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세상은 미제금융 지배가 만든 보이지 않는 노예시장이다.
글: Edward Lee(자유기고가)
‘한유총’의 동심 파괴는 미래사회 파괴
서양백인들이 흑인노예를 사고 팔 듯
‘한유총’이 하는 짓도 이와 다르지 않아
세계를 금융으로 옭가매 지배하는 미국
아래 사진은 흑인 노예를 배에 선적한 모습이다. 사람이 아니라 화물처럼 포개어 실려있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가. 노예선들은 흑인 노예를 사람이 아닌 '화물'로 취급했다. 선적 문서에도 흑단나무, 석탄 등으로 표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서기1500년대부터 300년 넘게 납치, 감금 등을 통해 잡혀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는 7,500만 명에 이르렀고, 이중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흑인은 1,500만 명 남짓이었다. 80%인 6,000만 명은 대부분 대서양 한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듯 사람이 돈에 미쳐 인신을 매매한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행되어 온 인류의 수치스러운 역사다. 인간을 물상화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이렇게 사람을 화물처럼 선적해 사고 팔지는 않지만, 여전히 유사하게 인간이 돈의 노예로 치부되는 세상임은 전혀 틀리지 않다.
현재는 금융이 그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세상을 노예화했다. 이제는 사람 대신 그들이 일해서 축적한 돈을 수탈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최근 북미회담이 개최된 베트남을 비롯해 중국, 인도 등 신흥국가들 거의 모두가 미국 자본에 의해 경제개발을 이루어 가면서 금융의 노예가 되어있다. 이렇게 여전히 세상은 보이지 않는 부문에서 노예시장이다.
사람을 화물처럼 선적한 이런 사진을 보면 대개가 분노하기 마련이다. 그게 정상인이자 상식적인 가슴을 지닌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는 표현의 발로다. 그런데 서기21세기 우리 문명사회에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면 어찌해야 되는가.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태가 여전히 큰 문제다. 지난해 공개된 감사 결과 각종 비리가 드러났던 유치원들이 반성은커녕 ‘사적 재산권 보장’을 요구하며 아이들을 볼모로 개학 연기를 예고했다.
교육청 조사에 무응답 하면서 수많은 맞벌이 부부들의 눈물을 빼고 있다.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이 1,500곳 이상이며, 폐원도 불사하겠다는 이들의 현재 모습은 흑인 노예를 화물처럼 선적한 백인 선주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가장 순진무구한 나이의 어린아이들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볼모로 잡고 있는 데서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체험하는 공동체에서 동심이 파괴되는 행위를 무엇으로 어떻게 보상할 수 있나.
여기서부터 인성의 파괴가 시작되고 적을 만들며 불신이 키워지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무엇이고 교육은 또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왔다. 더 이상 어떻게 미칠 수 있을까. 수 백 년 전 흑인 노예를 짐짝처럼 실어 나르던 선주들과 무엇이 다르다 할 텐가. 이렇게 사람을 물상화하면서까지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본이라는 아편에 이미 깊이 중독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갱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환각 환자와 다르지 않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병들어 있다.
이성을 지닌 인간이 역지사지를 못하고 스스로를 성찰할 수 없다면 이미 인간의 순기능을 잃은 것이다. 공동체 사회는 우주 자연의 법칙처럼 서로 물려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며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또 자신의 자식이나 손자가 마주하게 될 세상을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게 어찌 사회적 동물일 수 있나.
우리 사회의 가장 추악한 모습이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한유총>이라면 지나치다 할 텐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자본의 노예가 된다면 인간으로서 그 어떤 희망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정부의 단호한 의지와 대처, 그리고 기업들의 협조와 더불어 시민들의 자각만이 사건 해결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