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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외세가 우리운명 결정하는 시대 끝내야남북전면교류 결단하여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야 한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20.04.28 23:50

 

서기19세기말부터 외세열강, 우리 운명 결정하기 시작

청일전쟁 후 청의 대 조선 지배권 상실 일본이 가져가

러일 전쟁 뒤에는 영국과 미국이 조선지배권 일본에 줘

일제 패망하자 미국 주도로 우리 분단시켜 지배권 확보

현대사는 미국 꼭두각시 노릇하는 주변의 주변국 신세

 

▲신주백 독립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소장이 광화문아침에서 '동학혁명이후 한국근현대 국제관계사에서 갈림길들'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가 얼마나 외세에 의해 끌려 다니며 비참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지 자세하게 밝히는 강연이 있었다.

조선개국 4353.04.25. 서울 종로구 3호선 전철 안국역 2번 출구 맞은편에 있는 광화문아침에서 오랜만에 ‘동학민족통일회’ 강연이 있었다.

이날 강연은 신주백 독립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이 맡았다.'동학혁명이후 한국근현대 국제관계사엥서 갈림길들'  이라는 다소 긴 주제로 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가 샌드위치 신세라며 방관 또는 관리 당하는 처지를 벗어나는 상상력을 크게 키우자는 말로 강연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밝혔다.

그는 동학혁명이 없었다면 청일 전쟁도 없었다며 1차적 원인으로 동학혁명이 역설적이게도 천일전쟁을 불러 왔다며 청일 전쟁의 결과에 주목했다.

청일전쟁으로 일본은 동아시아에 진출할 발판을 구축했으며, 2천년동안 유지해오던 중화질서가 붕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 때 까지 동아시아에 대하여 갖고 있던 발언권을 상실했는데 이는 조공책봉질서가 무너졌음을 뜻한다. 청일전쟁 종료 뒤에 시모노세키에서 청일한 전후 강화조약을 맺었는데 조약 첫 조항이 이렇다.

“조선의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확인함”

이것은 조선을 정말 자주 독립국으로 존중하고 인정해서 한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청이 조선을 속국으로 지배했던 체제를 해체하고 청으로부터 조선을 떼어낸다는 뜻에 불과하다.

이 조항에는 이제 일본이 조선을 마음대로 침략해도 좋다는 행간의 뜻이 들어 있다.

신 소장은 러일전쟁의 내막도 밝혔는데 일본이 독자의 힘으로 러시아를 이긴 것이 아닌 것이 드러났다. 미국과 영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승산이 없는 전쟁이 이었다.

일본은 당시 국채를 발행했고 이것을 미국과 영국이 사줬다. 전쟁비용을 마련한 것이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5억 달러라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당시 세계최대의 러시아 발틱함대는 세계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했다. 1함대가 일본 전 해군력과 맞먹었다고 한다.

유럽 발틱에 있던 발틱 함대가 전쟁이 발발하자 극동 일본으로 출발했다. 원래는 지중해의 수에즈 운하를 지나려고 했다. 영국이 방해했다. 할 수 없이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야 했다.

1달 만에 갈 거리를 3달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또 함대가 정박할 때마다 영국이 정보를 일본에 전달했다고 한다. 발틱 러시아 함대가 동해에 도착했을 때는 전투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결과는 일본의 승리였다.

미국은 일본과 카스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겼다. 영국은 영일동맹을 맺고 일본이 한국에서 무슨 짓을 하던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권을 모두 인정했다.

우리 운명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외세열강이 가지고 놀았고 결정했다.

일제 패망당시 우리의 운명도 역시 외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전후처리 문제를 두고 승전국들이 카이로와 얄타에 모여서 논의를 했다.

독립을 시켜준다고 했으나 우리가 아직 자주 독립 국가를 세울 능력이 없다며 처음에는 40~50년 동안 신탁통치를 하겠다고 했다. 소련과 영국 대표사이에 오고간 말이다.

그것도 정식회담시간에 한 것이 아니고 쉬는 시간에 가볍게 주고받는 말로 했다고 한다. 공식안건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소련의 스탈린이 그나마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제안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일화를 전하면서 신 소장은 우리는 주변의 주변의 존재에 불과했고, 우리 운명을 우리가 원하는 데로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절망했다.

남과 북의 분단은 더욱 기가 막히다. 소련 참전이 결정되고 파죽지세로 북쪽에서 밀고 내려오자 아직 오키나와 있던 미국이 소련을 저지하면서 급하게 30분 만에 38선을 그어 버렸다고 한다.

