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혼돈은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 도명스님(여여정사 주지, 가야문화진흥원이사장)

 

도명스님의 가야사 연재 2

10대 경제 대국 자랑하나 정신은 중심 잃고 헤매는 중

충, 효의 전통 가치 소홀, 역사 교육 빈곤이 나은 후유증

임나일본부설 소각, 가야사 바로잡는 것이 문제해결 출발점

 

▲ 제도권 강단식민사학계가 가야 개국 이야기를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역사적 사실임을 알리는 허황옥 3일 영화가 상영되어 눈길을 끌었다(편집인 주).
▲ 제도권 강단식민사학계가 가야 개국 이야기를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역사적 사실임을 알리는 허황옥 3일 영화가 상영되어 눈길을 끌었다(편집인 주).

 

ㄱ)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

외형적으로 보면 현재 한국은 세계 경제 10대국 안에 들어가는 부강한 나라이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국민 분열, 경제적 불균형, 중앙과 지방의 차별, 기득권과 청년의 갈등 그리고 이대남 이대녀로 나타난 젠더 갈등까지 수많은 문제가 있다.

여러 가지 갈등의 심리적 요인은 핵심은 상대에 대한 불신이다. 이는 생각이나 환경적 요소가 다름에 대한 불인정과 서로의 입장을 배제한 자기주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극단적인 갈등의 밑바탕에는 약육강식의 국제정세와 외세에 핍박당하며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뼈아픈 우리 역사가 있다. 근대 일본의 국권 침탈과 얼마 후 발발한 한국전쟁, 그리고 자주권을 갖추지 못한 국권과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의 뿌리가 종기처럼 자리 잡아 지금까지 여러 해악을 일으키고 있다. 그중 특히 역사학의 영향은 학문뿐 아니라 정치, 문화, 일상 속에 깊숙이 산재하고 있다.

근대 이후 어려운 국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우수한 두뇌와 높은 교육열은 서구의 교육과 정치 시스템을 빠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 한국은 서양에서 공부해 서양 민주주의의 우월성만을 최우선시하는 학자들과 위민(爲民)의 정치 철학 없이 경제 선진국병에 빠진 정치인들로 인해 소위 덩치는 어른인데 정신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과거 충, 효, 예를 근간으로 한 우리 전통교육의 핵심은 전인격적 인간교육과 전체라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균형잡힌 교육이었다.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온 전통적인 교육의 핵심은 충, 효, 예인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정신들을 진부한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전체보다는 개인을, 상생보다는 개인 능력을 우선한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기반한 경쟁을 부추기는 서양 교육의 폐해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성공을 목표로 조상과 국가, 민족과 가족의 소중한 가치를 망각하고 영혼 없는 자본 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현대인은 고독하고 우울하며 자기 철학이 없는 부평초같은 삶을 살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시간과 학문이라는 테두리에만 머물지 않고 과거를 통해 지금의 시대정신을 일깨운다. 역사를 모르는 인문학자가 어찌 깊이있는 통찰을 할 수 있으며 역사를 모르는 정치인이 어떻게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겠는가. 오늘날 청소년 문제부터 성인이 맞닥트린 여러 문제들의 근본을 탐색해보면 올바른 교육의 부재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학교 교육, 집안 교육, 또래 집단이나 사회 교육이라 해도 그 근본은 충, 효, 예이며 역사만큼 이것들이 확연하게 배울 수 있는 곳도 없다. 역사 교육은 나라의 장래와 직결되어 있기에 청소년과 성인, 전국민들에게 빠짐없이 국사와 세계사를 교육해야 한다.

ㄴ) 문제의 해결의 열쇠, 가야

예로부터 갈등의 시대에는 그것을 해결할 정신적 가치, 철학, 사상 등이 등장했다.

예를 들면 갈등과 혼란기에 늘 등장하는 말이 원효 스님의 화쟁(和諍)사상이다. 물리적인 큰 충돌도 말과 논리의 충돌부터 시작되는데 결국 그 근원은 가치관 즉 생각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원효 스님이 살던 시대는 삼국이 격렬한 전쟁을 겪은 후에 통일을 이룬 때다.

나라의 운명을 걸고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며 목숨 걸고 싸웠고 그 결과로 승자든 패자든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잃었다. 삼국은 통일이 되었지만 그 이후의 후유증은 또 다른 투쟁의 씨앗은 품고 있었다.

원효 스님은 본래 같은 뿌리였지만 전쟁으로 원수 같은 감정의 골이 깊이 패인 백성들의 마음 깊은 곳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스님은 서로가 가진 다른 생각들을 억누르거나 배제하지 않고 밖으로 토해내게 유도한다.

화엄경의 법계 연기를 토대로 삼국이 서로 남이 아니며 이긴 자와 진 자가 둘이 아님을 깨닫게 하였다. 본질은 뭇 존재가 이미 평등한 본성을 가졌으나 각자의 업에 따라 지혜로운 이는 지혜로운 대로, 어리석은 이는 어리석은 대로, 잘난 이는 잘난 대로, 못난 이는 못난 대로 서로를 인정하게 하고 이를 업설(業說)과 인과의 법칙으로 계도했다.

