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격자를 뽑는 버들쏘기는 만주와 초원이 고구려의 강역이었다는 뜻이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만주족 서사시 '우부시번마마'에 '버들 쏘기' 곧 사류(射柳) 풍속이 나와

<아골타 전설> 설화에 금나라 세운 아골타도 버들 쏘기 통해 왕 등극

청나라 태조 금누르하치 설화도 물을 뜻하는 혼세룡이 등장, 

물을 상징하는 버드나무와 상징에서 같아

 

▲사류도 射柳圖. 만주족과 북방유목족은 버드나무에 활을 쏘는 시합을 통해 후계자를 정하는 풍습이 있었다. 자료출처: http://www.cbookclub.com/blog/?p=244 

만주 창세신화 7-1

<왜 우리 신화인가>라는 책에는 '버들여신이 탄생시킨 왕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제부터는 버들여신이 탄생시킨 만주족 왕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만주족 서사시 '우부시번마마'에는 '버들 쏘기' 곧 사류(射柳) 풍속이 나와 있다고 한다.

이 의식은 여진족의 '금사'나 거란족의 '요사'에도 무수히 기록되어 있다는데, 종교의식과 군사 훈련이 결합된 독특한 의식이란다.

'여자 대샤먼 우부시번은 버들 쏘기 의식을 통해 720개 부락의 여왕이 된다.

여샤먼은 신이 선정한 큰 산의 높고 오랜 버드나무에서 아홉 가지 싱싱한 버들가지를 채취한다.

이를 구왕류(九王柳)라 하는데 창조여신 버들천모 아부카허허를 상징한다.(중략)

높은 나무가지 위의 버들가지를 맞추는 사람이 바로 창조여신이 선택한 여왕으로 인정된다.(중략)

씨족간의 싸움을 버들 쏘기로 결정하기도 하는데 하늘이 정한 결정을 의미한다.'

버들가지를 맞춤으로서 버들천모의 선택을 받았다고 간주된 여인이 여왕으로 인정되었으니, 이 여왕은 바로 버들여신의 체현자가 되는 셈이다.

대샤먼이 버들 쏘기를 통해 여왕이 되었듯이, 버들 쏘기를 통해 남성왕이 탄생하기도 했다.

<아골타 전설>이라는 설화를 보면,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도 버들 쏘기를 통해 왕으로 등극한다.

'마을 청년들이 모두 실패하자, 아골타는 번개처럼 말에 올라 바람처럼 달려 백 보 밖에서 화살 세 대를 쏘아 버들가지 세 개를 모두 끊어버렸다.(중략)

아골타는 금나라를 세운 후에도 성지를 내려 민간이든 조정이든 제천 후에는 버들 쏘기를 하도록 하였다.'

<금사>에는 버들 쏘기 의식은 반드시 왕이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는데, 왕이 집행해야 할 종교적인 신성의식이었던 모양이다.

버들여신이 위대한 아골타에게 강림하여 왕으로 만들었다는 논리다.

청태조 누루하치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부모 없이 자란 누루하치는 13살 때 명나라 요양 총병 이성량의 집에서 발을 씻어주며 살고 있었는데, 이성량이 자기는 발바닥에 있는 점 때문에 출세한 것이라고 자랑을 했던 모양이다.

어린 누루하치는 자기 발에도 7개의 점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이성량은 깜짝 놀랐다.

북경 흠천감에서 별자리를 살피다가 요동에 혼세용(混世龍)이 나타났으니 조사하라고 했는데, 누르하치를 잡아가면 황제가 큰 상을 내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성량은 부인에게 누루하치를 데리고 북경에 갈 준비를 시켰는데, 작은부인 희화가 이야기를 엿듣고 어린 누루하치를 구해 탈출을 감행한다.

희화는 대청(大靑)이라는 말을 타고 누루하치는 이청(二靑)에 태워 백두산 방향으로 달리다가 누루하치가 탄 이청이 지쳐 쓰러져버렸다.

희화는 대청에 두 사람이 타면 빨리 도망칠 수 없다면서 잠깐 쉬자고 하더란다.

어린 누루하치가 피곤하여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희화는 굽은 배나무가지에 목을 매고 죽어 있더란다.

어린 누루하치는 "나를 위해 굽은 배나무에 죽으셨으니 와리마마(歪梨媽媽)라고 부르겠습니다."

누루하치는 대청을 타고 계속 도망쳤지만 지친 대청도 결국 넘어져 죽고 말았다.

"나를 구하고 죽었으니 황제가 되는 날 국호를 대청(大淸)이라 부르리라"

<만족민간고사선>에 나온 이야기라 좀 웃기는 대목이 있기는 하나, 이야기가 재미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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