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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하랬더니, 일본, 중국학 숭배?한국학중앙연구원 식민지근대화론 주장하는 '뉴라이트' 사관 그대로 유지하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05.05 23:55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체를 밝혀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이 기관의 연구과제에 맞게

일제식민사학과 싸운 독립투사, 민족사학자를 기리고,

우리역사를 파괴한 조선총독부 식민사관과 그 부역자들을

비판한 연구성과를 제출했다.

그런데 민족사학을 높이고 친일부역사학자을 비판했다고

출판불가 폐기처분 내렸다 

▲서기2018.05.04. 서울 종로 태화빌딩에서 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의 바른역사 학술원에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주제발표에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주한 독립운동가활동 연구사업이 조선총독부식민사관에 의해 어떻게 좌초되었는지 밝혔다.

각 나라마다 국학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국학은 그 나라, 그 사회 정체성을 확립하는 학문이다. 자기가 누군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어디서 왔는지 밝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학은 역사가 빠져서는 안 된다. 역사 주체는 인간이고 인간 확장이 민족이다. 따라서 역사는 민족이 걸어온 길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는 역사학 집단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책임지고 있다는 강단주류사학이다. 이들은 민족사학을 극도로 혐오하고 금기시 한다. 그래서 '단군'이나 '민족'이라는 말만 나오면 신경이 곤두서고 신경질을 낸다. 때문에 대일항쟁기 독립투사들이 일제역사침략에 맞서 확립해 놓은 민족사학을 역사학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 이라고 매도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내세우는 역사학은 무엇일까. 이미 본지本紙에서 50회 이상 기획취재를 통해서 고발해 오고 있듯이 외국산 수입 역사학이다. 일본사학이거나 중국사학이다. 일제조선총독부가 황국사관에 따라 만들어 놓고 간 식민사학이거나 우리 땅 복속을 목적으로 하는 중화주의 사학이다. 그리고 식민사학은 일제 황국사관에서 나온 것으로 일본민족주의 사학이다. 마찬가지로 중화주의 사학도 중화사관에 따른 중국민족주의 사학이다.

그런데 우리 고대사를 보는 눈은 식민사학과 중화사학이 같다. 특히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이 어디에 있었느냐고 할 때 현재 북한 지역 일대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이에 국내 강단주류사학이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들 주장이 맞다고 추종하고 있다. 일본산과 중국산 역사학을 우리 역사라고 주입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들 역사학을 들여다보면 일본민족사학, 중화민족사학임이 드러난다. 이들은 그래서 일본, 중국 민족주의 사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대척점에 서 있는 민족사학을 기를 쓰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실임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서기2018.05.04. 서울 종로 태화빌딩에서 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상임대표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장관) 산하 ‘바른 역사 학술원’이 개최한 상반기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역사가 우리민족주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민족주의, 중국민족주의 역사라는 사실을 고발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주제발표는 국가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공모한 연구 과제를 다루었다. 지난 박근혜 정권 때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공모한 연구과제에 응모하여 당첨되었다. 연구과제는 대일항쟁기 독립투사들의 민족주의 사학 연구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비판이 주를 이룬다.

이 연구에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박사, 김병기 박사, 숭실대 임종권 교수, 국학연구소 임찬경 박사가 참여했다. 이날 발표자들에 따르면 연구주제에 맞게 충실하게 연구 과제를 완성했다.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심사위원들의 납득할 수 없는 심사평을 내세워 낙제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과 이 기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식민사학자를 비판했다는 것이 낙제판정 주요 근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발표자들은 자신들이 수행한 연구과제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한국학중앙연구원과 낙제판정을 내린 심사자들의 실체를 벗겨 나갔다. 발표자 네 명 모두 조선총독부 식민사관과 이를 이 땅에 뿌리내린 이병도, 신석호를 집중 비판했다.

또 이들 후학들이 장악하고 있는 우리역사학계를 해부했다. 우리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우리민족사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 민족사학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덕일 바른역사 학술원장(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사례를 들어 비판하고 있다.

먼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역사 시작부터 장애물로 박혀 있는 이른바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 위치를 다루었다. 한사군 위치 특히 한사군 중심 군인 낙랑군 위치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역사는 주인역사냐, 노예역사냐로 갈린다.

그런데 현재 우리역사는 노예역사로 굳어져 있다. 현행 우리 국사교과서가 이렇게 만들어져 있다. 친일식민사학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를 동원하여 낙랑군 위치를 집중 왜곡, 날조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간사로 참여한 이나바이와키치(稻葉岩吉), 일제식민사학자가 왜곡, 날조를 주도했다. 이나바의 왜곡, 날조 수법은 도저히 학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비열했다. 현재 북한 평양을 낙랑군으로 만들기 위해서 당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1사료를 무시하거나 왜곡과 억측을 일삼았다.

낙랑군에 속하는 현 중에는 수성현이라는 것이 있다. 수성현에 진장성(만리장성) 동쪽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나바는 진장성 동쪽을 황해도 수안이라고 우긴다. 이 소장에 따르면 수안의 ‘수’와 수성현의 ‘수’가 비슷하다는 것이 근거다. 그래서 지금도 이 설에 따라 중국은 진나라 장성이 황해도까지 왔다고 그려 세계에 홍보하고 있다.

