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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교수도 비웃는 영혼부재의 사대주의...중국과 일본의 식민지배, 자율적이냐, 타율적이냐만 다를 뿐이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6.29 17:14

 

누구를 위한 사대주의인가...

이 땅에 사대주의를 심은 지배세력은

소중화 조선이후, 상국에겐 조아리면서,

백성들은 개, 돼지 취급했다...

 

경희대학교 임마뉴엘 페스트라이쉬 국제대학 교수가 한국에 쓴 소리를 했다. 말을 들어보면 현재 우리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사지멀쩡해가지고 허우대도 좋은데, 머리는 사대노예근성으로 찌들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동네북, 남 좋은 일만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는 "외국에 의존하는 한국 지식인들", "식민지 문화의 사고습관", "자기운명을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이라고 쏘아 부쳤다.

그의 뼈 아픈 지적을 직접 들어보자,

"미국의 문화와 지시를 과도하게 존중하는 자세가 한국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미국 지식계급의 심각한 쇠락과 정치문화의 대대적 후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미국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확실히 이런 선입견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프랑스나 독일, 일본,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다. 심지어 영국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뛰어난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의 지식계급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미국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따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를 식민시대 사고방식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다른 원인으로는 (강대국을 섬기는) ‘사대의 예’ 관행이 있다. 이는 과거 한국과 중국의 관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는 사신을 중국에 보내 중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쳤다. 유교의 예에 의거해 중국의 천자만이 천제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왕은 자국 영토에서조차 천제를 지낼 수 없었다."

임마뉴엘 교수의 지적을 듣고 있으면, 한국인으로서 낯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 한마디로 몸만 비대해진 영혼이 없는 노예들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본지에서는 2부에 걸쳐서 사대주의 기원을 추적했다. 그것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반란이 결정타였다. 사대주의는 지배세력은 호의호식, 피지배 백성들에게는 지옥을 안겨 주는 것이 거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중화사대주의에 기반을 둔 소중화 조선정권이 들어선 후 우리역사는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암흑기를 맞이한다. 이들은 중화사대주의에 맞게 우리 역사에도 손을 댄다. 개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려역사를 제후국 역사로 윤색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장 큰 역사 범죄행위는 우리 역사의 뿌리인 상고사, 고대사를 중화사대주의에 입각하여 날조, 왜곡해 놓았다. 한마디로 중국의 지방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나라 북부를 중국 한나라 식민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 소중화 조선의 지배세력은 임진왜란을 자초했고, 명나라를 끌어 들임으로써 이 땅에 외국군 주둔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임금, 만력제(신종)이다. 전쟁 후 명나라가 망한 나라를 구해주었다고, '재조지은'이라는 말을 퍼뜨리며 전쟁의 실상을 왜곡했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평양을 중심으로 중국 한나라 식민통치기구인 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그려 놓고 있다. 세종실록의 지리지는 우리나라 지리연혁을 기록한 국가 공식문서다. 소중화 조선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소리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우리를 역사내전으로 몰아넣고 있는 식민사관의 기원이다. 일제는 소중화 조선이 만들어 놓은 중화사대주의 사관을 일제 황국사관에 맞게 수정하여 더욱 정교하게 식민사관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서 낙랑 봉니, 와당 등 유물을 무수히 조작하여 평양일대를 한나라 식민지로 깊이 박아 놓았다. 그 후예들이 지금 우리가 낸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며 전국 대학과 박물관 그리고 국가기관 및 각종 연구소를 장악하고 대를 이어 조선총독부 사관을 이어가고 있다.

소중화 조선이 남긴 또 하나의 깊은 상처는 외국군대 주둔이다. 외세 의존적 정책에 따라 처음 이 땅에 외국군대가 주둔한 것은 임진왜란 때다. 소중화 조선정권이 왜군을 물리쳐 달라며 명군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로써 나라를 스스로 지키기 보다는 외국군대에 의존하는 퇴행적 풍토가 깊이 자리 잡는다. 소중화 조선 초기에는 아직 모든 것에 고려 기운이 남아 있어 주변 세력을 제압하여 나라 구실을 제법 한다. 대마도 정벌이라든가 이른바 4군 개척이라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중화사대주의 성리학적 지배질서가 점점 뿌리내려가면서 고려의 자주성은 사라져 간다. 율곡 이이가 말했다는 십만양병설이 있다.

