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몽주를 죽여 내친 이방원, 포은을 복권 시킨 속내는?

기사수정 : 서기2016.04.26. 13:12

 

포은의 주검을 이장하는 상여와 상여소리에 담긴 뜻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노래가사를 국사를 배운 사람은 한번 쯤 읊어 봤을 법하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이성계 조선을 함께 열자는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으로 정몽주가 읊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방원의 새나라 개창제안에 그럴 수는 없다고 응수한 것이다. 고려를 개혁해서 다시 반석위에 올려놓으면 되지, 고려의 신하로서 고려를 멸망시키는 것은 성리학적 명분론에도 맞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에 이방원은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살해했다고 역사는 말한다.

이성계 조선의 2대왕, 이방원은 이렇게 이성계 조선의 국시이기도 한 성리학적 명분론에 충실한 정몽주를 죽여 내 쳐 놓고, 나중에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다시 정몽주를 끌어 들인다. 정몽주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고려조에 충성한 것처럼, 이조선의 신하들도 정몽주를 본 받아 이조선 왕조에 충성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그래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복권 시켜 충신으로 모신다.

▲포은 정몽주의 영정이 상여 앞에서 나아가고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초등학교에서 출발한 상여는 인근 정몽주 선생의 묘역까지 행진한다.

이 정몽주를 기리는 ‘포은 문화제’가 서기2016.4.22.~24.까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일대에서 열렸다. 벌써 14회째다. 서기2003.6.에 정부에서 6월의 인물로 포은 정몽주를 선정함에 따라 용인시에서는 이를 계기로 지방문화행사로 제정하여 포은 문화제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해마다 6월에 개최하였는데 농번기여서 행사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아 4월로 옮겼다고 한다. 용인문화원이 주최하고 포은문화재 추진위원회가 주관하며, 용인시와 용인시의회 그리고 영일정씨포은공파종약원 등이 후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몽주의 고향은 경상도 포항인데 어째서 정몽주의 묘가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에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복권시켜 주검을 그의 고향인 경상도 영천으로 이장하여 성대하게 꾸미라고 한다. 상여행렬이 경상도로 가던 중 오늘날 경기도 수지구, 풍덕천을 지날 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들고 가던 상여의 명정이 날아가 버렸다. 날아간 명정은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 기슭인 현재의 정몽주 묘역 근처에 떨어졌다. 알고 보니 이곳이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져 여기에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포은문화제’가 갖는 강점은 ‘천장행렬’ 즉 상여행렬행사다. 행사 이틀째에 진행하는데 포은 정몽주 묘역에서 약4백미터 떨어진 능원초등학교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가장 오래된 정신문화와 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상여와 상여행렬에서 연행되는 상여소리다. 우리나라 상여는 세계 어느 나라의 장례문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인도, 이스라엘,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 등 비교적 전통장례문화가 살아있는 곳을 보아도 우리나라만큼 상여와 상여소리가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 이방원은 포은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살해하여, 마지막 이성개 조선개국 반대세력을 제거한다. 그런데 나중에 포은을 만고의 충신으로 복권시킨다. 그의 죽검을 고향인 경상도 영천에다 안장시키고자 경상도로 향하던 중 상여의 명정이 현재 정모주 묘역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이곳이 명당으로 밝혀졌고 여기에 정몽주의 주검을 안장하게 된다. 천장행렬이 능원초등학교에서 출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여는 용과 봉황=장닭으로 크게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술이나 불교적 유교적 또는 도교적 냄새가 묻어나는 인물이나 식물 및 꽃등이 그려져 있거나 조각품으로 달려 있다. 기타 상여 앞에서 나가는 만장이나 상여 뒤에서 따라가는 유족들의 복색 등은 중국과 비슷하다. 용과 닭=새는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상징 중의 하나로 보인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맨 위에 봉황=닭이 있고 맨 아래에 용으로 받침대를 이루고 있다. 충남에는 계룡산이 있다. 닭과 용이 하나가 된 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인도인들이 신라를 닭 즉 새를 섬기는 나라로 보는 구절이 있다. 또한 고구려 오회분 4호묘에는 ‘인두사신’이라 하여 녀남 한 쌍이 각각 달과 해를 이고 날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상체는 새의 날개가 달려 있고 하체는 뱀 또는 용의 꼬리가 그려져 있다. 이것도 용과 닭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한 몽골 초원지역에서 발굴된 북방 유목민족의 대표 격인 ‘흉노’고분에서도 위는 새와 아래는 용으로 장식된 황금관이 나왔다. 이러한 상징을 머금고 있는 유물들은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까지 이어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의 기초를 놓았다는 ‘켈트Celt’족의 전통문화유물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나라의 상여는 용과 닭으로 상징되는 조각품이 꾸며져 있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용은 물로 상징된다. 닭은 불로 상징된다. 물과 불은 상극이다. 둘이 만나면 하나는 죽어야 하는 관계다. 또한 물은 음으로 나타나며, 불은 양으로 나타난다. 이 상극의 두 요소가 상여가 나가는 죽음에서는 하나로 되어 나타나고 있다. 조화 또는 화해라고도 해석 할 수 있다.

