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팔아먹는 세력은 나라를 팔아 먹는 것으로 귀결된다.

 

 

송호정 교원대학 교수,

‘우리 역사 시작은 동명 부여, 단군이 아니다’

고구려의 첫 도읍은 만주 환인현의 ‘오녀산성’

부여 개국 신화와 그 역사 인정, 단군은 부정

국내외 사료들은 단군조선을 역사라고 기록해

▲서기2010년 한국방송 역사스페셜 부여의 시조 동명의 길을 찾는 탐사보도를 이끌고 있는 송호정 한국교원대학교 교수가 흑룡강성 하얼삔의 송화강에서 부여를 찾고 있다. 자료: 한국방송 역사스페셜 갈무리. 

 

“우리 민족에게는 부여의 후손이라고 하는 범 부여족 의식이 있었던 것 같구요. 우리 고대 국가의 출발 원류로써 부여를 생각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사의 최초의 시조로서는 단군이 있는데, 단군과는 다른 개념에서 실제 역사상에 출발의 의미로써 시조로서의 의미가 저는 동명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KBS 역사스페셜 – 2010 탐사보고, 동명루트를 찾아서-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가 한 말이다. 송 교수 자신의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단군 후손이 아니라 부여족의 후손으로 생각해 왔다고 한다. 고대 국가 출발 원류를 부여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한다.

부여가 실제 역사의 시작이고 부여를 역사상의 시조라고 한다. 단군은 민족사 최초의 시조라는 말로 역사 매국노라는 오명은 피하려고 하고 있다. 

부여가 우리역사의 시작이라고 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시작인 단군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서기 2010년 한국방송 역사스페셜이 제작한 ‘2010 탐사보고, 동명루트를 찾아서’에서 이 같은 주장을 했다.

이 탐사보도를 보면 보도의 안내자로 등장하여 제작진을 지도하고 있다. 이 방송에는 그에게 박사학위를 준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 전 교수도 등장한다. 스승과 제자가 이 탐사보도를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성우가 부여역사를 해설하고 있는데 이 해설 대본을 이들이 만들었을 것이다. 방송인들은 부여역사 세부내용을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사학과는 우리 역사학을 주도하는 세력이다. 국사 교과서도 이 세력의 역사관으로 터를 닦고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역사관이 우리 역사학을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이들이 조선총독부 역사관에 매몰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를 조선총독부에서 가르쳐 준 대로 해석해서 내놓고 있다.

우리 겨레의 혼을 말살하고 식민통치 목적으로 만들어진 총독부 역사관이 정상일 리가 없다.

단군을 역사로 인정할 리가 없다.

조선총독부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가 내놓은 우리 역사를 보면 단군은 전설이다. 역사가 아니다. 이후의 역사도 중국 한나라 식민지로 시작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부여는 송 교수가 속한 강단식민사학계에 따르면 서기전 2세기쯤에 일어났다고 한다. 이날 방송에서도 서기전 2세기경에 건국했다고 했다.

이는 우리 역사가 2천여 년밖에 안 됐다는 말이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노리는 것과 일치한다. 일본 역사는 2천 6백여 년이라고 선전했다.

일본 역사보다 짧다. 역사가 우리보다 오래된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는 식민통치 논리가 성립한다.

▲송호정 교원대 교수가 이끄는 한국방송 역사스페셜 동명루트를 찾아서 탐사보도가 내놓은 부여 동명길 지도다. 부여 동명신화에 나오는 지역이 저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지도상의 심양 서남쪽의 요하서쪽은 부여강역이 아니다. 하지만 삼국지에는 하북성 진황도시에서 끝나는 만리장성 북쪽에 부여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는 요하일대가 부여의 도읍지라고 하고 있다. 물론 탐사보도에서 나오는 지역도 부여 강역이다. 자료: 한국방송 역사스페셜 갈무리. 

송 교수는 서기 2018년 개천절 즈음해서 교육 방송에 나와 단군조선 역사를 또 부정했다. 신화라고 했다. 조선 개국 이야기가 신화로 돼 있다는 것이 이유다.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나라는 개국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모두 신화형태를 띠고 있다. 신비스럽고 하늘 자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인정하는 부여도 개국 이야기가 신화다. 이날 방송에서도 그가 스스로 부여 동명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찾아 나서 증명하려 했듯이, 탁리국왕의 시녀가 하늘에서 큰 달걀 같은 빛이 내려와 임신하게 된다. 여기서 태어난 이가 동명이다.

그는 동명이 성장하여 이동한 엄리수와 강을 건널 때 자라가 나타나서 건너게 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지는 곳을 찾고자 눈밭까지 마다하지 않고 헤매고 다닌다.

