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조선총독부 역사식민시대를 살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

조선총독부 하수인인가!

서기1936년 2월21일 낮 4시 20분 차디찬 여순 감옥 바닥에서 57세의 한 생령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후유증으로 뇌일혈로 쓰러진지 3일만의 일이었다. 강도 일제를 격퇴시키는 일이라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괜찮다고 역설하며,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에 조선혁명선언문을 써주고, 독립투쟁가들의 사상적 지주였으며, 일제의 식민사관에 맞서 역사전쟁의 선봉에서 처절하게 항쟁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 그렇게 삶을 마감한 것이다.

“밤이 길어가고 있소, 우리식구가 함께 모인 좁은 방, 거친 창문에 달빛이 환하게 물들었소. 수범이와 두범이 모두 잠들었소. 조금 전 까지 내가 울면 따라 울더니 이제 모두 잊고 세상모르게 자고 있습니다. 숨소리만 쌔근거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두고 가신 당신의 몸과 영혼의 처참한 잔뼈 몇 개를 담은 궤짝을 부둥켜안고 쓰러져 울고 있나이다. 이 작은 궤짝은 무서움도 괴로움도 잊은 채 싸늘하니 말이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뜻을 이루지 않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왜 이렇게 못난 모습으로 내게 오셨소, 분하고 원통하지도 않소, 당신의 원통하고 외로운 혼은 지금 낮선 나라, 거친 들판에서 무엇을 부르짖으며 헤매고 있단 말 인가요!”

▲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에 맞서 문헌과 실제답사를 통하여 우리역사의 실체를 알림으로써 조선민중의 역사의식을 일깨웠던 단재 신채호, 일제에게 체포되어 여순감옥에서 혹독한 고문과 후유증으로 뇌일혈로 쓰러진지 3일만에 순국했다. 사진은 여순감옥에 수감된 수형자 모습의 단재 신채호 선생.

싸늘한 뼈 몇 조각으로 돌아온 신채호 선생의 미망인, 박자혜님이 ‘가신 님 단재 영전’에 바치는 ‘통곡’소리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 가신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우니까 같이 덩달아 우는 단재의 어린 자식들의 모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렇게 조국광복을 위해 일제와 처절한 투쟁을 벌인 단재 신채호와 같은 영령들이 지금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청산되지 않은 국내일제식민사학에 의해 두 번 세 번 다시 죽임을 당하고 있다. 해방 되었다고 하지만 역사는 아직도 조선총독부, 일제식민지시대를 살고 있다. 역사는 정신이다. 혼이다. 정신과 혼이 아직도 일제의 손아귀 안에 있다. 그것도 일제가 키워놓고 간 국내 매국식민사학에 의해 우리의 정신은 저들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단재 신채호를 ‘또라이’, ‘정신병자’ 라고 대놓고 지껄이는 자가 공공기관의 장을 하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고대사학을 대표하는 ‘한국고대사학회’에서 단재 신채호는 껄끄러운 대상일 뿐이다. 국학의 아버지, 우리 국사학의 선구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단재 신채호를 일제와 같은 국수주의자, 민족주의자로 매도하고 깎아 내리고 있다. 한국고대사학회는 지난 3월부터 시민강좌라는 미명하에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을 대상으로 매국식민사학을 퍼뜨리고 있다. 일제가 우리민족을 영원히 일본에 흡수하기 위하여 날조한 식민사관을 정설로 신봉하며 공개적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주입시키고 있다. 일제가 패망하고 물러 간지 70년이 넘었는데도 매국역적식민사학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강고해지며 확산되고 있다. 제도권 학문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조직과 금권을 이용해 전 생민들을 정신적 노예로 만들고 있다.

이들은 일제의 독도 침탈과 중국의 우리역사영토 강탈을 저지하라고 만든 동북아역사재단을 장악하고, 오히려 일본과 중국의 반국가, 반민족 침략도발에 동조, 협조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지도를 제작하면서 한국영토에서 독도를 고의로 빼버리고 우리나라 북부 평안도 지역을 중국의 역사영토로 넘겨주었다. 중국역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런 매국역적 짓을 이번 시민강좌를 개설한 ‘한국고대사학회’가 저질렀다. 지난 5월 18일 동북아역사재단은 십 수 명의 외국인 학자들을 거액을 들여 초정하여, 국제학술회의를 기자회관(프레스센타)에서 개최하였다. 이때 매국 동북아역사지도집 제작에 참가한 서울교대 임기환은 평양에 한사군을 그린 것은 자기가 아니라 ‘한국고대사학회’라고 했다.

