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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남도에 떠도는 조선인 ‘보국대’ 원혼들일제는 해남도에 군용동굴을 징용 조선인에게 파게 한 후 모두 죽였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04.02 06:57

 

“조선사람들이 두손 묶이운 채

큰 나무에 매달려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

일본병사가 앞과 뒤에서서 몽둥이로 때리고 있었습니다.

목을 자르고는 머리를 벗겨 길옆에 나란히 놓아두곤 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지난 서기2005년에 <지울수 없는 일본의 죄악>이라는 제목으로 기록영화를 내보낸 바 있다. 사진은 기록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중국 해남도 남정촌에 조선족천인갱이라는 곳을 찾아 일제 만행을 고발했다.

서기2005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지울 수 없는 일본의 죄악>이라는 기록영화가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이 제작한 것이다. 약40분 분량이다. 일제침략 만행을 고발하는 영화다.

그 중에 조선인 강제연행 로동자들을 무참히 학살한 일제만행 장면이 나온다. 부려먹을 데로 다 부려먹고 비밀유지 명목으로 모두 죽였는데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지금도 ‘조선족천인갱’이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징용 조선인 1천명이 묻힌 구덩이라는 뜻이다.

기록영화는 현장에 가서 직접 촬영한 영상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당시 학살만행을 직접 목격한 주민들의 증언도 내보내고 있다.

60~70세로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생생하게 만행 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재현한다. 이 기록영화가 서기2005년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노인들을 봐서는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제 말 상황이라고 했으니 해남도 조선인 학살이 서기1940년대 일어난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조선인천인갱이라는 곳이 지금 해남도 남정촌에 있다. 북조선이 요청해서 파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구덩이에서 수 많은 시신이 나왔다.

마치 뼈에 사무친 원한을 뿜어 대듯이 해골과 뼈들이 살아 있는 듯 솟아 올랐다. 원한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조선인천인갱이 있는 남정촌에서 발굴된 조선인 유골. 곧 소리치며 일어날 듯 원한 가득한 입을 벌리고 있다. <지울수 없는 일본의 죄악> 영상 갈무리

조선인 징용 노무자들은 지금도 지명이 남아 있는 일본 해군 삼아비행장건설, 팔소항으로 이어지는 철길놓기공사, 일본군 무기와 각종 군수품을 숨기는 군용동굴파내기에 이르기까지 혹사를 당했다.

특히 남아있는 동굴을 보면 온통 바위 돌로 되어 있다. 돌을 뚫어 굴을 파냈다는 얘기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있다. 일제는 동굴이 완성되자 비밀유지를 위해 모두 학살했다.

당시 일제가 조선인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현장을 목격한 살아남은 남정촌 노인들이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중국인 할아버지 목격자는 이렇게 증언한다.

“조선사람들이 두손 묶인 채 큰 나무에 매달려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

일본병사가 앞과 뒤에서서 몽둥이로 때리고 있었습니다.

목을 자르고는 머리를 벗겨 길옆에 나란히 놓아두곤 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증언이 나온다. 목을 자르는 것 까지는 일본군의 잔악상을 말해준다. 그런데 머리를 벗겨 길옆에 나란히 놓아두었다고 한다.

머리를 벗겼다는 것은 머리 가죽을 벗겼다는 말이다. 할아버지 증언자는 직접 손짓으로 머리를 벗기는 흉내까지 낸다.

▲생존로인이 남정촌, 조선인천인갱 현장에서 일본군이 어떻게 조선인 머리를 벗겼는지 표현하고 있다. <지울수 없는 일본의 만행> 영상 갈무리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독일군이 흑인아이를 상대방 병사에게 던져 총에 장착한 검에 꽂히게 하는 ‘놀이’ 만행을 저질렀다는 말이 전해진다. 머리 가죽을 벗겨 길옆에 놓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 증언 다음에 이어지는 일제만행의 생생한 증거를 보면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뒤에 이어지는 증언기록은 남태평양에서 일본군이 ‘고래고기’라고 하면서 무슨 고기를 먹었는데 알고보니, 끌고간 징용 조선인을 죽여 도려낸 살이었다.