75년이 되어 가는 피맺힌 분단역사의 시작이다. 남과 북에 각기 정부가 들어서고 분단국가로 각각 대립하며 체제경쟁이 벌어졌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으나 전쟁 수렁에 빠져 버렸다. 승산 없는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 당시 남한과 북한은 모두 베트남 전쟁에 뛰어 들어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제2 6.25전쟁을 해외에서 벌인 것이다. 전쟁터를 베트남으로 옮긴 것뿐이다.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었던 서기1968경부터 북한의 도발이 잦아지고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에 나포되는 등 한반도가 급격히 긴장 속으로 들어간 것이 미국의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한반도에 제2 전선을 조성해서 미국 힘을 빼버리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970년대 들어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곧 통일이 될 것처럼 분위기가 바뀌었다. 알고 보니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때와 같이 한다.

미국이 박정희 정권을 압박하여 북의 도발을 멈추고 화해 분위기를 만들라고 압박하여 평화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남과 북이 진정으로 우러나와서 화해협력 분위기 된 것이 아니라 외세의 조종에 의해서 외세 구미를 맞추고자 국민을 속여가면서 연극을 한 셈이다.

미국이 다시 종전을 지연시키고 전쟁 분위기로 가자 남북한도 서로 책임을 떠밀며 하루아침에 돌아섰다. 남에서는 박정희가 일본 명치유신을 본 따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체제로 돌입했고, 북에서도 이제까지 김일성을 수상이라고 했는데 주석으로 높이고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한다.

신 소장은 이것을 본격적인 체제경쟁에 돌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정희가 당시 1백억 달러 수출달성을 밀어붙였는데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에 갔다 와서 북의 발전상을 알려주자, 경쟁심이 발동하여 이 같은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신 소장은 남북통일 문제도 다뤘다. 독일통일 사례를 먼저 소개했다. 서독에서 어떻게 통일을 추진했는지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빌리브란트 서독 총리와 집권당 전략을 알려줬다. 직접 통일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관련된 주변국의 마음을 사는 방법을 썼다.

유대인을 히틀러가 학살했는데 피해 당사국인 폴란드 유대인 희생지역에 가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또 당시 소련 모스크바에 가서 40억 달러 차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동유럽과는 대사급 수교를 했다. 앞서 당시 소련의 브레즈네프에게 허락을 구했다. 이렇게 우선 주변 관련 당사국부터 서독 편으로 끌어들였다.

내부 반발도 있었다. 극우파 언론매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브란트 총리를 민족반역자로 비난하고 브란트를 심지어 사형시키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야당도 가세해서 끌어내리려고 혈안이 됐다.

집권세력은 이에 주저앉지 않고 중간파를 설득하여 국면을 전환시키려고 했다. 브란트는 여기서 승패수를 띄웠다. 의회 해산권을 발동하여 해산시켰고 다시 총선거를 했다.

여당인 사회민주당이 제1당이 됐다. 민심이 여당 편이었다. 통일을 지지한 것이다. 이 여세를 몰아 본격 동방정책을 밀어붙였다. 결국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됐다.

신 소장은 독일이 통일될 수 있었던 근본원동력은 서독의 성숙된 민주주의라고 단언했다. 민도가 통일을 감당할 만하게 성숙돼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통일논의로 옮겼다. 그는 바로 통일을 얘기하기 보다는 긴장완화와 분단극복 쪽으로 나갈 것을 제안했다.

직접 통일 담론은 아직 우리나라 민도가 성숙돼지 않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게 이유다.

국민 중 통일에 찬성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10의 2 밖에 안 된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통일이니 민족이니 하는 것은 우리나라 민도가 낮아 거부반응이 먼저 나오니까, 이런 말 대신에 분단극복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봤다.

분단이 우리 삶을 얼마나 왜곡하고 제약하고 떨어뜨리는지 먼저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에서 오는 긴장을 완화하고 지속적인 남북한 교류로 남북한 이질성 극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또 주변 강대국들이 통일에 우호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공을 들일 것을 피력했다. 본질에서 독일통일전략이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말이다. 결국은 우리 민주주의가 성숙돼야 통일이 힘을 받는다는 것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 손윤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손 상임의장은 근 2백년전부터 동아시아는 서양열강에 먹혀 식민지가 되어 갔고 우리도 동학혁명이 일어났으나 결국 일제의 침략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신 소장과 같은 학자들을 통해서 역사를 바로 알아 우리가 주도하는 역사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역설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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