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일반상식을 거부하는 제도권 강단식민사학은 학문독재를 멈춰야 한다.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강단식민사학, 중국동북공정, 한사군은 재북한 고집

송호정, 오영찬 모두 왕검성도 북한에 있었다 주장

중국사료는 요동군 험독현에 왕검성 있다고 명시

 

▲ 담기양(譚其驤)이 주편(主編)으로 참여해서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편찬한 ≪중국역사지도집≫ 2권 27~28쪽. 낙랑군 수성현은 평양 부근에, 요동군 험독현(왕험성)은 요령성에, 갈석산은 하북성에 그려 놓은 것으로 파탄난 동북공정의 현주소를 잘 말해 준다.

# 한사군(漢四郡)은 북한에 있었나? 고대 요동(遼東)에 있었나?

네 번째 이야기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중국 동북공정 및 일본 극우파와 남한 강단사학은 모두 북한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서기전 108년에 설치한 낙랑군(樂浪郡) 및 한사군의 위치가 중요한 것은 고조선 강역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사군(漢四郡) 중에서 중심인 낙랑군의 위치를 알면 나머지 3군도 그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오늘은 '위만조선(衛滿朝鮮)의 도읍지인 왕험(검)성과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 알아보자

대한민국 강단사학계는 ‘위만조선의 도읍지[왕험(검)성]=낙랑군=평양일대’라고 주장한다.

한국교원대학교 송호종 교수는, “평양 부근에 고조선 왕검성(王劍城)이 있었고, 그 뒤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왕검성은 낙랑군(樂浪郡) 조선현(朝鮮縣)의 위치가 평양 지역인만큼 역시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다( 「고조선의 위치와 중심지 문제에 대한 고찰」, 2010)”라고 말했다.

『낙랑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화여대 오영찬 교수도 마찬가지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위만조선이 멸망할 당시 수도는 왕검성임이 분명하며, 그 자리에 낙랑군(樂浪郡) 조선현(朝鮮縣)이 설치되었으므로, 평양 일대에서 발굴 조사된 낙랑군 관련 유적으로 통해 볼 때, ‘왕검성=낙랑군 조선현=평양’이 자연스럽게 인정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입론이 평양설이나 이동설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오영찬,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서경문화사, 2007)”

그럼 중국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는 왕험(검)성의 위치를 어디라고 주장할까?

중국은 요령성 안산(案山)시 ‘태안(台安)현 손성자(孫城子)’가 위만조선의 도읍인 왕험성 자리라고 보고 있다.

왜 중국은 위만(衛滿)조선의 도읍인 왕험성(王險城)을 요령성에 있다고 할까?

중국학자들 최소한의 학자적 자존심 때문이다. 한사군(漢四郡) 위치에 대한 1차 사료인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서』 「지리지」는 ‘낙랑군 조선현’과 ‘요동군 험독현’을 각각 다른 곳으로 보고 있는데, ‘요동군(遼東郡) 험독현(險瀆縣)’을 위만조선의 도읍지라고 보고 있다.

후한(後漢:서기 25~220) 때인 서기 181년에 태산(泰山)태수를 역임한 응소(應劭)는 요동군 험독현이 위만조선의 도읍지 자리라고 설명했다.

위만조선의 도읍지 자리에 세운 왕험성이 ‘요동군(遼東郡)’ 소속이므로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동북공정 추진 학자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그래서 중국학자들은 사회과학원에서 편찬한 ≪중국역사지도집≫ 의 이론서(理論書)인 ≪석문회편釋文滙編≫ 에서 “요동군 험독현만 조선반도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지금의 ‘요령성 안산시 태안현 손성자(孫城子)’를 위만조선의 도읍지에 세운 요동군 험독현(險瀆縣) 자리라고 비정(比定)한 것이다.

한(漢)나라 때의 요동군은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일대를 뜻하지만 지금의 요동(遼東)이라고 쳐도 위만조선의 수도 자리에 세운 요동군 험독현(왕험성)이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 낙랑군과 패수 그리고 요동군의 위치. 요동군 험독현(왕험성)은 낙랑군 패수(浿水)의 동쪽에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강단사학계는 조선총독부의 ‘위만조선의 도읍지(왕험성)=낙랑군=평양’이라는 주장을 유일한 정설(定說)로 떠받들고 있다.

‘왕험성=요동’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학자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중국 동북공정은 위와같이 ‘왕험성은 요동’에 있었지만 ‘낙랑군은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낙랑군이 지금의 하북성 일대에 있었다는 중국의 고대 사료(史料)는 무수히 많지만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문헌 사료는 전무하다.

『한서』 「지리지」는 요동군 험독현에 대해서 중국 고대 역사학자인 신찬(臣瓚)은 “왕험성(요동군 험독현)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라고 말했고, 당나라 때 주석가(註釋家)인 안사고(顔師古)는 “신찬의 설이 맞다”라고 동의했다.

낙랑군은 고대 요동(遼東)에 있었던 험독현보다 서쪽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역사지도집≫에 왕험성(요동군 험독현)을 요령성으로 비정(比定)했다면 낙랑군은 그보다 더 서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험성이 요동에 있는데,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이 중국 고대 사료가 말하는 왕험성과 낙랑군의 위치이다.

출처:

1.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 페이스북. 2017.11.6

2.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동북공정으로 자신감 얻은 中..국가 차원 역사영토 확장 야심. 2018.2.12.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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