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은 일본에 가야사 바치면서 천문학적 국고 챙기고 있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이덕일과 김현구의 임나일본부설 법정다툼까지 가

대법원은 이덕일 손을 들어 판결로 식민사관에 철퇴

강단사학자들은 가야를 서기 3세기에나 건국했다고 해

삼국유사 서기 42년 건국기록 식민사관에 따라 무시

 

▲ 김현구의 <임나일본설은 허구인가>에 나오는 지도. 가야(임나)가 경상남도를 넘어 전라도, 충청도까지 뻗어 있다. 저 지도는 일본이 고대에 우리나라 남부에 야마토왜의 식민통치기관인 임나일본부가 설치됐다는 빌미를 제공한다.

가야 건국신화 4-2

 

지금까지 이덕일의 글은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그는 주류 강단사학자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학자들의 선봉 노릇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는 책을 비판하여, 저자인 김현구와 법정 다툼까지 한 일도 있었다.

김현구는 스에마쯔 야스까즈(末松保和)의 '임나일본부설'을 이렇게 요약했다.

'야마또(大和)정권이 4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약 200여 년간 한반도 남부의 임나를 직접 지배했고, 백제와 신라를 간접 지배했으며 그 지배기구로서 설치한 것이 임나일본부였다.'

김현구는 임나일본부의 경영 주체는 백제였다고 고증했다.

그럼에도 <일본서기>의 편찬자는 임나가 야마또정권의 현지기관이나 직할령인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오해가 천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임진왜란이나 한일강제병합이라는 한일 양국간의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는 식민사관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덕일은 김현구의 주장은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오직 임나일본부의 경영 주체만 백제로 바꿨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이덕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본이 200여년간 한반도 남반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다는 '한사군의 위치' 문제는, 주류 강단사학자들과 재야사학자들 간의 치열한 논쟁 속에서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핵심 주제다.

그러니 '가야 건국신화' 문제는 우리 역사학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나 역사학계 결론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최근 이덕일은 경기신문에 '다시 쓰는 가야사'를 연재하고 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2021.1.18부터 2021.2.15까지 현재 다섯 꼭지를 썼는데, 연재가 더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재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해 보겠다.

일본 황국사관을 추종하는 강단사학자들은 가야는 3세기나 되어야 건국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내용은 '너무 자세하여' 쉽게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42년) 3월 계욕일에 줄에 매달린 알이 내려왔다거나, 다음해(43년)에 궁궐을 신축하는데 정월 20일에 시작하여 3월 10일에 끝났다는 등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허왕후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48년)7월 27일에 9간이 수로왕에게 왕후 이야기를 하고, 수로왕은 유천간과 신귀간을 망산도와 승점으로 보내는데, 날짜 장소 이름이 모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경상도 김해부'에는 '허왕후는 아유타국 공주 또는 남천축국 공주로서 이름은 황옥이고 보주태후라 했는데, 김수로왕과 함께 제사지낸다'는 기록이 있다.

북한의 김석형은 허왕후는 일본 북큐슈에 설치한 '가야 분국'에서 왔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견해가 되었다.

김석형은 일본인들의 '임나=가야설'을 부정하고 '삼한삼국의 일본열도 분국설'을 주장했다.

이종기는 <가락국 탐사>에서 아유타국은 인도 아요디야 왕국의 식민지인 태국의 아유티야인데, 아요디야에서 바다로 나와 태국의 아유티야를 경유하여 가야에 도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병모는 <김수로왕비의 혼인길>에서 허왕후는 아요디야 왕국에서 중국 사천성 안악현(이곳이 옛날 보주였다)으로 옮겼다가 (47년) 한나라가 추방하자 양자강을 따라 상해를 거쳐 (48년) 가락국에 도착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허왕후 출자국(出自國)은 일본 큐슈설과 아요디야 왕국설로 나뉘는데, 아요디야 왕국설은 태국 아유티야 경유설과 중국 옛 보주 경유설로 나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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