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대한민국은 우리 고유 정신을 회복할 때 바로 설 수 있다.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 교수,

풍류도에서 한국사상의 원형과 특질 밝혀 화제

고유사상 알리는 문헌들 외면하는 학계 각성해야

일제치하에서도 고문화연구에 문헌 안 가리고 연구

풍류사상의 핵심은 접화군생, 민족종교에서 이어져

 

▲조선개국 4352.11.01. 성균관대학교 다산경제관 대강당에서 동양철학연구소 등이 개최한 '한국사상의 연원'를 주제로 하는 학술대회가 있었다.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 교수가 풍류도를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뿌리를 파고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에 뜨고 싶다’고 하였다.

공자가 구이九夷에 거居하고자 하니, 어떤 사람이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거하시렵니까’ 하였다. 이에 공자가 ‘군자가 사는 곳 이어늘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공자의 말을 기록한 <논어>에 나온다. 공자는 춘추시대(서기전 551년~서기전 479년)사람이다. 춘추시대가 지나자 전국시대가 온다.

이 시대는 작은 나라들이 난립하며 서로 싸우던 시기다. 공자는 당시 중원에 난립하고 있던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다. 공자를 시조로 하는 유가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다.

공자는 자신의 사상이 관철되어 소인과 대비되는 군자들이 사는 세상이 올 것으로 보았다. <예기>에서도 나오듯이 그가 꿈꾸는 최종세상은 대동 사회였다.

하지만 이는 그의 이상향이었을 뿐 공자 당시는 야만이라고 할 만큼 약육강식의 세상이었다.

도道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이었다.

<논어>에 나오는 이 말들은 평생을 도가 행해지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공자의 심정이 담겨있다.

그는 바다를 건너 구이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다. 구이九夷는 동이東夷와 같은 뜻으로 보아도 된다. 동이는 우리 겨레를 중화인 들이 역사에서 지칭하는 이름이다. 동이가 있는 곳에는 군자君子가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자는 공자가 그린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그렇다면 동이의 본향은 어디고 무슨 도가 행해지고 있었기에 공자가 살고 싶어 하는 곳이었을까.

전통문화대학교 최영성 교수가 답을 내놨다. 조선개국 4352.11.01. 성균관대학교 다산경제관 대강당에서 동양철학연구회, 한국유교학학회, 한국철학사연구회, 성균관대 유교철학. 문화콘텐츠연구소가 연합하여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였다. 이날 학술대회 주제는 ‘한국사항의 연원’이었다.

최 교수는 이날 ‘한국사상의 원형과 특질, 그리고 연구방법론’을 주제로, ‘풍류사상, 근대 민족종교와 관련하여’를 부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공자가 바다 건너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것은 중원대륙에 우리 고유사상인 풍류風流가 전파되었기 때문이라고 최 교수는 풀었다. 최 교수는 고 류승국 교수연구를 인용하여 은나라시절에 우리 동이의 풍류가 전파되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인仁’이었다고 소개했다. 공자 유교의 핵심인 인仁사상인데 이것이 원래 우리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유교에 대비하여 원시유교라고 할 수 있다.

풍류도의 하나인 원시유교가 중국에 전파되어 공자로 대표되는 중국유교가 성립되었다고 밝혔다. 이것이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국고유의 원시유교가 단절되었다고 한다.

춘추시대를 불러온 주나라 이전의 은나라, 하나라, 요순시대 등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 록 동이문화권이 확장된다고 했다. 동이문화가 앞선 문화로써 중국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 동이문화를 최 교수는 풍류도로 풀었다. 풍류도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조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나온다. 이 기사는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며 풍류의 실체를 전한다.

이날 최 교수는 이 기사에 나오는 ‘접화군생接化群生’에 주목했다. 풍류는 한마디로 접화군생이라고 보았다. 공자유교의 ‘인仁’ 사상도 접화군생안에 포섭된다.

또 최치원이 글이 적혀있다는 <지증대사비명>을 끌어와 유교는 물론 중국 도교도 풍류도에서 나온 것임을 밝혔다. 비문에는 “계림의 땅은 오산 곁에 있는데 예로부터 선仙과 유儒에서 기특함이 많았다”라고 나온다.

그는 “이것은 동방 군자국에서 태동한 인仁사상의 전통이 유교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또 청구국의 유박柔璞사상이 노자철학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음을 시사한다.”라며 중국의 철학사상의 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밝혔다.

<산해경>에는 “청구의 나라에 구미호가 있고 유박柔璞한 백성이 있다. 이곳은 영토의 나라다.” 최 교수는 이 기록을 소개하며 현재 중국 도교의 뿌리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중국 도가사상의 핵심은 포박抱撲인데 이는 무위자연과 같은 의미라며 우리의 풍류도가 중국 도교의 뿌리라고 보았다.

그는 한국사상의 뿌리를 단군에서 찾았다. 단군사상은 선도仙道로 요약된다. 그는 선도가 풍류도라고 보는 한 연구자의 주장을 소개하여 자신의 견해를 내놨다.

최 교수에 따르면 중국문화의 원형은 우리 풍류도다. 삼국사기 진흥왕조에는 포함삼교라는 말을 하고 유교, 도교, 불교의 내용을 싣고 있다. 이 모든 종교가 풍류도 안에 있다고 한다.

이날 최 교수의 발표는 <삼국사기> 진흥왕조의 풍류도를 상세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화제다. 어째서 유교, 도교, 불교가 풍류도에서 나간 것인지 역사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들어 논증했다.

막연하게 중화사상이 우리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세한 근거를 제시하여 논증해 나갔다는 점에서 이날 발표회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편 최 교수는 기성학계에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발표 첫머리에 한국사상 원형을 전공하는 학자가 아주 드물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연구수준이 대개 1930년대를 전후한 육당 최남선 연구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질타했다.

육당이 단군연구를 하면서 ‘조선의 고문화 연구는 초문헌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뼈아프게 제시했다. 이는 현재 기득권 학계에 던지는 일갈이다.

특히 역사학계가 우리원형을 전하는 문헌을 위서로 매도하면서 역사를 중국이나 일본의 부속역사로 만들어버리는 풍토를 꼬집는 말이다.

이날 그는 기득권 학계가 위서 취급하여 내다 버린 <삼일신고>의 한 구절을 제시했다. ‘자성구자강제이뇌自性求子降在爾腦’다. ‘너희 본성에서 씨를 구하라, 너의 뇌리에 내려와 있다’ 로 풀이된다.

그는 이 구절로 우리사상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상기시키며 유교, 불교, 도교의 정점에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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