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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 가슴에 살아있는 단재 신채호, 잊지 못하다차디찬 여순감옥서 순국한 단재 신채호 82주기 추모식 엄숙하게 거행되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02.22 23:57

 

"왜놈이 만든 호적戶籍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다,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

어릴적부터 남달리 뛰어났던 단재,

출세길을 버리고 독립투쟁과 일제 역사침략에 맞서 응전하다

대쪽같은 곧은 절개,

일제 침략 범죄에 한치 양보도 없었다

살 수 있었음에도 타협을 거부하다

 

▲서기2018.02.21. 충북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 단재 영당, 묘역에서 단채 신채호 선생 순국 82주기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매서운 찬 바람 속에서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엄숙하게 추모식을 거행했다. 추모식장 아래에 자리잡은 단재가 할아버지에게서 수학한 고드미 마을이 추모식을 지켜보고 있다.

입춘 지난지 보름이 넘었다. 그래서 인지 완연한 봄날씨다. 서기2018.02.21.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차디찬 요동반도 여순감옥에서 일제의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순국한지 82년 되는 날이다. 순국82주기 추모식이 열리는 충북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 단재 영당과 산소일대 칼 바람은 단재가 순국한 차디찬 여순 감옥을 말해 주는 듯 서울 봄 날씨를 거부했다. 매서운 찬바람이 살갗을 할퀴었다. 칼 바람이 고드미 마을 계곡을 타고 엄습했다.

서울에서 오는 동안 차가 막혀 추모식 정각에 맞추지를 못했다. 도착했을 때는 단재 사당 제례는 이미 끝났고 단재 산소에서 추모식이 곧 시작될 참이었다.

각계 각층의 인사들과 시민사회단체 인사들 및 추모식 행사를 돕는 학생들 포함 1백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추모식이 엄숙하고 장중하게 진행되었다.

▲ 단재 묘역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2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경향각지에서 단재를 기리고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상식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 집행위원(이하 사업회)이 행사사회를 맡았다. 국민의례와 내빈소개가 끝나고 이건흥 사업회 공동대표가 단재선생 약력을 보고 했다.

단재는 서기1880.12.08. 대전에서 출생했다. 서기1885년 부친이 돌아가시자 할아버지가 계신 청주시 상당구 고드미 마을로 옮겨와 할아버지 서당에서 공부했다. 공부하면서 단재는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9살에는 중국 정통사서, <자치통감>을 완파했다. 또 13살 때는 동양학의 정수, <사서삼경>을 완독했다. 또 서기1898년에는 당시 국립대학, 성균관에 입학한 가운데 독립협회운동에 참여했다. 이어 서기1905년에는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당시 26세로 출세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출세를 마다하고 <황성신문>에 들어가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하는 민족계몽투쟁에 투신했다.

서기1910년 나라가 망하자, 중국으로 망명해서 청도회의에 참석했다. 이러한 가운데 서기1912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들어가 <권업신문> 주필을 맡으면서 안중근, 홍범도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을 주도한다. 서기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할 때 임시의정원 의원을 맡아 임시정부 활동 기초를 닦는다. 단재는 이러한 독립투쟁외에 소설 <꿈하늘>을 집필하여 소설가로서, 또 시도 지어 시인으로도 활동한다.

▲ 단재 신채호 선생 추모식에서 유인태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상임대표가 헌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단재가 남긴 업적은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제는 조선식민통치의 근간으로 우리역사 왜곡, 날조에 광분했다. 일본제국 지방사로 우리역사를 만들어내어 주입시킴으로써 독립투쟁을 원천에서 봉쇄하고 식민지배 정당성을 설파했다. 일제는 강점 직후부터 조선총독부 산하 중추원에 조선반도사 편찬위원회를 만들었고 나중에는 이를 확대 개편해서 총독부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보다 치밀하게 우리역사를 침략, 파괴했다. 그 결과물이 <조선반도사>와 <조선사>다.