최근에는 이율곡이 말한 적이 없다는 견해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핵심은 ‘십만양병설’이다. 고려제국은 상비군만 10만이 넘었다. 그런데 고려보다 땅이 더 넓었다는 소중화 조선은 왜구 침략 징후를 앞두고 십만 병력을 양성해야 할 정도로 군대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일본은 왜란을 일으키기 수년전부터 조선전역을 돌아다니며 첩보활동을 했다. 우리나라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한 것이다. 전쟁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당시 조선에 제대로 된 군대가 없었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아주 쉬웠을 것이다. 그 만큼 당시 소중화 조선정권은 상국이자 어버이 나라인 명나라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자주국방 태세를 상시로 갖추어 놓지 않고 명나라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도 똑 같다. 국방비는 40조라는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되고 있지만, 방산비리로 다 세어 나가고 스스로 무기를 개발하기 보다는 미국에 의존하여 한물간 무기를 바가지요금을 퍼주고 들여오고 있는 수준이다. 이명박 정권 때 총알에 뚫리는 방탄모, 방탄잠바가 도마 위에 올랐다. 또한 뜨지 않는 전투헬기도 마찬가지다. 방산비리가 얼마나 심했는지 문재인 정부 들어서 범죄자들을 사형, 무기까지 처벌하는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을 정도다. 노무현 정권 때 미국과 합의하여 서기2012년에 회수 예정이었던 전시작전권을 계속 미국이 가지고 있어달라고 이명박정권 때 애걸해서 연장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아예 가져올 생각을 안했다. 군대 지휘권이 없는 군대가 군대인가. 이러한 군대의 효시는 소중화 조선이 선배다.

▲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설치되어 있는 토정 이치함 동상. 나라 선지 2백년도 못되어 왕조말기증세가 터져 나오고, 민생은 도탄에서 헤맸다. 기인이자, 선각자였던 토정 이지함은 선견지명으로 민생구제에 나선다.

소중화 조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규군이 초전에 궤멸되어 버리고 임금이 명나라로 망명 준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명나라에 군대를 보내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결국 소중화 조선이 무너지면 바로 자신이 도륙되게 생기자 자국 보호를 위해서 병력을 파견한다. 선조는 이에 감격하여 조선군대의 지휘권을 명나라에게 넘겨 버린다. 전시작전권을 외국군대가 갖게 된 효시가 여기서 드러난다. 이승만이 6.25때 인민군에게 초전에 박살나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채결하면서 한국군대 지휘권을 통째로 미국에 넘겨 버렸다. 스스로 이씨조선왕족의 피를 타고 났다고 자랑한 이승만,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이승만이 처음 이 짓을 한 것이 아니라 이미 4백 50년 전에 선조가 이 못된 버릇을 들여놨다.

이후 명나라는 어쩌면 왜군 보다 더 악랄하게 조선민중을 수탈, 착취한다. 왜군과의 전투는 소극적이면서 이 땅에 눌러 앉아 얻어먹을 것에만 혈안이 된다. 이것이 외국군대가 이 땅에 주둔하게 된 첫 역사다. 이후 우리는 사라지고 명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더할지 말지 지들끼리 갖고 논다. 이 땅의 주인은 객이 되고 명나라와 일본이라는 외국군대가 이 땅을 차지하고 앉아서 감놔라 배놔라하며 이 땅의 민중을 뜯어 먹는다. 왜 이리 대접을 소홀히 하냐며 조선군 장수들을 개 패듯 패기도 한다.

소중화 조선은 이런 치욕의 역사를 ‘재조지은再造之恩’으로 포장해서 조선민중을 기만한다. 왜구에게 망한 나라를 명나라가 다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조작된 ‘은혜’를 잊지 않고자 소중화 지배세력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 세상이 되었는데도 속으로는 여전히 명나라 어버이 만세로 살아간다. 송시열이 세운 화양동 서원이 충북 괴산에 아직 남아있는데 이 서원의 만동묘는 여전히 임진왜란 때 출병해 준 명나라 신종(만력제)을 기리고 있다. 그리고 웬만한 고관대작의 무덤비석에는 유명조선有明朝鮮이라는 문구가 처음에 나온다. 명나라에게 소유권이 있는 조선이라는 뜻이다. 명나라가 임진왜란에서 구원해 주었으니 명나라 것이라는 소리다. 이 대목에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라를 다시 만들어 준 것으로 말한다면 단연코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나라의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전비를 충당하여 왜구 전력을 결정적으로 파괴한 공신이다. 이순신이 해상권을 장악하여 왜 수군이 북상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선조는 명군이 들어오기 전에 망명객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의병투쟁도 임진왜란을 종식 시킨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임진왜란이 종식된 것이 순전히 명나라 덕분이라고 사기를 친 것이다. 지금 이명박근혜세력이 대한민국이 독립투사들의 독립투쟁의 결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기1948년에 친일파가 장악한 이승만 정권이 세운 것이라고 사기 치는 것과 같다. 저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은 광복군 세력이 세운 것이 아니다. 8.15해방 공간을 혼란과 민간인 학살로 물들인 미군정부 덕에 살아남은 친일파들이 세웠다는 것이다. 건국절 운운하는 사기극의 밑바탕에 이런 숨은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을 아는 대한민국 국민은 몇이나 될까.

