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 이념투쟁의 늪에서 벗어나야 대한민국이 정상국가가 될 수 있다.

 

해방군으로 들어온 소련군의 민낯,

약탈한 시계로 줄줄이, 집단으로 부녀자 강간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은 약탈, 강간은 안 보여

미군이 우리나라를 독립시킨 게 아니라,

독립투사들의 피의 투쟁으로 카이로선언서 약속

일본에 원폭 없었으면 우리 광복군이 들어 왔을 것

친일사관과 민족사관 공존하고 있는 대선판,

국민이 올바른 사관을 갖고 대통령선거에 임해야

 

 

▲ 서기1945. 09. 이 땅에서 점령군과 해방군으로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이 만났다.
▲ 서기1945. 09. 이 땅에서 점령군과 해방군으로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이 만났다.

 

(1부에 이어)

앞 기사에서 소련군은 해방군을 자처하며, 그리고 미군은 점령군을 자처하며 한반도에 진주하게 되었음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해방군으로 입성한 소련군은 선하고 점령군으로 상륙한 미군은 악한가? 실제 역사를 보면 그렇지는 않다. 그러면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의 실제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사실 미군의 포고문이 당시 조선인들 받아들이기에 고압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실제 왜정 때 가열차게 독립운동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대다수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무렵에는 사회주의자들이 민중적 지지를 훨씬 많이 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왜국 육사 출신 박정희조차도 남로당에 가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소련은 우리가 알아서 독립국을 만들면 그래 봐야 너희는 우리 소련의 위성국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군의 분석에는 아무리 한반도의 정보에 어둡기는 했지만 사회주의자들이 민중의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미국이 강하게 개입하지 않으면 자칫하면 사회주의 국가가 한반도에 들어설 것 같다고 판단했고, 그걸 막기 위해 미국은 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소련이 해방군으로 들어왔지만, 소련이 북한에 들어와서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이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인 영향도 있겠지만 미군은 들어와서 실제 인민들을 괴롭히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소련군이 친일파를 처벌하는 과정과 토지 국유화, 토지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있는 지주와 조선인들의 재산을 얼마나 약탈했는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실제로 소련군은 총칼을 들고 지나가는 조선인들 시계차고 있으면 다 빼앗았기 때문에 소련군들 왼팔에 시계가 가득 했다고 한다.

또한 열차에서 남편을 기차 밖으로 밀어 죽이고 부인을 화장실에서 집단으로 겁탈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신 소련은 인민위원회 자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북한의 친일파는 확실하게 처벌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미군은 신미양요로 인해 ’적성국‘이었고, 이후 조미통상수호조약을 통해 ’화친‘을 맺었으며, 광복 후에는 미군은 분명히 ’점령군‘으로 들어오며, 1949년 10월에 주한미군은 철수하고, 6.25전쟁 때 ’UN군‘으로 미군이 참전하고,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동맹국의 입장에서 ’동맹군‘으로 주둔하게 된다.

그런데 한 대통령 후보가 해방공간에서 미군은 점령군이었고 그 당시 친일파들과 손잡아서

친일파들이 이렇게 부활되었다는 주장을 하니, 또 다른 대선주자들이 그럼 지금 있는 미군들이 점령군이냐고 묻는 것은 역사의식 이전에 무식의 소치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미군 때문에 우리나라가 왜국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 또한 무식의 소치이다.

지금 지구상에 21세기에 제국주의 식민통치하에 놓여있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언제이든 해방을 맞이하고 우리는 독립을 하게 되어있다.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우리의 해방은 늦춰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핵을 쏘았더라도,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는 지금의 독립이 될 수 없었다. 카이로 선언에서 김구, 김원봉, 지청천, 조소앙, 김규식 선생이 카이로 회담에 가는 장제스를 만나서 우리 독립의 의지를 밝히고 국제사회에서 약속을 받아달라고 말하였다.

카이로 선언문에는 모든 연합국이 동맹국을 격파하고 그 나라 식민지 중에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식민지가 된 나라를 독립시키자는 말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1차 세계대전(1914) 발발하기 전인 1910년에 한일병합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카이로 선언에 입각하면 우리는 원칙적으로 해당이 안 되는 나라로 분류된다.

그런데 그 카이로선언 부록에 한국인들이 일본의 식민상태에서 노예적 상태에 있음을 유의하여 국제사회가 볼 때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조선을 자주독립시킬 결의를 한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이 들어간 것은 오직 독립운동가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독립을 이루지 못한 오키나와나 훗가이도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그 외에도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가 패망의 길로 가고 있었고 연합국 자격으로 한국광복군이 미얀마에서 활약한 점, 만주에서 미국 CIA의 전신 OSS에서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된 냅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던 점 등을 감안하면 결코 자주독립이 불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차라리 핵이 늦게 떨어졌으면 우리의 광복군은 국내진공작전에 성공하여 승전국의 일원으로 왜국에게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오히려 미군은, 핵투하를 통해 우리의 작전을 방해하여 우리가 승전국이 되는 것을 막은 것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이제는 정치인 하려면, 한국사 능력 시험 1급과 헌법 공부는 마치고 출마하게 법이 개정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기본소양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최소한 역사의식은 갖고 있기를 강력히 소망하는 바이다.