이에 단재는 혈혈단신으로 만주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고 가능한 모든 사료를 섭렵하면서 일제의 역사 침략에 응전했다. 동시에 일제침략을 불러온 유학자들의 사대주의 역사관도 준열하게 비판했다. 특히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두고 고구려 고분유적을 한번 둘러보는 것이 <삼국사기>를 1만번 보는 것 보다 낫다고 외쳤다. 김부식의 사대주의 사관이 우리역사를 망쳤다고 통탄했다. 그리고 고적답사와 사료연구를 바탕으로 <조선상고사>를 집필했다. 이날 단재 약력을 보고한 이건흥 사업회 공동대표는 <조선상고사>는 피눈물로 쓴 우리역사라고 목놓아 외쳤다. <조선상고사>는 독립투쟁의 최전선이 역사수호임을 잘 알고 있는 단재의 피눈물나는 투쟁이라고 절규했다.

▲ 단재 사당 옆 단재 공원에 조성된 단재 조형물. 책을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 민족사를 세운 역사가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단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고 외쳤다.

단재는 서기1928년 무정부주의자동방연맹 국제위체 위조사건으로 대만에서 일경에 체포된다. 그 후 대련으로 압송되어 서기1930년에 대련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 받고 여순감옥에 갇힌다. 그런데 만기 출소 3년을 앞두고 수형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단재를 내 보내기로 한다. 그간의 혹독한 고문과 학대로 도저히 수형생활을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일제는 석방하면서 단재를 보호해줄 보증인을 세우라고 한다. 이 때 고성신시 문중에서 보증을 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친일부역자로 변절한 자들이었다. 단재는 단호히 그들의 보호를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결국 뇌일혈로 쓰러졌고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만다. 이 때가 서기1936.02.21. 하오 4시 20분이었다.

이 대목을 전하면서 이건흥 사업회 공동대표는, “여러분, 우리가 일제와 싸울 때 조국이 분단되라고 싸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순감옥은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안중근 3명이 죽은 그 감옥입니다.” 라며 서러움에 복받쳐 목이 매였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평창올림픽서 남북 공동대표가 함께 뛰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선열들이 꿈꿔왔던 조국입니다. 우리 함께 노력해서 민족 통일 같이 이루어 나가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라는 희망으로 단재 약력소개를 마쳤다.

▲ 이건흥 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단재 선생 약력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단재의 숭고한 독립투쟁 희생이 오늘날 남북분단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지 않냐며 울부짖었다. 행사장도 숙연해 졌다.

당시 순국 소식을 들은 단재 부인, 박자혜 여사가 단재에게 바치는 절규를 보자

-가신 님 단재 영전에-

“밤이 길어가고 있소, 우리식구가 함께 모인 좁은 방, 거친 창문에 달빛이 환하게 물들었소. 수범이와 두범이 모두 잠들었소. 조금 전 까지 내가 울면 따라 울더니 이제 모두 잊고 세상모르게 자고 있습니다. 숨소리만 쌔근거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두고 가신 당신의 몸과 영혼의 처참한 잔뼈 몇 개를 담은 궤짝을 부둥켜안고 쓰러져 울고 있나이다. 이 작은 궤짝은 무서움도 괴로움도 잊은 채 싸늘하니 말이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뜻을 이루지 않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왜 이렇게 못난 모습으로 내게 오셨소, 분하고 원통하지도 않소, 당신의 원통하고 외로운 혼은 지금 낯선 나라, 거친 들판에서 무엇을 부르짖으며 헤매고 있단 말 인가요!”

싸늘한 뼈 몇 조각으로 돌아온 신채호 선생의 미망인, 박자혜님이 ‘가신 님 단재 영전’에 바치는 ‘통곡’소리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 가신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우니까 같이 덩달아 우는 단재의 어린 자식들의 모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서기2016.06.13.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 기사 인용).

