고인돌의 역사를 말해 준다.

그러나 동양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유적의 수량이나 그 수준을 보면 서양 것은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탁월하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고인돌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수량 면에서, 종류 면에서, 진화된 기술적인 측면에서, 발굴된 유물 면에서 서양 것은 물론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 그 어떤 지역과도 상대가 안될 만큼 엄청나다.

 

서양중심의 침략사관에 매몰된 심재훈...

미국 백인들이 왜구난동기에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쑤시고 돌아다니며 콩 종자를 모두 도적질해 갔다. 그리고 지금 세계최고의 콩 생산국이 되었고 이제는 유전자 변형 콩까지 살포하여 세계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 가장 큰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이다. 이렇게 우리 콩을 대거 도적질해 간 미제는 우리나라에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야생 콩이 서식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식물의 원산지를 추정할 때 변이종의 다양성을 그 기준으로 삼는 다고 한다. 그래서 콩의 원산지는 한국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제까지 자기들이 연구하여 축적한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내린 결론이다. 마찬 가지로 식물은 아니지만 고인돌이라는 단일 품목을 가지고도 우리나라가 인류 태고문명을 상징하는 고인돌의 원산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연생물인 콩과 인공물인 고인돌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물인 컴퓨터를 가지고 비교하겠다. 컴퓨터는 다 알다 시피 미국이 원산지다. 미국은 현재 까지 컴퓨터의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종류 면에서, 성능 면에서, 원천 기술면에서, 규모면에서... 이것은 미국이 컴퓨터의 시원지임을 보여주는 표지다. 고인돌도 이와 같다. 따라서 고인돌로 대표되는 인류태고문명은 한땅(한반도)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서양 백인들은 이런 것은 애써 무시하고 세계사의 여명이 자기네 쪽에서 일어났다는 식으로 왜곡해대며, 일차원적인 더듬이식 역사학적 방법론을 창안해 냈다. 그리고 서양제국주의 식민지가 확대되어 감에 따라 세계는 서양화 되었고 자연스럽게 역사학 방법론도 서양 것이 표준이고 기준이 되었다. 양복이 세계 인류의 일상생활의 표준, 기준 옷으로 둔갑했듯이 말이다. 원래 고대의 역사 기록이 전무하다 시피 한 서양이 고대사의 기록이 차고 넘치는 동양에 대하여 역사적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실증역사학이고, 고고학이다.

이런 것을 심씨는 미국 시카고 대학에 유학 가서 ‘에드워드’한테 주입받고 지금 저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문헌비판에 엄격한 서구의 역사학 이란다. 이러한 서양가치관, 역사기준에 맞게 동양의 문헌사료를 난도질 하겠다는 것이다. 심씨는 미국 시카고 대학으로 유학 가서, 윤내현 교수의 사관을 내던지고 이런 서양역사관을 가진 백인, ‘에드워드’를 학문적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씨의 ‘얼굴책’을 가보면 에드워드를 한국에 ‘모셔 와서’ 경복궁 등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며, 최고의 음식을 대접 못해서 안달이 날 정도의 회고 글을 남기고 있다. 윤내현 교수와 함께 한 사진은 지금까지 단 한 장도 보이지 않는다. 배은망덕의 극한을 보는 듯하다.

심씨가 위 한국일보에 퍼내 지른 말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서양학계는 문헌비판이 엄격하다고 한다. 이것은 당연하다. 앞서 말한 대로 서양은 기록된 역사가 거의 없다. 원래 떠돌이 야만의 미개수준의 역사였기 때문에 정착문명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문헌기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역사를 문헌으로 남기도록 은혜를 베푼 것은 동양의 칭기스칸, 몽골제국이었다. 이 때 비로소 종이다운 종이가 서양에 전해졌다. 칭기스칸이 가기 전에 서양은 미개야만의 암흑기에서 신음하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기록된 역사가 일천한 서양역사학이, 기록된 동양의 역사문헌자료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을 인정하면 자기네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오래되고 고도로 진화한 찬란한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증주의 타령하면서 물증을 대라고 생떼를 부리는 것이다. 그동안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지에서 우리 동양이 아직 왕조시대의 울안에서 헤매고 있을 때,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엄청나게 유물의 연대를 올려놓은 역사를 구축해 놓았다. 이래놓고 동양은 역사문헌기록은 많은데 유물이 시원치 않으니 '종이 쪼가리'에 기록된 ‘황당무계’ 한 기록은 역사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증적 사료 비판이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지금 심씨는 이런 관점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보겠다는 것이다. 심씨는 ‘에드워드’한테 이런 것을 주입받고 유내현 교수로부터 받은 주인사관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리고 ‘새 아버지’, 에드워드가 시키는 대로 완전히 서양식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 뇌구조를 바꾼 것이다. 얼굴만 한국인이지 가치관은 완전히 서양백인이된 것이다(2부에서 계속).

 

오종홍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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