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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지리 독도 우리 땅, 일본 땅 근거없어대한제국은 국제법 규정에 맞게 일본 시마네현이 고시하기 전에 영유권 확보했다.
장계황 | 승인 2018.11.17 23:32

글: 장계황(한국역사영토재단이사장, 행정학박사)

 

장계황의 독도이야기 1

독도는 대한제국이 이미 서기1900년 국제법기준에 맞게

우리 땅으로 관보에 게재

반면에 일본정부가 아닌 시마네현이 1905년 자기 멋대로

현으로 편입 고시한 것 불과

 

▲서기1481년 양성지가 그린 팔도 총도. 오른쪽 바다에 섬 두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그려져 있다. 이 때도 독도가 우리 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증거다. 참고로 우측하단에 대마도도 그려져 있다. 대마도도 이 때는 우리 땅이었다는 소리다(편집인 말).

독도 우리 땅 역사적 근거와 현황

오늘부터 10일간 독도 시리즈를 펼쳐 갑니다. 독도가 우리 땅임에도 일본은 계속 시비를 걸고 있는데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확실히 공부 하자.

한국 사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독도를 인식

과거에 영유권을 어떻게 주장하고 어디 까지를 자기의 땅이라고 인식했을까? 아주 먼 과거에는 육지에서 보이는 곳 까지를 영토로 인식했다.

지금도 백두대간의 중심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면 울릉도가 보이고 을릉도에서 동으로 보면 독도가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이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우리의 영토로 인식 하고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울진현 조에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 玄不遠 風日淸的 則可望見” “우산(독도) 무릉(울릉도)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 볼 수 있다”

현재 독도는 해저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서 천연기념물 제336호이다.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이사부길 55인데 96개의 섬으로 되어있다.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 지목은 임야가 91필지, 잡종지가 7필지, 대지가 3필지이다.

울진 죽변에서 130.3km 이고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87.4km 반면 일본의 오키섬으로부터 독도까지는 157.5lm이다.

독도의 이름은 512년에 우산도, 1471년에 삼봉도, 1794년에 가지도, 1900년에 석도, 1906년에 독도로 칭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이다.

영유권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국가단위에서 주장 하여야 한다. 영유권은 소유권과 다르다. 소유권은 개인이 어느 국가에나 법이 허용하는 한 취득을 할 수 있지만 영유권은 국가에서 등록업무를 하여야만 인정이 된다. 즉 정부가 우선 소유를 해야 가능 하다는 것이다.

독도는 1900년에 대한제국에서 영유권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독도의 행정권을 명확히 했다. 즉 오늘날의 국제법에 맞는 영유권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1900년 대한제국 내부는 그 이전까지 도감이 관할하던 울릉도를 울릉군으로 승격시켜 정식 편제 안에 편입키로 했다. 이에 10월 22일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는 건’ 청의서를 의정부에 제출하여 25일 재가를 받아 대한제국 관보에 게재하였다. 전체 6개조의 칙령 중 제1, 2조의 내용이다.

제1조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바꾸어 관제 안에 편입한다.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

▲광무4년(서기1900년) 대한제국 관보에 울릉도와 더불어 독도를 우리 영토로 관할한다는 칙령을 적시하고 있다(자료: 장계황 박사).

여기서 말하는 석도가 독도인 것이다. 독도는 돌섬의 사투리로서 일본은 제2조의 관할구역 ‘석도’를 두고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타당치 않다, 석도는 우리말로 돌섬 독섬이 되는 것이다.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 독도가 되는 것이다. 독은 돌의 사투리로 이는 1938년 간행 된 조선어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족보 있는 단어이다.

이미 1900년에 대한제국에서 영유권을 국제법에 맞게 반포를 한 것으로 그 이후에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본은 이후 1905년에 독도를 비어 있는 무인도라 하여 다케시마라고 하여 1905년 2월 22일 일본 정부가 아닌 시네마현에서 편입 고시하여 지금도 다케시마의 날로 기념 하고 있다.

시마네현 고시가 관보에 게재되지 않은 회람용이었던 것과는 달리 대 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발효 2일 뒤 관보에 게재되어 국내외에 공인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대한제국 관보 제1716호로 게재 되어있다.

영유권은 국가의 등록업무로부터 시작이 된다. 다시말해 법무부의 등기부등본이 있어야 토지로서 인정을 받는데 등기부등본은 국가의 고유 업무이다. 현에서는 자체적으로 등기를 만들 수 없다. 임의 편입고시인 것이다.

소유권과 영유권에 대한 이해

영유권은 국가가 갖는 영토의 범위이다. 영유권 내의 토지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 행위가 등록업무를 통하여 법적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영유권과 소유권은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령인 북사이판 섬 전체를 일본 국적의 일본인들이 전체를 매입한 적이 있다.

섬 전체를 일본인들이 매입을 하여도 섬은 미국령이다. 미국의 등기법에 의해 일본인 들이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해 등록업무를 한 것이다.

따라서 최근 중국인들이 제주도를 매입하고 있는데 제주도 섬을 중국인들이 매입하여도 그 섬은 한국의 섬이다.

장계황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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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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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재 2018-11-20 22:50:12

    팔도총도?
    양성지가 그린 지도일 리가 없다.

    독도를 주제로 일본 주장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자료로써 제시하는 고지도가 일본이 조작한 조선강역 축소.조작지도를 게시하고 있다는 것은 넌센스다.

    양성지 시기의 압록강은 지금의 중국 요녕성 서쪽 지역에 있는 건창 부근을 흐르는 물길이다. 당연히 압록강 발원지인 백산도 지금의 노호산이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요하가 란하였기 때문이다.

    또 양성지 시기엔 국가영토 전체에 대한 지도 제작 수준도 갖추지 못했고 고작해야 압록강 국경선 지도가 전부였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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