▲ 단재 추모식을 마치고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일제가 단재에게 죄를 지었다고 적용한 법을 보면 '치안유지법'이라는 것이 있다.  단재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이 법이다. 이 법은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만들어 낸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랄한 법이었다. 일제 순사가 지나가다가 눈빛만 이상하기만 해도 잡아 갈 수 있는 법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이 법이 지금도 일제가 남겨 놓은 잔재로 남아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이 시대에 맞게 바꾼 것인데, 더욱 정교하게 개악되어 국민의 사상과 표현,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고 지적받는다. 더구나 통일이 민족 대세인 이 시대에 분단과 통일을 가로막은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강고한 철책이라고 한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독재정권유지와 친일부역자세상 수호를 위해 이 법을 마구 휘둘렀고 지금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부일숭미 지배체제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라는 비아냥 섞인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 유인태 단재기념사업회 상임대표가 헌사를 하고 있다. 뒤로 단재 영정과 묘소가 추모식을 바라보고 있다.

이어 기념사업회 유인태 상임대표가 단재에게 헌사獻辭를 했다. ‘우리가 저마다 단재가 되어’ 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유 상임대표는 단재를 마주하고 대화를 하듯이 글을 올렸다. 그의 헌사에는 단재의 일생과 정신 그리고 대일항쟁의 역사 및 우리의 다짐과 기도가 압축되어 녹아 있었다. 그는 “일제 강점과 분단, 전쟁으로 뒤틀린 풍속과 제도를 바로잡는 일이 참 버겁다고 느낄수록, 독재와 자본 침탈로 민생이 곤란할수록 일도양단一刀兩斷 명쾌한 당신의 일갈이 듣고 싶어집니다.

이기심에 눈멀어 대의를 외면하고 불의앞에서 비굴하여 도망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음을 통감할수록 ‘단재’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라고 고백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실상을 드러냈다. 불의와 모순, 거악에 타협하거나 굴하지 않는 단재의 대쪽같은 정신이 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단재 정신으로 험난한 이 시대를 헤쳐나가자고 호소했다.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이 피우진 국가보훈청장을 대신해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어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이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를 대신 밝혔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을 통해서 단재를 위대한 독립투사, 참 언론인, 역사학자로 기렸다.

“단재선생님은 위대한 독립투사였다. 당시 나라잃은 고통으로 눈물 흘리던 우리민족에게 독립사상을 고취 시키고 애국계몽활동을 펼친 참 언론인이다. 조선상고사로 근대민족사를 확립하고 한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역사학자다. 또 광복단체를 결성해서 일제와 결연히 맞서 투쟁한 추앙받는 독립전쟁의 사표다. 국권회복과 조국광복에 투신한 희생은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한 빛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라고 평가했다.

이어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더욱 발전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후세에게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지혜를 달라”고 빌었다.

▲서상국 광복회충북지부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어 서상국 광복회충북지부장이 추모사를 단재 영전에 올렸다.

서상국 지부장은 우리가 일제에게서 풀렸다고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분개하면서 단재의 독립투쟁정신이 지금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근년에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일제는 지금도 침략역사를 부정하고 독도침략을 일삼고 있다. 일본 총리대신, 아베신조는 악질 전범들이 묻혀 있는 신사를 참배하고 과거 일제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국력을 기울여 헌법개정과 군비확대에 광분하고 있다. 또 안으로는 산업화, 민주화 과정속에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졌다.

이런 가운데 이웃과 더불어 잘 살자는 홍익인간정신이 외면받고 윤리도덕이 추락하고 있다. 그러나 단재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주변국가 역사침략에 적극 대처하고 민족 평화와 통일로 이질화, 양극화를 해소하자. 그러니 단재선생께서 이런 후손들의 노력에 힘을 주시고 영원한 안식을 비오니 부디 영면하소서.” 라고 빌었다.

