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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리지린 고조선 연구> 출판기념회 성황리 열려북한 역사학 뿌리는 단재 신채호, 약연 김두봉이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11.09 23:55

 

남의 시각으로 역사를 쓰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

북조선 연구 성과도 왜곡해서 내놓는 강단사학계

단재 신채호 여순감옥서 쉬는 시간 이유 역사저술

고사변 학파 고힐강, 북조선 리지린 고조선 실증에 굴복

북조선 서기1960년대 치열한 토론 거쳐 식민사학청산

 

▲서기2018.11.08. 서울 종로 재동에 위치한 의백학교에서 <리지린의 고조선연구> 출판기념회에서 해역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리지린의 고조선연구>가 해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 책은 북조선 역사학 실상을 알려준다. 반공이념으로 북조선을 악마 취급해 온 세월이 70년이 넘었다. 무차별로 오랜 세월 진행되다 보니 우리 안에는 북에 대한 무의식에 가까운 거부반응과 무시가 존재한다.

이런 불리한 환경을 무릅쓰고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이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를 해역해서 세상에 내놨다. 원본은 그리 두껍지 않다. 이 소장이 주석과 해석을 붙이고 북조선 학자, 리지린이 한자원문만 실어놓고 해석을 붙이지 않은 것을 우리말로 풀어썼다. 글자 크기도 키워서 내놓으니 7백 쪽이 넘는다.

북조선에 대한 70년 이상 세뇌교육에도 불구하고 이 책만 읽어도 고조선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가질 수 있다. 이념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 역사학 접근이라 거부감을 느낄 수 없다.

이 책을 내놓게 된 배경과 책에 실지 못한 숨은 얘기를 들려주는 출판기념회가 서기2018.11.08. 서울 종로 재동에 위치한 의백학교에서 열렸다. 겨울로 가는 비가 마치 장마 비처럼 내리는 속에서도 강당이 거의 찰 정도로 독자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이덕일 소장은 책에 밝히지 못한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우리나라 역사학이 처한 현실과 북조선 역사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집중 조명했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학이 얼마나 수준이 저열하고 역사독재로 치닫고 있는지 민낯을 고발해 나갔다.

그는 북조선 학계에서 고조선 지리비정을 하면서 여러 개 학설들이 난립하고 토론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남한 역사학은 해방 된지 73년이 지난 지금에도 오직 1개의 학설만 존재한다고 날을 세웠다.

북조선은 남한 사회가 비판하듯이 전체주의 독재 국가다. 반면에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이 소장은 실상은 정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체주의 독재국가라는 북조선에서 오히려 역사학 등 학문분야에서 수많은 학설들이 충돌하며 토론을 통해서 정리되어 갔다고 밝혔다.

반면에 남한 역사학은 조선총독부가 심어 놓은 식민주의 사관만이 유일한 정설로 지배해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학설은 일체 거부되고 그런 주장을 하는 학자는 학계에서 매장된다. 다른 주장을 하면 학위도 받을 수 없다. 당연히 역사학으로 밥 벌어 먹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은 당대 최고의 고사변 학자, 중국 북경대학교 고힐강 교수에게서 고조선으로 박사학위 받은 북조선의 리지린를 높게 평가했다. 남북한 합해서 최초로 역사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로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남한 역사학 실상을 자세하게 고발해 나갔다. 남한 역사학의 뿌리는 두계 이병도다. 그는 일제치하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복무했다. 일제식민사학자들의 식민사관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식민사관 대표사례가 중국 한나라 식민통치기관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느냐다.

이병도는 북조선 평양일대라고 한다. 주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낙랑군 수성현 위치다. 황해도에 수안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낙랑군 수성현이라고 한다. 이름이 비슷하다는 게 이유다. 또 다른 증거로 진시황이 쌓았다는 진장성 동쪽 끝이다.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이나바이와키치(稻葉岩吉) 밑에서 부역했다. 그의 주장을 그대로 계승했다. 이나바는 진나라 장성, 곧 만리장성 동쪽 끝이 황해도 수안이라고 한다. 근거로 <한서지리지>를 대고 있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이나바는 “<한서지리지>를 보면 이는 의심할 바가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 소장은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서지리지>는 물론 <태강지리지>등을 보면 현재 하북성 노룡현 갈석산 일대가 만리장성 동단 끝이라고 나온다.

여기에 낙랑군 수성현이 있다고 한다. 그는 중국 1차 사료들이 모두 이곳이 낙랑군 수성현이라고 나오지, 북조선 평양일대가 낙랑군이라고 하는 사료는 “빵개”라며 강단사학계를 꾸짖었다.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의백학교에서 처음으로 바른역사 회복위한 출판기념회를 갖게 되어 기쁘다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어 오늘날 역사학을 장악한 강단식민사학계의 뿌리, 이병도 실체를 벗겨냈다. 흔히 이병도 ‘박사’라고 부른다. 정식 학위를 받은 학자라는 인상이 짙다. 그런데 이 소장은 그가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이병도 박사학위 논문이 서기1952년에 낸 <고려시대의 연구>인데 이미 서기1948년에 을유문화사에서 <고려시대의 연구>책이 나와 있었다고 한다. 또 지도교수도없고 누가 심사논문 심사했는지 나와있지 않다고 한다.  또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말도 없다고 한다.

