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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공산주의 혁명 앞에 떨게 하라!”최초의 일본 공산당은 독립투사, 이동휘가 배후였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01.31 01:57

 

서기1920년대 들어 대일독립전쟁을 두고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으로 양분

분단체제하 남한은 민족주의 독립투쟁사 방점

사회주의 계열 대일독립투쟁사는 금기시 소홀

 

▲조선개국 4352.01.26. 서울 종로구 안국역, 헌법재판소 옆, <광화문아침> 의백학교에서 심화학습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강사와 학생과 시민 일부가 기념 촬영을 했다.

일제에게 나라를 강탈당한 뒤 우리나라는 크게 세 길로 되찾자는 소리가 나온다. 하나는 즉각적인 무장독립투쟁이다. 다른 하나는 외교론, 문화론, 자치론, 준비론, 또는 실력양성론 등이다.

즉각적인 무장독립투쟁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일광복투쟁이다. 그 정점에 상해임시정부로 대변되는 세력이 있다. 무장투쟁의 다른 한 축은 사회주의(공산주의)세력이다.

외교론, 준비론, 자치론 등은 일제식민통치에 순응하자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식민통치체제 안에서 일본제국의 일원으로 자치 정도라도 해서 완전말살을 모면해 보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단재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에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라고 사납게 꾸짖는다.

단재는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을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라며 질타한다. 그러면서 나라를 되찾는 길은 일제에 대하여 폭력, 암살, 파괴, 폭동이 유일한 혁명 무기라고 외친다. 또 ‘민중이 우리 혁명 대본영’이라고 선언한다. 다만 민중에 의한 끊임없는 폭력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폭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상과 철학이 녹아 있고 이상 국가 건설이 뒤따르는 폭력, 파괴다.

단재의 염려가 맞아 들어갔는지 문화론이니 자치론이니 주장하는 세력은 대부분 변절하여 부왜매국노 길을 간다. 이른바 친일파다.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은 겉으로 보면 사회주의 계열의 로동자, 농민봉기를 통한 무장투쟁과 여러 면에서 맥을 같이 한다.

단재는 민족주의 역사관에 철저하게 뿌리를 내린 가운데 수단으로 민중혁명을 주장하고 있다.

사회주의 계열은 외래사상인, 공산주의 사상에 뿌리박은 가운데 그 속에서 독립국가 건설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단재 사상과 다르다.

단재가 처음에는 민족주의를 추구했지만, 나중에 민중 중심으로 생각이 변했다며 민족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설邪說이 유행하고 있다. 주로 이문영과 같은 일본 극우파 식민사관 맹종 부류들이 이 같은 말을 내뱉고 있다. <조선혁명선언>을 두고 하는 말로 보인다.

정작 <조선혁명선언>을 보면 그가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등에서 피력한 민족사관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해방 후 74년이 되어가고 있다. 남한에서는 사회주의 대일독립투쟁사를 시민을 대상으로 본격 풀어낸 사례는 보기 힘들다. 분단체제를 유지, 고착시키는 <국가보안법> 체제 아래서 이런 주장을 하다간 고초를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엄혹한 분위기를 과감히 깨고 ‘사회주의 독립투쟁사’를 일반 대중을 모아놓고 강연에 나선 인물이 있어 비상한 관심이 집중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다.

조선개국4252.01.26.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옆, <광화문아침> 의백학교 심화학습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이날 두 번째 강사로 이덕일 소장이 나섰다. 의백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날 ‘대일항전기 사회주의 운동사’를 주제로 강연했다.

대일독립전쟁기 독립투쟁의 한 축,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투쟁사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강연내용을 보면 방대하면서도 핵심을 짚어주었다는 평이다.

그는 먼저 사회주의 탄생 뿌리를 칼마르크스가 했다는 <1848공산당선언>에서 찾았다. 그가 소개한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 역사는 계급투쟁 역사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와 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전 세계 로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선동한다.

