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열리는 인문학강연, 식민주의 사학을 극복하는 남부전선이 될 것이다.

 

 

부경대학교 이근우 교수,

왕인 실제인물 아닐 가능성 커

<일본서기>통해 백제 성왕 활동상 파악 가능

김현구 교수를 학자 양심 져버린 인물로 기억

김 전 교수가 일제식민사학자, 쓰에마스 견해

그대로 따른 것은 지혜없는 행동에 지나지 않아

▲조선개국4352.04.18.부산대학교 후문에 위치한 문화공간, '봄'에서 부경대학교 사학과, 이근우 교수가 '일본서기와 한국 고대사'를 주제로 강연했다.

단군 기원 4352년 4월 18일 부산대학교 후문사거리에 있는 문화공간 봄(Bomm)에서 ‘일본서기와 한국 고대사’ 강연이 있었다.

이 강연은 부경대학교 사학과 이근우 교수가 진행하였다. <일본서기>가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데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우리 사학계가 <일본서기>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견해를 내놨다.

나눠준 자료를 보면 세가지 주제로 압축된다. 왕인, 백제 성왕,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오는 가야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가야에 대한 이야기였다.

왕인은 한국과 왜국 양쪽에서 실존인물로 보고있다. 한국에도 왕인에 대한 유적이 있고 왜국에도 유적이 있다. 이 교수는 왕인이 실존인물로 알려진 것에 의문을 품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현존하는 <천자문>은 남조 양무제 재위 기간인 서기502~549년 사이 나온 책이다. 왕인이 이 <천자문>을 왜국에 전해주었다고 하는데 맞지 않는다고 한다.

에도시대 ‘곡천사청’은 중국 후한 말 조위시대에 활동한 종요라는 인물이 편찬한 천자문이 이미 있었다고 하였다. ‘곡전사청’은 이를 근거로 왕인이 <천자문>을 왜국에 전해 주었다고 한다.

이에 이근우 교수는 이 책은 여러 근거를 들어 위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후한말 조위시대에는 천자문이 없었다고 한다.

둘째 성왕에 대한 죽음(서기 554년, 신라 진흥왕 15년, 백제 성왕 32년 조)에 대한 부분이다. 신라본기와 백제본기간의 기록을 비교하면 기록이 상반되어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본서기>를 통해서 실제 성왕이 태자를 만나러 50여명의 기병만 이끌고 가고 있었고 이 때 매복에 걸려 사망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셋째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중세시대의 책이라는 점을 들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5가야 또는 6가야는 중세의 인식임을 강조하였다.

<일본서기>를 통해 가야의 원래 이름을 알 수 있으며 우륵 12곡에 나오는 10곳의 이름은 가야를 위한 노래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왜국고대사에 대한 내용이라 상당히 심도 있고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일본서기> 신공황후 기사가 뜨거운 쟁점이었다.

이근우 교수는 신공황후의 신라, 가야 정벌 기사는 당시 상황 상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사실인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전 고려대학교 김현구 교수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김 전교수는 신공황후 기사가 사실은 백제가 한 사실을 적은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백제의 것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본인의 학자 양심 상 물증없이 심증만 가지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김 전 교수 잘못이라고 하였다.

 또 김 전 교수가 쓰에마스의 임나 위치 비정을 따른 것에 대하여는 위치 비정은 학자 열이면 열 모두 다른 주장이 나온다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어 식민사학자, 쓰에마스의 위치 비정을 김 전 교수가 그대로 따른 것은 상당히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질타했다.

이어 왜국과 왜인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는 왜국은 일본제국주의 왜정 당시 지폐에 신공황후를 넣어 발행했다고 밝혔다. 당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 인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신공황후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근대 식민지 피지배역사 강조하지만 근대 왜인들은 신공황후와 히데요시를 공부하여 한국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역사 교육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어 <일본서기> 또한 천황의 신격화를 위해 지어낸 책이 아니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이에 이 교수 자신 <일본서기> 전체를 진실이라고 믿지는 않으며 단지 부분부분을 필요한 곳에 잘 활용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근우 교수의 말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한국과 왜국 사이에는 역사전쟁이 끝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그는 내일 있는 임진왜란의 부산포 해전(1592)을 다루는 학회에도 참석한다고 전했다. 이 학회에서도 우리는 왜군을 쳐부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왜인들은 왔다가 성과 없이 물러갔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왜국과 이 나라 토착왜구와 역사전쟁을 치루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이날 강연을 듣고 받은 느낌이다. 같은 공간에서 5월 2일 ‘고고학으로 본 가야와 왜’ 주제로 강연이 있다. 기회가 되는 독자는 참석해 보기를 권한다.

▲ 이날 강연에서 이근우 교수는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고대 한일관계를 조명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자세히 나오지 않은 부분을 <일본서기> 기록으로 보충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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