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영원하다, 식민지내 유물, 유적, 제국역사에 맞게 날조하라...

왜곡과 날조로 뒤범벅 된 일본 고고학과 역사학...

이를 숭배하는 국내 식민고고학, 식민역사학...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어떻게 유물 조작을 할 수 있느냐?

조선은 식민지여서 가능했지만 중국 유물까지 조작하기는 불가능하다구!"

이것이 통상 국내강단식민사학계가 자신들의 매국식민사학을 숨기는 말투다. 아직도 이런 물정 모르는 소리 하는 강단식민사학계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아래 주소 유튜브 동영상에 나오는 지도를 유심히 보라.

https://www.youtube.com/watch?v=DWNFPJj3Frk

만주국은 1945년까지 일본의 괴뢰 국이었고 영토가 동으로는 만주부터 서로는 산해관과 승덕(열하)까지 이르렀다. 그런 만주국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주국의 영역 전역에서 일본인들에 의한 유물 위조, 유적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어릴 때 일요일마다 보았던 <은하철도999>라는 만화 영화가 있다. 거기 나오는 기차가 일제의 대륙 침략의 첨병 노릇을 했던 남만주철도의 특급열차 ‘아시아’호를 본 따서 했다는 걸 알고 소름이 다 돋았다. 만리장성이 요동까지 뻗어 나와 있었다는 주장도 남만주철도(만철)에 설치된 만철조사실에 속한 어용학자들이 주도했다.

어차피 만철조사실과 동경제대 역사학과 시조가 ‘시라도리 구라키치’이다 보니 이들은 같은 학맥의 세키노 등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들과 공조는 물론 김육불 등 중국인 친일 학자들과도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 1945년 이후로 만리장성 연구 권위자로 대접받는 동주신 등도 들러리였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의 요령성 길림성 헤이룽장 성까지 시야를 넓혀야 일제의 유물 위조, 유적 조작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가 있다. 국내에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는 전문가가 없는 것이 정말 아쉽다.

얼마 전에 제시한 최흔 각석도 대표적인 유물 조작의 한 사례이지만 일제는 만주와 조선에서 이 밖에도 수많은 유물 조작과 역사 왜곡을 일삼았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만주 쪽에서는 남만주철도 조사실의 주도로 친일 중국학자들을 들러리로 내세워서 지금의 요령성, 길림성, 헤이룽장 성을 두루 누비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유물, 유적은 철저하게 절도, 반출하거나 훼손, 파괴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유물들은 위치를 조작한다든가 연대, 사실관계를 멋대로 왜곡하는가 하면 심지어 허황된 신화를 역사적 사실인양 꾸며내서 위서로 만들어 전파했다.

▲ 그림1 - 정체불명의 일본도가 출토된 지점. 치치하얼 옆의 흑룡강성 명수현. 일제는 만주를 점령하자 이곳에서도 북한 평양에서와 같이 황국사관에 따라 일본역사에 맞게 유물과 유적을 도굴하여 왜곡, 날조한다.

당시 일제가 자행한 유물 조작, 역사 왜곡의 경우, 만주 쪽은 일본 동경제국대학 고고학과 출신인 하라다 요시토(原田淑人: 1885-1974)가 주도하고 조선쪽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역시 동경제국대학 건축학과 출신인 세키노 타다시(關野貞)가 주도했다.

예전에 일본군이 남경에서 누가 먼저 100명의 중국인의 목을 베느냐 하는 시합을 벌인 것처럼, 이 두 유물 조작범 역시 누가 먼저 세기적인 발견을 더 많이 하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이 벌인 시합은 세기적 발견이 아니라 세기적 조작극이었다.

하라다와 남만주철도 조사실 소속의 어용학자들이 중국의 친일파 학자들을 들러리 세워서 당시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던 중국의 북경 및 요령성, 길림성, 헤이룽장 성에서 마음껏 자행한 유물 조작, 유적 파괴, 유물 위조, 역사 왜곡, 위서 유포 등등의 문화침략행위는 정말 혀를 찰 정도다.

20세기 초 러일전쟁 때부터 시작된 일제의 이 같은 문화침략은 어처구니없게도 군인이 아닌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학술활동이라는 미명 아래 마음대로 자행되었다. 나중에 책에서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여기서는 일단 간단하게 “일본도 조작 사건”을 예를 들어 일제 유물 조작만행을 소개하겠다.

