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도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의 과정'

'윷놀이도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의 과정'

한문수 / 성균관석전교육원 교수

 

지난 ‘05년 6월4일 이화여대에서는 저명한 각 대학교수 및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죽음학회'가 발족, 죽음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했다. 첫 학술대회의 제목은 <죽음, 그 의미와 현실 : 한국적 맥락에서>였다.

고대사의 기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죽음이란 인간의 시간이 끝났다는 의미이고, 혼(魂)과 넋이 분리되는 사건이다.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맞으면 다시 새로운 시간을 부여 받기 위해서는 우주의 시계인 칠성(七星)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본래 회귀를 뜻하는 '돌아가셨다'는 말로 표현했다.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 위에 올려 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혼비백산(魂飛魄散 - 혼은 비상하고, 백은 흩어진다)한다.

▲괴마 임백령의 칠성판(槐馬 林百齡의 七星板) 서기1546년-예아리박물관 제공

 

천지간에 모든 것에는 기(氣)가 있으며, 기가 소멸하면 죽음이 온다. 기는 정령(精靈)이며, 서양에서는 요정이라고 말한다. 예기(禮記)에 보면 '천자(天子, 황제)가 죽는 것을 붕(崩)이라 하고, 제후(諸侯)는 훙(薨), 대부(大夫)는 졸(卒), 사(士)는 불록(不祿 죽으면 녹을 받지 못한데서 나온 말), 서인은 사(死)라고 한다.

죽어서 침상에 있는 것을 시(尸)라 하고, 관(棺) 속에 있는 것을 구(柩)라고 한다. 새가 죽는 것을 강(降)이라 하고, 네 발 짐승이 죽는 것을 지(漬)라고 하며, 구난(寇難 외국의 침략이나 난리)에 죽는 것을 병(兵)이라 한다. 서경(書經) 홍범편에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康), 덕(德), 명(命)으로, 命은 '자기 집에서 일생을 편안히 마치기를 바란다.' 는 고종명(考終命)이다.

우리 민족의 최대 민속놀이인 윷놀이를 보자. 학자들에 따라 돼지(豚), 개(犬) 등 가축의 명칭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윷놀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이것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태어나다'를 '태'라고 하는데 그 고형(古形)은 '타'이고, '도'의 원형이다. 태어나서 머지않아 '게(기어 다니다)'하고, 이어서 '걸(걷다)'하게 된다. 걷게 되면 '윷(나아가다)'하게 되는 데, 결국 '모(墓)'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상여의 곡소리인 '어이 어이'는 임금님 수레인 어이(御車+多)로, 임금님이 나아가시는 길 즉, 어로(御路)이다. 이는 망자를 받드는 형식이며,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려는 산 자의 자위의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흥을 돋울 때 부르는 '을시구 절시구'의 노랫말에서 乙十口 節十口'의 '十口'는 태어남이요, 후렴의 '乙尸口 節尸口'의 '尸口.는 죽음이니, 생사를 가름 한다.

천부경에서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은 '하나에서 시작하여 끝남이 없는 영원히 이어진다.' 이니, 천국과 윤회사상으로 영과 육이 회귀되는 종교의 사후관과 맥락이 이어짐이다.

서기전 17세기 경 지중해 연안국 페니키아가 창안한 문자 '알파와 오메가'는 알파벳의 시원으로 '처음과 끝'을 나타낸다. 알파는 소뿔을 상형한 글로 처음에는 ‘V’자 형태였으나, 후에 아랄의 해가 떠오르는 태양을 상형한 글 모양으로 탄생이요, 오메가는 묘를 상형한 글 모양으로 죽음을 나타낸다.

또 '요람에서 무덤까지 (From the womb to the tomb)'의 womb은 자궁(子宮)이니 태어남이요, 무덤 tomb은 죽음을 말한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위고는 그의 저서에서 '오늘 내가 사는 목적은 싸우는 데 있다. 내일 내가 사는 목적은 이기는 데 있고, 일생동안 내가 사는 목적은 잘 죽는 데 있다'라고 했다. 이 또한 고종명(考終命)이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독설가였던 버나드 쇼는 자기의 묘비명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새겼다고 한다. 일생의 삶이 그리도 허탈함이었을까.

'아테나의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새로운 신을 섬긴다.'는 죄명으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이 얼굴을 감싸고 통곡하자, 소크라테스는 '웬 곡소리들인가, 이런 창피한 꼴을 보게 될까 봐 아낙네들을 먼저 보냈거늘, 사람은 마땅히 평화롭게 죽어야 한다고 들었네, 조용하고 꿋꿋하게 행동하게'라며 태연히 독약을 마셨다.

죽음에 대한 표현은 종교 마다 다른 용어를 쓴다. 불교에서는 열반(涅槃)이나 입적(入寂)이라고 쓴다. 두 말은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의미로, 석가모니와 고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불교에는 신라 때 자장(慈藏)스님이 시체 옆에서 몇 달간 머물면서 육신이 썩어 백골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수행, 도를 터득했다는 백골관(白骨觀)수행법이 있다.

천주교는 서거(逝去)를 선종(善終)이란 말로 썼다.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친다.'는 뜻으로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매년 11월을 위령성월(慰靈聖月)로 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세상과 이별한다.'는 뜻의 별세(別世)를 쓰기도 하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소천(召天)을 쓰기도 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누가복음(20:38)의 기록도 보인다. 민족종교인 천도교에서는 모든 생명은 바로 한울님, 곧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에서 온 것이며, 동시에 죽게 되면 이 우주의 커다란 생명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며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를 쓴다.

-한눌의 '고대사 메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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