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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본산 보은서 혁명정신 담금질 후끈무너진 하늘, 이 깊은 역사의 겨울을 넘어 기필코 대동세상 눈부신 봄 맞으리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11.13 23:55

 

동학혁명 본산 보은 장내리 속리산초등학교서 고천제 열려

큰 나무에 오방색 천을 묶어 늘어뜨려 한알님이 내림 알림

제단에 청수를 올리고 동학농민 원혼들 위령 춤으로 달래다

동학혁명군 쓰러져간 보은 일대 갑오년 원혼들 한 들리는 듯

 

▲서기2018.11.10. 충북 보은 장내리 속리산초등학교 마당에서 '고천제'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은 개천절이기도 했다. 음력10월 3일이었다. 하늘에 이 땅의 사정을 알리고 제를 올려 맺힌 한을 풀어달라고 빌었다. 눈물 없는 다 같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열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하늘은 한알님 아버지 한인천제 명을 받고 천부인 3개와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홍익인간, 이화세상을 열고자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온 한웅천왕이다. 학교 마당 큰 나무에 오방색 천을 내려 두른 것은 한웅천왕이 내려와 있음을 뜻한다.

가을 끝자락을 알리는 지난 11월 10일 의백학교 학생들과 충북 보은으로 향했다. 고천제와 동학혁명 진실에 목말라하는 시민들도 함께 했다. 45인승 버스가 꽉 찼다. 학생들은 30대 청년에서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언론인, 교수, 기업가, 주부, 사회활동가 등 우리 사회 중추를 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가는 중에 각자 자기소개와 이번 현장수업에 참여하는 소감을 풀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2시간 반 가량 달려 보은 장내리 고천제가 열리는 속리산초등학교에 들어섰다.

입구에 오방색 천을 걸어놓아 신성한 천제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또 학교에서 제일 큰 나무에도 오방색 천을 둘러 내려뜨렸다. 하늘 신이 내려와 있음을 알렸다. 천제장에 들어서니 보은동학민회에서 고천제를 지낼 준비를 다 마쳐놓고 있었다.

민회 회원들과 학생들은 흰 두루마기를 입고 제를 준비했다. 초등학교 건물 중앙현관 앞에 고천제 현수막을 넓게 펼쳐 걸었다. 그 앞에 천제제사상을 놓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제물을 올렸다. 제사상 양쪽에는 노랑색 화분을 놓았다.

▲이덕일 의백학교 교장이 보은동학민회 동지의 도움을 받아 제단에 술을 올리고 있다.

앞에는 붉은 팥 시루떡을 놓았다. 둘레는 과일로 장식했다. 사발에 쑥을 태워 연기를 피워 제장을 둥그렇게 둘렀다. 제장을 사발 여러 개 쑥 연기로 둘렀다. 제장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의례다. 액을 물리치고 신성한 천제마당에 신령이 내려 왔음을 뜻한다. 이어 맑은 물을 제단에 올렸다. 우리고유 문화인데 동학에서는 ‘청수봉전’으로 이어오고 있다.

태평소, 북, 꽹과리, 장구로 풍장을 울려 신이 내렸음을 기뻐했다. 모두 북을 하나씩 둘러매고 인도자의 안내에 따라 두드렸다. 하늘에 닿는 풍장소리와 북소리로 제장을 가득 채웠다. 인간의 공간에서 신의 공간으로 넘어갔다. 하늘에 절을 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술을 따라 올렸다.

고천제는 하늘 뜻이 펼쳐지는 새 세상을 열고자 떨쳐 일어났다 사라져 간 동학혁명 원혼들을 달래는 위령제였다. 이 자리는 125년 전 봉건조선왕조의 학정과 밀려오는 외세를 물리치고자 떨쳐 일어난 역사현장이다.

동학농민군 원혼을 위로하는 춤이 펼쳐졌다. 굿마당을 골고루 밟고 둘러 섬세한 춤사위로 어루만졌다. 원혼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동학혁명공원 윗자락에 자리잡은 농민혁명군 동상 뒤편 벽에 새겨진 무명의 동학농민군이 남긴 글이 말해준다.

▲참석자들이 손에 손 잡고 아리랑 환무를 하는 가운데 보은동학민회 동지들이 고천제에 한울님이 내렸음을 축하하며 노래와 장단으로 화답하고 있다.

