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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과 마늘의 단군영정 부정하는 우실하 교수토속에 뿌리 박은 입체적 역사관을 갖추어야 바른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20.03.09 23:50

 

우실하 교수,

요순 시대 도사유적 발굴을 토대로 단군조선의 실제 역사성 인정

정통역사성 갖춘 쑥과 마늘 단군영정,  '풀떼기 걸친 것'으로 비하

검 들고 전투복 입고 귀거리 찬 마늘과 쑥을 제거한 단군영정고집

 

▲조선개국 4353.01.30. 서울 중국 퇴계로에 위치한 '남학당'에서 한뿌리사랑세계모임(회장, 박계옥)이 개최하는 1월 정기강연에서 우실할 항공대 교수가 '남북한 단군영정의 통일을 위한 제안'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단군이) 아니, 옷을 입었는데 풀떼기는 왜 필요합니까, 풀떼기를 왜 그렸다고 그랬죠? (중국의) 복희, 황제 이런 것 그릴 때, 옷이 없던 시절에 뻘거벗고, 자기네 성인인데 그죠, 미안하니까 풀떼기롤 가려놓은 것인데 옷을 다 입고 왜 풀떼기를 걸치냐 말이죠. "

조선개국 4353.01.30.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남학당'에서 한뿌리사랑세계모임(회장, 박계옥)이 개최한 정기강연에서 우실할 항공대 교수가 '남북한 단군영정의 통일을 위한 제안'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우 교수는 시종일관 마늘 잎과 쑥을 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있는 단군영정을 비판했다. 마늘 잎과 쑥을 '풀떼기'라고 하면서 걷어내야 한다고 강연 내내 강조했다.

'풀떼기'를 걸친 것은 옷이 없던 시절인 원시시대 사람들이 옷을 대신하여 쓴 것이라는 게 이유다. 

단군이 조선을 개국한 서기전 2333년전에는 이미 원시시대를 지나 문명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옷을 생산하고 있어서 굳이 '풀떼기'를 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일제침략기부터 이제까지 나온 단군그림들을 들며 일관성이 없음을 지적하며 개탄했다. '풀떼기'걸친 단군은 물론 중국인 관우를 연상케하는 것, 옥황상제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것,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것, 원시인처럼 된 것, 비파형 동검을 들고 갑옷과 투구를 한 것, 아주 젊은이 모습을 한 것 등 한마디로 중구난방식의 단군영정들이 난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단군영정. 어깨에 마늘 잎으로 보이는 잎새를 두르고 있다. 허리에는 쑥잎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형상에서 유사함을 보이는 나뭇잎을 두르고 있다. 나무의자에 단군이 앉아 있다. 어깨와 허리에 두른 잎새가 비록 마늘잎과 쑥으로 정확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상징성에서 쑥과 마늘이라고 풀어도 될 것이다. 

이는 그린이들이 각자 상상속에서, 꿈속에서 나타난 것들을 그려서 나온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새로 단군영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군영정을 그릴 수 있는 근거를 기독교의 예수를 새롭게 고증해서 그린 것을 예로 들어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고고학에 터잡아 과학적으로 고증한 예수 모습은 이제 까지 알려진 백인이 아니었다. 

코가 높고 금발의 서양인의 모습이 아니다. 곱슬머리에 피부가 검은색에 가깝고 덥수룩한 검은 수염이 난 중동인 모습이다.

예수가 살아 있을 당시에 활동하던 지역에 나온 인골을 이빨, 유전자 등을 게놈지도에 따라 종합하여 나온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단군모습도 단군조선의 강역으로 밝혀진 중국 하북성과 내몽골지역의 이른바 요하문명지역과 만주 및 남북한지역의 인골을 취합여 분석하면 가능하다고 보았다.

특히 요하 서쪽에 위치한 우하량에서는 인골이 17개나 나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지역에서 편두가 나왔다는 점이다. 경남 김해서 나온 편두와 연결시키며 단군은 아마도 편두를 했을 지도 모른다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단군조선과 친한 북방민족, 흉노도 편두를 했음을 상기시켰다. 소위 신라금관이라고 하는 금관이 작은데 이는 주인공이 편두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단군은 귀고리를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동북아시아 북방민족들은 신석기시대부터 남녀가 모두 귀를 뚤어서 귀고리를 했다고 밝혔다. 동호, 거란, 만주족 등 청나라 시대까지도 지속해서 남자가 귀고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 박물관에 전시된 북방민족들의 사람 상에 모두 귀고리를 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또 몽골의 칭기스칸의 그림에도 귀고리를 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하대신라, 고려, 리조선 중기까지 남성도 귀고리를 했다고 증거를 제시했다.

백제, 고구려, 신라인의 모습을 담은 당나라 염립본廉立本이 그린 왕희도王會圖에도 귀고리를 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특히 그는 리조선시대 남성들이 귀고리를 하고 있었음을 세종실록, 선조실록 기록을 제시하여 밝혔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전면적으로 금지된 것은 선조5년 서기1572 이후라고 추정했다. 

또 요하문명(홍산문화)로 알려진 곳에서 옥으로 된 옥결이 나왔음을 강조했다. 옥결은 옥으로된 귀고리를 말한다. 그는 이 같은 자료를 근거로 단군은 귀고리를 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럼 단군의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그는 홍산문화(서기전4천5백년~3천년) 유적에서 나온 인물상의 머리카락 두른 모양에서 찾았다. 모두 머리카락를 모아 가지런하게 머리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외에 다른 유물과 함께 종합하여 단군모습을 그려냈다. 수염을 기른 건장한 장년의 평상시 모습에 기초하여 여기에 비파형동검을 들고 청동제 투구와 갑옷, 청동제 단추로 장식한 장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앞서 언급한데로 소위 '풀떼기'는 당연히 제거된 모습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 삶속에 깊이 뿌리박은 민속이나 토속문화를 충분히 소화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인다. 특히 단군영정에 마늘잎과 쑥으로 보이는 '풀떼기'가 있는 것은 상징의 외피를 쓴 역사임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마늘과 쑥은 한웅의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나타내는 동시에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이것이 없으면 역사의 단절이 일어난다.