지금 국내 진보좌파들의 구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 구도를 모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몰아간다. 갈등과 반목 구조로 본다.

칼 마르크스의 이 같은 사상에 매료된 로동자, 농민들이 환호했다. 자본가의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던 로동자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로동자들의 단결로 한 체제가 처음 붕괴한 사건이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다. 서기1917.10월 혁명이다. 레닌이 주도했다.

이 소장은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백암 박은식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소회를 소개했다. 백암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에 나오는 얘기다.

“러시아 혁명당은 처음으로 붉은 기를 높이 들고 전제專制를 뒤엎고 큰 정의를 선포했다. 각 민족의 자유, 자치를 인정했다. 전에 극단적인 침략주의자였던 러시아가 일변하여 극단적인 공화주의가 되었다. 이것이 세계개조의 제일 첫 번째 동기가 되었다.”

백암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제식민압제 속에 있는 조선에도 힘이 되는 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정러시아 차르 체제를 민중의 힘으로 뒤엎고 새로운 체제를 세웠으니, 당시 조선 민족에게 큰 용기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서기1923년에 나온 단재의 <조선혁명선언>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이날 이 소장은 한국사회주의 독립투쟁도 러시아 혁명이 결정타가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회주의 독립투쟁 단체가 결성된 시기를 봐도 짐작이 간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서기1917.10.에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혁명가대회가 열렸는데 서기1918.03.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불과 5개월 만이다. 이 소장은 이해 4월에는 한인사회당이 탄생하고 상해파 고려공산당이 여기서 나왔다고 밝혔다.

이동녕, 양기탁, 이동휘 김 알렉산드리아 등이 대표 인물이다. 한국사회주의 독립투쟁 단체들을 이끈 초기 인물들이다. 서기1918.06. 러시아 극동내전이 발발한다. 제정러시아 짜르체제를 지지하는 반 볼세비키 백위군과 레닌의 혁명군인 적위군이 충돌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김 알렉산드리아가 희생된다. 그녀는 죽음 직전에 이렇게 외친다.

“나는 볼셰비키다. 조선 인민이 러시아 인민과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할 때만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나라를 되찾는 길은 사회주의 혁명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압제하에 있는 세계 무수한 민족이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유행병처럼 퍼져나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민족해방의 길을 사회주의 혁명에 찾고 있었다.

이 소장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투쟁에서도 분열과 반목이 있었음을 밝혔다. 처음 분열은 러시아 혁명 주도자, 레닌이 한국 공산주의자에게 투쟁자금을 준 그것이 발단된다. 40만 루블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르쿠츠파와 상해파가 갈라선다.

독립군끼리 죽이고 죽인 ‘자유시 참변’도 이런 갈등에서 나왔다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회주의 세력은 코민테른이라는 국제공산당 조직에 속한 가운데 활동했다고 이 소장은 강조했다.

조선공산당도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는 우리나라 사회주의 투쟁의 기원을 일본 유학생에게서 찾았다.

투쟁단체 중에는 서기1921.10.에 결성된 ‘흑도회黑濤회’가 있는데 독립투사로 알려진 박열, 리승만에게 간첩혐의로 사형당한 죽산 조봉암도 눈에 띈다.

이 소장은 서기1922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보도 기사를 소개하며 일본 유학생이 국내에 사회주의를 전파했다고 주장했다.

▲ 의백학교에서 이덕일 교장이 '대일항전기 사회주의 운동사'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날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이 소장은 일본에 공산당이 처음 생기게 된 것이 이동휘가 배후에서 지도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일본 공산당 역사를 보면 효민공산당曉民共産黨이 처음 나타났는데 이동휘가 주도했다고 한다.

이어 국내파 사회주의를 이끈 핵심세력이 서울청년회라고 설명했다. 서기1921.01.에 결성되었는데 여기에는 익히 알려진 장덕수도 등장한다.