※ 본 글은 『독립운동 맞습니다』를 저술하시고 독립유공자 복지지원 비영리단체 대표이신 정상규님의 얼굴책(Facebook)의 글을 저자의 허락을 얻어 수정한 글입니다. 저자께 감사의 인사들 드립니다.

출처 :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507801467169535&id=100038190570773

참고논문

「분단의 배경과 고정화 과정」, 『해방전후사의 인식』1,김학준,한길사,1979.

참고저서

『미군정시대의 국가와 행정』, 김석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6.

『북한 50년사』1, 임영태, 들녘, 2000.

『한국분단사』, 조순승, 평민사, 1982.

『수정주의와 한국현대사』, 유영익 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8.

『분단자료집: 1945∼1948년 자료모음』, 한백사편집실 편, 한백사, 1989.

아래는 소련/미국 최고사령관의 포고문이다. 실제 어떠한 어투로 발표되었는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의 포고문

조선 인민들에게!

조선 인민들이여! 붉은군대와 연합국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구축(驅逐)하였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새 조선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 뿐이다. 화려한 과수원은 사람의 노력과 고려(顧慮)의 결과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행복도 조선 인민이 영웅적으로 투쟁하며 꾸준히 노력하여야만 달성할 수 있다. 일제의 통치하에서 살던 고통의 시일(時日)을 추억하라! 담 위에 놓인 돌멩이까지도 괴로운 노력과 피땀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가? 당신들은 누구를 위하여 일하였는가?

왜놈들이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조선사람들을 멸시하며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모욕한 것을 당신들이 잘 안다. 이런 노예적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저리나는 악몽과 같은 그 과거는 영원히 없어져 버렸다.

조선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죄다 당신들에게 달렸다. 붉은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 조선 인민 자체가 반드시 자기의 행복을 창조하는 자로 되어야 할 것이다. 공장 제조소 및 공작소 주인들과 상업가 또는 기업가들이여! 왜놈들이 파괴한 공장과 제조소를 회복시키라! 새 생산기업체를 개시하라! 붉은군대사령부는 모든 조선기업소들의 재산보호를 담보하며 그 기업소들의 정상적 작업을 보장함에 백방으로 원조할 것이다.

조선노동자들이여! 노력에서의 영웅심과 창작적 노력을 발휘하라! 조선사람의 훌륭한 민족성 중 하나인 노력에 대한 애착심을 발휘하라! 진정한 사업으로써 조선의 경제적 및 문화적 발전에 대하여 고려하는 자라야만 모국 조선의 애국자가 되며 충실한 조선사람이 된다.

해방된 조선 인민 만세!

1945년 8월에 붉은군대는 조선 인민을 일본침략가들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그에게 자유와 독립을 찾아 주었다.

……(중략)……

조선남녀들이여!

35년 동안이나 전 조선은 혹독한 놈들의 주권 하에서 신음을 하였다.

……(중략)……

붉은군대는 조선 내에 있는 모든 반일적 민주주의적 당들과 단체들의 광범한 협동의 기본 위에서 자기 민주주의적 정부를 창조함에 조선 인민들에게 보조를 준다.

조선사람들이여! 기억하라!

당신에게는 유력하고 정직한 친우(親友)인 소련이 있다.

당신들의 해방군인 붉은군대에 백방으로 방조하라. 도시와 농촌에서는 안전한 생활을 계속하며 붉은군대가 들어오기 전에 하던 그곳에서 그대로 사업을 계속하라. 지방당국에서 사회적 질서를 유지함에 백방으로 후원하라.

조선의 자유와 독립 만세!

조선의 발흥을 담보하는 조선과 소련 친선 만세!

- 1945년 8월 25일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미육군 태평양방면 육군 총사령관 맥아더 포고문

조선 인민에게 고함.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 총사령관으로서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한다.

일본 제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은 아래 여러 국가 군대 간에 오래 행해져 왔던 무력 투쟁을 끝나게 하였다. 일본 천황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조선 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 인민은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는 것을 새로이 확신하여야 한다. 따라서 조선 인민은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원조 협력하여야 한다. 본관(本官)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써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제1조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서 시행된다.

제2조 정부 공공단체 및 기타의 명예직원들과 고용인 또는 공익사업 공중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기관에 종사하는 유급 혹은 무급 직원과 고용인 또 기타 제반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적인 기능과 의무를 수행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하여야 한다.

제3조 주민은 본관 및 본관 권한 하에서 발포한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또는 공공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이하 생략)……

1945년 9월 7일

미육군 태평양방면 육군 총사령관

미국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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