범부(凡夫)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며 부분적으로 동일한 점을 본다. 그러나 성인(聖人)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는 평등하고 동일하며 부분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또한 모든 개체는 각기 다른 업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의 다름을 허용할 때 투쟁은 사라지고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다.

3. 왜 지금 가야인가

가야는 김수로왕의 대륙 문화와 허왕후의 해양문화의 통합 위에서 세워진 나라이다.

또한 동이족과 인도인 사이의 국제결혼으로 인종·문화적 이질성을 극복했다. 허왕후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보석과 재물들은 내고(內庫)를 따로 두어 쓰게 했으니 경제적 독립도 인정했다. <삼국유사, 파사석탑조> 기록의 ‘함께 나라를 다스린 지 150여 년’ 또는 후손들이 ‘김수로 할배’처럼 ‘허수로 할매’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가야는 양성평등을 일찍부터 실현한 선진화된 나라이다. 가야를 들여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가야는 현대화된 고대국가이고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세련된 고대인으로 보여진다.

가야의 정체성을 대략하면 이질적인 요소를 허용하는 수용과 통합이다. 이러한 가야의 통합 정신은 다양함을 수용해 일찍부터 해외로 문호를 개방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로 인해 가야는 선진화된 철기의 생산과 유통을 가능케 하였고 수로왕 당대에 이미 해양 대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 증거로 수로왕이 탈해를 쫓을 때 500대의 배를 동원한 것과 허왕후가 첫날밤을 보낸 진해 용원에 있는 항포구, 주포(主浦)의 이전 이름이 특별한 포구를 의미하는 별포(別浦)였음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제 2의 궁궐을 의미하는 종궐이 별포에 있었음을 의미 깊게 봐야 한다.

지금 우리 역사의 대척점에 가야가 있다. 가야는 우리의 고대사에서 너무나 찬란한 문화를 향유했으나 망국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임나를 세우기 위해 가야 초기의 기록들은 의도적으로 조작당했으며 지금까지 그 여파가 남아 있다.

현재까지도 일본은 가야를 재물 삼아 노골적으로 역사 침탈을 해오고 있다. 이제 역사를 우리에게 맡겨달라는 역사조작 집단들의 후예에게 가야사를 맡겨선 안된다. 가야사의 정립이 우선되지 않는 가야사 복원은 ‘빛 좋은 개살구’이며 식민사학자들에게 합법적인 매국과 뒷주머니 챙겨주는 일만 될 뿐이다.

우리 역사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지금 눈앞에서 가야권의 옛 영역에 임나의 지명을 박아넣는 변형 임나일본부의 망령을 완전히 걷어내야 한다. 곳곳의 박물관 지도에 그려넣은 임나의 지도를 폐기해야 한다. 국립 중앙박물관 연표에 빠져있는 김수로왕과 가락국을 표기해야 한다.

서기 48년 허왕후 도래시 불탑을 싣고 왔으니 이때를 한국불교 최초 전래로 인정해야 한다. 가야사가 바로 서면 우리 역사가 바로 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깨어있는 역사의식으로 보면 역사바로세우기의 첨단에 가야사가 있다. 또한 우리 역사와 국운이 상승하는 실질적 변곡점은 ‘가야사 정립’의 순간이라 생각한다.

왜 지금 가야가 복원을 꿈꾸고 역사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는가. 그것은 홍익인간의 적통을 이어받은 가야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명과 법계에 가득한 선열들의 보우하심일 것이다. <가락국기>에 수로왕은 석탈해가 도전해 올 때 “하늘이 나로 하여금 왕위에 오르게 명한 것은 장차 나라 안을 안정시키고 백성을 편안케 하려함이다”라고 했다.

이는 배달국의 환웅 천제가 단군에게 전한 널리 인간을 이익되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하늘의 이치로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는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정신이 엿보인다.

또한 가야인들은 길을 가다가 만나면 길을 양보하고 농사 짓는자 밭 갈기를 양보하니 사방은 평안해지고 만백성은 태평을 맞이했네 (行者讓路 農者讓耕 四方奠枕 萬姓迓衡)이라는 문구처럼 양보와 배려라는 최고의 미덕을 함양했는데 이기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가야의 시대정신인 융합으로 풀이되는 다양성의 인정을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이상세계인 화엄세계(華嚴世界)이며 불국토이다. 불국토라고 해서 부처만 사는 곳이 아니고 또한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고 불국토라고 하지 않는다.

중생들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의 다름을 허용하면 그곳이 곧 화엄세계이며 불국토, 유토피아이다. 우리는 이제 그 옛날 가야의 열린 사고와 융합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의 일국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상생과 공존이라는 21세기의 인류의 커다란 화두를 풀어내는 실제적 가치로서 가야는 충분히 그 답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