이 소장은 "박사학위 논문 나오기 이미 4년전에 나온 책가지고 박사학위 받는 것이 말이되느냐."며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일갈했다. 자신이 박사학위 논문 쓰고 자기가 통과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수준의 친일부역 식민사학자를 학문 비조로 숭배하고 있는 세력이 지금 우리나라 역사학을 장악하고 있는 역사학계라고 평가했다.

이를 토대로 남과 북을 합쳐 역사학분야에서 정식 박사학위 논문을 최초로 받은 것은 북조선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라고 주장했다.

리지린의 논문은 북경대학교 저명한 역사학자인 고사변 학파, 고힐강에게서 받은 것이다. 이 소장은 남한 강단식민사학계가 얼마나 파렴치한 지도 밝혀냈다. 그들은 낙랑군 평양설을 절대불변의 학설로 고수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내놓은 자료를 그대로 쓰고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들은 북한 평양일대에서 나왔다는 고고유물을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현재 강단식민사학이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해방 후 북조선에서는 평양일대에서 3천여기가 넘는 무덤군을 발굴했다. 남한 강단식민사학이 이것을 이용했다. 일제치하 조선총독부에서 발굴한 것 보다 훨씬 많은 무덤 떼가 나왔는데 모두 낙랑군 관련 무덤이고 중국풍이라고 선전했다.

해방 후에도 낙랑군 유물, 유적이 나왔으니 평양이 한나라 식민지배기관 낙랑군임이 더욱 확실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북조선이 내놓은 자료를 근거로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강단식민사학계가 이제 막 역사학으로 밥벌이하기 시작한 안정준, 기경량, 김재원, 위가야 등 젊은 학도들을 내세워서 하는 소리다. 이들은 식민사학과 한 패를 이루고 있는 조선일보 등 언론들이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이름 붙여준 식민사학 5세대들이다.

▲허성관 (사)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상임대표가 <리지린의 고조선연구>가 해역되어 나온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장은 이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북조선 학계가 내놓은 자료는 이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발굴된 3천여기 무덤과 거기서 나온 유물은 중국 한나라 풍이 아니라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고조선 것이거나 문헌사료로 증명되는 최씨의 낙랑국 것이라고 북한학계가 발표했다고 한다.

이 소장은 북조선 학계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과정도 소개했다. 서기1949년 벽초 홍명희 아들이 <역사제문제> 학술지에 발표를 통해서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기 시작한 이래 서기1960년대 초까지 역사학과 고고학자들이 상호 치열한 토론과 논쟁 끝에 청산했다고 한다.

고고유물에서 일제가 남겨놓은 평양일대 낙랑군 유물을 가지고 여전히 낙랑군 평양설이 살아있었는데 대륙 요서등지에서 발굴되는 비파형 동검 등 새롭게 발굴되는 고고유물들이 받아 들여 지면서 이것도 극복했다고 전했다.

벽초 홍명희 아들이 당시 내세운 식민주의 역사학 청산은 크게 세 가지라고 제시했다. 일제가 단군을 말살했다. 평양을 중국 한나라 식민통치기관 낙랑군이라고 했다. 임나를 가야라고 했다.

이 같은 것이 과연 맞느냐는 의문을 들고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극복했다고 한다. 해방 된 조국에서 새 나라를 열면서 마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이 문제를 북조선은 이행했다.

이날 이 소장은 낙랑군 평양설이 얼마나 날조, 왜곡되었는지 세키노타다시(關野貞) 일화를 들려주었다. 세키노는 동경제국대학 건축학과 나온 사람이다. 그는 대일항쟁기 초기 우니나라 고적을 조사하여 도록을 남겨 놓았다. 또 낙랑군 평양설 뒷받침하는 고고유물발굴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갱단사학'이 단재 신채호 등이 세운 민족사학을 부정하고 증오하는데 그럼 일본민족주의 사학을 하자는 것이냐, 아니면 중화민족주의 동북공정하자냐는 것이냐며 제도권 강단사학을 향해 반민족행태를 꾸짖고 있다.

그런데 그가 남긴 <관야정일기>라는 책을 보면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거금을 받아 중국 북경 유리창 골동품가에 가서 유물을 대거 사들인다. 한나라시대 낙랑군 유물을 극력 수집해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갖다 주었다고 나온다.

이후 평양일대에서 낙랑군 유물을 모두 우연이라고 하면서 발굴한다. 이 소장은 이 같은 사실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이냐며 낙랑군 평양설이 얼마나 허구인지 비판했다.

이 소장은 이날 우리나라에는 세 가지 역사관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민족주의 역사관, 유물사관, 식민주의 사관이다. 북조선도 이렇게 본다고 했다. 반면에 남한에서는 민족주의 사관, 유물사관, 실증주의 사관으로 나눈다고 했다.

