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점령군이 아니라는 대선 후보들은 역사 공부부터 해야 한다.

 

 

해방공간

미군은 인민위원회 해체, 점령군 선포, 직접통치

소련군은 해방군 자처, 인민위원회 후원 간접통치

친일 사관과 민족사관 공존하고 있는 대선판,

국민이 올바른 사관을 갖고 대통령 선거에 나서야

정치권의 미점령군 논쟁은 표를 얻기 위한 정치공작

윤석열의 점령군 비판은 수구 표를 의식한 정치 행위

 

 

▲ 서기1945.09.08. 서울에 들어오는 미국 군대. 남쪽 조선인들은 미군을 해방군으로 알고 대대적인 환영을 벌였다. 사진출처: 우리역사넷
▲ 서기1945.09.08. 서울에 들어오는 미국 군대. 남쪽 조선인들은 미군을 해방군으로 알고 있었다.  사진출처: 우리역사넷

 

선거철을 맞아 각 당마다 대선후보들이 나오고 경선이 거세다. 이에 따라 후보들 가운데 명백한 친일 사관과 민족사관을 가진 이들이 나오고 있어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개별 후보들에 대한 의견은 차치하고, 바른 역사의식을 갖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지난 71일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예비경선 후보는 경북 안동의 이육사 문화관에서 친일세력들이 미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나.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해서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독립운동하다가 옥사하셨다라고 발언하였다.

이에 대해 광복회는 75일에 보도자료를 내고 친일세력이 미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때 유지했다라는 이재명 지사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이재명 지사를 감싼 바 있다.

이에 윤석렬 전 검찰 총장은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후보 이재명 지사도 이어받았다셀프 역사 왜곡,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등 미군의 점령군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식의 문제가 아니고, 한글을 읽을 줄 아는지 독해 능력의 문제이며, 고등교육을 받았는지의 문제이다. 전국 수석까지 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무지한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맥아더는 스스로 점령군을 자처했고,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는 해방군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19452월에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과 소련의 스탈린이 만나서 얄타회담을 하게 된다. 미국의 루스벨트가 일본과 싸우는데 많이 힘드니 너희 소련이 독일 패망한 지 100일 안에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탱크 몰고 와서 만주에 있는 관동군을 공격해 달라.’고 하여 얄타회담에서 소련의 대전 참여가 약속된다.

소련이 상대하기로 되어 있는 관동군의 관할지역은 만주지방과 평안도, 함경도를 포함하고 있어, 소련군의 한반도 진주의 명분이 된다. 혹설로는 실제 얄타회담 때 루즈벨트와 스탈린 사이에서 한반도를 분단하는 38선이 약속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게 되어 한반도에 소련군이 들어오게 되는데 소련군의 치스차코프가 관동군을 아주 쉽게 격파하면서 한반도로 들어오며 조선인들에게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을 일본 침략자들의 압제에서 해방하고 그에게 자유와 독립을 찾아 주었다. 당신에게는 유력하고 정직한 친우(親友)인 소련이 있다.”는 논지의 선언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소련군은 왜국으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을 약속한 해방군으로 분류된다.

한편 한반도 남쪽은 어떠한가?

실제로 우리가 1945815일 해방을 맞이했지만, 맥아더는 상당히 늦게 한반도에 들어온다. 97일에 맥아더 포고문이 발표되고, 98일 인천에 미군이 상륙하며, 99일 조선총독부에 일장기를 내리고 미국기를 게양한 뒤 미 군정이 시작된다. 포고문의 내용은 주로 점령에 관한 내용인데, “본관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따라서 조선 인민은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원조 협력하여야 한다.”는 식의 어투를 사용하고 있고, 실제 점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실제로 2008년 이전 근현대사 금성 교과서에는 소련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으로 각각 진주하였다라는 문장이 있었고, 이것은 학계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권에서 근현대사 교과서 좌 편향 논란에 시비를 걸면서 소련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 표현을 삭제하게 되었다.

그러면 각각 해방군과 점령군을 표방하고 들어온 군대의 실상은 어떠하였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정국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을 조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45815일 해방 되자마자 해방될 걸 미리 알고 있던 여운형 선생님이 815<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은 여운형 선생이 미국이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에 빨리 정부 성격을 띤 단체를 만들어야 되어야 한다고 판단해서 이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을 조선인민공화국(1945.9.6.)으로 개칭하게 된다.

그런데 이 <조선인민공화국>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은 사회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좌우를 떠나서 우리 국익을 우선하는 단체를 만들기 위해 당시 미국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던 이승만을 주석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부주석이 된다.

그러나 이승만은 불참하고, 극우세력 송진우나 김성수에게도 함께하자고 하지만 그들 역시 불참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조선인민공화국>이 사회주의 세력이 모여 있는 단체가 된 것이다.

96<조선인민공화국>이 만들어지고, 97일 맥아더 포고문이 발표되고, 9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99일부터 미 군정이 시작된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전국에 140여 개의 군에 인민위원회를 설치한다. 원래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치안대가 발전한 것인데, 북한에 들어왔던 소련군은 해방군을 자처하며 들어왔기 때문에 북위 38도 이북 지역의 인민위원회 자치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미군은 점령군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북위 38도선 이남 조선인의 통치권은 본인에게 있음을 선포하였고(맥아더 포고문 1) 인민위원회 활동은 물론 당시 충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임시정부를 부정하였고, 그 산하 군대인 광복군의 무장해제를 명령하게 되었다.

인민위원회의 주요 활동은 친일파의 숙청이었다. 소련군 또한 조선의용군 등의 군대는 허락하지 않았지만, 숙청은 허락하였는데, 그 숙청의 주요 대상은 경찰이었다. 그러나 맥아더는 포고문 2조를 통해 실질적으로 친일파를 부활시키게 됐다.

그 내용이 현재의 자리를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친일경찰의 상관은 왜인들이었는데, 맥아더 상륙전에 여운형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서는 최대한 유혈 사태 없이 왜인들이 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는 우리 조선인이 폭도가 아니라 한 나라를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왜인들은 떠나버리고, 그 밑에서 일하던 친일파들을 포고령 2조를 통해 자리 유지하게 하고, 반민족행위 여부에 상관없이 승진하게 되어 더 큰 권력을 갖게 되니,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현재 2021년까지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서 정계, 학계, 언론, 문화, 예술, 군인, 경찰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상황이 현재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이재명 예비후보와 광복회 회장은 지적하였고, 그 토착 왜인들의 후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부에서 계속)

본 글은 독립운동 맞습니다를 저술하시고 독립유공자 복지지원 비영리단체 대표이신 정상규 님의 얼굴 책(Facebook)의 글을 저자의 허락을 얻어 수정한 글입니다. 저자께 감사의 인사들 드립니다.

출처 :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507801467169535&id=100038190570773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