흥룡강성 북쪽에 부유라는 지명과 부여현이 현재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송화강에서는 현지 주민으로부터 한 나그네가 급하게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자라가 나타나서 그를 태워 강을 건너게 했다는 전해오는 이야기도 듣는다.

이것이 부여의 개국 신화다. 그렇다면 고구려는 없는가. 있다. 신라도, 가야도 있다. 고려도 개국 신화가 있다. 개국신화를 가지고 있는 단군조선을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송 교수의 말대로라면 이들 나라도 역사가 아니다.

▲송호정 교수는 2018년 10월 교육방송에 출연하여 단군조선은 역사가 아니라고 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나오는 단군조선은 신화라는 것이 그이 확고한 신념이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의 화석화된 주장을 무한 반복했다. 국가 출현은 청동기시대인데 우리나라는 청동기시대가 서기전 7~8세기라는 한물간 이론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다. 단군조선은 서기전 2333년에 개국했는데 청동기 출현시기와 맞지 않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하지만 이미 청동기 유적이 서기전 25세기경까지 올라가는 곳이 나온지 수십년됐다. 경기도 양주 두물머리 고인돌이 대표 유적이다. 북한에서는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자료: 교육방송 갈무리

그런데 이런 나라는 역사로 인정하고 있다. 똑같이 개국 신화를 가지고 있는데 단군조선은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 주장에 일관성이 없다.

단군조선이 개국 신화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역사가 아니라면 뒤에 이어지는 다른 나라도 역사가 아니라 신화라고 해야 한다.

송 교수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조선이 모두 신화적 요소만 가지고 있다는 듯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단군조선의 내용에는 신성성이 들어있고 역사적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호도했다.

이는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지 않거나 일부러 역사 내용을 외면한 발언이다.

고조선기에는 분명히 신화 같은 존재가 아닌 이미 인간인 웅녀가 환웅천왕과 혼인해서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곰과 결합해서 낳은 것이 아니다.

또 단군왕검이 언제 조선을 세웠는지 시기도 분명히 알리고 있다. 위서와 고기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다 놓고 있다.

위서에는 중국 요임금 때와 같다고 나온다. 고기에는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조선을 열었다고 한다.

이어 역사적 공간도 통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도읍을 아사달 또는 평양성이라고 하고 있고 나중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로 옮겼는데 이름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고 한다며 별칭까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개국한 지 1천 5백 년 되는 때에 중국에서 주나라 무왕이 기묘년에 즉위했고 이때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한다.

이에 단군조선은 수도를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의 기본 요소인 시간과 공간을 적고 있다.

여기에 어디 역사적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가. 단군조선이 역사라는 사실은 고려시대 사료에도 등장한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고려태조18년이라고 하면서 이 때가 단군 무진년으로부터 3266년이라고 한다. 또 고려사 열전 백문보전에도 당시를 단군기원으로 계산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단군조선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 나서야 할 문제지 신화로 치부할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송교수 자신이 부여 개국 신화에 나오는 지명과 신화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 나선 것처럼, 단군조선의 아사달이나 금미달, 궁홀산이 어디인지 찾아 나서야 할 문제다.

▲송호정 교수의 역사관을 말해주는 지도다. 중국 동북공정사관이자 조선총독부 일제식민사관이다. 현재는 일본 극우파 역사관이다. 우리나라 역사 강역은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요하 서쪽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사료와 우리사료에는 요하를 넘어 중국 하북성 동북부 란하까지 최소한 우리 역사 강역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평양으로 화살표가 돼 있는데 이는 일제가 심어준 반도사관이다. 자료: 교육방송 갈무리

이날 탐사보도에서는 대부분 부여 역사를 중국 사료에서만 찾으려고 했다. 이것도 송 교수와 노태돈 전 교수 등 방송에 출연한 학자들이 내놓은 것일 것이다.

문제는 이날 보도한 것과 정반대의 기록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인용한 중국 사료와 배치되는 기록도 나오는데 유령 취급했다.

그 기록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부여 강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록이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부여기록을 인용했는데 같은 삼국지에 부여의 위치가 이들이 비정한 것과 다르게 나온다.

부여는 장성 북쪽에 있다고 나온다. 여기서 장성은 진시황이 쌓았다는 진 장성, 곧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현재 하북성 진황도시 인근이다. 갈석산이다. 하북성에 있는 이 장성의 북쪽에 부여가 있다고 했으니 부여 강역은 하북성까지 미친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단군조선의 강역과 겹친다. 북부여기에 따르면 부여는 단군조선을 이어받았다. 부여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기이편의 북부여조에도 나온다.

