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동학농민군 원혼을 위로하고 정신을 기리는 것은 이 시대 사명이다.
보은 일대서 최후 맞은 동학군 원혼 달래는 위령제
상여소리와 함께 성대하게 거행
보은읍 보은문화원 앞 뱃들공원서 출발하여 보은읍
가로질러 한 복판 사거리에 제단설치하고 제를 올림
보은 장날이라 수 많은 지역민들도 함께 뜻 기려
보은읍내 남녀고교생들이 상여매고 만장들어 뜻 깊어
"에~헤이~ 에~헤이~ 어~허이~ 어하~
발 맞춰요 발 맞춰요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간다고 하면은 아주가나 내년 삼월에 돌아오나
인생청춘 늙은 몸이 늙고 싶어 지가 늙나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슬퍼마라
인생한번 백발되면 다시 젊기 어렵도다"
상두군의 선소리가 구슬프다. 김인각 선생의 선소리를 시작으로 상두꾼들이 발을 맞춰가며 상여가 나갔다. 126년전 보은일대로 몰려들어 왜군과 관군에게 희생된 마지막 동학농민군 원혼을 어루만졌다.
왜군과 관군에게 학살당한 2천6백여명의 동학혁명 농민군이다. 12월 엄동설한, 짚신차림에 헤어진 옷가지, 굶주린 동학농민군은 왜군 최신식무기 앞에 흰 눈밭을 붉은 피로 물들이며 쓰러져 갔다.
조선개국4352.04.26. 날이 잔뜩 흐린 가운데 보은읍 일대에서 마지막 동학농민군 원혼을 위로하고 기리는 위령제가 거행됐다.
보은동학혁명북접사업회(동학민회, 대표 손윤)는 해마다 동학군 위령제를 거행해왔다. 이전에는 보은읍에서 떨어져 있는 동학혁명공원에서 거행하다가, 작년부터 보은읍에서 진행해오고 있다.
위령제단설치를 이끈 임재헌 선생은 이전에는 동학혁명공원에서 동학민회 회원들만 위령제를 지냈다면서 보은읍 중심가에서 지내게 된 동기를 전했다.
동학혁명과 동학농민군의 희생은 보은 지역민 모두의 일이기 때문에 따로 외딴곳에 있는 공원에서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보은 군민이 모두 알고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보은 중심지, 보은읍내에서 군민과 함께하는 행사로 열기로 했다.
아침일찍부터 보은문화회관 앞 뱃들공원에 행사장을 마련하고 만장과 오방색띠를 공원주변 나무에 걸었다. 또 구현령, 임재헌(호신) 회원일행은 밤새도록 위령제에 쓰일 제물을 준비하여 보은읍 4거리에 위령제단을 설치했다.
위령제는 제사와 위령하는 노래, 춤 순으로 거행되었다. 끝나고 지역민과 참가자들이 함께 어우려져 음복을 했다. 마치고 상여행렬은 다시 처음 출발지, 뱃들공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갈때 보다 더 후렴소리가 크고 구슬펐다.
뱃들공원에 설치된 무대 앞에서 보은 군민들과 함께 술과 떡, 밥으로 점식식사를 나누었다. 오후 2시 부터는 동학민회 활성화 대책 등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황선진 선생이 주도하는 가운데 동학민회의 의의를 되새겼다.
손윤 동학민회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서 보은이 동학혁명의 중심지였다면서 보은을 동학혁명의 본래 모습을 잇는 곳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역설했다.
날씨가 잔뜩 흐리고 먹구름이 곧 비가 쏟아질 듯 했다. 행사가 끝날 때 까지 큰비는 내리지 않았고 보슬비가 행사 끝무렵에 칙칙하게 내렸다. 동학농민군을 위로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