쑥과 마늘로 상징되는 단군을 낳은 웅녀의 역사도 사라진다. 어떻게 단군조선이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어진다. 또 산신山神, 선인仙人이라는 단군의 속성도 파악할 수 없다. 단군이전의 신시배달국 역사가 사라져 버린다. 

더나가 '풀떼기'가 사라지면 식물에서 풍겨나오는 우주자연의 생명력도 사라진다. '풀떼기'를 한 단군영정은 깊은 의미를 함축한 우리 겨레의 원형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시각으로 특히, 고고학에 터잡은 유물론적인 서구적 시각을 갖다 대어 함부로 제거할 것이 못된다. 

우실하 교수 말대로 서기전 2333년에 일어난 단군시대는 옷을 짜서 입을 만큼 문명화된 시대다.

그럼에도 단군영정에 쑥과 마늘잎이라는 '풀떼기'를 그려 넣은 것은 단군이 어디서 나왔는지 뿌리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역사는 반드시 글로 기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벽화가 그림으로 나타낸 역사이듯이 단군영정도 그림으로 나타낸 역사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풀떼기' 두른 단군영정은 이외에 나무의자에 단군이 앉아 있다. 이것도 역사를 전하는 상징이라고 봐야 한다.

단군의 아버지, 신시 배달국을 세운 한웅천왕이 그 아버지 한인에게서 인간세로 내려가 홍익인간세상을 만들라는 말과 함께 천부인 3개를 가지고 내려온 신단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풀어도 된다.   

우 교수는 '풀떼기'를 두른 단군영정이 서기1904년에 나타난 나철의 대종교에서 만든 것이라고 보았다.

최근 본지가 추적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19세기 중, 후반에 같은 단군영정이 존재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때 부터 쑥과 마늘을 두른 단군영정이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기사 연결 주소 참조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3858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3969

▲서기1883(광서9)년 것으로 밝혀진 단군영정. 대종교본 단군영정과 기본 개념이 같다. 마늘잎과 나뭇잎을 두르고 있다. 1904년에 일어난 대종교의 단군영정이 대종교에서 만든 것이 아님을 알 수있다. 이전부터 전해오던 것을 바탕으로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그는 이날 중국이 최근에 대대적인 발굴한 소위 도사陶寺유적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전했다. 서기2015.12.21. 중국 당국이 발표했는데 소위 '중화문명탐원공정'을 마무리하면서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도사유적은 서기전 2천5백년에서 서기전 1천9백년사이 것이다. 요임금의 도성인 평양平陽이며 요순시대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 유적은 산서성 임분시 양부현 도사진에 있다. 전체 유적지 총면적이 430제곱미터에 해당하며 내성과 외성을 갖춘 쌍성으로 거대한 방국 또는 왕국단계에 접어 들었다.

석경, 악어가죽으로 만든 북, 청동이 아닌 홍동 등이 나왔다. 또 거대한 관상대와 제단이 존재했다.  

우 교수는 이 도사유적을 중국이 요순시대 것으로 본다면서 그렇다면 요순과 동시대 또는 그 언저리에 일어난 단군조선도 존재했음 말하며 역사라고 확정했다. <삼국유사>고조선기, <동국통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날 취재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었다. 강연 주최측이 동영상 촬영을 거부했다. 이제 까지 없었던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촬영거부 이유는 이렇다.

우실하 교수가 중국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데 중국 역사공정을 거스르는 강연영상이 나가면 향후 중국 당국이 중국입국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직접 우실하 교수에게 촬영영상은 절대 누리망에 올리지 않고 취재기사 보도용으로 쓰기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 교수는 그러면 괜찮다고 했다.

또 설사 올리더라도 올라가기를 원치 않는 부분을 삭제, 편집하여 올린다면 괜찮다고 했다. 올리게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강연 주최 측은 한사코 촬영을 못하게 막았다. 주최 측이 자체로 촬영하는 영상을 누리망에 올리겠으니 그것을 보라고 했다.

나중에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았다. 영상 질이 너무 안 좋았다.  화면을 갈무리해서 기사사진 자료로 쓰려다가 포기했다. 

이날 주최측 포함 민족사학계는 우리 역사학을 장악하고 있는 제도권 주류 식민사학계와 역사전쟁중이다. 역사독립, 광복전쟁이다. 무기(정보)를 공유해서 싸우는 것이 훨씬 대항력이 클 것이다. 

일제침략기 수 많은 독립투쟁 세력이 일제와 싸웠다. 그러다가 서로가 정통이라고 분열을 일으켰다. 크게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열됐다. 신간회로 통일하여 전투력을 높였으나 얼마 못가서 다시 갈라섰다. 

그 결과 오늘날 까지 북조선에 독립투쟁의 정통성이 있느냐, 남한에 정통성이 있느냐로 다투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촬영거부가 독립투쟁세력의 이기심에서 나온 분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렸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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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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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는 시각의차 해석하는 기준 2020-03-11 11:35:32

    내 보기엔 어개의 표식은 버드나무잎 처럼보이고 허리춤에 두른것은 뽕나무 잎으로 보이외다. 모두 구상나무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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