▲포은 정몽주의 천장행렬에 사용된 상여, 우리나라 상여만의 개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화려한 오방색으로 치장을 하고 각종 상징으로 가득한 인물과 동물로 장식 및 그려 놓고 있다. 생전에 죽은자가 어떻게 살았든지 상관없이 저 세상은 이와같이 모든 것이 풍성하고 제왕처럼 당당한 세상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본성은 원래 나누어지지 않은 하나의 존재인데, 몸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면서 여성 또는 남성으로 갈라진다. 원래 하나였는데 떼어져 반쪽으로 살아가야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삶을 마칠 때까지 인생은 고통이라고 한다. 기쁨과 행복이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순간임을 발견한다. 인생의 밑바닥에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갈증이 늘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 삶의 근간을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끝없이 채우고자하는 몸부림의 연속이다. 대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성취, 달성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채우고 나면 또 다른 것을 향해서 나아간다. 그렇게 죽음이 눈앞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비록 삶은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본래 하나로 돌아가고자 하는 끝없는 무의식중의 몸부림이 아닌가 한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 난대로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특히 대다수 가진 것 없이 산 생령들은 살아생전에 쌓인 한은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은 위아래로 신분과 차별을 강요하고 부자와 가난한자로 나누고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못 먹고, 입고 싶은 것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못 입고, 시집 장가가고 싶어도 신분으로 차별하고 부와 가난으로 차별하여 가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불안한 삶과 차별적 고통은 이 세상에 나오면 정도만 다를 뿐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또한 몸은 세월에 속절없이 늙어가고 쭈그러든다. 어느새 백발이 덮쳐오고 있다. 나만큼은 늙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젊을 적 본 그 늙은이가 어느새 내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단숨에 올랐던 계단도 이제는 쉬어가도 숨이 차다. 어느새 죽음이 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금수저’나 ‘은수저’나, ‘갑’이나 ‘을’이나 평등하다. 부자라고 해서 죽음을 비껴 갈 수 없다. 높은 신분이라고 해서 죽음을 거부 할 수 없다. 똑 같이 다 죽는다. 그리고 죽음 뒤에 돌아가는 저 세상은 화려함의 극치로 풍요롭다. 차별이 없다. 남녀로 나뉘어져 살아야 하는 근본적인 고통도 없다. 죽음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상여가 화려함의 극치와 풍요로움으로 치장된 것이 여기에 있다. 죽음은 공포의 시작이 아니라, 영원한 풍요와 평화의 문이다. 절대 평등과 쾌락의 극치다. 분열이 아닌 다시 하나가 되는 문이다. 우리의 상여는 이것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용과 새로 상징되는 상극의 존재가 하나가 된다는,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상극은 고통의 절정이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설명 : 상여앞에는 죽은자의 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저승사자가 나아간다. 삼지창을 들고 붉은 색, 검은색 으로 이루어진 장삼을 입고 갓을 쓰고 있다. 천장행렬에는 모현면 주민자치회관이 운영하는 '모현풍물패'가 상여행렬 맨 뒤에서 따라가며 풍물가락을 친다. 경기도 웃다리 가락이라고 한다. 매주 2회 풍물수업을 한다고 한다.  천장행렬이 포은의 묘역에 도착하여 홍살문을 통과하고 있다. 상여행렬에는 이외에 취타대가 앞장서고, 유생복장을 한 사람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조상님들은 상극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가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을 삶을 마감하고 영원한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상여에 새겨 놓고 있다. 우리가 돌아갈 하늘나라 천궁을 ‘삼일신고’에서는 이렇게 그리고 있다. “하늘의 신국에는 천궁이 있으니 그 계단은 무수한 선으로 되어있고 문은 가늠할 수 없는 덕으로 새겨져 있다. 이 천궁에는 하날님이 계시니 무수한 철인과 신령들이 호위하며 모시고 있다. 이 천궁은 크게 아름답고 복되며 크게 빛나는 곳이다. 오직 본성을 통하여 공을 완성한자라야 하날님을 만나 영원한 쾌락을 얻는다(天神國有天宮階萬善門萬德一神攸居群靈諸哲護侍大吉祥大光明處惟性通功完者朝永得快樂).”

이와 같이 우리의 상여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심오한 사상과 철학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은 사상과 철학은 문헌사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조’에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인용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에 가늠할 수 없는 도가 있으니 이를 일컬어 風流’라고 한다. 가르침의 근원이며 接化群生한다.” 이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풀어주며, 모든 만물을 살리는 도’라고 풀이 할 수 있다.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고통으로 맺힌 삶을 풀어주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의 상여가 갖는 상징과 통한다.

▲ 상여행렬을 이끈 박경진님- 상여를 이끄는 사람을 '상두꾼'이라고 한다. 제14회 포은 문화재의 천장행렬을 이끄는 상두꾼은 '박경진'님이었다. 젊어서 고향인 경기도 포곡읍 전대리 동네에서 상여소리인 '선소리'를 전해 받았다고 한다. 선소리를 한지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농촌마을에서도 그렇듯이 점점 상여소리가 사라져 간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하였다. 구성진 선소리는 심금을 울린다.

포은 문화제의 상여행렬은 상여소리도 백미다. 상두꾼이 요령을 울리며 선소리로 노래를 하면, 상여를 맨 상여꾼이 ‘어허~ 어하~’라고 후렴으로 받쳐 준다. 인생의 고락을 다 담고 있다. 죽은 자의 삶의 내력을 이야기하고 위로하며 고통 없는 영원한 저 세상으로 잘 가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언제 다시 만나길 간절히 소망하기도 한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삼월이면 다시 오나...” 인간 저 밑바닥 감성을 휘 저어 애간장을 태우는 간절한 상두꾼의 선소리는 우리의 영혼을 건드린다. 그래서 구경하며 따라오는 사람 중에는 이 선소리에 공명하여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쓰라고 상여 앞에 달린 새끼줄에 돈을 꽂아 주기도 한다(2부에서 계속).

글 : 오종홍(삼태극http://cafe.daum.net/mookto 국사광복단, 풍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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