부여가 개국한 곳이 흘승골성이라고 하는데 현재 중국 요하 건너 의무려산이 있는 의주지역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제왕운기에도 마찬가지 기록이 나온다. 요하로변에 부여 부마 대왕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식민사관에 따라 그린 우리역사 강역, 소위 고조선 강역도다. 요하 동쪽과 만주 일부와 북한 평양 및 황해도 인근까지 고조선 강역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이 고조선은 단군조선이 아니다. 정체불명의 고조선이다. 중국인 정권 위만조선도 아니다. 그렇다고 기자조선도 아니다. 기자조선은 식민사관은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면 조선사가 일본역사보다 길어지기 때문이다. 또 위만조선은 기껏해야 한나라에게 멸망하는 역사 밖에 없다. 내용이 없다. 위 자료에 글씨에서도 확인되듯이 우리역사가 중국의 선진철기문명을 받아서 발전하게 됐다는 타률성론이라는 식민사관을 주장하고 있다. 자료: 교육방송 갈무리

이런 기록들을 송 교수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모르고 있었다면 고대사로 역사를 전공하여 학위를 따서 교수 노릇을 하고 있는데 학위를 반납하여야 할 것이다.

고대사 전공자라면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 할 기본 사료이기 때문이다. 또 알고 있었다면 이는 역사를 팔아먹은 행위다.

알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증거 사료는 외면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사료만 언급하고 있고 조선총독부의 황국사관, 식민사관을 추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식민사관은 우리 역사 강역을 현재 중국 요녕성 요하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송 교수는 교육 방송에 나와서도 단군조선을 신화라고 했고 역사 강역을 요하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이들이 제작한 현행 국사 교과서도 소위 고조선은 물론이고 뒤에 이어지는 부여, 고구려 등 어떤 나라도 절대 요하를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역사는 정반대를 말하고 있다. 부여 중심지가 요하를 건너 현재 중국 요녕성 조양지역의 의무려산 일대라고 하고 있다. 고구려도 최소한 이 일대에서 개국했다고 한다.

중심지가 이곳이니 부여와 고구려의 서쪽 강역은 훨씬 더 넓어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모본태왕의 대한나라 정벌기록이다.

우북평, 상곡, 어양, 태원을 공격했다. 태원은 현재 중국 산서성의 성도다. 태조대왕 때는 한나라 병사에 대비하여 요서 지방에 10성을 쌓았다고 한다.

성을 쌓았다는 것은 이 지역이 고구려 땅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 시기의 요서는 현재의 요하 서쪽과는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의 요사 서쪽이라고 해도 고구려 강역은 요서까지 뻗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고구려는 태왕들이 대무신 태왕에서부터 마지막 보장 태왕에 이르기까지 시조 묘에 제사하러 갔다 왔다고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다.

시조묘는 홀승골성, 곧 졸본인데 의무려산 일대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는 망할 때까지 요하 일대가 중심지였다는 얘기다.

▲이날 부여 동명길 탐사보도에서는 고구려의 첫 도읍지가 오녀산성이라고 했다. 송호정 교수의 식민사관이 반영된 결과였다. 인류역사상 고대국가가 입구가 사람 한명 경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절벽 산에 수도를 정하는 경우는 찾아 보기 힘들다. 일제식민사학자가 주장한 것이 광복 75년이 되가는 지금까지도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일제식민사학을 청산하지 못한 비극이다. 자료: 한국방송 역사스페셜 갈무리. 

이날 송 교수가 이끄는 탐사보도에는 이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현재 상식으로도 맞지 않는 환인현에 우뚝 솟아 절벽을 이루는 산 위에 고구려가 첫 도읍지를 정했다는 소설 같은 얘기를 사실인 양 보도했다.

소위 오녀산성이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입구로 된 산성이다. 이런 곳에 한 나라의 수도를 정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 아래 드넓은 땅과 강이 가로지르는 곳을 놔두고 비상시나 활용이 가능한 좁은 곳에 한 나라의 수도를 정하다는 것은 억지다. 그런데도 이날 방송은 이곳이 고구려 첫 도읍지였다고 진지한 음성으로 읊어댔다.

결국, 부여의 동명을 찾아 나선다고 한 이날 방송은 송호정과 노태돈 두 사람의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에 놀아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송호정 교수의 식민사학 계보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한 이병도-> 김철준->노태돈->송호정으로 이어진다. 식민사관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하여 언제 우리를 가지고 놀지 알 수 없다.

서울대학 경제학과 이영훈 전 교수가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에서 일제식민통치가 좋았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고대사에서 부터 근대사까지 서울대학파의 매국행위는 전신이 일체 조선총독부 하부기관인 경성제국대학이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서울대학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역사매국행위에서도 힘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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