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북한 평양은 장수태왕이 옮긴 평양이 아니었다.

 

유라시안네트워크 인문학특강,

복기대 교수, “지금 평양은 식민사관에 따라 왜구가 만들어 준 것...”

도대체 식민사관은 어디까지 스며들어 있는가?

 

우리의 뇌리에는 고구려의 장수태왕이 현재 북한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고 망할 때 까지 북한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였다고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구가 수십 년 동안 공들여 만든 일제식민사관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서기2016.10.10. 한국통신(KT)광화문 건물에서 열린 ‘유라시안연결망(이민화 이사장)’ 강좌에서 인하대학교 복기대 교수(융합고고학)가 이 같이 말했다.

왜구는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서기19세기 말부터 식민사관을 구축해 나갔는데, 문헌학, 고고학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식민사관을 구축하면서 소중화 조선의 사대주의 유학자들의 사관을 끌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소중화 조선의 사대주의 중화사학 자들이 북한 평양을 장수태왕이 옮겨온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실마리를 얻은 왜구가 문헌과 고고유물로 확정해 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왜구 관학자로 도리이류조, 이마니시류, 시라토리 쿠라키치를 들었다. 이것을 이병도 등 왜구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인물들이 해방 후 그대로 우리 국사책에 집어 넣었다는 것이다.

▲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복기대 교수는 역사를 밝힐 때, 문헌자료를 먼저 깔아 놓고 그 위에 고고유물을 적용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역사학의 기초라는 것이다. 또한 할 수 없이 식민사학으로 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더라도, 취득 이후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하였다. 복기대 교수는 중국에서 학위를 받을 때, 중국 교수가 '고조선=비파형 동검으로 논문을 쓰지 마라, 학위통과 후 하고 싶은 것 마음것 얘기라'고 했다며 강단주류사학계에서 학위를 취득하려는 초심자를 향하여 이 같은 조언을 하였다.

그렇다면 장수태왕이 옮긴 진짜 평양은 어디일까? 복기대 교수는 장수태왕이 옮긴 평양이 어디인지 밝혀내고자 수년동안 매달렸다고 하였다. 그 결과 북한 평양은 결코 장수태왕이 옮겨온 평양이 아니고 대륙에 있었음을 알아냈다고 하였다. 복교수는 그 증거로 수많은 문헌사료를 내놓았다. 복교수가 내놓은 자료 중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유사>다. 여기에 “살펴보면 고구려 때의 도읍은 안시성, 일명 안정홀인데 요수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요수는 일명 압록으로 지금의 안민강이라고 한다.”라고 나온다. 요수는 지금의 요하로 비정되는데 이것이 고려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압록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요사> ‘지리지 동경도’ 조에는 분명히 평양성이 동경요양부로 나오는데 지금의 중국 요령성 요양이라는 것이다. 이곳이 당나라 고종이 침략한 고구려의 평양성이었다고 나온다. 고구려가 망할 당시의 평양이 이곳 요양이라는 얘기다.

이외에 소중화 조선, 성종 때에 최부가 제주도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명나라해안에 난파하여 명나라에서 돌아오면서 기록한 <표해록>에도 중국 요령성에 평양성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까지만 하더라도 그곳 주민들은 고구려의 마지막 도읍지 평양성이 그곳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시조 묘를 각 나라의 도읍지에 설치하고자 하는데 고구려만 평양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결국 고구려의 시조묘는 세종이 고구려땅에 설치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북한 평양이 고구려 마지막 도읍지로 둔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2부 강의에서는 만주지역의 고고유물로 보는 역사가 소개되었다. 우리의 사실상 머리역사에 해당하는 조선(단군)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고고유물이 많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고고학을 전공한 복기대 교수는 수십 년 동안 만주를 누비며 직접 발굴에 참여하여 쌓은 고고학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의 실체를 그려나갔다. 고고학적 유물을 볼 때 서기전 25세기경에 요서지역은 이미 청동기시대에 있었고, 그 청동기는 중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고 조선의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더구나 이 지역서 발굴된 인골을 체질인류학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옛날 동북지방유형의 인류로 밝혀졌다고 하였다. 서기전25세기까지 나오는 청동기 유물의 주인공은 중원에서 온 인류가 아니라 동북지방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날 눈길을 끄는 것은 시루와 삼족토기류였다. 요동의 남만주 일대에는 단절되지 않고 시루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서기전2천년 만주 본계시 태자하 단동일대에서 발굴된 고고유물 중에 세발그릇과 시루가 나오는데 이것을 요동남만주의 마성자 청동기문화와 연결시켰다.

