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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교수,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녹아든 ‘원삼국시대’ 찬성 안한다?이현숙 교수, ‘신라의학, 전쟁통에 당나라 군대 들어와서 체계 갖추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10.21 12:42

 

이현숙 교수,

‘쥐손이풀, 삼국시대 이전, 원삼국시대에도 지사제로 사용되었다’

‘중국의학은 당나라 제국의 의학으로 신라, 백제 약재도 편재되었다’

역사학 전공했다고 하면서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 잘 모른다고 하다

윤용구가 전문가니 그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하다

 

우리나라 의학, 질병치료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그리고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와 관련, 의학사를 전공한 연세대 의학연구소 이현숙 연구교수가 답했다. 서기2017.10.19.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고대사학회 주최, 시민강좌에서 ‘한국고대 질병과 신라의학’이라는 주제로 이 교수가 연구 성과를 풀어놨다. 이 교수는 먼저 한국고대사학회의 지침에 따라 신라의학을 중심으로 강연준비를 했다고 분명히 했다. 이 교수는 최초의 의사는 무당이었다면서 질병치료는 주술과 경험칙을 가지고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 교수는 ‘다양한 제례의식과 간단한 약물을 가지고 질병을 치료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후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승려들이 인도에서 가지고 온 베다의학을 토대로 중국의학을 결합시킨 불교의학이 생겨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교가 이 땅에 정착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불교의술덕분이라고 추정했다. 역병이 창궐할 때 불교에서 이른바 ‘색다른 대응책’으로 민중들 마음을 끄는 과정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색다른 대응책이라는 것은 기적과, 이사 같은 초능력과 같은 치료책으로 보인다. 또한 왕과 귀족 같은 지배세력의 병을 불교승려가 치료해 줌으로써 불교가 정착하는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기2017.10.19.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학회장 하일식) 주최, 시민강좌에서 연세대 이현숙 교수가 신라의학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어 이러한 우리의학은 삼국통일전쟁을 기점으로 체계화 되고 선진화 되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당나라 군대가 한반도에 대거 상륙하면서 군사의학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당군이 전투 중에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했는데 신라가 어깨너머로 당군의 의료기술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신라가 의료체계를 보편화, 호환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 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던 의료체계가 당나라의 선진의료체계를 어깨너머로 배움으로써 당의 의료체계로 편입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이전의 의료는 무당이 주도했으며 경험칙과 주술에 의존했다고 했는데 이는 주먹구구식의 다른 표현이다. 무당시기의 의학은 계량화,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선진의료기술’수입을 이 교수는 6.25전쟁과 연계시켜 비유했다. 6.25전쟁에 미군이 고급군의관을 대거 투입했는데 이들이 부상자를 치료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의관들이 어깨너머로 열심히 배워서 현대 한국의술이 생겨났고 지금은 오히려 미국보다 수준이 높은 단계라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신라가 당나라 군대 의술을 삼국통일전쟁시기 어깨너머로 배워서 선진화 계량화시킬 수 있었다. 당군이 가세한 삼국통일 이후 신라가 당나라 의학을 수용해서 의학체계를 당나라 식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대표사례로 서기692년 신라가 의학대학 설립한 것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의학 표준화가 이루어 졌고 그 결과  보편성과 호환성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 한의학을 본격 수용하면서 우리나라 의학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의료전문가 집단이 생겨나고, 국가차원에서 양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오히려 6.25전쟁기 미군의술에서 생긴 일을  당나라 군대활동에 투영시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현재역사가 그러하니 고대역사도 그랬을 것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역사풀이는 일제식민주의 사관에서 자주 드러난다. 일제는 소중화 조선말 부패하고 발전가능성이 없는 모습을 우리역사 전체에 뒤집어 씌웠다. 특히 상고대에도 그랬다고 보았다. 그래서 우리역사가 처음부터 정체되어 있고 고립되어 외부의 자극이나 보호를 받아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논리로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었다.

한편 이 교수는 고구려 의학의 우수성을 언급했다. 삼국 가운데 고구려가 가장 먼저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면서 고구려 의료인들은 백제, 신라 외에 중국에 까지 가서 활약했다고 한다. 특히 고구려 침법이 발달해서 인근 국가에서 배워 갈 정도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이는 신라가 의학체계화라는 제도면에서 당나라에 뒤졌을지 몰라도 고구려는 달랐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교수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우리 의술은 중국 당나라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비록 고구려 사례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따라서 6.25전쟁당시 미군 의술을 삼국통일전쟁기 당나라 군사의학에 적용시켜 신라가 마치 어깨너머로 배워서 이를 바탕으로 의술을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 이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신라의학이 중국 당나라 제국의학체계를 따라갔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이 교수는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고대의학이 중국 영향 하에 중국화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서기11세기 중국 송나라에서 발간한 <경사증류비급본초> 라는 의학서를 기준으로 우리 의학을 풀어나갔다. 여기에 나오는 우리나라 약초들을 언급하며 상세하게 효능을 소개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약초가 토사자菟絲子다. 이 약초는 기력을 좋게 하고 체중을 늘려준다. 즙을 내서 먹으면 얼굴 주근깨가 없어진다고 한다. 또 기육이 보양되고 음기가 세지며 근골이 든든해진다. 음경도 차가워지면서 저액이 저절로 흐르며 소변을 찔끔찔끔 자주 누는 것과 입이 마르면서 쓰고 피가 차서 적이 생긴 것 등도 치료한다고 한다. 장기간 먹으면 눈이 밟아지고 몸이 거뜬해지며 오래 산다고 한다. 개울가나 못가, 들에서 자라는데 덩굴이 다른 풀이나 나무위로 뻗어 오른다. 9월에 열매를 따서 햇볕에 말려서 사용한다고 한다.