일제는 일을 마친 조선인 징용자들을 총알이 아까워 때려죽이고 찔러죽였다고 한다.

기록영화 해설자는 “조선사람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않았건만 오늘도 그대로 불리우는 조선촌”이라고 울음석인 목소리로 잔악한 학살 장면을 전하면서 치를 떤다.

“해남도 곳곳에서 수십, 수백구씩 무리로 발굴되는 이 유해들은

조선인 살육의 처참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대대 손손 뼈를 묻으며 진달래꽃 아름다운 고향산천에서

오붓이 모여 살던 어질고 순박하던 우리 인민들

나라잃은 죄아닌 죄로 총칼에 찢기고 뼈마저 으스러저

산채로 이국의 땅속에 묻히었으니

이 유골들은 야수들의 천추만대의 죄악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다.”

▲해남도 남정촌, 조선인천인갱에서 나오는 조선인 시신들. 구덩이 깊이을 보면 그다지 깊지 않다. <지울수 없는 일본의 죄악> 갈무리 

중국 해남도 남정촌 조선족천인갱 소식을 전하는 보도는 북조선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남한에서도 최근까지 몇차례 전한 것으로 확인된다.

가장 오래된 보도는 서기1980년대 조선일보가 보도한 이래 서기2012년 3월 ‘코나셋’누리망 신문이 보도했다.

‘코나셋’은 영관장교들의 모임이 해남도 조선인징용자 학살을 알렸다고 전한다. 또 원혼들을 달래는 제사를 인천의 용두사에서 거행했다고 한다. 정부에 대해서도 유해발굴과 국내송환을 촉구하는 서면을 보냈다고 한다.

‘코나셋’은

“영관장교연합회가 대한민국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회장 권오강)는 「중국 해남도 조선촌 천인갱(天人坑)의 진실을 알린다」 책자를 발간하고 책자와 함께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관계 요로에 탄원서를 우송했다.” 라고 하며 영관장교연합회의 조선인천인갱 만행고발투쟁을 알리고 있다.

또 조선인천인갱 만행은 중국 기록물에도 나온다고 한다. 신문은 “중국정부의 일제침략 기록 자료인 ‘日軍海南省侵攻實錄’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한 뒤 海南島 厓縣 지역에 고립된 일본군 부대가 조선인 징용 1천여명을 동원, 三亞市 南丁村 부근의 산기슭에 굴을 파고 무기와 군수물자를 은익하면서 이 작업에 동원된 조선인들에게 은익장소 옆에 굴을 파게 한 뒤 총알을 아끼기 위해 이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매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라고 전한다.

▲누리망 신문'코나셋'이 서기2012.03.27. 인천 용두사에서 거행된 조선인천인갱 영가천도제에 참석한 생존피해자를 보도하고 있다. '코나셋' 모도 갈무리

아울러 서기2012년 현재 생존해 있는 해남도 조선인천인갱 만행피해자, 고복남(당시95세)씨가 용두사에서 거행된 영가천도제에 참여한 것도 싣고 있다.

한편 서기2019.03.31.에는 서울방송(SBS)이 해남도 현장을 취재하여 보도했다. 북조선 기록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조선인 매장지역을 파면 얼마 안되어 시체가 나온다.

이날 서울방송도 현장에가서 파보았는데 2시간만에 시신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되어 묻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방치된 상태다. 간단한 추모비와 표식만 있을 뿐이다. 서울방송에 따르면 현지 주민들이 이제는 이 조선인천인갱 지역을 귀찮아 하면서 없어졌으면 소원한다. 자신들의 잔악한 만행을 감추려는 일본의 방해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일제침략이 남긴 피해는 너무 심하고 넓어 가늠이 안된다. 북조선이 파악한 것만 하더라도 인적피해만 840만이다. 840만명이 징병, 징용, 학도병, 보국대, 정신대, 성노예 등으로 끌려가 죽고, 다치고 실종되었다.

