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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징'이 없는 우리 역사비극의 역사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응징하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송필경 | 승인 2020.03.19 21:52

글: 송필경(치과의사, 대구거주)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역사를 축적할 수 있느냐 여부

응징은 역사의 올바른 전진을 위한 것이지 보복이 아냐

훈구세력에 대한 응징 없어 비극 역사 오늘까지 되풀이

유서대필 조작, 한 인생을 파괴한 곽상도 다시 공천 출마

프랑스는 불의를 응징했기에 건강한 세상, 역사를 물려줌

▲로태우 정권시절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일으킨 곽상도 현 미래통합당 의원. 서기1991년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 사망한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했다고 강기훈은 징역을 살았다. 검찰은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하여 그 당시 민주화 운동을 잠재우려 했다. 자료: 구글 갈무리

 

“응징”이 없는 우리 역사

나는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내 평생 가장 마음 끌린 분야다. 사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할 수 있는 바탕이 역사를 축적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마 1만 년 전의 개나 고양이가 지금의 개나 고양이의 습성이 달랐을까, 아마 비슷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짐승은 역사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태어나면 그저 본능으로만 살 뿐이지 않은가.

나는 우리 역사가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영토를 유지했고 단일민족으로 살면서도 독특한 문화를 창조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낀다. (단일민족의 삶이란 부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다. 여기서는 논의를 접자.)

 찬란한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끄러움은 ‘응징’이 없었다는 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응징’은 감정적 복수나 보복이 결코 아니라, 역사의 올바른 전진을 가로 막는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이이라고 봐야 한다.

임진왜란 때 자신들의 비겁함을 감추기 위해 공을 세운 충무공을 옥에 가둔 훈구 세력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할 수 없이 충무공을 풀어주었다.

충무공은 혁혁한 승리를 이루고도 한양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길을 택했다. 한양으로 돌아가 봤자 ‘응징’을 당해야 할 훈구 세력에게 또 어떤 누명을 쓸지 모르니까.

조일전쟁이 끝나자 훈구 세력은 ‘응징’을 받지 않았다. 흐리멍덩한 역사를 반복한 결과 왜란이 끝난 지 38년 만에 병자호란을 맞았다. 

인조는 청태종에게 꽁꽁 얼어붙은 땅에 꿇어 앉아 절을 올리고 이마를 찧은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조선 아녀자 20여만 명을 청나라가 끌고 가겠다고 하니 더욱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조선의 왕이나 훈구세력은 ‘응징’당하지 않았다. 훈구 세력들은 가족 그리워 고향으로 도망쳐 되돌아온 아녀자들은 ‘환향녀’라 했다. 

이 ‘환향녀’는 그 뒤 여자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으로 변했다. 지구상에 이렇게 뻔뻔한 남정네들이 있었던가?

이 뻔뻔한 훈구 세력을 역사가 ‘응징’하지 않았고,
이 뻔뻔한 훈구 세력은 역사에게 ‘응징’당하지 않았다

역사는 응징 없이 흘러 그렇게 흘러 또 흘렀다.
그 훈구 세력이 친일 매국 세력으로, 그 세력이 유신 세력으로, 그 세력이 5공 세력으로 이어졌다.
응징이 없으니 오히려 친일 매국 세력이, 유신 세력이, 5공 세력이 지금 더 떵떵 거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응징해야할 세력을 세세히 다 말하려면 얼마나 많은 글이 필요할까.

1894년 유대인 프랑스 장교 ‘드레퓌스’ 대위는 독일에 기밀 서류를 넘겨준 죄목으로 종신형을 받았다. 기밀 서류와 필적이 비슷하다는 혐의였다. 실제 범인은 프랑스인 장교였다. 

프랑스군과 정부는 ‘국가 안보’란 이유로 진실을 밝히기보다 유대인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웠다.
프랑스 여론은 진실이 밝혀졌어도 둘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국가와 군의 명예‘를 주장하는 측과 ”진실, 정의, 인권“을 부르짖는 측으로 말이다. 

진실을 주장하는 대문호 ‘에밀 졸라’가 격론의 중심에 섰다.
“나는 궁극적 승리에 조금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합니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고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음을! 진실이 지하에 묻히면 자랍니다. 그리고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렇게 싸워 12년 만에 에밀 졸라와 프랑스 양심은 승리로 응징의 역사를 장식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프랑스 양심 세력의 진실 행진을 보면서 이렇게 예언했다.
“심한 역경도 때로는 그 목적이 있다. 프랑스가 양심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프랑스를 위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톨스토이의 예언은 정확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게 불과 4년 점령당했으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바로 나치 부역자에게 역사의 ‘응징’을 신속히 처리했다. 수천 명이 감옥에 갔고, 수백 명이 총살을 당했다.

이 ‘응징’은 프랑스를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이었던가. 프랑스인들은 ‘드레퓌스 사건’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친일부역자 1명조차 ‘응징’을 못했던 남한에 비해서 말이다.

1991년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 사망한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했다고 강기훈은 징역을 살았다. 검찰은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하여 그 당시 민주화 운동을 잠재우려 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강기훈은 징역 3년을 살았고, 고문에 망가진 몸으로 모진 고통에 시달렸다. 세월이 18년 흘러 2009년에 검찰이 조작한 사건으로 재심에서 무죄로 밝혀졌다.

졸렬한 조작 사건으로 한 사람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공안 검사 <곽상도>였다.

그러나 <곽상도>는 양심의 가책도 없었고, ‘응징’은 커녕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 수석이란 고위직을 거쳐 대구 남구에서 당선하여 국회의원 자리를 누리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대구 남구에서 또 국회의원 자리를 누리려고 친일반공 토왜세력의 공천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이럴 수가 없다, 우리 역사가!
이제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 역사가!

‘응징’이 없는, ‘응징’을 하지 못하는
우리 역사!
우리 현실!
우리 모두 부끄럽지 않은가!

 

송필경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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