이병도 제자 이기백이 이 이론을 세운이래 고수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단식민사학은 자신들을 실증주의 사학이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웃기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모든 역사학이 실증에 기초하고 있는데 강단식민사학은 마치 자신들만이 제대로 역사학을 하는 냥 실증주의 사학을 자신들의 고유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면박했다.

▲이 날 출판기념회에는 비가 쏟아지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강당을 다 채우고 부족할 정도로 시민독자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뤘다.

한편 이날 북한학계가 극복한 이른바 ‘임나일본부설’도 비판했다. 남한 학계는 임나일본부설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지적했다. 대놓고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말을 바꾸어서 주장한다.

또 고대에 일본을 강력한 나라로 설정하고 당시 정권인 야마토왜가 우리나라 남부에 군사 활동을 했다거나, 임나가 가야라고 고수하는데 이는 사실상 임나일본부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남한 학자로 노태돈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김현구 전 고려대 사학과 교수, 김태식 홍익대 현 교수 등을 꼬집었다. 이 소장은 이 같은 사태를 ‘임나일본부가 재상륙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 소장은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가 단순히 일제식민사관을 극복한 책이 아니라 고려시대, 이조선시대의 중화사대주의 유학자들의 사관도 극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북조선이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주체성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이 역사관을 바로 세운 것이 이유가 아니겠는가 라고 강연을 마무리 했다.

또 남한이 식민주의 사관을 극복하면 남북한이 역사학에서 민족공동성 회복을 선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의백학교 출판기념회 행사장 입구에서 관계자들이 독자들에게 책을 판매하고 있다. 이날 <리지린 고조선연구>와 윤내현 전 교수의 <고조선연구>를 내놨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한편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 이종찬 전 국정원 원장,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참석해 인사말과 축사를 했다.

손윤 이사장은 중국 북경지역 답사를 통해서 안 사실을 소개하면서 우리역사 강역은 북경까지라고 말하는 모택동 어록을 봤다고 전했다. <리지린의 고조선연구>에서도 같게 쓰고 있다며 이 책의 가치를 강조했다. 또 ‘이덕일과 그 일당’들의 노력으로 식민사관 극복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고 덕담했다. 이어 의백학교에서 바른 역사를 세우는데 첫 출판기념회를 갖게되어 보람을 느낀다고 피력했다.

이종찬 전 원장은 강단식민사학을 ‘갱단’이라고 표현하며 민족주의를 무슨 원수처럼 보는데 그럼 ‘일본민족주의, 중화민족주의 동북공정하자는 것’이냐며 강단식민사학의 반민족 역사학 행태를 사납게 꾸짖었다.

또 리지린의 <고조선연구>와 내용이 상당히 같다는 이유로 강단식민사학이 윤내현 전 교수를 ‘안기부’에 고소해서 국가보안법 조사를 받게 했다며, 이 자리에 오신 분들도 잘 못하면 국가보안법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강단식민사학의 행태를 풍자비판했다.

허성관 전 장관은 이번에 출간된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바른역사를 목말라하는 일반시민대중보다 강단식민사학자들이 먼저 보아야 할 책이라고 일갈했다. 지금처럼 전산화 되지 않은 시대에 관련 사료를 모두 섭렵하여 썼고 고힐강이라는 철저한 중화주의 학자에게서 검증받아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겨울을 알리는 빗줄기가 거센 가운데에서도 강당을 모두 채우고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시민대중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었다. 입구에서는 이날 출판기념회 책, <리지린의 고조선연구>와 이와 쌍벽을 이루는 윤내현의 <고조선연구> 책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어느 독자는 두권을 샀는데 하나는 지인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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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재 2018-11-10 12:07:20

    만주국지도 곧 지금의 중국지도 표기를 그대로 신뢰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중국 지리지를 논리적으로 해석했다고 할 수 있는가?

    요동군 동쪽 끝에 축성한 塞를 나간 후 浿水를 건너 조선 땅에 들어가 준왕에게 망명을 하였는데 그 패수가 우북평군 백랑.석성현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요서군 유성현 북쪽을 지나 요동군 방현에 이르러 대요수로 흘러드는 백랑수 곧 요동군 서쪽 끝으로 흘러드는 물길이라고?

    그런 지리지 인식으론 조선역사 풀어내지 못한다.
    이지린은 <한서/지리지> 다시 공부해야 한다.   삭제

    • 신석재 2018-11-10 12:00:19

      신채호를 이지린.북한 역사학의 뿌리라 하는데 틀렸다.
      신채호의 지리인식과 이지린의 것과는 천지차이다.

      즉 신채호가 패수를 해성의 어니하라고 한 것은 고대의 요하가 란하라는 전제에서 나온 비정이기 때문에 해성은 지금의 란하 중류 동쪽인 지금의 평천과 반가구수고 사이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지린은 신채호가 국경 패수로 비정한 어니하를 왕검성 패수로 인식하고 국경패수를 <한서/지리지><수경주>의 대요수 서남쪽 지류인 백랑수로 비정한다.

      대단히 잘못된 해석이며 무지.무식한 비정이다.
      더군다나 일본이 조선역사를 축소하려고 조작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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