이 설을 이나바와 함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부역한 이병도가 이어 받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진장성 끝과 관련된 수성현을 이병도는 “황해도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 로 정해 버렸다. 역사학은 사료가 기본인데 전혀 사료 근거 없이 순전히 자신 생각만을 가지고 수성현 위치를 정한 것이다.

그런데 낙랑군 수성현과 관련된 가장 이른 시기 중국 1차사료는 일관되게 수성현이 진장선 동쪽 끝이라거나 갈석산에 있다고 한다. 진장성은 <사기> 조선열전이나 <한서> 지리지, <진서>지리지에 따르면 현재 하북성 산해관 서쪽인 난하 하류 동쪽이다. 실제 중국 송나라 이전 고지도에서도 이곳으로 그려놓고 있다. 더구나 갈석산과 같은 곳에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진나라 장성이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다.

수성현 위치와 관련해서 이외에 패수라는 강 위치도 뜨거운 쟁점이다. 그러나 이 소장에 따르면 패수도 결코 현재 북한 대동강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나바는 대동강이 패수라고  우기고 있다.

이 소장은 이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지적, 비판했다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이 연구성과를 폐기시켰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국책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도대체 조선총독부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할 수 있겠냐며 개탄했다. 동북아역사재단에 이어 두 번째로 매국반역기관으로 밝혀지는 시간이었다.

▲이나바이와키치(稻葉岩吉). 그는 조선총독부가 주도하는 우리역사 파괴작업 간사로 참여했다. 주요 쟁점마다 그가 간섭하여 우리역사를 노예역사로 몰아갔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숭실대학교 임종권 교수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과 이를 잇고 있는 국내 강단주류식민사학계가 금과옥조로 내세우고 있는 ‘실증주의’ 사관 허구성을 밝혔다. 임 교수에 따르면 실증주의사관은 독일에서 나왔다.

랑케라는 학자가 서기19세기에 독일을 역사를 통해서 하나로 뭉치게 할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실증주의는 각자 개성을 존중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특수한 문화나 언어를 인정한다. 또 민족의 특별성을 긍정하며 역사연구대상을 민족으로 삼는다. 따라서 이러한 사관은 이것과 반대되는 개념은 제외된다. 개별성을 파괴하는 획일성, 일률성, 전체성 등이다.

일본은 명치유신이후 서양 역사학을 수입하여 일본제국주의를 만들어 나갔다. 특히 독일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학을 도입했다고 한다. 랑케 제자인 리스라는 사람을 초빙해서 실증주의 역사학을 배웠다. 일본 도쿄 제국대학에서 이루어 졌다.

그런데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정반대로 나갔다고 한다. 여러 나라를 거느리는 제국으로 나가다 보니 점령한 식민지의 특수성, 독립성, 개별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제국을 운영하려면 통합성, 전체성, 보편성, 일반성을 내세워야 했다.

이는 식민지 역사나 문화는 인정할 수 없고 일본제국 역사와 문화로 통합함을 뜻한다. 과거에는 중국이 주도했을지 모르겠으나 당시는 일본제국이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 주요 근거다. 일제가 내세운 실증주의 역사학이라는 것이 결국 일본제국 역사를 만들어가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증주의 역사학은 말 그대로 사료나 유물 등을 통해서 실제 증명해서 만들어가는 역사다. 그런데 앞서 실증주의 역사학자라고 하는 이나바와키치가 하는 역사학을 보면 정반대다. 어떤 역사학 근거도 없이 상상과 추정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나바를 이은 이병도도 “보고싶다” 는 순전히 자기 생각으로 역사학을 하고 있다.

▲임종권 숭실대교수가 서양 실증주의 사학과 일제 실증주의 사학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일제 실증주의 사학은 변질된 것인데 이것을 우리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이어 받았다고 일갈했다. 우리 역사는 아직도 일제치하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시각을 지금 국내 식민사학계가 그대로 이어 받아 전국민에게 국사교과서를 통해서 주입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은 식민사관이 아니며, 실증주의 사학이라고 우기고 있다.

지난 서기 2016.03.부터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진행된 한국고대사학회 시민강좌에서 두드러졌다. 한국고대사학회(회장 하일식 연세대학 사학과 교수)는 식민사학계 중추를 이루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시민강좌 첫 회 강사로 나온 전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 교수가 실증주의 역사학을 강조했다.

그는 김철준의 제자이고 김철준은 이병도의 제자로 밝혀지고 있다.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적자다. 결국 노태돈 전 교수가 정통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계승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그가 낳은 후학들이 전국 각 주요대학에 교수로 포진해있다.

대표학자가 한국교원대학교 송호정 교수다. 또 그들은 다시 강사나 대학원생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 한국 역사학은 이렇게 변질된 실증주의 사학으로 무장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의 다른 이름이다. 현행 국사교과서는 이들 식민사관 결정판이다.

결국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만들어 우리 국학으로 국가 정체성과 민족 혼을 바로 세우라고 했더니, 일본국학, 중국국학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여 국가를 파괴하고 있다.

반면에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이 사비털어 '국학원', '국학연구소' 등을 만들어 국학을 바로 세우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광복된지 72년이 넘었다고 하나 이 나라는 여전히 일제치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침투한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고발한다 취재 1부 끝).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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