▲청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재를 추모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헌사와 추모사가 끝나고 청주여자고등학교 중창단 ‘그 이름’이 단재에게 바치는 노래를 불렀다. 먼저 독립군가를 힘차게 불렀다 이어 ‘단재의 노래’를 바쳤다. 추운 날씨에도 젊은 학생들의 살아있는 노래가 단재 묘역을 휘돌았다. 차가운 칼 바람도 혼을 울리는 소리에 숨을 죽였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단재 묘에 국화를 바치는 행사가 이어졌다. 참석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차례로 꽃을 바쳤다. 이어 기념촬영이 있었다. 행사장 아래 큰 마당에는 기념오찬이 마련되었다. 고드미 마을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들이 이른 아침부터 준비한 따듯한 음식과 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옆에는 추위를 녹이는 큰 모둠 장작불이 불타고 있었다. 불 냄새가 아련한 기억을 끌어 올렸다. 우리에게는 마을 큰일을 동네 사람 모두 힘을 합해 치루는 풍속이 있다. 어릴적 동네에서 맡은 장작불 냄새를 여기서 또 맡으니 그 때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 마을 대사를 치르던 기억이 솟아 난 것이다. 큰 일을 함께 치루는 마을 공동체 홍익인간 정신이 이렇게 끊이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 단재를 안장한 묘역과 사당 전경. 파란 천막이 보이는 곳이 추모식을 마치고 손님들에게 음식과 술을 대접한 마당이다.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음식을 대접에 분주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단재 영당에 차려진 제물을 한 보따리 얻었다. 후덕한 아주머니께서 제물을 정리하면서 주셨다. 단재 선생 혼이 내린 제물을 먹음으로써 그 정신을 잇겠다는 다짐이었다.

광복된 지 73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 우리는 광복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헌사와 추모사를 올린 인사들 말 속에서도 확인되듯이 그렇지 않다는 자조석인 말이 흘러나올 만큼 회의가 인다. 뜨거운 피를 뿌리고 살을 찢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조국광복투쟁에 다 바쳤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은 이런 희생이 머물 곳이 없다. 특히 단재가 모든 것을 바쳐 이룩해 놓은 <조선상고사>로 대표되는 민족사관은 조선총독부 부역자와 그 후예들에게 살해당하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고대사학회(회장, 연세대 하일식)', '한국사연구회(회장, 한양대 박찬승)'가 있다. 동북아역사재단도 가세하고 있다. 현재 이사장은 김도형인데 한국사연구회장을 역임했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매국역사지도로 판명난 동북아역사지도집제작사업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 단재영당에 차려진 제사음식. 제사가 끝나와 추모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제물을 정리하는 아주머니가 음복하라고 제물을 싸 주셨다.

민족혼을 찾아 기리자고 만들어진 대한민국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장었던 권 아무개는 단재 신채호를 이렇게 죽였다. 그는 한 학술모임에서, “단재 신채호를 세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다.” 라고 했다. 이런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집단과 세력들이 지금 우리 국사학을 장악하고 있다. 정확하게 조선총독부가 우리민족을 말살하고 영원한 식민 지배를 위해서 만들어낸 식민사학을 우리역사라고 주입시키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 정부가 한해 2천여억원을 들여 학교국사교과서를 통해서 들이 붓고 있다.

▲ 김도형 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사진: 동북아역사재단). 그는 최근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사업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일보, 서울경제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미 매국지도로 판명나 폐기된 이 사업을 다시 벌이겠다고 했다. 이 지도제작 사업에는 한국고대사학회 및 김도형 이사장이 회장으로 활동했던 한국사연구회 소속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런데 이들은 서기4세기까지 북한이 중국 땅이라고 그렸고, 독도를 삭제했다. 또한 서기4세기까지도 신라, 백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렸다. 역시 일제가 만들어준 고려국경선을 의주와 원산만 선으로 그려놨다. 지도 전체가 고대사 부터 현대사까지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주장을 그대로 베껴놨다. 이들 뿌리가 조선총독부 조선산편수회 후학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도제작사업을 새로 부임한 한국사연구회 회장 출신 김도형 이사장이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 서기2018.02.08. 김도형 이사장이 활동했던 한국사연구회가 주동하여 감사원 감사청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북아역사지도집 폐기를 '우수사업 좌초'라고 하면서 재개해달라는 감사청구였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어제 기다렸다는 듯이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이 지도제작 사업 재개를 선언했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적폐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는

그 나라 국민 변천과 소멸성장의 실제 발자취이니,

역사가 있는 나라는 필히 흥하나이다.”

그러나 단재의 피 맺힌 이 절규에도 불구하고, 광복된 지 73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 역사가 없다. 조선총독부 일본제국사가 우리역사로 둔갑한 채 횡행하고 있을 뿐이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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