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의 동학은 잃어버린 국학의 부활이다.

 

 

기독교는 이미 순암 안정복에게 논리와 상식으로 완파 당해

도올, 수운이 인간 본연이 하느님이라고 깨달은 것을 밝혀

수운은 기독교는 비판했지만 도는 예수의 도와 같은 경지

자유와 해탈, 해방의 개인을 수운은 應物無迹을 들어 표현

 

▲ 수운 최제우가 신비체험을 통해 무극대도를 이룬 경주 용담정

 

도올 김용옥 선생(이하 도올)이 현재 동학의 동경대전을 자신의 개인방송인 유튜브, 도올 티비에서 강연 중이다. 강의19에서는 순암 안정복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을 소개했다.

유학자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기독교는 불교보다도 못하다는 평가를 하며 거의 미신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눈길을 끈다.

도올은 순암의 비판을 소개한 뒤, 수운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 차원을 넘었다며 이렇게 결론지었다.

“수운은 기독교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그친 게 아니라, 인간의 본연의 자세가 하느님이라고 하는 완전한 새로운 논리로 차원을 바꿔버렸다.”

이 말은 아마도 수운이 신비체험(종교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한알님이 말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한알님이 수운에게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일 합일을 이루었다는 말로 볼 수 있다. 곧 수운이 신이고 신이 수운이라는 깨달음이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고 네 안에 있다’고 한 말과 통한다. 하나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라는 말과 같다.

도올은 수운이 완전한 새로운 논리로 차원을 바꿔버렸다고 평가했는데 새로운 차원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의 뿌리, 예수가 한 말을 수운이 다른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운은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 모두 통달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를 학문적으로 배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비체험 때문이다.

어떤 신비체험이었을까. 자신이 지극한 기운으로 뒤집히는 과정을 겪으면서 접령하는 기운이 있었고 근원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지극한 기운이 덮치는 신내림이었다.

이 현상을 수운은 자신이 나고 자라면서 배운 언어로 표현했는데 그 언어는 유교에 바탕을 둔 불교, 도가의 언어였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서 유학경서를 모두 섭렵했는데, “8세에 입학해서 허다한 만권시서 무불통지 하여내여(용담유사/몽중노소문답가)”라고 밝히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말이 유학언어가 바탕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의 말 중에 불교와 도교 용어도 나오는데 불교와 도교도 통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수운은 기독교(천주학, 서학)는 비판했으나, 예수하고는 한 몸으로 통했다.

예수가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요한복음 1632)."라고 했는데, 이는 수운이 "가슴속에 죽지 않는 약이 있는데 그 형상은 궁을弓乙이다(동경대전/수덕문)", "밖에서는 기로 화하는 것이 있고 안에는 신령이 있다(동경대전/논학문)." 라고 한 것과 같다.

예수가 말한 ‘아버지’는 수운이 말한 궁을弓乙로 통한다. 궁을은 선약仙藥의 형상으로써 근원적인 고요함에서 폭발하는 약동하는 힘이다(윤석산).

수운은 이 상태를 렴계 주돈이의 말을 빌려서 다르게 표현하기도 했다. “마음은 본래 텅 비어 있어 사물을 접촉하지만, 자취가 없다(心兮本虛應物無迹, 동경대전/탄도유심급).

이 말을 이해했다면 수운이 어떤 경지까지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수운 사상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 해탈, 해방이 먼저인데, 이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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