소중화 조선은 사실상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망했어야 했다. 개국한지 2백년이 되자, 중원 왕조들처럼 멸망의 말기적 증상이 곳곳에서 튀어 나왔다. 개국 초 과전법 등으로 백성 편에서 정책을 펼쳐 개국 정당성을 확보했을지 모르나 기득권세력이 되자, 곧 없었던 일로 해 버렸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한없이 펼쳐져 있던 바다와 섬까지 틀어막아놓고 오히려 고려 보다 더 백성을 쥐어짜고 착취했다. 이에 견디지 못한 민초들이 도적떼로 변하여 떠돌아 다녔다. 명종 때 의적으로 알려진 임꺽정(林巨正)의 출몰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홍길동전>도 지배세력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지 잘 보여 준다.

▲서울시 마포구 용강동에 조각되어 있는 민초들. 토정 이지함의 민생구제에 따라 소금과 식량을 타기위해 백성들이 줄을 서서 받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은 것이다. 맨 뒤에는 개 조차도 먹을 것이 없어 바가지를 입에 물고 줄서 있다. 임진왜란 십 수년전의 일이다.

더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0년도 안된 이 땅의 모습은 ‘지옥조선(헬조선)’ 그 자체였다. 당시 민생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서기1517~1578)의 민생구제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개국한지 2백년이 채 안되었는데 나라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이지함은 스스로 바다와 갯벌 그리고 무인도를 이용하여 2~3년 만에 몇 만섬의 곡식을 확보했다. 직접 흙으로 된 정자를 지어 놓고 민중들을 구제했다. 특히 아녀자, 아이, 노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상업과 해외통상론 및 광산업 등 지하자원 개발론 주장했다. 또한 육지와 바다는 1백가지에 필요한 식량을 저장한 곳이라고 하면서 개발을 촉구했다. 그리고 사대부들이 탐욕을 버리고 먼저 자신을 닦고 백성을 다스리라고 하며 윤리도덕성회복을 역설했다. 이지함이 추구하고 주장한 것은 고려에서는 주장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열린 바다의 고려는 섬, 바다 할 것 없이 모든 지역에서 생산물이 풍부했다.

그런데 소중화 조선정권은 모든 기준을 중국 명나라에 맞추고 따라 했다. 명나라가 바다를 막자, 소중화 조선정권도 바다를 막고 심지어 섬까지도 폐쇄해버렸다. 식량의 절반이상이 바다에서 나는데 이것을 막고 해외로 가는 길을 끊어버렸으니 그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지함이 내놓은 대책을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다. 그런데 소중화 조선 정권은 중화사대주의와 정권안정을 위해서 백성들을 희생물로 삼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득권 수호를 위해 백성이 죽어나가든 말든 별로 관심없다. 사드배치가 백해무익한 것은 다 아는 사실임에도 중국의 경제봉쇄로 관련 업에 종사하는 백성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중원 국가들의 평균 수명은 2백년 안팎이다. 중화 제도를 추종하여 그대로 옮겨놓고 그 제도와 이념에 따라 나라를 이끌었으니 중원 국가의 평균수명을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임진왜란이라는 죽음 문턱에서 살아난다. 이후에 벌어지는 역사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 비극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당연히 피지배계층이었다. 무능 부패한 지배세력은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30년도 안되어 또 다시 전쟁을 불어 들인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다. 양 호란은 임진왜란과는 또 다른 형태의 참화와 지워지지 않는 슬픔을 새겨 놓았다.

청나라에 끌려간 백성이 60만이다. ‘환냥년’이라는 말이 이 때 생겼다. 원래는 환향녀還鄕女라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몸을 맡겨 버리는 더러운 여자라는 뜻의 대명사로 변질되었다. 저주가 섞인 욕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못난 사대부 종자들이 마누라와 딸들을 적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해 포로로 끌려갔다.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대부 양반들은 오랑캐에게 끌려가서 몸을 더럽혔다며 받아주지 않고 내친다. 가문의 수치라는 이유에서다. 고향으로 돌아온 수많은 아녀자들이 그리운 고향 품으로 돌아왔음에도 청나라에 끌려간 때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은 것이다.

청나라 적지에 있을 때는 몸은 비록 더럽혀 졌을지는 몰라도 정신은 지조를 지켰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와서 마지막 자존감마저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다. 수많은 여인들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쟁의 참화는 이 뿐 만이 아니었다. 전쟁을 불러들인 것은 왕과 양반 나부랭이들이었는데, 청나라가 요구하는 전쟁책임에 따른 배상은 백성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배상 하느라고 백성들은 더욱 가난하고 피폐해져 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중화 지배세력 근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명박근혜로 대표되는 친일숭미세력은 이 땅에 전쟁을 못 일으켜서 안달이 나 있다. 전쟁군수산업으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미국을 등에 업고 이 땅에 팽팽한 긴장을 증폭시키며 국민에게 공포심을 심어, 이것으로 먹고 살고 있다.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참사를 불러들여 정권을 연장한 것이 최근에 일어난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의 탐욕을 위해 수십 명의 젊은 피가 억울하게 제물로 바쳐졌다. 사드배치도 이런 선상에 있으며 사드배치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난동은 정권 연장을 다시 기도하다가 미수에 그친 사례다(4부에서 계속).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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