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신라 유물, 모두 식민고고학으로 덧칠하다.

 

신라는 서기4세기 성립했다는 전제하에 신라 유물, 유적 왜곡 축소하다

신라는 서기5세기 까지도 지방을 직접지배하지 못했다

주군제는 서기 6세기인 지증왕6년에 실시되었다고 거짓말하다

 

신라는 언제 개국했을까. 서기전 57년이다. 우리 고대사를 전해주는 정사正史인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어느 한 개인이 쓴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 맨 처음에 붙은 ‘진삼국표進三國表’에 나오는 바와 같이 당대 최고의 학자인 김부식을 비롯한 11명의 학자가 고려인종의 명을 받고 편찬한 삼국정사다. 그런데 이러한 신라개국시기를 부정하는 시민강좌가 계속되고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관하는 시민강좌다.

서기2017.09.07.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시민강좌 제2강이 열렸다. 지난 9.5.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강좌는 대전대학 이한상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맡았다. ‘고고자료로 본 신라의 지방지배’라는 제목으로 강연에 들어갔다. 이 교수는 신라의 강역을 경주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강릉까지, 남으로는 부산지역까지로 설정하고 강의를 진행했다. 이 지역에서 금관, 토기, 이른바 환두대도, 목걸이 및 무덤의 규모와 양식을 해석해서 보니 이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유물과 무덤들의 연대를 서기5세기 이후로 보았다. 존속기간도 1백년 남짓이라고 했다. 유물은 대부분 무덤에서 나왔는데 이 교수는 무덤이 최소한 1백여 개가 넘는 다고 했다. 우리가 신라고분을 생각할 때 경주일대로 고정되지만 경상북도 영주의 경우 산자락에도 십수 개의 고분이 포진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무덤의 규모와 유물들의 발달 정도를 가지고 경주와 다른 지역 간의 정치사를 풀고자 했다. 대체적으로 경주에서 다른 지역으로 신라의 중앙권력이 침투해 들어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금관의 경우 경주지역서 나온 금관은 가장 발달된 모습을 보이지만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조잡하다. 이는 신라가 지방 세력을 장악하고자 하사한 것으로 해석했다.

▲ 서기2017.09.07. 서울 한성백제박물관 대강당에서 방청객들이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한 신라사 시민강좌를 듣고 있다. 지난번에 비해서 참석한 시민들이 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이 교수는 신라금관 발굴역사도 중간에 언급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관은 대부분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통해서 서기1920년대에 발굴한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소위 서봉총 발굴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서봉총 발굴을 시작한 일제는 이것을 자랑하고자 발굴이 끝나갈 무렵 스웨덴 황태자를 불러 금관을 무덤에서 끌어올리는 연출을 하게 했다. 스웨덴 황태자를 위해서 발굴했다는 것이다. ‘서봉총’이라는 무덤 명칭도 이때 정해졌다. 서봉총의 ‘서’는 스웨덴의 ‘서’를 한자로 쓴 것이고, ‘봉’은 금관에 보이는 새를 봉황으로 보아 붙인 것이라고 했다. 무덤 이름에도 일제식민통치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의 우리 신라 유물에 대한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일제는 신라 금 목걸이 중 절반을 훔쳐 갔다가 한일수교가 이루어질 때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또 강의 중간에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지시가 있은 후 이 지역의 동향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가 나간 후 경남지역의 여러 관련 단체에서는 이 복원사업을 대비하여 통일된 모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가야사 복원연구사업에 돈이 엄청나게 투입된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관련 인사들이 모임에 서로 끼어들고자 경쟁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지난 시민강좌 1강을 맡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펼쳤던 경북대학 사학과 주보돈 교수가 주도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날 이교수의 강의기조는 지난 1강을 맡은 주보돈 교수가 설정해 놓은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주 교수는 1강에서 조선총독부가 발명해 낸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충실히 따랐다. 앞으로 신라사 시민강좌 21강이 모두 이 틀 안에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교수도 이틀을 고스란히 준수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신라가 실체를 갖추게 되는 때를 서기4세기라고 못 박았다. 주 교수가 신라가 서기4세기에 성립했다고 한 말을 이렇게 바꾸어 말한 것이다. 또 주 교수가 쓴 용어도 그대로 따랐다. 서기4세기 까지 내적발전을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서기4세기 전 까지는 신라는 국가가 아니고 국가가 되기 위한 내적 발전을 하는 단계에 있었다는 소리다. 이 날 강의는 이 틀 속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 대전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한상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날 일제식민주의 사관을 깊게 드리우고 강의를 진행했다.