“늙으신 부모님을 두고 집을 떠나온 지 어느덧 두달이 지났다. 청산에서 기포령이 내리는 날 집을 떠나기를 망설이는 나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던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나라가 무너지고서야 어찌 부모형제가 있겠느냐. 어서 채비하여 집을 나서라. 네 아우도 데려가라. 가서, 저 무도한 왜놈, 서양오랑캐들, 서울의 권귀들을 물리쳐서 이 나라를 반석위에다 두고 장차 만백성이 저마다 하늘님이 되는 세상을 열거라’

손병희 통령 지휘아래 논산으로 내려온 우리는 전봉준 장군부대와 연합하여 공주로 진격했다. 노성을 지날 때 진눈깨비와 함께 목천의 동학농민군 7명이 처참한 몰골로 연합부대를 찾아왔다. 서울로 가는 길을 선점하고자 가파른 산등성이에 군량미와 무기를 숨겨두었던 목천 세성산 근거지가 관군의 기습을 받아 무너졌다고 한다.

이인과 웅치 효포전투를 시작으로 우리들은 우금치 능선을 오르내리며 관군과 일본군과 혈전을 벌였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왜놈들의 포탄과 총탄에 머리통이 꿰뚫리고 가슴팍이 찢기고 팔뚝이 떨어져 나간 동학농민군의 주검이 골짜기마다 겹겹이 쌓여갔다.

찢겨진 깃발, 나부끼는 겨울나무가지 사이로 게걸스럽게 날아드는 숱한 까마귀, 까마귀떼를 뒤로하고 우리는 피눈물을 흘리며 후퇴를 거듭했다.” 갑오년(1894) 무명 동학농민군

▲동학농민군의 원혼을 달래는 위령춤이 천제장을 채우고 있다. 사진: 구현령

벽면에 새겨진 무명 동학농민군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그대로 가슴에 꽃혔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들 공원 아래로 내려 간 줄알고 있었는데 이계웅 동지가 안내려가냐며 다가왔다. 눈물을 보이기 싫었으나 그대로 두었다.

이 무명의 동학농민군은 자기 아우도 데리고 전투에 참여했다. 원래는 혼자가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동생까지 데려가서 싸우라고 재촉했다. “나라가 무너지고서야 어찌 부모형제가 있겠느냐”며 집안 젊은 자식이면 모두 싸우러 나가라고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당시 백성들의 애국심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우리 부모들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국가는 체제를 전복시킬 역도로 몰아 왜적까지 끌어들여 자기 백성 가슴에 칼을 꽂았다. 장차 서울로 가는 길을 먼저 차지하려고 세성산 산등성에 숨겨둔 군량미와 무기를 관군이 공격해 무력화시켰다고 한다. 일본군이 아니라 관군이다.

만약에 관군 공격을 받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지금은 많이 보이지 않는데 그 때는 까마귀 떼들이 널려 있었나 보다. 동학농민군 시체에 흘러나오는 피비린내를 맡고 어디선가 굶주린 까마귀 떼들이 새카맣게 몰려왔다.

공주 우금치 전투를 기점으로 동학농민군은 패퇴를 거듭하며 남으로 남으로 쫒겨 내려갔다. 또 한편은 북으로 후퇴를 거듭하며 동학혁명본산, 보은일대로 몰려들었다. 그 자리에서 125년 뒤 동학혁명정신을 잇고자 몰려든 후예들이 고천제를 올리고 있다.

▲조정미 보은동학민회 사무국장이 동학혁명공원에 조성된 동학기념물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 팔을 치켜 올린 사람. 뒤로 보이는 담벼락은 죽은 농민군을 안고 죽창을 세워잡고 있는 동학농민군 동상으로 가는 계단 길이다. 보은 일대에서 일본군 및 관군과 전투에서 2천6백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를 기려 2천6백 계단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천제가 무르익자,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준비해 온 고천문을 낭독했다.

“고천문告天文

조선건국 4351년 무술년, 이 땅에 하늘이 열린 11월 10일을 맞이하여 한울님과 스승님께 고합니다.

천지인의 홍익인간 사상과 장구한 옛 조선 문명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이어받은 동학의 후예 천도인天道人들이, 125년 전 이곳 보은 장내리에 모였습니다.

동학선열들은 척왜·양 보국안민을 외치며, 부패하고 무능한 조선 정부를 혁파하고, 침략자 일본군과 서양강대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구하려고 분연하게 일어났습니다.

1892년 10월 공주와 삼례집회를 통해 동학선열들은 좌도난정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구 장대에서 억울하게 참형을 당한 수운 최제우 스승의 신원을 요구했습니다.

광화문복합 상소로 평화로운 집회활동을 정당하게 펼쳤음에도 적폐 조선왕조는 오히려 백성과 나라의 안위를 걱정한 동학선열들을 더욱 탄압하였습니다.

