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삼라만상의 분별 상은 환상이고 오직 하나밖에 없다.

 

동학을 창건한 수운 최제우, 오랜 수도 끝에 대각을 이뤄

그의 도는 무극대도로써 동서양의 모든 종교를  아울러 

'내가 우주 전체고 한알님'이라는 자각은 '하나임' 사상

민족 정신사의 대 전환이자, 우리 정신 원형 선도의 부활 

 

 

▲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존영. 그는 젊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도와 세상 실정을 돌아보았다. 고향경주에 돌아와서 도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면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고 적멸굴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 등 수도에 힘썼다. 서기1860년 4월 5일(음력) 접신현상을 체험하며 한알님을 만났다. 
▲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존영. 그는 젊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도와 세상 실정을 돌아보았다. 고향경주에 돌아와서 도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면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고 적멸굴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 등 수도에 힘썼다. 서기1860년 4월 5일(음력) 접신현상을 체험하며 한알님을 만났다. 

동서고금의 종교와 사상을 집대성한 동학 창건자, 수운 최제우가 大覺을 이룬 때는 서기 1860년 경신년 음력 4월 5일이다. 극한 죽음의 공포를 뚫고 그에게 드러난 것은 궁극적 실재인 ‘한알님[一神]’이었다.

이 한알님은 한겨레의 역사가 시작한 한인 천제 이래 이어져 온 풍류도의 다른 이름인 仙道[神仙道]의 부활이었다. 天符經이 선도의 머리라면 三一神誥는 선도의 몸통이다. 선과 악의 양극단을 초월[眞性無善惡]한 삼일신고의 一神이 수운 최제우가 대각한 不擇善惡[無善惡]하는 한알님이다.

그 한알님[上帝]의 첫 목소리[聲]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吾心卽汝心].” 였다. 이는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인 한알님이 수운 자신이라는 깨달음이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善知識들의 解悟가 아니라, 밤새도록 엎어지고 자빠지고 뒤집히는 극한의 죽음과 같은 공포를 뚫고 나온 전일적이고 전면적인 고통스러운 신비 체험에서 나온 일갈이다.

그는 이제까지 나[我相]라는 것이 있고 내가 하는 말, 일, 행동 모두가 수운 최제우 개체로서의 자신[個我=我相]이 하는 것이라고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경신년 4월 5일)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까지의 당연한 세상, 현상계가 사라졌다. 그는 이 대각의 경지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布衣寒士 뿐이라도 天理야 모를 소냐,

사람의 手足動靜 이는 역시 鬼神이요

善惡間 마음用事 이는 역시 氣運이요

말하고 웃는 것은 이는 역시 造化로세”

수운은 퇴계 이황의 정통학풍을 이은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만 모친이 재가녀再嫁女라는 이유로 과거시험을 치를 수 없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몰락한 가문을 재건할 수 없었다.

당시 법이 재가녀의 자식은 과거 시험응시를 허용하지 않았다. 실력은 만권시서를 통달할 정도로 출중한데 시험 볼 기회조차 박탈당하였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분했을까.

그는 청운의 꿈을 접었다는 말로 맺힌 한을 토로하였다. 그래서 위 노래 첫 구절의 벼슬하지 못한 가난한 선비라는 뜻의 ‘포의한사布衣寒士’라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수운이 대각을 이룬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다음 구절에서 드러난다. 사람의 손과 발의 움직이고 멈춤이 귀신이 하는 것이라 하였다. 통상 내가 나의 손과 발을 내가 움직이고 멈춘다고 알고 있다. 나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뇌에서 내가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수운은 이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귀신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귀신은 돌아가신 조상신의 영혼의 귀신이라기 보다는 음양작용으로서의 귀신이다.

수운이 한알님을 만났을 때 한알님은 수운에게 자신이 한알님의 중국식 표현인 上帝라고도 하였지만 귀신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손과 발의 동작이 수운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한알님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어 그는 선악간 마음 씀씀이도 또한 氣運이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선과 악사이의 마음 작용이라는 말에 주목해 보자. 사람은 양극단을 오가는 마음의 지배를 받고 산다. 선과 악을 수운은 대표사례로 들었다.

선은 좋은 것이고 악은 나쁜 것이라는 전제하에 선을 택하고 악을 통상 버린다. 우리가 쓰는 말을 보면 우리 마음이 어떤 구조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선과 악, 좋은 것 싫은 것, 아는 것 모르는 것,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말이 이원성을 띠고 있다.

말이 대립개념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생각, 마음이 이렇게 양극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니 인간의 삶도 이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수운은 이러한 사람의 정신, 심리작용도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운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희로애락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괴로워하는데 이 마음의 감정작용이 사실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기운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기운은 수운이 주문21자 풀이에서 밝힌 지극한 기운[至氣]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를 수운은 다시 풀어 주었는데 텅 비어 있는 신령으로서 우주에 꽉 차 있다[虛靈蒼蒼]고 하였다.

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고 명령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형태를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으나 그리기 어려운 것으로, 우주의 하나의 氣[混元之一氣]라고 풀었다. 궁극적 실재인 한알님을 氣로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이어서 수운은 사람이 말하고 웃는 것이 造化라고 하였다. ‘조화를 부린다’는 말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조화는 한알님이 하는 것이다.

결국, 나의 심리작용과 몸의 작용이 내가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한알님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수운의 이러한 인식은 철학적 사고를 통해서 내린 결론이 아니다. 전일적이고 전면적인 신비 체험을 통해서 나온 말이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의 말과 행동이 한알님이 하는 것이라면 사람 외의 다른 자연 작용도 한알님이 하는 것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결국 우주 삼라만상이 한알님이 라는 것이 된다.

헤아릴 수 없는 자연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다 각각 따로따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착시를 일으킨 것이고 사실은 ‘하나’라는 것을 수운은 신비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인의 눈에는 분명히 다 각각 수많은 존재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수운은 너와 나로 분리되어 보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체험을 “무궁한 이울 속에 무궁한 나 아닌가.” 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무궁한 나’는 개체로서의 수운이 사라진 것을 말한다.

또 수운은 “용천검 날랜 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 있다.”라고 하였다.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있다’ 말은 수운의 의식이 우주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뜻하는데 자신이 우주 전체라는 인식이다. 이는 자신이 한알님이라는 선언이다.

안으로는 李조선 개국 이래 오백 년 동안 부패와 학정이 쌓여 나라가 무너져 내리고, 밖으로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과 이를 따라 한 왜구의 침략으로 절망의 역사가 이어진 이면에 우리 민족 정신사에서 대 전환이 수운을 통해서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정신의 원형인 仙道의 부활이었다.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