더욱이 이 교수의 주장을 살펴보면 신라는 서기5세기가 지나도 아직 중앙집권국가 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 세력이 강해 중앙의 권력이 지방을 집적지배를 할 수 없다. 지방 세력에게 금관이나 환두대도 등 사치품을 내려 보내 마음을 사야하는 처지다. 더 나아가 서기6세기 전반에도 이러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출토유물들이 신라 임금이 마립간으로 불리던 시대 것으로 보았다. 눌지 마립간이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서기417년 이후다. 서기5세기 이후 것으로 본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주군州郡제도가 지증왕 6년인 서기 505년에 실시된 것으로 보았다. 서기6세기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지방을 중앙이 직접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때 주군제도가 실시되었다면서 “주군제의 핵심적인 내용은 지방관 파견과 지방 지배를 관철시킨 것으로 이해된다.”라고 했다.

이 말은 이 때가 되어서야 신라가 국가체제를 비로서 갖추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서기4세기 신라가 국가가 되었다는 주장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흔히 고대국가는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여 직접 지배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 교수에 의하면 신라가 6세기나 되어야 고대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 일제가 만들어낸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철저하게 따른 결과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는 서기전부터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고 서기57년, 탈해이사금 때는 이미 지방을 직접 지배하는 주군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중앙집권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때 이미 고대국가였다는 것이다. 이날 이 교수는 이러한 1차사료 기록을 모두 무시해 버리고 조선총독부사관에 따라 찬란한 신라의 유물을 해석했다. 이들 강단식민사학자들의 특징은 삼국유물에 대한 연대측정치를 거의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제, 신라, 가야 유물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면 과학적인 연대측정 자료가 전무하다 시피하다. 이들이 흔히 주장하는 탄소연대측정을 할 수 있는 유물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연대측정해서 유물의 시기를 밝혔다는 얘기는 없다. 모두 서기5세기 이후 것으로 보는 통일된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하나의 이론만 정설로 통용되고 있다. 그것도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이다. 개관적인 과학이 요구되는 고고유물조차도 기득권 식민사학의 시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이 교수는 금가공과 예술성 면에서 당대 어느 문명도 흉내내지 못한 저런 장식품을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으로 바라보았다. 신라 고유의 창작품이라기 보다는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신라금관을 중앙아시아의 신목 숭배나, 북방의 무당들이 쓴 사슴뿔과 연관 시켰다. 그러나 신목의 원조는 <삼국유사> 고조선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슴뿔이 아니라, 고조선기에 한웅천왕이 내려온 신단수를 묘사한 것이다.

이날도 주보돈 교수의 강의를 비판한 ‘주보 돈의 금송아지론’ 인쇄물을 방청객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참 나누어 주고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오더니, “주보든 교수를 그렇게 모욕하면 어떻게 해, 당신 지금 뭐하는 짓이야!” 라며 소리를 질렀다. 삿대질을 하며 때릴 듯한 기세였다. 제지 하지 않으면 계속 그럴 것 같아, “여기 오신 분들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갖으라고 주는 겁니다. 불만 있으면 저처럼 글로 써서 반박하세요!” 라고 더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랬더니 노기를 참지 못하고 기자의 목을 쳤다. 행사진행자들이 몰려와 말렸다. 계속 들어오는 시민들이 있어 거기서 끝내고 인쇄물을 나누어 주었다.

거의 다 나누어 주고 있을 때 연세가 많은 다른 한분이 인쇄물을 받으면서 “이것 나누어 주지만 말고, 직접 여기서 강의를 하면 좋을 것 같아” 라고 하며 의외의 제안을 했다. 한성백제박물관을 강단식민사학자들이 독차지 하게 하지 말고 민족사학계에서도 똑 같이 시민강좌를 열어서 인쇄물처럼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래서 이날도 잠시 강좌를 듣고 있던 이인숙 한성백제박물관장에게 박물관 강좌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강당을 빌리는 것과 강사료 등 전반적인 내용이었다. 말미에 ‘민족사학계에서 신청하면 들어줄 것이냐’고 물으니, ‘여러 가지를 따져 봐야하고 신청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라며 부정적인 인상을 풍겼다. 국사광복의 길이 얼마나 험하고 먼지 암울하기만 하다. 다음 강좌는 서기2017.09.12.(화). 고려대 박대제 교수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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