서기전 2천년이면 조선단군시대다. 시루는 한민족의 고유한 음식문화로 나타난다. 한땅과 만주 심지어 연해주에서도 시루가 발견된다. 시루는 통상적으로 떡을 쪄먹을 때 사용된다. 떡은 쌀을 주로 이용한다. 쌀을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넣고 김으로 찐다. 시루 밑에 솥을 걸고 솥안에는 물을 붓고 불을 때면 솥안에서 김이 일어나고 뜨거운 김이 시루 밑바닥에 뚫어 놓은 여러개의 큰 구멍으로 들어가 떡을 찌는 것이다. 이렇게 음식 만드는 방법은 고도의 사고작용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술이 오랬동안 쌓이지 않고는 어렵다. 서기전 2천년경에 이렇게 어려운 음식문화를 발달 시켰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상당한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떡찌는 기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볼 때 시루를 이용한 떡찌는 기술을 통해서 조선단군의 문명발달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 세발 달린 '채회도' 를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복기대 교수가 소개하고 있다. 이 세발 그릇에 그려진 문양은 중국 상나라의 수 많은 청동 제기류에 새겨진 도철문의 원조라고 하였다. 조선단군의 전형적인 하가점 하층문화(서기전24세기~서기전15세기)에서 출토 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 하가점 하층문화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에서만 나타나고 중원에는 없다고 하였다.

또한 주목을 끄는 것은 세발 그릇류다 물론 세발달린 시루도 나왔다. 세발그릇류는 중원문화라기 보다는 우리 고유문화와 더 친하다. 세발은 삼신 또는 삼사상을 뜻한다. 삼신, 삼사상의 대표적인 문헌사료는 <삼국유사> ‘고조선’ 조다. 한인-한웅-단군으로 이어지고, 천부인 삼개를 이야기하고 3천의 무리가 나온다. 또한 조선의 서울도 평양성, 태백산 아사달, 장당경으로 세 개의 도읍을 말하고 있다. 거의 삼으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뿐만아니다. 우리의 고유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는 무당굿의 노래에서도 삼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삼으로 꽉 차있다. 이 날 복기대 교수가 내놓은 고고유물 중에는 동경도 있었다. ‘여러꼭지 세문경’이라고 하는데 <삼국유사>에서 한웅천왕이 가지고 내려온 천부인 3개중의 가장 으뜸이 거울이다. 동경은 이 거울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땅에서도 무수히 발견되는 청동거울이다. 이 청동거울의 전통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땅과 요동 그리고 중국 하북성과 내몽골지역인 요서지역에서 이런 거울이 출토된다는 것은 이 지역이 중원문화와는 상관없는 한국문화와 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기대 교수는 이 날 요서지역의 하가점 하층문화를 발굴할 때 경험한 충격을 소개하였다. 서기전 1천7백년을 상회하는 삼좌점석성을 발굴하는데 참여하였는데 치가 있는 석성들이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소규모로 알고 있었는데 흙속에서 드러나는 성의 규모는 ‘봄페이’와 맞먹는다고 하였다. 수십 개가 펼쳐져 있었다고 하였다 최소한 1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국가로 봐야 한다고 하였다. 이미 이때 국가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가 사실임을 말해주는 유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복교수는 강단주류사학의 한국사 파괴가 도를 넘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 ‘역사전쟁은 향후 6개월 이내에, 길면 1년 안으로 우리가 완승할 것’라고 잘라서 말했다. 그 만큼 지금까지 축적해 놓은 정보와 자료가 많다는 말로 들렸다. 이날 강좌는 지정토론자 2명을 선정해서 진행하여 내실을 더 다졌다. 다음번 강의는 상명대학교의 박선희 교수가 ‘한국 금관문화의 기원과 정체성 인식’으로 강의를 한다. 서기2016.11.14. 17시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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