서울청년회 구호를 보면 이 단체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귀족사회를 매장하자! 자본주의적 계급을 타파하자! 명사벌名士閥을 박멸하자! 사회개량가를 매장하자!” 이는 이 소장이 소개한 <조선일보>서기1922.02.03. 기사에 나오는 구호다.

이 단체에서도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서로 제명하는 등 갈등을 겪는다. 김사국 같은 이는 투쟁론을 주장하고 장덕수는 준비론을 앞세운다. 장덕수는 동아일보 주필을 맡았고 해방 후에는 친일지주, 친일관리들이 주도하여 만든 한국민주당(한민당) 정치부장을 역임했다. 나중에 해방 공간의 좌우 대립 속에서 암살된다.

사회주의 독립투쟁사에서 조선공산당이 등장하는데 화요회라는 단체에서 만들었다고 이 소장은 밝혔다. 조선공산당은 서기1925.04.17. 서울 황금정 아서원에서 김재봉을 책임비서로 하여 창당된다.

이때 죽산 조봉암도 참여한 것으로 나온다. 박헌영이 책임 비서로 있는 고려공산청년동맹도 참여했다. 조선공산당은 붕괴와 재건을 거치면서 민족단일당 건설을 결의한다.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독립투쟁 단체들이 합작한 신간회 탄생 신호탄이다. 서기1926.07.10.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신간회 창설 내용이 나온다.

“정치, 경제, 산업 등에서 조선민족의 공통의 이익을 목적으로 각 계급을 망라한 조선 민족의 단일전선을 조직하자”라고 외치고 있다.

또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자와 혁명적 민족주의자가 서로 제휴하여 공동전선을 만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하고 있다.

이 소장은 이 같은 신간회 탄생을 ‘좌우합작 민족통일전선’으로 정의했다. 신간회는 서기1927.02.15. 정식 결성된 후 서기1931.05.에 신간회 해소론이 대두되면서 해산의 길을 걷는다.

이 소장은 해산 원인을 국제공산당 조직, 코민테른에서 찾았다. 코민테른이 계급 대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신간회를 해소하자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코민테른에 종속된 국내 사회주의자들이 이 단체의 지시를 따랐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독립투쟁 세력도 결국 코민테른이라는 외세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독립투쟁의 길을 우리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다시 외래사상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리조선 왕조의 행태를 반복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리조선도 새로 세울 때 공자 유교 성리학 이념으로 국시를 삼았다. 나라를 세우고 이끄는 이념을 우리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밖에서 찾았다.

그 결과 극단의 외래사대주의 수렁에 빠졌고 나라가 망했다. 민족주의 계열 독립투쟁 단체들은 이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에서 시작했다. 나라가 망한 원인을 찾아보니 단군 등 자기 것 버리고 남의 것 섬기고 의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립하는 길은 우리 것을 되 찾아 이에 터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군과 민족을 전면에 내세웠다. 독립투쟁의 꽃으로 불리는 대종교가 대표사례다. 동학, 천도교도 마찬가지다.

이날 이 소장은 해방 후에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어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사회주의 활동을 주도했다고 보았다.

조선공산당 구조를 보면 당수 겸 총비서에 박헌영이 나온다. 정치국에는 김일성도 참가했다. 조직국에는 '남부군'으로 알려진 지리산 사회주의 대미독립투쟁부대를 이끈 이현상도 나온다.

결국, 남과 북이 미국에 의해서 분단되면서 북쪽에는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선다. 김일성 계열 공산주의자들만 남고 나머지는 6·25전쟁을 계기로 대부분 제거된다.

이 소장은 강연을 마치면서 ‘사회주의 독립투쟁사를 줄거리만 찾아도 이렇게 많다’ 면서 정상으로 강연을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백학교는 이날 심화학습을 마지막으로 제1기 수업을 모두 마쳤다. 학교 측에서는 제2기 과정은 2월 중에 공지될 것이라고 전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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