▲ 위 동북아역사지도집에 독도가 삭제되어 있다. 이 지도집을 제작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는 고의로 독도를 한국영토에서 제거해 버렸음이 밝혀졌다. 이에 '식민사학해체국민운동본부'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국회에 까지 문제가 되자, 수정하겠다고 했다.

이 매국역적 짓에 참여한 인물 중의 하나가 지난 6월 1일, 11회 시민강좌에서 강사로 나섰다. 계명대학교 사학과 전 교수, 노중국이었다. 주제를 ‘삼국은 언제 건국 되었을까?’로 잡아 일제식민사학자임을 숨기려고 하였으나, 강의가 시작되면서 왜구가 날조한 식민사관을 그대로 살포했다. 왜구가 고대에 우리나라 남부를 식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왜구난동기 조선총독부의 ‘쓰다 소기치’가 만들어낸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뇌까리고 있었다. 그 내막을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은 ‘무슨 좋은 고대사 강좌가 있나’ 해서 불원천리, 몸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찌는 듯 한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와서 이 사기극을 듣고 있었다. 노중국의 강의는 일제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다 자신이 더 개발한 것을 덧붙여 일제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식민사관을 완성하는데 주력하였다.

삼국사기의 실사성은 백제 무녕왕릉에서 나온 ‘사마’라는 지석과, 고구려 모본태왕이 중국 산서성 태원, 어양, 북평, 상곡을 정벌한 후한서 광무제기 기록, 그리고 광개토태왕비문의 ‘我是皇天之者母河伯女郞’에서도 증명된다. 그런데 노중국은 이런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가짜라고 하며 왜구식민사학자가 한 짓을 그대로 추종하여, 중국의 삼국지 동이전을 끌어다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해체하고 난도질 해, 가짜라고 하며 그나마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삼국의 초기 역사를 수많은 소국 연합의 조무래기 연맹체 수준의 역사로 둔갑시켰다. 중국의 삼국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란다.

또한 노중국은 왜구의 한사군 평양 중심설을 그대로 갖다가 적용해 놓고 대륙백제를 암시하는 ‘패하’라는 지명을 북한의 ‘예성강’으로 단정해 버렸다. 왜구식민사관에 매몰되다 보니, ‘패하’가 감히 대륙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 자체를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중국 한사군의 낙랑군 25개 속현을 모두 국가로 만들어 버리는 역사 창작도 서슴지 않았다. 사료적 근거는 없다. 그냥 추정과 짐작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역사학자가 자기가 속한 운명공동체인 자국의 역사사료를 기준으로 자기 나라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상식이다. 그런데 노중국은 일본이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를 기준으로 해석해서 날조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더 믿고 있다. 이처럼 노중국은 자국의 ‘1차 사료’보다 왜구가 만들어 놓은 ‘설’을 기준으로 우리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이런 자를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는가?

한편 이번 12회 시민강좌, 강사로 나선 우석대 교수, 조법종은 중국의 동북공정인 ‘장백산문화론’에 대처해야 한다고 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이 같은 중국학계의 주장은 학문적 토대와 내용이 빈약하니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라는 식이다. 매국식민사학이 동북공정과 ‘사실상’같다보니 대응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적 집단화 되어가는 ‘역사비평’에 지난 봄부터 식민사학으로 밥벌이하는 것으로 보이는 위가야, 기경량, 안정준, 이정빈, 강진원, 신가영 등을 전위대로 내세워, 갖은 궤변으로 자신들의 이적행위를 감추고 적반하장으로 민족사학계를 사이비 역사학이니, 일제의 황국사관과 같다느니 하며 비난하고 있다. 한편 경희대 교수 조인성은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상’ 주장하는 고려대 전 교수, 김현구를 2회 시민강좌에서 동정한 바 있다. 신가영도 ‘역사비평’에서 김현구를 두둔하고 있다.

왜구의 식민주의사관에 應戰하다가 차디찬 여순 감옥에서 쓰러져 간 신채호 선생이, 대한민국의 이 현실을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이적행위를 서슴지 않는 한국고대사학회와 같은 집단이 어떻게 멀쩡하게 활동할 수 있는지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조선혁명선언문을 단재에게 부탁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이 그리운 것은 왜 일까? 반드시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서라도 이 망국적, 매국의 역사식민지시대를 청산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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