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로 삼국의 활동을 상정하면 맞지 않는 것이 많다.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중국 사서에서 바다는 지금의 소금물 바다 서해 아냐

백제 도읍지 하남 위례성의 한수는 산동성 황하로 보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산동성 서 건국했다는 4가지 증거

 

▲ 대륙 삼국의 위치도
▲ 대륙 삼국의 위치도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우리 고대국가 위치를 찾다)

우리 고대국가가 탄생한 삼한은 당연히 그 출발인 고조선 강역인 하북성 일대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삼한을 세운 세력이 바다인 하천을 건너 이동한 곳이  산동성 지역이다.

사서를 분석해 보면 삼한의 위치는 한반도가 될 수 없다. 삼한이 한반도 중부 이남으로 정해진 원인을 찾으면 삼한의 올바른 위치를 정립할 수 있다.

2. 삼한의 형성과 위치(2)

삼한의 위치가 한반도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중부 이남으로 된 이유는,

1) 그 출발점인 고조선의 위치를 한반도 평양이라고 하였고,

2) 이곳에서 출발하여 이동한 경로인 바다(海) 기록을 지금의 서해로 해석하였으며,

3) 이러한 경로에 따라 형성된 삼한을 한반도 중부 이남으로 한정시켰고,

4) 백제와 신라만이 이 삼한에서 탄생한 것으로 하는 한편 고구려를 한사군의 현토군 위치로 고정했기 때문이다.

1) 고조선은 앞에서 살펴본 연나라 위치, 연진 장성 위치, 갈석산 등과 접해 있으며 이는 고조선이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하북성 보정시 인근에 있었던 것임을 보여준다.

2) 고조선에서 출발하여 확립된 삼한의 위치는 기록된 바다를 거쳐 이동한 곳이다.

여기서 중국 사서상의 바다(海)는 지금의 바다 개념이 아니다.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중국사서는 바다를 당시의 큰 하천이나 호수, 수로라고 한다. 따라서 중국 사서상의 바다를 지금의 바다로 보는 것은 오류이고 이 오류에 터 잡아 삼국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기』권 2「하본기」제2

조이(烏夷)들은 가죽옷 입었으며, 오른쪽으로 있는 갈석(碣石)을 끼고[1] 바다로 들어간다. [2]

[1] 집해 공안국이 이르기를 : 갈석이 바닷가의 산이라 했다.

[2] 집해 서광이 이르기를 : 바다를 강이라고 하기도 한다.

확인 결과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바다 대부분은 하북성에서는 고조선 당시 갈석산과 고구려 당시 수나라와 당나라의 고구려 침략 경로 및 평양성, 국내성, 안시성 등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당시 마자수이자 압록수였던 지금의 하북성 호타하다. 산동성에 있었던 삼국 중 백제의 도읍인 하남 위례성의 한수는 산동성 황하로 나타난다.

3) 따라서 중국사서 기록상과 같이 당시 위만조선의 말 왕, 기준이 바다(海)를 거쳐 건너간 한(韓) 즉 나중의 삼한 지역은 하북성 고조선 지역에 있었던 당시 바다(海)인 지금의 하북성 호타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간 산동성 지역이다.

4) 이러한 경로는 고구려 건국 시조인 추모왕이 하북성 고조선 지역이었던 당시 압록수 지역의 부여를 떠나 산동성 지역에서 고구려를 건국한 경로와 같은 것이다.

또한, 신라 역시 같은 경로를 따라 하북성 고조선 유민이 산동성으로 내려와 세웠다.

선 조국인 고구려 건국과정 및 위치를 보면 고구려에서 나온 백제도 이 지역에서 건국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중부 이남의 삼한 지역에서 백제와 신라가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적 활동이 같은 지역이라는 것에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삼국은 하북성 일대에서 일어난 삼한 지역에서 나왔다.

삼국이 건국되고 활동한 지역이 한반도가 절대 될 수가 없는 결정적인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왜는 『삼국지』 및 『후한서』 기록상에 마한 및 변한(변진) 남쪽에 육지로 접해 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BC50년부터 AD500년 03월까지 왜가 나온다. 이 왜가 백제와는 우호관계를 맺었고 육지로 접해 있는 신라를 수시로 괴롭혔다고 한다는 것이다.

2) 한반도 삼국을 비정할 경우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한나라 군현인 낙랑군과 대방군이 있다. 그런데 만주 고구려 졸본성 가까이에 있는 말갈 세력이 백제와 신라의 북쪽에서 수시로 괴롭힌다.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백제의 경우 무령왕 시기인 AD507년, 신라의 경우 문무왕 시기인 AD675년 시기까지 괴롭혔다는 것이다.

3) 한반도 비정에 따르면 함경도 지방에 정해지는 (최씨) 낙랑국이 백제의 동쪽이자 신라의 서쪽에 있어서 특히 신라를 아주 가까이에서 수시로 공격한다는 것이다.

4) 고구려 추모왕이 하북성 부여를 탈출하여 건넌 대수(엄리대수)는 온조가 이 고구려를 나와서 백제를 건국할 때 건넌 대수 하천이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 고국원왕이 백제의 근초고왕과 패수(패하) 싸움 등으로 결국 이곳 인근의 평양성(남 평양성, 하 평양성, 졸본성)에서 전사한다.

이 패수(패하)에는 하천이 있고, 백제가 고구려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건너 도읍한 한수가 이 하천이다.

이 대수, 패수, 한수 등 3강이 가깝게 나란히 흐르는데 이곳 인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역사적 활동을 같이한다.

이러한 4가지 사항이 충족되는 곳은 일제 식민사학이 정한 한반도가 절대 될 수가 없다.

이것을 충족시키는 곳은 오로지 하북성을 아우르는 고조선의 지역인 산동성이 될 수밖에 없다.

산동성에서는 이러한 필수 조건 외에 이후의 모든 역사적 활동 사항이 모두 충족되는 반면, 한반도는 충족되지 않다는 것이 삼국의 모든 역사적 활동 기록으로 확인된다(고대사 위치를 찾아서 5).

- 유튜브 채널 : 채널명 :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https://www.youtube.com/@ancient-history.youtubecreator

- 집필본 단행본 10권중 1~5권 : 우리 고대국가 위치를 찾다(도서출판 한솜미디어, 2022,23)

* 본 기사는 본지의 시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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