밖에서는 임진전쟁 패배 후 호시탐탐 조선침략을 준비한 일본군이 몰래 들어와 병참선을 깔고 동학당을 참살하고자 무장하였습니다. 조선왕조를 전복하고 식민지배 하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성령은 사람의 영원한 주체이며, 육신은 사람의 한 때 객체라는 천리天理와 천명天命을 민중에게 온전하게 전한 최제우 스승의 시천주 사상과 사인여천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한 해월 최시형 스승의 지시로 1893년(계사년) 3월, 전국의 동학교들이 장내리에 모였습니다.

북접대도소가 있는 장안에 수만 명의 동학인이 모여 척왜·양,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절체절명의 나라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기도와 주문을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울렸습니다.

조정의 무자비한 탄압과 매관매직을 일삼던 관헌의 가렴주구에 맞서, 1894년 4월, 그리고 9월에 북접대도주 최시형 법헌은 전국의 동학군에게 총 기포명령을 내렸습니다. 동학선열들은 혁명의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아, 사대주의와 반상·적서 차별의 적폐세력이 불러들인 외국군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1894년(갑오년) 12월, 일본 정규군과 관군에 쫓겨 보은으로 피난한 수천 명의 동학선열님들께서 북실에서 일본군과 관군에서 무참하게 살육되었습니다.

아, 동학선열님들이여!

님들이 바친 목숨과 혁명정신을 먹으며 자란 우리는, 님들께서 잠드신 죽음의 땅을 딛고, 맑고 밝은 새 피로 다시 무장하여, 동학혁명이 시작한 위대한 이 땅에서 다시개벽의 동학을 기쁘게 노래하고자 합니다.

천지신명과 한울님, 그리고 스승님!

동학혁명북접기념사업회의 역사적인 태동을 기뻐해 주십시오. 우리와 함께하시어 민족의 평화통일을 도모하고, 우리 힘으로 민본의 대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용기와 건강, 그리고 지혜를 주실 것을 심고합니다."

-동학혁명북접기념사업회 발기인 일동-

▲고천제 참석자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고천문을 올리고 있다.

하늘에 고함을 마친 고천문은 제단 촛불로 불을 당겨 고이고이 남김없이 태워 하늘로 날려보냈다. 이 땅의 뜻이 하늘에 상달되었으리라. 고천문 낭독을 마치고 한 참석자의 제안으로 시천주문을 노래했다. 손윤 이사장의 제안으로 스물한 번을 불렀다. 무참히 쓰러져간 동학농민군들의 원혼을 달래는 듯 주문 소리는 신령스러운 듯 구슬펐다.

다시 풍장을 울렸다. 참석자들은 모두 손에 손 잡고 아리랑을 불렀다. 가진자 없는자 모두 서로 함께하는 유무상자, 대동세상,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며 남녀노소 모두 한 마음이 되었다.

지난 봄과 뜨거운 여름을 뚫고 한 세월 진동했던 나무들이 옷을 벗어 천제 마당에 단풍잎을 뿌렸다. 학교 마당은 사각사각 모래로 눅눅하게 푹신 거렸다

천제가 끝나고 모두 모여 차려놓은 제물로 음복을 했다. 같이 간 의백학교 이덕일 교장이 한 젓가락 먹여준 묵 맛이 아직도 진하다. 고천제를 이끄는데는 보은민회 조남기, 김인각, 조정미 등 여러 회원 및 풍류마을협동조합 모두골 예술단이 수고했다.

▲속리산초등학교 마당에서 고천제를 마치고 길 건너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만난 이 마을 한 할머니.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을 비석옆에 서 있다. 할머니 뒤 편으로 이 마을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있는 옥녀봉이 있다. 이 산은 보습산이라고도 한다고 조정미 보은민회 사무국장이 알려주었다. 125년전 여기서 벌어진 동학농민군 학살의 참상을 모두 내려다 보았을 것이다.

천제를 마치고 장내리를 가로지르는 냇가 건너 ‘정이품송가든’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가는 길에 한 할머니가 뜻밖의 많은 손님들에게 마을 소개를 열심히 했다. 할머니 ‘시숙양반’이 마을 가운데 비석을 세웠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 마을에 내려오는 동학혁명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비석을 보여주며 흔적을 되살렸다. 장안리 넘어 보은에서 시집왔다고 했다. 88세라고 하는데 나이에 비해 너무 건강하고 젊었다. 일제치하 어렸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얘기를 들려주었다.

가는 길이 바빠 남은 얘기를 마저 듣고 싶어 식당으로 모시고 갔다. 처음에는 미안해 하며 안 가려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미안해 하며 밥만 잡쉈다.

125년전 이 마을에 살던 백성들도 이 할머니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착한 백성들이 총칼을 들고 동학농민군이 되었다. 더 이상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 평균 30여명이 자살하는 대한민국, 지금은 그때와 다른가(3부에서 이어짐).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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