물적피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전 국토는 다 파헤쳐지고 지하자원, 소, 개 등 각종 토종 우리 가축과 문화재 약탈 등 헤아릴 수 없다.

역사왜곡, 날조를 위해 전국의 왕릉급 무덤도 이 때 무차별로 도굴, 파괴되었다. 오늘날 우리 국사학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추종하는 황국사관, 일제식민주의 역사관, 역사학을 구축하는데 믿거름이 되었다.

▲서울방송은 서기2019.03.31. 중국 해남도 남정촌에 있는 조선인천인갱 터를 찾아 보도했다. 일본은 유골들이 모셔져 있는 시설을 철거하고자 공작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서울방송 영상 갈무리

그럼에도 지금 일본은 양승태 대법원 강제징용판결이 일본에 유리하게 진행되다가, 문재인 정부들어 불리하게 확정되자 반발하고 있다. 배상을 못하겠다고 한다.

국내 일본전범기업재산을 압류하겠다고 하자, 발끈하며 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미 박정희의 <1965 한일수교협정>으로 개인배상문제는 끝났다고 버티고 있다.

오히려 독도침탈을 감행하며 재침략 기회를 노리고 있다. ‘토착왜구’로 대변되는 국내 부왜반민족세력은 일본편이 되어 피맺힌 동포의 절규를 싸늘하게 내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들어 정부지원 받는 단체들이 북조선과 협력하여 강제징용유해봉환사업을 하겠다고 한다.

이명박근혜 친일정권들어 탄원촉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치된 조선인천인갱이다. 독립유공자 발굴도 중요하지만 중국 해남도 조선인천인갱에 묻혀 이국 땅을 떠도는 원혼들을 이제는 달래주어야 한다.

▲조선인천인갱이 있는 중국 해남도 위치. 현장에는 허름한 추모비만 초라하게 서있다. 서울방송 영상 갈무리.

아래는 북조선 기록영화 해설자가 전하는 피맺힌 현장 해설 전문이다.

중국의 최남단 해남도

세계가 일본의 저열성을 규탄할 때

여기에서 조선인 대학살 진상이 또 다시 드러났다.

너무나 많은 조선사람들이 이곳에 근로보국대 명목으로 끌려와

일제의 공사장 들에서 무참히 목숨을 잃어

조선사람은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않았건만

오늘도 그대로 불리우고 있는 조선촌

여기를 찾았던 일본인들 까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해남도 곳곳에서 수십 수백구씩 무리로 발굴되는 이 유해들은

조선인 살육의 처참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대대 손손 뼈를 묻으며 진달래꽃 아름다운 고향산천에서

오붓이 모여 살던 어질고 순박하던 우리 인민들

나라잃은 죄아닌 죄로 총칼에 찢기고 뼈마저 으스러저

산채로 이국의 땅속에 묻히었으니

이 유골들은 야수들의 천추만대의 죄악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다.

일본해군 삼아비행장 부근의 영구화점들

일본 해군 삼아비행장 활주로 흔적들

석록으로부터 팔소항에로 가는 철길들

조선인 강제연행자들의 피가 숨배인 이 모든 것은

지울 수 없는 범죄의 흔적들이다.

해남도의 뜨거운 모레밭 위에 아직도 생생하게 찍혀 있는

수 많은 영혼들의 자욱자욱들이여

일본군 특공대가 조선사람들을 내몰아 뚫은 이 군용동굴들에도

우리인민의 원한이 꽉 차있으니 이섬에 끌려갔던 조선사람들의

참상에 대해 현지 주민들은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다.

“조선사람들이 두손 묶이운 채 큰 나무에 매달려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

일본병사가 앞과 뒤에서서 몽둥이로 때리고 있었습니다.

목을 자르고는 머리를 벗겨 길옆에 나란히 놓아두곤 했습니다.”

“손목을 묶어서 나무에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죽을 때 까지 말입니다. 사람들은 매를 맞고 몸부림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서울방송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천인갱유적을 없애려는 공작을 벌이고 있다. 또 천인갱외에 만명이 매장되어 있다는 만인갱도 발견되었다. 사진은 서울방송 영상 갈무리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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