1930년대에 헤이룽장 성 명수현(明水縣)에는 일제의 괴뢰국이던 만주국의 일본인 참사관인 모리토모 산지(森友三治)가 살았다. 하루는 주위 사람들에게 오래된 일본도 한 자루를 보여 주면서 그것을 명수현의 제삼보(第三保) 마영둔(馬永屯) 인근에서 출토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어 댔다.

▲ 일본의 역사학자 타키카와 마사지로(瀧川政次郞: 1897-1992)는 만주에서 발굴되었다는 일본도日本刀를 역사로 둔갑시킨 인물이다. 즉 일본도를 금나라 시대의 유물로 판정했다.

우리나라 평양에서 1920년대에 일본인들이 이른바 ‘낙랑’의 것이라는 유물들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떠들고 다닌 것과 아주 비슷하다. 당시 마침 만주지역에 파견된 후 남만주철도에 배속되어 대대적인 발굴조사(사실상의 유물조작작전)를 벌이고 있던 일본의 역사학자 타키카와 마사지로(瀧川政次郞: 1897-1992)는 모리토모가 출토했다는 일본도를 입수한 후 북만주 고적 조사보고서를 제출할 때 이 정체불명의 일본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보낸다.

“일본의 고서인 <아즈마 카가미(吾妻鏡)>에 금나라 사람이 동해를 건너 북일본과 무역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점에 주목하고 이 일본 무기는 당시 북만주로 수입된 것으로, 여진족과 일본이 당시부터 교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즈마 카가미>는 일본 최초의 무사정권인 가마쿠라(鎌倉) 막부의 서기1180∼1266년 사이의 사적들을 기술한 일기체 역사책이다. 이 학자의 주장대로라면 금나라 때 여진인 이 동해를 건너서 일본과 교류한 결정적인 증거인 셈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당시 문화적으로 수준이 그다지 높지 못했던 금나라가 무슨 수로 저 넓은 바다를 횡단해서 일본을 왕래했을까. 게다가 이 학자 말로는 무역을 했다고 한다. 이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아니 여진족은 칼도 없나. 배 타고 바다 건너 저 머나먼 만 리 이역까지 와서 고작 일본도 한 자루 사 가지고 돌아갔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

이제 까지 파악돼 바로는 만주지역에서는 일본 유물이 발견된 일이 없다. 일본 본토에서도 금나라 시대의 유물이 단 하나도 발견된 바가 없다. 일본에 유학한 고고학자 정인성씨에게 한번 물어보시기 바란다. 그림1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헤이룽장 성의 명수현은 당시 일본 관동군이 주둔하고 있던 치치하얼 옆에 있다. 답이 딱 나오지 않는가.

당시 관동군 군영에 일본군이 얼마나 주둔하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수천 명은 주둔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1인당 한 자루씩 일본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①1930년대에 관동군이 가지고 있는 일본도를

②누군가(보나마나 일본군?)가 명수현에 가서 묻었고

③얼마 후 사전에 언질을 받은 모리토모가 현장으로 가서 가장 먼저 발견하고

④그걸 중국의 유물이라고 떠들고 다니고

⑤일본에서 파견된 고고학자 타키카와가 북만주 고적조사서에 “금나라 유물”이라고 적은 것이다. 이런 유물 조작과 역사 왜곡 수법은 서기1920년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한나라 낙랑 유물출토 소동과도 겹친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접수하고 얼마 안 있어 갑자기 중국 한나라제 낙랑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 관학자들이 가는 곳 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입맛에 맞는 것들이 나온 것이다. 이 구도를 보며 다음과 같다.

중국서 봉니 매입 > 봉니를 땅에 묻음 > 봉니 발견(?) > 봉니 매입 및 분석(?) > 낙랑(?) 유물로 확정 > 보고서에 기재 > 전 세계에 특보 타전하는 순서를 밟는다.

도대체 이런 기막힌 유물 조작 비법은 누구한테서 전수받은 것일까. 아니면 일본인들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조작본능인 것일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사건을 통해서 세키노 일당의 평양에서의 일련의 유물 조작과 역사 왜곡을 떠올리게 됩니다.

세키노나 하라다, 기타 수많은 조선총독부 또는 남만주철도 소속 어용학자들은 나중에 일본에 귀국해서 위대한 학자이자 중국사, 조선사의 권위자로 추앙받고 숭배 받는다. 국내 강단식민사학자들로 그를 추종하고 있다. 타키자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귀국한 후에 법제사의 권위자이자 훌륭한 학자로 둔갑해서 평생을 호의호식 하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다고 한다(2부에서 계속).

글: 문성재(중문학 박사) 저서: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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