이 문헌에는 토사자는 조선 것이라고 나온다. 이 교수는 이 조선이 고조선이라고 하면서 고조선시기에도 의술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고조선에 질병치료 약물로 사용되는 것 중에는 노래기도 보인다. <경사증류비급본초>에 나온다고 한다. 한열이 나고 윗배가 더부룩한 증상을 낫게 해준다고 한다.

이날 이 교수는 신라삼국통일시기 이후 의학사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 이전 신라 의학은 다루지 않았다. 또 신라가 당나라 의학체계를 베낀 것을 강조했다. 신라가 의학대학을 세운 것도 당나라 것을 베끼면서 가능했다고 했다. 물론 일본도 당나라 것을 베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중국 당나라 ‘제국의학’에 동아시아가 편제되었다고 주장했다. 우리 의학을 중화주의체제 틀 속에서 해석했다. 우리 의학사를 중화주의사관으로 풀었다.

질의응답시간에 신라통일전쟁시기 이후 만 다루고 그 이전 의학사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이전 의학사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혹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이에 이 교수는 자신이 낸 책, <한국전염병사>에서 선사시대부터 삼국시기도 다루고 있다고 했다. 백제 온조왕 때 발생한 질병기록을 다룬 것을 예로 들었다. 이는 이 교수가 신라초기에 나타나는 의학 기록을 연구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강연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이는 시민강좌 주최 측인 한국고대사학회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써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맞추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교수는 질병치료를 언급하며 2천 년 전쯤 된 것으로 보이는 전남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쥐손이풀’ 씨앗이 나왔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 시기를 삼국시대 이전인 ‘원삼국시대’라고 했다. 질문시간에 이에 대하여 이의가 있었다. 원삼국시대는 언제까지를 말하며, 이는 삼국초기역사를 불신하는 것을 전제로 나온 말인데 이 교수도 이를 따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이 교수는 원삼국시대라고 표현한 것은 서울대 고고학과 김원룡교수 제자들만이 쓰는 말이라고 했다. 그의 제자가 서기2004. 어느 신문에 원삼국시대라고 했는데 그것을 인용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원삼국시대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는 이 교수의 주장과 다르다. 원삼국시대라는 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설명에서도 쓰이고 있다. 이날 이 교수는 원삼국시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썼다. 그러나 이의가 제기되자 황급하게 해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 이 교수는 서기5세기 중반 중국대륙정세를 언급하면서 당시 고구려 강역표시 지도를 제시했다. 사진의 지도를 보면 오른쪽 고구려 강역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서쪽경계가 현재 요하를 넘지 못하고 있다. 서기5세기 중반은 고구려 영토를 가장 많이 광활하게 넓혔다는 광개토태왕에 이어 장수태왕시기다. 이때도 요하를 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받을 수밖에 없다.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준 식민사관에서 고구려영토를 위 지도와 같이 그리고 있다.

낙랑군은 이 강좌를 개최한 한국도대사학회에 따르면 서기313년까지 평양지역에 있었다. 또한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 ‘선진문물’이 고구려, 백제, 신라에 전파되어 삼국이 나라 구실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학회의 주장이다. 낙랑군 선진문물을 수용해서 나라가 바로 서고 삼국 역사가 발전했다는 논리다. 따라서 이날 강연에서 언급한 이 교수의 신라 의학도 낙랑군 ‘선진의술’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낙랑군이 어디 있었냐고 물었다. 이에 이 교수는 자신은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더구나 낙랑군은 정치사이고 자신은 의학사를 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알려면 윤용구씨가 스페셜리스트(전문가)이기 때문에 그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물러섰다. 전화해서 물어봐야 한다고 미루었다.

하지만 이 해명도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이 교수는 강연 초반에 분명히 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낙랑군위치와 존재시기는 사학을 전공한 학부생이라면 일반사로써 배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생소한 것인 것처럼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교수는 뒤에 가서 다시 모순되는 주장을 했다. 자신은 의학사를 전공했기에 정치사에 해당하는 낙랑군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뒤이어 신라의학사가 정치사였다고 했다. 정치권력이 의료, 의학을 이용했다는 것이 근거다.

이날도 지난 강연을 비평한 인쇄물을 방청객에게 나눠주었다. 이번에는 처음 보는 방청객이 비평문을 받아갔다. 처음 시민강좌에 나온 듯 했다. 잠시 후에 다시 와서 궁금한 것을 물어왔다. 비평문이 주최 측을 비판하는 것인데 ‘주최 측에서 뭐라고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주 따갑게 비판을 하는 것이 염려되었던 모양이다. 한쪽만 주장만 듣기 보다는 다른 쪽 주장도 들어야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또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한 방청객은 그동안 밀렸던 비평문을 모두 챙겼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물 흐르듯이 글 잘 쓰냐’며 부러워했다. 또 다른 방청객도 ‘오늘 글은 리드미컬하게 따따따 잘 썼다’고 평했다. 이번 강연은 주제가 다소 딱딱해서 그랬는지 지난번 보다 방청객이 더 줄어 있었다. 다음 강연은 다음 주에는 한성백제박물관사정으로 쉬고 서기2017.10.31. 다시 시작한다. 김대환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이 ‘신라고분, 왕릉 주인공’을 주제로 맡는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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